세상물정 모르고 꼬박꼬박 용돈을 받아 써버리기 바빴던 철부지 대학생인 나에게까지 경제위기의 여파가 닥쳐온 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평소 즐겨먹던 집 앞 포장마차의 닭꼬치가 최근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라버린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700원이었던 아이스크림콘은 1500원이 된 지 오래였고, 500원짜리 초콜릿은 가격이 그대로인 대신 크기가 반으로 줄어 있었다. 그동안 고유가네, 주식이 반 토막이 났네 해도 딴 세상 얘기인양 천하태평이던 내게 고물가의 덫은 이렇듯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5000원으로 하루살기 ‘날로 물가가 치솟는 서울에서 특별한 돈벌이 없이 용돈으로만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삶의 애환과 고초를 생생하게 그려 내겠다!’라는 거창한 구호로 시작된 나의 고물가 체험은 초장부터 친구의 콧방귀를 당해내야 했다. 친구의 첫 번째 핀잔은 ‘우리학교 애들 중에 과외 안 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걸?’이었다. (친구야, 나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건 아니거든?) 사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유학생들에게는 과외 하나 구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요새처럼 너도나도 주머니를 졸라매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두 번째 핀잔은 ‘하루 5000원으로 사는 게 뭐가 어렵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통학생들과 자취생들은 조금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취를 하는 탓에 교통비와 식비 및 각종 잡비 모두를 온전히 용돈으로 부담해야 하는 나에게 하루 5000원으로 살라는 말은 그야말로 죽으라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난히 자취생 비율이 높은 서울대 학생들의 쪼들리는 삶을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일종의 사명감(?)과 약간의 무모함으로 시작된 나의 ‘초특급 버라이어티 서바이벌 쇼’는 이렇게 일주일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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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출계획서와 보온컵은 일주일 내내 들고 다녔다. |
일주일 간의 지출계획으로 시작된 일상
드디어 첫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책상 앞에 앉았다. 사뭇 경건하기까지 한 아침이었다. 우선 일주일간의 지출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하루 5000원의 예산이 주어져 있었지만 언제 급한 지출이 생길지 몰랐기에 돈을 그 날 그 날 다 써버릴 수는 없었다. 또한 돈을 아낀다고 학교만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일도 없이 예정돼 있는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에 계획성 있는 지출이 필요했다. 우선은 꼭 써야할 곳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줄일 수 없는 항목은 차비, 불필요한 지출로는 대출도서 연체료와 은행 수수료, 간식비를 꼽았다. 아마 우리학교에서 대출도서 연체료를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 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도서 연체가 심한 편이다. 덕분에 내 핸드폰 소액 결제료는 늘 통화료를 육박한다. 또한 은행 문을 닫을 때가 돼서야 돈을 인출하는 게으름 덕에 아마 은행 수수료를 많이 내는 사람도 내가 순위권을 상회하지 않을까 싶다. 100원이 아쉬운 상황에서 이런 불필요한 지출은 절대 없어야 했다. 하루 차비 2000원을 제외하면 나에게 주어진 돈은 3000원 미만이었고, 이 돈으로 적어도 점심과 저녁, 그 외의 모든 부수적인 지출까지 해결해야 하는 빠듯한 생활이 예상됐다. 다소 걱정이 밀려왔지만 이번 기회에 비효율적인 소비습관까지 뜯어고칠 작정으로 힘차게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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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원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다. |
생각보다 높았던 고물가의 벽
1교시 수업을 위해 교실에 들어서니 군데군데 따뜻한 커피를 든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빵으로 때늦은 아침을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허둥지둥 나오다 아침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던 나는 주섬주섬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보온 컵과 커피믹스를 꺼냈다. 간식비를 줄이기 위해 생각해 낸 특단의 조치였다. 옆 사람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를 타 마시는 내 자신이 새삼 자랑스럽기까지 했고, 생각보다 하루가 순조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점심시간에는 후생관으로 향했다. 원하는 음식만 골라먹을 수 있어 돈을 아끼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밥과 국만 덩그러니 담긴 식판을 보고 계산대의 아주머니는 놀란 듯 웃으셨지만, 체면이 문제가 아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도서관에 책부터 반납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연체료는 없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오후 수업이 끝이 났고, 친구와 밥을 먹으러 갔더니 이번에는 식권이 2500원이었다. 배가 너무 고파 일단 밥을 먹고 나니 수중엔 고작 500이 남아 있었다. 집에 갈 차비가 없었다. 내일의 예산을 당겨쓸까 하는 유혹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유혹을 뿌리치고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녹두거리에 내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다 문득 서글퍼졌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 한 잔, 와플 하나 안 먹고 고작 밥 두 끼를 먹었을 뿐인데 차비가 없다니 고물가의 벽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그래도 집 앞 슈퍼에 들려 사랑의 빵에 마지막 500원을 넣으며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쳤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진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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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피게이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인터넷 출력 주문을 하면 돈을 절약할 수 있다. |
곳곳에 숨어있는 절약의 팁
둘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는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해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수업자료들의 출력이 문제였다. 특히 이번 주에는 조발표가 겹쳐 출력할 자료가 만만치 않았고, 조원들이 가져 온 자료에 눈치껏 묻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평소에는 귀찮아서 잘 사용하지 않았던 인터넷 출력 주문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학내 씨피게이트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출력자료를 주문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찾으러 가기만 하면 되는데, 한 장에 무려 30원이나 아낄 수 있다. 수 십장의 자료를 출력하니 1000원이 넘는 돈이 절약돼 기뻤고, 이 돈으로 친구와 와플 한 개를 사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생크림을 얹어먹는 백 원이 아까워 그냥 와플과 생크림 와플을 하나씩 사서 두 개를 겹쳤다가 먹으니 돈도 아끼고 달지도 않아 부담이 없었다. 다음에는 조모임 장소가 문제였다. 으레 가는 학내 카페나 식당은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미리 중앙도서관의 스터디 룸을 예약해 모임을 주선하는 기지를 발휘해 커피 한 잔에 하루 생활비를 몽땅 투자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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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을 보기위해 교내 문화관을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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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활문화원의 수요시네마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
공짜로 문화생활 즐기기
평소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영화나 연극을 보러가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 이번 일주일이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처음엔 1~2천원으로 즐길 수 있는 저렴한 공연을 찾아가려 했지만 왕복 차비에 공연비까지 합치면 하루를 쫄쫄 굶어야 외부 공연을 보러갈 여유가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외부 공연은 아무리 저렴해도 포기하고, 학내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을 먹고 보니 굳이 외부로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학내에도 다채로운 문화 공연이 많았다. 대학생활문화원에서 하는 수요시네마 ‘은하해방전선’과 언론정보학과 영상제 ‘진짜영상’ 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다른 공연들도 많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학내 공연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공연의 종류도 음악회, 영화 상영, 각종 동아리 공연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해 놀랐고, 그 공연의 질도 외부 공연에 못지않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비록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못 봤지만 돈도 아끼고 문화생활도 하는 일석 이조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공연 후 매번 집까지 걸어와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당장의 차비가 없으면 아무리 공짜 문화생활이어도 사치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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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없으니 너무나 피곤한 일상, 돈과 행복의 관계는 생각보다 밀접했다. |
풀리지 않는 물음 –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을까
드디어 일주일의 생활이 끝났다. 새롭게 깨달은 사실들 위주로 즐겁게 글을 쓰려 했지만 사실 그리 쉽지 않은 일주일이었다. 체험을 하며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점은 돈이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었다. 혹자는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크게 부족함 없이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배부른 소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일주일, 물론 나쁘지는 않았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나의 잘못된 소비습관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학교 곳곳에서 돈을 아낄 수 있는 숨은 팁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행복했느냐?’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확실히 나는 이번 일주일간 예전보다 ‘덜’ 행복했다. 평소에 좋아하던 커피 한 잔, 즐겨 보던 영화 한 편, 친구들과 가끔 먹는 맛있는 음식들을 포기하고 나니 생활이 너무나 무료했다. 1700원짜리 밥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했고, 차비가 없어 추운 날씨에도 1주일에 5일은 걸어서 집에 돌아와야 했다. 매일 학교 게시판을 뒤져 전단지 아르바이트나 심리학 실험을 찾는 모습이 서글프기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과제와 시험은 끝없이 밀려들었고, 취재와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강행군을 지속했던 나는 끝내 병이 나 병원 신세를 졌다. 그리고 종국에는 지난 일주일 생활비의 세 배에 육박하는 병원비를 지출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이는 현실을 만만하게 봤던 나에게 세상이 내린 쓰디쓴 교훈이 아닐까 싶다.사실 이번 호 ‘기자가 뛰어든 세상’ 코너는 한정된 돈으로 생활하는 기자의 모습을 통해 고물가의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1주일간의 생활을 통해 나는 비단 고물가의 현실이라는 껍데기 속에 가려진 삶의 현실,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종래에 누리던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절망감이 오늘도 가난한 대학생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고, 절망감은 행복감의 상실로 이어지는 듯 보였다. 생각보다 물가는 훨씬 비쌌고 돈 쓸 곳은 예상보다 넘쳐났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동안 1~2천원의 돈에 관대하게 살아온 나에게 돈과 행복의 관계는 너무나도 밀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