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1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호기심 반 기대 반이었다. 무슨 3단 변신로봇도 아니고 남들은 일평생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오지 여행가에서 중국 유학생으로, 긴급구호팀장으로 변신하는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한편으론 그녀의 글에서 느꼈던 생동감과 따뜻함을 직접 만나 전달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10월 마지막 주의 월요일 늦은 오후 월드비전 사무실에서 마주친 그녀의 첫인상은 하나. ‘생각보다 예쁘다’는 것. 실례가 되는 말인 줄은 알지만 7년 동안 혼자 세계의 오지를 돌아다닌 억센 여행가, 하고 싶은 것은 기어이 최고로 잘해내고야마는 집요한 실천가 한비야(48)씨는 생각보다 자그마한 체구에 생각보다 곱고 예쁜 모습이었다. 파키스탄에 다녀온 직후 매일 링거를 맞고 있다는 그녀의 눈은 토끼만큼 빨갰고 부쩍 야윈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서울대저널(이하 저널) : 의료구호팀을 이끌고 파키스탄에 다녀오셨잖아요. 현장을 접하신 느낌이 어떠셨나요?한비야(이하 한) : 파키스탄에서의 첫 번째 감상은 일단 쓰나미 현장과 똑같은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시체 썩는 냄새. 사람이 평생에 정상적으로 살면 시체를 많이 봐야 50구 미만으로 봐야 하는 것인데 거기서는 하루에도 뭐 수 천구씩 보는 것 같아. 나는 사실 비위가 되게 좋은데 현장에 갔다 오고 나서 한동안 생선을 못 먹었어요. 바로 그 냄새가 파키스탄에서 나거든요. 시체 냄새 진동하는 현장, 절실한 건 삼천 원짜리 담요photo2 photo3 photo4 photo5저널 : 지진 현장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이 무엇이었나요? 한 : 건물 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오직 시체 썩는 냄새로만 판단할 수 있어요. 도시는 그나마 구호의 손길이 닿지만 산사태로 길이 막힌 산골 아이들은 삼천 원짜리 담요 한 장이 없어서 죽어요.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견디지 못해서요. 단돈 삼천 원에 생명이 죽고 사는 기막힌 현실이에요. 요즘에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담요 값을 내놓으라고 해요. 곧 겨울이 닥칠 텐데 아이들이 살아야죠. 다행히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출판된 이후 구호금 모금이 훨씬 수월해졌어요. 예전엔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무엇 하러 아프가니스탄 이런 데까지 가느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삼천 원? 낼 수 있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저널 : 아직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은 것 같은데요.한 : 우리가 의료 구호 1550명을 했어요. 많이 한 거죠. 그렇지만 이재민은 무려 3백만 명이에요. 안타깝죠. 왜냐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거든요. 그렇다고 안 하고 있을까요? 그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나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캄캄해도 한두 명이 세상을 움직일 수 없어요. 우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걸 알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초라하잖아. 지금 각자 손에 들고 있는 촛불을 켜는 거예요. 그리고 다 탈 때까지 가만있지 말고 옆 사람한테 나눠주는 거예요. 타는 동안은 따뜻하잖아. 그럼 그 밑에 들어온 사람은 목숨도 살고 겨울도 나는 거잖아.photo6 photo7저널 : 재난현장의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은 그 곳에 가 있어도 직접 돕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런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요?한 : 그 마음 변치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그 관심을 퍼뜨리는 일. 목격자의 역할이죠. 밥상머리에서 대화의 주제로 자꾸 이야기를 꺼내는 거예요. 여러분처럼 학교 언론의 주제로 쓰는 일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구요. 여러분 마음 안에 세계지도를 갖고 있으면 돼요. 그 안에 영국, 미국만 있는 게 아니라 파키스탄도 있고 방글라데시도 있으면 돼요. 긴급구호를 자기가 꼭 하지 않아도 돼요. 현장에선 솔직히 비전문가는 필요 없거든요. 자기 마케팅이란 것도 중요하죠. 구호 현장에 자기가 필요한 때와 장소에 맞게 등장하는 것.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그 마음이 변치 않는 일이에요. 세상 한쪽에서 분명히 돌아가고 있는 사랑과 은혜의 법칙저널 : 세상은 ‘정글의 법칙’이 아닌 ‘사랑과 은혜의 법칙’이 지배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정작 가시는 곳마다 전쟁과 학살, 가난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신념을 유지할 수 있나요?한 : 나도 그럴 줄 알았어요. 흔들릴 줄 알았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사람 굶어죽는 거 봤어요? 그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 어떻게 사람이 먹을 게 없어서 죽어. 두 살짜리 애가 먹을 게 없어서 죽어요. 내 눈을 보면서 깜박깜박 이렇게 묻는 거 같아. ”아줌마, 나는 왜 이렇게 죽어야 해요?“ 답은 뭔지 알아요? 하나에요.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거. 거기서 한 시간 반만 오토바이 타고 가면 창고에 밀가루가 잔뜩 쌓여 있어요. 창고 주인에게 이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면 그건 애써 외면하지. 그리고 가뭄이 좀 더 진행되면 밀가루 값이 더 오를 거라고 얘기해요. 우리가 그 사람을 책망할 수는 없어요. 우리 다 그렇게 안 배웠어요?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게 자본주의의 속성이지요. 하지만 그건 자본주의의 속성 중 가장 비인간적인 속성이죠. 정글의 법칙이 물론 있어요, 세상에는. 우리가 정글의 법칙은 세상에 없다 이런 바보는 아니에요. 근데 다른 한 쪽에서는 분명히 사랑과 은혜의 법칙이 돌아가고 있어요. 약자가 강자의 도움을 기꺼이 받고 약자가 다시 강자가 되었을 때 그 때 약자를 기꺼이 돌보는. 그래야 사람 사는 거 아닌가. 구호활동을 하면서 그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리고 알리고 싶어요. 세상 한쪽에서는 분명 사랑과 은혜의 법칙이 돌아가고 있다는 걸. 저널 : 한비야씨는 지금 말씀하시는 것처럼 늘 흔들림 없어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은 내일 일도 확신하지 못하는데 한비야씨는 늘 확신에 찬 걸음을 걷는 것 같아서요. 20대 젊은 시절에도 지금과 같은 삶을 예상하셨나요?한 :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했어요. 그리고 6년간 학교 안 다녔죠. 20대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어요. 대학에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 안 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삶은 전혀 계획하지 않았어요. 대입에 실패하니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기분이었죠. 사회의 반응도 냉랭했어요, 특히 남자친구의 엄마. 그 아이가 서울대학생이었어.(웃음) 그런데 자기 아들이 죽고 못 사는 여자애가 고작 고졸이란 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죠. 사회적으로 약자의 대접을 많이 받았어요.저널 : 그렇다면 그 시절이 지금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갖나요?한 : 나는 그 때 참 단단해진 듯 해요. 그냥 학교를 갔으면 인간적 가치나 가능성과 무관하게 무시당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땐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는데 지금은 다 약이 됐어요. 돈이 없어 끼니를 굶는 지독한 가난에는 견줄 수 없지만 내게 그런 시절이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실패 없이 대학에 들어갔으면 내가 건달이 되었을 거 같아. 대학 다니면서 편한 아르바이트 하고 편안히 사는 사람들이랑 어울리다가 나도 그렇게 되었을 거 같아요. 강자는 강자끼리 어울리는 것이고 약자는 강자의 버팀돌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나만 챙기는 삶은 너무 조금, 새장 밖 자유 도전했으면저널 : 홍보회사에서 실력을 인정 받고 소위 잘 나가셨던 걸로 아는데, 세계일주를 위해 쉽게 포기하실 수 있었나요?photo8 photo9한 : 거기 부장은 나한테 너무 조금이었어요. 내가 거기 부장하려고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내가 책에도 썼지만 한 케냐 의사가 했던 말을 나도 표현하진 못했지만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가진 재능과 기술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다. 그리고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한다.” 내 생각을 정확히 그 의사가 정리해 준 거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홍보회사 부장으로만 살기엔 너무 좁다는 생각. 결국 이건 힘 있는 사람에게 힘을 보태는 것이거든요. 담배회사가 담배 더 잘 팔게 하는 거고 유해한 회사가 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죠. 아니면 유해성 얘기는 빼고 그 회사가 얼마나 고용 창출하는지만 얘기하고. 물론 이런 일도 필요하지만 내 힘까지 그들에게 보태고 싶지는 않았어요.저널 : 지금 20대를 통과하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특별히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한 : 대학 3,4학년만 되면 애늙은이가 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사법고시, 임용고시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너무너무 안타까워. 그건 제 발로 새장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새장 안이 먹이도 주고 안전하고 사람들이 가끔씩 예쁘다 하기도 하죠. 하지만 새장 안의 삶은 결국 날개의 퇴화를 담보로 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본질은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서 최대치를 내는 건데 그걸 스물 셋 넷 밖에 안 된 학생들이 지레 포기하는 거죠. 자기 어깨에 날개 달린 줄 모르고 한 번도 새장 밖을 고려하지 않고요. 한번이라도 내 맘을 뜨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에너지를 소진하고 또 소진하고도 하고 싶은 게 뭔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저널 : 긴급구호 일을 한동안 하신 후에는 난민촌 캠프의 촌장이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지금까지 해 오신 일에 비해 꿈이 좀 작은 것은 아닌가요? 한 : 나한테는 그게 제일 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총집합이죠. 거기가 진짜 종합병원이니까. 그게 조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월드비전에서도 팀장만 하고 싶어요. 현장에 갈 수 있으니까. 나는 싸인 안 할 거야. 더 높은 거 시키면 그만둬야지. 하지만 난민촌 촌장은 정말 되고 싶어요. 나는 책상에서는 가장 예쁜 얼굴이 안 나와요. photo10저널 : 그럼 특별히 난민캠프 총책임자를 맡고 싶은 지역이 있으신가요?한 : 우문(愚問)이에요. 내가 어디가 사고 나길 바라는 건 말이 안돼. 취미를 얘기하자면 네팔이라든지 파키스탄 북부 같은 산에 살고 싶지만 긴급구호는 어디서 필요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잖아요. 응급실에서 수술하고 싶은 환자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저널 : 지금까지 십년이 넘게 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셨는데요. 앞으로는 어디에서 살고 싶으세요?한 : 살고 싶은 곳은 한국이에요. 비 오는 날 우동을 먹고 싶다고 하면 딱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고 하면 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요. 정서적 공유가 되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외국 남자들 동료로선 좋은데 애인으로는 문제에요.(웃음) 내가 비 오는 날 우동이 먹고 싶다고 하면 그걸 공감하는 게 아니라 기억했다가 먹으러 가자고 하죠. 말 안 해도 통하는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저널 : 항상 바쁘시니까 오히려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홀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사람들에겐 어떻게 마음을 표시하시나요?한 : 사실은 식구들한테 많이 미안해요. 그래서 핸드폰이 중요하죠. 하루 종일 틈만 나면 문자를 보내요.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족과 조카들, 그리고 나를 위해 정말 매일 기도해주는 수녀 친구에게요.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죠, 매일매일. 감동으로 움직이는 세상, 온 마음 담은 글 쓰고파저널 : 한비야씨의 글을 보면 스타카토처럼 경쾌하고 즐거워요. 하지만 한편으론 한음한음 또렷하고 깊어서 감동을 주죠.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나 방법론이 있나요?한 : 내 글은 결코 잘 쓰는 글이 아니에요. 내 글의 장점을 꼽자면 일단 현장감이 있다는 것. 남들이 안 가본 곳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죠. 그래서 내 글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요. 글은 누드에요, 누드. 목소리 같아. 피곤하면 피곤한 것이, 화나면 화난 것이 그대로 글에 드러나요. 그러니 그 때 그 때 충실해야지요. 또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오감을 열어 놔야 해요. 글을 상상할 수 없으면 힘들어요. 내 글의 또 다른 특징이 그거예요. 오감을 활용하는 것. 그게 내 평소 말투이기도 하죠. 나는 말을 잘하거나 글을 잘 쓴다고 단 한번도 생각 안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 매일매일 생각해요. 글을 정말 잘 쓰고 싶어요. 글이 사람을 움직이거든요. 쇠문이 열쇠 하나로 열리는 것처럼 세상은 힘이 아니라 감동으로 움직여요. 그러니 글 안에 마음이 들어있어야죠. 여기에 내 마음을 다 담았나 봐요. 여러분도 글을 마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 보세요. 이 글에 내 맘을 다 담았나를 점검해 봐요. 나는 그렇게 해요. 인터뷰 내내 예쁜 그녀의 첫인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 기자는 참지 못하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얼굴이 참 평화로워 보이는데 어떻게 그런 얼굴을 갖게 되었느냐고. 기다렸다는 듯 답이 나온다. “나도 역시 여행할 때보다 지금 얼굴이 더 마음에 들어요. 나도 알아요. 내 외모가 객관적으로는 B+이라는 것. 그런데 나는 내 얼굴이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예뻐 보이는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나는 지금 내가 행복하고 더불어 남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거든요. 너무나 풍요로워졌어요.” 아하! 속으로 무릎을 쳤다. ‘생각보다’ 걸음걸이가 급하고 몸집은 작으며 굉장한 수다쟁이인 그녀가 ‘생각보다’ 실제 모습이 훨씬 아름답게 보였던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돈 들지 않는 미용비법 하나를 전수 받은 그날의 인터뷰는 참 풍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