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유감(八字遺憾)

지난 설 연휴 기간 중 방송된 ‘동안선발대회’란 요상한 이름의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한 마흔여섯의 아주머니는 “언니!” 혹은 “○○야!”라고 불러도 될 만큼 젊고, 또 예뻤다.중학교 신입생 교복을 입혀 놓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삼십대 허대리 아저씨도, 중국 기예단 만큼이나 유연한 관절을 자랑하시던 예순넷의 밸리댄스 할머니도 충격, 충격이었다.하지만 더 큰 충격은 TV에서 물러나와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때 받았다.

지난 설 연휴 기간 중 방송된 ‘동안선발대회’란 요상한 이름의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한 마흔여섯의 아주머니는 “언니!” 혹은 “○○야!”라고 불러도 될 만큼 젊고, 또 예뻤다. 중학교 신입생 교복을 입혀 놓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삼십대 허대리 아저씨도, 중국 기예단 만큼이나 유연한 관절을 자랑하시던 예순넷의 밸리댄스 할머니도 충격, 충격이었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TV에서 물러나와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때 받았다. ‘八.字.주.름.’ 거울 속에서 내가 발견한 건 바로 희미한 팔자주름이었다. 유재석의 입담에 얼굴이 아프도록 깔깔대느라 찔끔거린 눈물을 닦으려고 거울을 보다가, 제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웃는 표정 그대로 골을 만들고 있는 입가의 게을러진 근육들을 발견한 것이다. 피부는 스무 살 고개를 넘으면 탄력을 잃기 시작한다 하니, 내 피부의 변화가 유난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정작 충격적인 건 입가의 옅은 골짜기를 처음으로 발견한 내가 느낀 ‘공포’였다. 나는 왜 하필, 어처구니없게도, 막 생성될 조짐을 보이는 팔자주름에 공포를 느끼고 만 걸까.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 단 한걸음도 /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기형도 – 늙은 사람, 부분) 혹여 숨겨둔 주름이 두드러질까 웃지도 않는 출연자들을 아랑곳 않고 내가 얼굴이 아프도록 웃어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나는 아직 그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는 우월감 덕분이었을 거다. 그런데 돌연 얼굴 위로 떠오른 희미한 팔자주름은 머지않은 ‘그 세계’ ‘그의 틈입’을 경고했다. 젊음의 방벽에 미세한 균열이 나고 있음을 깨닫고 나는 순간 무서워졌다. 왜냐하면, 나도 ‘잔주름과 칙칙함을 동시에 고민하는 30대 여성의 65%’가 되면 하얗다 못해 빛이 나는 피부를 가진 이영애가 권하는 고가의 주름개선 화장품을 심드렁하게 보아 넘기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안’을 예찬하는 이 사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고령 인구수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가혹하게 ‘늙음’을 차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고 예쁜 것, 세련되고 부유한 것, 온전한 것이 아니면 그 가치를 음미해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고된 생에 떠밀려 제 나이를 고스란히 내비치는 얼굴을 가진 이의 삶에는 호기심을 갖지 않는 까닭이다.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세월과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하는 얼굴 가죽을 거듭 추슬러 올리며 살아갈 자신이 나는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동안 되는 법’이란 비책이 유통되고 있다. 누리꾼들은 여전히 탱탱한 황신혜가 사십 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토해낸다. 미추(美醜)와 노소(老少)를 가르는 기준선이 오로지 외모뿐인 사회. 능력은 물론, 예뻐야 하고 부유해야 하고 이제 어려보이기까지 해야 하는, 타고난 너와 나의 ‘존재’를 부정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이 곳. 타고난 것, 원래 그러한 것을 비난하거나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인데도 우리는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너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비참함은 ‘적극적인 자기관리’란 우스운 이름의 최면으로 잊으려 애쓰면서. 쓴 웃음을 지으니 또 다시 입가에 ‘八字’가 두둥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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