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지금까지 돈 한번 제대로 벌어본 경험이 없던 내가 학내알바를 찾아 나선 것은 기숙사 생활로 인해 생긴 시간과 집을 나왔으니 한번 쯤 내 힘으로 돈을 벌어보자는 의욕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하게 된 것이 의류학과 의류소재연구소 피험자와 문화인큐베이터(문큐) 화이터였다. 학내 알바를 무려 두개나 하게 되어, 편집회의에서 학내 알바 아이템을 내놓았더니 편집장이 ‘기자가 뛰어든 세상’ 코너에서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다른 기자들의 반응도 대부분 재밌겠다는 것이었다. 알바해서 한 턱 내란 얘기까지 덧붙였다. 그런 흑심이 있었군. 하지만 비단 그 이유가 아니라도 학내에 근로·봉사장학생 말고도 이런 알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학생들에게 유용한 정보 제공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돈도 벌고 기자가 뛰어든 세상도 쓰는 ‘일석이조’의 속셈이 전혀 없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알바에 뛰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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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받고 음료를 만들고 반납된 접시를 정리하는 것까지가 화이터의 주요 임무다. 손님들이 먹다 남긴 잼을 치우는 거이 제일 곤욕스럽다. |
기숙사 입사 첫날, 알바를 구하기 위해 웹상을 기웃거리던 나는 정보화포탈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알바모집 광고를 발견했다. ‘의류학과 피험자 구함!’ 몸매에 자신은 없었지만 10회에 20만원이라는 문구에 혹해 버린 것이다. 바로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고 다음날 연락이 왔다. 면접을 봐야한다나. 이미 담당자의 수첩에는 지원자들 이름이 여럿 있었다. 나보다 먼저 지원한 사람이 많아 경쟁이 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알바를 구해야한다는 일념을 가지고 면접 담당자의 면접 질문에 마음에 들 수 있게 답변했다. 기숙사 사생이라 시간도 많고 중간고사도 문제없다며 나만큼 적당한 피험자가 없다는 것을 애써 강조했다. 며칠 뒤에 실험에 참가하라는 연락이 왔다. 매주 월, 목 저녁 7시부터 9시까지였다. 문큐에서의 알바는 정말 우연찮게 이루어졌다. 문큐의 운영자로 있는 선배를 만나러 간 날 문큐에서 알바생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득 알바 생각에 금요일에 문큐에서 일 할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금요일에 수업이 오전에 끝나 시간이 넉넉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던지 바로 그 자리에서 허락을 얻었다. 매주 금요일 5시간, 시급 3000원이었다. 의류학과 알바, 돈도 벌고 건강도 챙기고 “실험동안 술, 담배 모두 끊으시고 공부한다고 밤새지 마세요. 저녁식사는 5시 반 전까지 하시고 그 이후엔 물 이외엔 아무것도 섭취하지 마세요.” 피험자 알바를 지원할 때부터 실험할 때까지 실험 담당자에게 줄곧 들었던 말이다. 실험할 때 술, 담배 및 밤샘으로 인한 체력저하가 머리 감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란다. 힘없는 내가 어찌하랴. 실험 시작 전까지 평상시와 같은 정상적인 몸상태를 유지했다. 그 덕인지 몰라도 몸이 전과 달리 가볍게 느껴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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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서를 부착할 때는 만감이 교차한다. ‘그놈의 돈이 뭔지…’ |
의류학과 실험 첫날, 정해진 시간보다 10분 일찍 실험실에 도착했다. 나와 같은 피험자가 2명 더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날짜를 달리해서 총 6명이 실험에 참가한다고 한다. 담당자에게 실험 내용과 앞으로 해야 할 일, 주의할 점에 대해 들었다. 이번 실험은 모자테스트였다. 다행이었다. 다른 기자들이 의류학과 실험 알바를 한다는 말에 ‘그 몸매에 어떻게’, ‘새로운 체형을 실험하나요?’ 등의 여러 핀잔을 들었는데 다행히 의류가 아니라 모자였다. 담당자가 프리테스트인 만큼 오늘은 실험을 하면서 이것저것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한다. 이런 실험이 많으냐는 질문에 “축구복, 수영복, 땀복 등 많은 실험을 한다”며 “이번에 하고 나중에 또 하고 싶으면 지원하세요”라고 답했다.실험은 흡습지를 이마에 붙인 후 모자를 쓰고 5가지 항목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고막열, 온열감, 습윤감, 쾌적감, 압박감이었다. 준비된 편안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담당자에 의하면 10억짜리라는 실험용 컨테이너에 들어갔다. 최적 생활을 위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된 실험 장소였다. 실험에 쓰이는 여러 장비들이 준비 되어 있었다. 머리에 온도 센서기를 붙이고 모자를 쓰고 실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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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험 직전에 고막열과 얼굴의 습도를 재야 한다. 실험 준비를 마친 후 고막열을 측정중인 필자(오른쪽). |
센서도구를 얼굴에 부착하는 동안 마치 내가 실험도구라고 느껴져 약간 소름이 돋기도 했다. 30분간 앉아 있기, 20분간 발판을 이용한 걷기, 50분 휴식이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실험동안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실험 중간에 머리에 부착한 센서를 통해 모자 쓴 머리의 온도와 습도가 측정됐다. 몸에 연결된 센서장치에선 계속해서 데이터가 저장되고 용지에 출력해서 나왔다. 실험은 프리테스트라 그런지 80분 만에 끝났고, 2시간의 실험이 끝나자 예상외로 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담당자도 이번 실험이 가장 편하게 하는 것이라며, 다른 실험은 같은 시급에도 온몸에 센서기를 붙이기도 하고, 심지어 관장의 온도까지 측정하기도 한다고 한다. 운이 좋았을 따름이었다. 2시간 동안 긴장한 탓인지 실험 후 마시는 물 한잔이 꿀맛이었다. 그렇게 실험 첫 날이 갔다. 문화인큐베이터, 정신없는 금요일 문큐는 2000년 서울대생에게 문화 공간을 제공하고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생긴 학내 자치 공간이다. 총학생회의 위임을 받아 문큐 자치위원회가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알바생을 ‘화이터’라 칭하고 이들이 운영위원이 되어 문큐 운영에 참여한다.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주인의식을 느끼게 됐다. 아마 학생 자치 공간이라서 학생들의 참여를 이렇게 이끌어 내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나도 문큐의 화이터인 동시에 운영위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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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거지할 시간은 따로 없다. 쌓이기 전에 빨리 해야 한다. 마음만 급해 이미 유리잔 1개를 깨뜨려다. 쉿, 운영자에겐 비밀. |
문큐에서 일하기 전에는 미리 메뉴에 있는 음료 만드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레몬아이스티, 아이스커피, 미숫가루, 토스트 등의 조리법은 간단했지만 한꺼번에 배우려니 벅찼다. 과연 내가 다 외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아니나다를까, 화이터 첫날 첫 손님의 첫 주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주문한 아이스커피 만드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빈 컵만 쟁반위에 올려놓고 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 않은가. 마침 문큐 운영자가 나타났다. 그렇게 문큐에서 나의 첫 손님맞이는 시작됐다. 끊임없이 손님이 오고, 주문을 받고, 음료 만들고, 설거지하고, 정리하고 그렇게 화이터가 된 첫 금요일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문큐에서의 일은 재미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 잘 어울린다는 『서울대저널』 편집장의 말에 으쓱한 적도 있었다. 문큐를 이용하는 수많은 가지각색의 학생 덕에 내 금요일은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즐거웠다.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휴식할 공간을 찾기 위해, 수업준비를 위해, 동아리 모임을 갖기 위해 그들은 문큐라는 공간에 오고 많은 것을 하고 갔다. 엄연히 문큐 화이터 알바는 노동이었지만 즐거운 노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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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관 308호에 위치한 문화인큐베이터. 매주 금요일이면 필자를 만날 수 이다. 기사를 보고 오면 서비스는 기본!! |
남겨진 이야기, 남겨진 알바
이번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쓰면서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우리 주변에, 아니 학내에 우리를 기다리는 알바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외나 학외 알바에 구미가 더 당길 수도 있지만, 학내 알바를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이유는 학내의 다양한 구성원을 만나고 남는 시간을 헛되이 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이 두 개의 학내 알바를 한다. 의류학과 피험자 알바 횟수는 절반이 남았고, 문큐 알바는 이번 학기동안은 계속할 것이다. 게다가 또 스누라이프나 정보화포탈을 클릭하다 새로운 알바를 구할 지도 모른다. 과외를 못 구했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근로?봉사장학생에 떨어졌다고 안타까워하지 말자. 공강시간이 많다고 허비하지 말자. 잠깐 학교 안을 살펴보면 괜찮은 알바자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