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아름답다. 우리는 한 곡의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에 취한다. 그런 음악을 통해서 때로는 삶의 고민과 진부함을 잊으면서, 꿈에 그리던 멋진 세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데 음악의 역사와 미학을 공부하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음악은 단순히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고, 음악에 표현되는 것들은 현실의 추하고 세속적인 것이 승화된 아름다움인가? 그렇다면 음악은 “낭만적” 예술이고, 현실적 세계와는 관련이 없을까? 그렇지만 왠지 음악은 현실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라 불리는 경향에 의하면,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주장이 견지되었고, 이는 문학과 미술 등 여러 예술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음악도 이러한 경향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만약 음악과 현실이 연결될 수 있다면, 음악에서 표현될 수 있는 이란 무엇이고, 이는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관점을 역사적 시각에 적용시켜 보면서 나타난 의문점은, “19세기 음악사 전체는 낭만주의로 이해되는 반면에 왜 이 시기 문학과 미술에서는 와 함께 이 중요한 예술경향으로 대두되었을까?”였다. 예술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은 왜 이 시기에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난 책이 달하우스(C. Dahlhaus)의 [음악적 리얼리즘. 19세기 음악사의 새로운 해석](Musikalischer Realismus – Zur Musikgeschichte des 19. Jahrhunderts, Munchen 1982)이다. 달하우스는 독일의 음악학자로서 20세기 음악학 연구에서 강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의 역사적 시각에 경종을 울렸고, 새로운 미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리얼리즘을 음악에 체계적으로 접근한 연구는 지금까지 매우 드물었으며, 19세기 음악에 대한 역사적 서술에는 통상적으로 낭만주의라는 시대개념이 부여되었었다. 그러나 음악사편찬의 시각에서 달하우스는 19세기에 나타난 음악적 리얼리즘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리얼리즘의 미학적 조건, 작곡기술적 특징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 작품에서 논증하였다. 이를 통해 의 가능성이 보다 체계적으로 모색 되었고, 19세기 음악사를 단순히 로 단정짓기 어려울 정도로, 리얼리즘적 경향이 내재하였음을 밝혀냈다. 달하우스에 의하면, 음악적 리얼리즘을 구성하는 미적 의식의 변화는 아름다움(美)과 숭고함을 추구했던 낭만주의 미학이 지배적이었던 19세기 중반에 뚜렷하게 대두되었다.이 시기의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예술의 목표로 간주되었던 미의 카테고리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그 대신에 진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즉 상상이나 이상의 세계, 경이로움의 추구는 현실을 외면하는 허상으로 간주되고, 진실한 현실을 파악하고 이를 묘사하려는 이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음악에서도 보다는 이 강조된다고 본다. 즉 단순히 사적인 감정보다는 을 음악에 담아보려는 시도가 19세기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한 리얼리즘 미학은 낭만주의와 관념주의 미학을 거부하는 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소재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전에는 터부시되고 거의 금지되었던 영역에서 주제를 선택함으로써, 말하자면 지금까지 예술적 능력이 없다고 간주되었던 소재의 계층을 새롭게 예술적으로 발견함으로써 낭만주의 미학과 대립되는 리얼리즘적 경향이 대두 되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리얼리즘은 전통적인 을 거부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설정된 이란, 비극적인 주제는 상류계층에 관련시키고, 희극적 주제는 하류계층에 관련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 미적 규칙은 사회적 자만심과 인위성(즉 현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않고, 도식화시키는 특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급양식 법칙에 저항하는 극본에 의한 음악작품은 사회적 비판을 내포하고, 는 점과 는 점에서 리얼리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논의를 바탕으로 달하우스는 이 책에서 다양한 19세기 작품을 예로 들면서 음악적 리얼리즘을 구체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특히 흥미로 왔던 점은 오페라를 보는 새로운 시각이였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1853)를 예로 들어보자. 이 오페라는 아름다운 화류계의 여인 비올렛타가 사랑을 위하여, 진심으로 사랑하는 알프레도와 헤어져, 외롭게 병들어 죽어가는 슬픈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두 연인이 함께 부르는 멋진 듀엣과 비올렛타의 애잔한 아리아가 심금을 울리면서 청중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달하우스는 이 작품에 내재된 리얼리즘적 요소를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일단 이 오페라는 창작 당시의 “현재”를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주인공의 개인적 운명이 사회적 메카니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한다. 화류계의 매춘부가 비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중반 음악계에서 일종의 도전이었다. 이는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유래하는 “고급양식 법칙”을 깼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라 트라비아타]의 줄거리에 나타나는 가 아리아와 듀엣에서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달하우스는 “비올렛타와 알프레도가 엮어내는 비극적 대화는 내면 가장 깊숙한 곳까지 사회적으로 전달된다”고 설명한다.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듀엣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어 2막에 나오는 비올렛타와 제르몽의 긴 듀엣은 드라마에서는 부수적 역할을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중심을 이룬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듀엣이 현실적 내용의 전달에 무게를 두면서, 장르의 전통에 따른 단순한 형식도식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오페라의 마지막 듀엣은 카발렛타 선율이 흐느껴 우는 아다지오로 변하면서 끝나는데, 이는 “어떤 과장도 없이 리얼리즘적”이라고 본다. 극본의 진실성을 담기 위해 형식의 전통이 과감하게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즉 음악적 전통을 우위에 둔 것이 아니라,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사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음악은 현실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와 함께 이 책에서 재미있게 접한 개념 중의 하나가 -리얼리즘 미학의 선구적 형태로 나타났다는- “추함의 미학”이다. 추하다는 것도 예술적인 하나의 가치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추함에 대한 접근은 이미 있었다. 그러나 이는 보통 아름다움을 빛나게 하는 하나의 대조 효과를 주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추함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즉 현실에 나타난 아름답지 않은 여러 모습도 그 자체의 고유한 의미를 인정하고, 그것을 하나의 예술적 가치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리얼리즘적 예술이 나타날 수 있는 전제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 속에서 한 영화가 떠올랐다. 오래전 보았던 프랑스 영화 “내게 너무 예쁜 그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름답고 지적인 자신의 부인을 나누고, 뚱뚱하면서 교양도 없었던 자신의 여비서와 사랑에 빠진다. 이러한 영화에서도 느끼듯이, 아름다움은 어쩌면 많은 예술적 가치 중에 “하나”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때로는 “추함”으로 대치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악적 접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의 현실과 음악과의 연결점을 끌어낸 달하우스의 책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물론 달하우스 특유의 현학적 문체는 이 세계에 쉽게 접근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고, 그래서 이 장애를 넘어설 때야 비로소 달하우스를 이해할 수 있다는 난제가 남아있다). 그래서 필자는 -달하우스 논쟁의 매력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자-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였다(1995, 예솔출판사). 고운 자태의 아름답고 젊은 여인의 초상화에서보다, 거칠게 표현된 늙은 여인의 손을 그린 스케치에서 마음이 더욱 강렬하게 흔들려 본 경험을 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