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남으로,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의 세상으로 건너온 탈북자들에게 남한은 마치 외계와도 같은 환경이다.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시장 가는 법, 은행가는 법, 버스 타는 법, 심지어는 돈 쓰는 법조차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사회적 신생아’인 셈이다.
탈북자도 피해갈 수 없는 취업난 북한에서 남한으로 온 탈북자들이 정착과정에서 직면하는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취업이다. 탈북자들의 사회 적응을 담당하는 하나원에서는 초기 정착에 관한 전반적인 교육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탈북자들이 사회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부족하다. 정부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훈련수당을 제공하고 무료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직업훈련제도’와 탈북자들을 우선순위로 채용하는 ‘취업 보호제’를 두어 탈북자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photo1하지만 탈북자들의 취업이 단순한 제도적인 보완만으로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남한에서의 경제생활에 대해 탈북자들이 거는 기대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크다. 탈북자들은 생사의 고비를 넘겨가며 북한을 탈출해 남한까지 온 만큼 예전보다 수준 있는 생활을 원하고, 그러한 수준 있는 생활을 위해서는 사무직 혹은 전문직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자본이 있지도 않은 탈북자들이 실제로 남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육체를 사용하는 3D 업종에 거의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기대감과 현실과의 괴리는 탈북자가 북한에서 전문직에 종사했을 경우 더 심해진다. 실제로 북한에서 의사로 일했던 한 평양 출신의 인텔리 탈북자의 경우, 남한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의사로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학 졸업증명서가 필요하다는 말에 결국 의사로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기본적으로 ‘노동’에 대해 가지는 생각도 이들의 직장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사회주의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임의적으로 직장을 배치해주기 때문에 개인이 직업을 가지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더 나은 환경의, 보수가 좋은 직장에서 일하기 위해서 능력을 키우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한다. 남한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이들이 버텨나갈 기반이 거의 없는 탈북자들이 직업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 직업? 아리송합네다 탈북자들이 설사 취업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일을 계속해서 하기는 쉽지 않다. 일을 하기 위한 기술이 부족하고, 작업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자의 책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주변의 인내와 배려가 절실히 부족하다. 탈북자들이 많이 종사하는 3D 업종의 경우, 12시간가량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육체를 사용한 노동에 익숙하지 않아 노동 강도가 우리만큼 세지 않다. 때문에 대다수의 탈북자들이 서빙이나 막노동 같은 높은 강도의 육체노동을 견뎌내기가 힘들고, 일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물론 자신의 굳은 의지로 견뎌내는 탈북자들도 있지만, 이들의 노동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육체적 노동만을 요구하는 경우,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자들이 많이 생긴다. 정부의 지원 또한 탈북자들이 직업을 갖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는 요인 중 하나이다.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사회로 나옴과 동시에 정착금과 국민임대주택이 제공된다. 이후에는 매달 일인당 오십만원 정도의 생활비가 지급된다. 또한 정착 초기에는, 탈북자라는 특수성 때문에 각지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러한 초기의 ‘풍요로움’은 탈북자들을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타인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관성에 젖게 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직업을 가져 스스로 자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당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강연회나 인터뷰 등을 통해 생활을 유지하다 후에 직업을 갖지 못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의 손영지씨는 이와 같은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 사회와 연계된 탈북자들의 직업 교육제도를 제안했다. 정부가 수천명에 이르는 탈북자들을 일원적으로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탈북자의 거주 지역의 작업장에서 실무를 배우며 작업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역단위의 시스템을 구축하게 됨은 실무 능력을 더 효율적으로 습득함은 물론이고, 지역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속도도 더 빨라져 탈북자들의 사회 적응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굳게 닫힌 학교 성인 탈북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 취업이라면, 청소년기의 탈북자들에게는 학교라는 또 하나의 큰 난관이 버티고 있다. 탈북 청소년들이 한국 일반 학교에 적응하는 것은 외국학교에 적응하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한국말을 사용하는 동포끼리 무슨 어려움이 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거의 기본적인 의사소통 이외에는 남북의 언어 이질화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수업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학의 ‘교집합’과 같은 용어를 북한에서는 ‘만남’이라는 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용어들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 우리의 교과과정이 초등6년, 중고등 6년 도합 12년인 반면 북한의 교과과정은 10년이다. 우리는 영어 중심의 외국어교육이지만, 북한은 러시아어를 더 많이 배운다. 또한 탈북 청소년들의 경우, 탈북과정에서 기본적으로 2,3년씩의 학습 공백이 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생소하고 어려운 남한의 교과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이와 같은 학습 수준의 차이와 공백은 탈북 청소년들을 일반 학교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탈북 청소년들의 정체성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탈북 청소년들은 ‘탈북’이란, 굉장히 특수한 경험을 감수성이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 겪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생결단의 순간을 어린 나이에 겪었기 때문에, 이들을 남한의 일반 청소년들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에서 온 청소년들이 매우 거칠고 난폭하다는 이유로 이들을 기피하기도 한다고 한고, 실제로 탈북 청소년들의 몇몇 일탈 사례들이 신문 등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남한에도 일탈하는 청소년들이 존재하듯이 탈북 청소년들의 일탈도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의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일부 사례들을 가지고 모든 탈북 청소년들이 그럴 것이다 라는 막연한 생각은 탈북 청소년들을 더욱 더 견고한 편견에 가두는 일이 된다. 오히려 탈북 청소년들의 특성과 경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그들이 남한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알맞은 교육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도 대학입시열풍“남한이나 북한이나 교육열은 매우 높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려는 열기는 높다. 하지만 이 또한 진학한 후 대학 생활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많은 대학들이 재외국민 특별전형을 통해 탈북자들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탈북자들이 대학으로 진학한다고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이 사회 생활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는 탈북자들의 열의는 우리의 입시만큼이나 대단하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수업을 따라가고 대학생문화에 적응하는 등에 있어서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실례로 한 탈북자 출신 대학생이 ‘MT’가 무엇인지 몰라 엠티에 가지 못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다.) 성적도 좋지 않고,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자 출신 대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요즘은 장학금 지급 요건을 강화하고, 입학 조건을 엄격화 하는 등의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고 한다. photo2손영지씨는 “탈북자들은 마치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백지와 같다”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특성과 강점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탈북자들이 본격적으로 남한에 정착하기 시작한지 5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그들이 남한에 잘 적응하고 못 적응하고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그들을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우리가 가지지 못하는 그들만의 특성을 존중하고 살려주는 방향으로 정착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북한에 대한 지식을 잘 살릴 수 있다면 향후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질 수도 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 하나로 국경을 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고 재단하기 보다는, 한번쯤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 이 기사는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손영지씨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