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과 서울대, 공존을 모색하다

관악캠퍼스는 그 어느 곳보다도 계절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파릇파릇 화창한 봄, 짙푸른 여름, 다양한 색으로 물드는 가을 그리고 설경을 맞닥뜨릴 수 있는 겨울까지.캠퍼스가 관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덕에 서울대 구성원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그렇다면 관악산 입장에서 본 서울대는 어떠할까.울창한 나무숲 대신에 빼곡한 건물숲이 들어서고 녹지훼손과 지하수 고갈로 도림천은 말라가고 있다.

관악캠퍼스는 그 어느 곳보다도 계절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파릇파릇 화창한 봄, 짙푸른 여름, 다양한 색으로 물드는 가을 그리고 설경을 맞닥뜨릴 수 있는 겨울까지. 캠퍼스가 관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덕에 서울대 구성원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그렇다면 관악산 입장에서 본 서울대는 어떠할까? 울창한 나무숲 대신에 빼곡한 건물숲이 들어서고 녹지훼손과 지하수 고갈로 도림천은 말라가고 있다. 정작 관악산은 서울대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1960년대까지 한적했던 자하골약 5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면 관악산으로 이주한 의성 김씨 일가를 만날 수 있다. 집성촌 주민들과 새로운 이주민들은 관악산 자락 내 자하골에 촌락을 이뤘다. “1970년까지 자하골의 아이들은 관악산 줄기를 타고 흐르는 개울가에서 멱을 감고, 봄이면 진달래를 따먹고 겨울이면 계곡에서 솔가지 썰매를 타며 일상을 보냈어요.” 아크로폴리스가 옛집터라는 김운기(52) 씨 역시 관악산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추억이 생생하다. 마을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신을 모시던 소나무가 있어 해마다 도당굿을 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했단다. 1968년, 관악산 이전이 확정된 서울대학교국내 대학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대가 관악산으로 그 터를 옮긴 것은 약 30년 전이다. 당시 서울대는 각 단과대가 동숭동, 수원 등지에 흩어져 있어 행정시설이 중복되고, 학문간 연계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종합캠퍼스화를 계획하고 있었다. 여러 부지를 물색하던 중,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당시 자하골이던 관악구를 서울대의 새로운 터전으로 확정한다. 부지가 넓고 한강이남개발정책에도 부합했으며,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주의를 되찾으려는 학생운동을 봉쇄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의 버들골에서 성업 중이던 골프장 관악 컨츄리클럽은 오산으로, 500년을 살아온 마을 주민들도 형식적인 보상절차를 거쳐 신림동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 때, 정부는 부지 주변을 공원지구·교육지구·개발제한지역 등의 환경보호구역으로 설정·고시하여 외부로부터 캠퍼스 부지가 침해당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했다.1973년 1차 이전계획에 따라 중앙도서관과 인문·사회·자연과학부와 법대, 기숙사가 관악캠퍼스로 자리를 옮겼다. 뒤따라 상대와 공대 음·미대, 부속시설(운동장, 강당 박물관 등)이 이전함으로써 서울대학교는 지리적·공간적으로 종합화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공대가 이전하게 되고 입학정원이 증가함에 따라 약 2만 명을 수용하기위해 설계된 캠퍼스에 3만여명이 수용된다. 학생수 증가에 따라 신설 강의동과 연구소 등의 부지수요를 감당하기위해 서울대는 외부지원 예산이 마련 되는대로 한 발짝씩 관악산으로 파고들었다. 그 결과 중앙도서관을 중심으로 모든 단과대가 조화를 이루던 애초의 보행자 위주의 캠퍼스와는 달리 들쑥날쑥한 건물들의 조합인 자동차 위주의 캠퍼스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무리하게 이어진 확장공사로 신음하는 관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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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도 학교 곳곳에서는 부지런히 공사가 진행중이다. 위에서부터 농생대 옆 연구개발동, 수의대학 종합연구단지 건설, 그리고 대운동장까지 학교는 공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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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87만 평의 관악산에서 서울대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118만 평으로 전체면적의 17%에 해당하며 현재 연구생활을 목적으로 세워진 건물은 약 200여 개에 달한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는 그동안 산림훼손허가나 토질형질변경허가 없이도 건물을 신축하고 관계당국에 신고할 수 있었다. 2000년 들어서야 ‘도시계획시설 세부시설조정계획법’이 도입되면서 학교내 건축이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건축을 허가받거나 신고할 때는 의무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그 기준이 엄격하지 않아, 역으로 환경영향평가 충족시 면죄부를 받게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유정희 관악구 의원은 지적했다. 결국 서울대는 느슨한 제도를 기반으로 ‘세계수준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확장개발공사를 지속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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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0년 째 도림천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유정희 의원

신축 결정 당시 관악산 파괴문제로 논란이 많았던 건물은 신공학관과 대학원기숙사, 농생대, 낙성대부근의 산학연구단지가 있다. ‘관악산을지키는시민모임’ 대표 이후용(66) 씨는 “신공학관의 경우, 시민단체의 반대로 그 위치를 조금 수정하긴 했지만 16층짜리 유리빌딩은 관악산자락의 맥을 끊고 주변 경관을 망친다”고 비판했다. 한편 수원에 있던 농생대캠퍼스의 관악이전 예정부지는 원래 낙성대부근이었으나, 낙성대 주민과 시민환경단체의 반발로 현재의 자연대 건너편으로 위치가 수정됐다. 이에 대해 그는 “낙성대의 숲을 살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산학연구단지가 들어섰다”며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보는 서울대의 태도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처럼 산허리를 잘라 세운 대형 고층빌딩들은 그 자체로는 훌륭할지 몰라도 관악캠퍼스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또 대형건물이 들어서면서 산림이 훼손되고 그로인해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는 실정이다.도림천도 말라가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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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천. ‘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물이 말라 있다. 이러한 도림천 건천화의 ‘공신’은 서울대학교다.

비단 관악산파괴로 인한 삼림훼손과 경관의 악화만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도림천의 건천화 문제 또한 심각하다. ‘건강한도림천을만드는주민모임’ 대표 유정희 의원은 “건천화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녹지 훼손’과 ‘지하수 고갈’을 들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가 차지하는 면적 118만 평을 기준으로 한 건폐율(일정한 대지 안에서 건축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4.7%,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각 층 바닥 면적의 합계) 비율)은 15%로 일반 부지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하지만 “결국 서울대 건물이 들어선 만큼의 녹지가 훼손됐고, 대형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이용여부와 관계없이 지하수가 발생하게 되는데 서울대의 경우 별도의 집수장 없이 그대로 하수관으로 방류함으로써 지하수의 고갈을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서울대 외에도 주택단지 조성과 같은 요인들도 있지만 관악산이 도림천의 발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서울대가 미치는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지역과 조화 이루려는 열린자세 필요해근 20년 동안 서울대에서 생활하면서 대학본부의 정책에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는 졸업생 서 모(41)씨는 “신축 공사가 있기까지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운동장이나 테니스코트와 같은 비교적 반발이 적은 시설을 먼저 들인 후에 그곳에 건물 신축을 결정하는 식”이라고 말하며 “이는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야비한 수법”이라며 부지 선정 과정에 의혹을 제기했다. 유정희 의원은 “도림천 모임의 공식적인 자료요청에도 서울대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상황”이라며, “결국 공사가 착수된 후에야 시민단체나 교내 환경론자들이 뒷북을 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대가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부터 목적과 예산등을 공론화해, 교수로 구성된 기존의 위원회 뿐만 아니라 지역의 시민단체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로가 조언과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이라고 덧붙이며 서울대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했다.이후용 씨는 “관악산은 서울시민의 허파이자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할 유산”이라며 “서울대는 한치앞이 아닌 50년,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대가 친환경 캠퍼스로 발돋움하고 발전하는 데 있어서, 장기적으로 관악산과 공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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