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1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저널의 편집실에서 무엇인가를 하다가 어느덧 9시가 넘어선 시간이 되었을 때었다. 그 시간의 학교 건물이 늘상 그렇듯, 학관도 인적이 뜸했고 매우 고요했다. 쥐 죽은 듯한 분위기를 즐기며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쿵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무슨 소리일까, 라고 의아해가며 그리고 약간의 무서움까지 느끼며 계속 계단을 내려가다가 마주친 것은 4명의 남학생들. 그들은 그 시간에 거기서 팩차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붓이 자기들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들 나누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 앞을 지나갈 때 -그들의 이야기가 때마침 절정을 이루었는지, 아니면 조그맣고 만만하게 생긴 여학생 한 명의 등장이 그들의 분위기를 한껏 무르익게 만들었는지- 그들 중 한명은 소리쳤다. “에이 x, 어디 ‘ 성폭행 강의 모니터링’ 있으면 내가 할 텐데” 신나게 팩차기를 하고 있던 그들의 벽 뒤에는 관악여모의 ‘성폭력 강의 모니터링단’을 모집하는 자보가 붙어있었고, 아주아주 즐겁게 팩차기를 하다가 마침 내가 지나갈 때, 그걸 보고 자기들끼리 아주 신나서 웃으며 하는 소리가 바로 그런 소리였던 것이었다. ‘성폭력’ 강의가 아니라 ‘성폭행’ 강의이면 자신들이 모니터링 단에 지원할 것이라는 말을 아마도 농담 삼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일순간 어안이 벙벙해졌고 이윽고 상황 파악을 한 다음에는 그 날의 보람찼던 나의 하루가, 그들이 팩차기를 하며 한 그 어이없는 농담 고작 한 마디 때문에 ,불쾌하게 저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날 내가 느낀 불쾌함은 내가 일상에서 느꼈던 또 다른 불쾌함과 묘하게 닮아 있음을 발견했다. 오늘은 또 어떤 반가운 사람이 혹시나 나에게 메일을 보내지 않았을까, 라는 순진한 기대를 안고 메일박스를 체크할 때면 어김없이 갈등에 시달린다. “오랜만이에요, 저 기억하세요?”라거나 “어젠 잘 들어갔어?” 등등의 친근한 제목의 메일이 낯선 이름의 사람으로부터 와 있으면, 내가 과연 이것을 클릭해서 볼 건지 말 건지 한참을 갈등해야 한다. 내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의 반가운 메일일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기대를 가지고 클릭했다가, 자칫 비참해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클릭과 동시에 눈앞에 펼쳐지는 현란한 사진들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손과 발이 묶인 채로 여러 명의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는 여자들. 그 버전도 다양하여 여성들에게 온갖 옷을 입혀 놓았다. 뭔가 어색한 간호사 복장을 입고 있는 여성들이 나오는 버전에서부터 시작하여 세일러복을 입은 여고생 버전. 심지어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강간하는 유아 강간 버전도 있다. 그리고 폰카나 몰카를 통해서 목욕탕이나 화장실 등의 장소에서 일반 여성들이 옷을 벗는 장면을 포착한 영상들이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이러한 영상물은 숱하게 많은 남성들에 의해 소비된다. 요즘은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포르노가 초등학교 4,5학년 학생들에게 익숙한 어떤 것이 된지 오래이고, 초등학생뿐 만 아니라 꼴에 자부심으로 충만하여 좌파운동을 하는 남성은 물론이고 혹시 어쩌면 자녀를 가진 우리의 아버지들 중에도 이런 걸 즐겨보는 분들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포르노쯤이야’ 일반적 소비품이 되었고 이는 점점 기업화, 산업화되고 있다. 물론 포르노를 보고 느끼는 감정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러한 류의 사진들은 그다지 보통의 여성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사진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지배받는 것에 이미 길들여져버린 여성이나 매저키스트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과 무척이나 닮아있는 같은 여성이 손과 발이 묶여지고 무릎이 꿇린 채로 강간당하는 영상물을 -좋아할 리가 만무하지가 않는가. 그리고 내가 인터넷을 하다가 별 생각 없이 무언가를 클릭함과 동시에 수없이 뜨는 붉은 색 팝업창을 마주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그 ‘불쾌함’은, 남학생들의 성폭력적 발언을 마주했을 때 느끼게 되는 불쾌함과 아주 많이 닯아 있다. 오늘날 소위 포르노라는 것이 이미 많은 남성들에게는 버젓한 성교육 지침서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친구들이 음담패설을 하며 킬킬거릴 때에도 쫄지 않고 “그런 것쯤은 초등학교 때 때우고 와야 하는거 아냐?”라고 말하는 것이 촌스럽지 않고 소위 쿨한 남자아이의 모델이 되었고,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여성들도 속으로는 좋아할 것이다.”라는 답변이 20%에 다다른다. 또 어떤 미친놈은 20여명에 달하는 여성들을 죽여놓고 고작 하는 소리가 “여성들은 몸가짐을 조심해라” 였다. 그리고 나는 학관에서 성폭행이 일어나는 강의가 있다면 자신이 모니터링하겠다는 남학생들의 ‘농담’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모든 것이 무관하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인구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인권을 모독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포르노를 즐기면서도 자신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별 기대도 하지 않았으므로- 실망이라기보다는 대략 우습기 짝이 없다. 그리고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여성이라면 일생동안 최소 한 번 이상의 성폭력을 겪게 되는 국가, 포르노사이트 접속률 세계 최상위를 자랑하는 국가에 살고 있으면서도, 성폭력 발생 빈도가 높은 국가라는 외국의 평가에는 기를 쓰고 반발하는 것은 대략 ‘황당’이다. 성폭행 강의 모니터링을 하고 싶은가? 진정으로 그따위 욕구가 치밀어 오르거나 그 따위 농담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동족 인간으로서 차라리 당신의 그것을 거세할 것을 진지하게 권유한다. 특히 잔혹하기 그지없는 포르노를 많이 봐둔 인간이라면, 스스로 자신의 물건을 거세하는 것도 그토록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