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총학의 2007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작년 7월 28일 송동길 당시 부총학생회장(직무대행)이 사퇴한 후 총학생회는 8개월 21일이라는 사상 최장 기간의 유고 사태를 맞았다.작년 11월 선거의 무산으로 인해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체제가 계속됐고, 지난 4월 19일에 SPOTLIGHT 선본의 당선이 공고되면서 비로소 총학생회가 다시 들어서게 됐다.당선 직후 한성실(미학 03) 총학생회장은 “연대의 원리로 우애로운 학생사회를 건설하겠다.

작년 7월 28일 송동길 당시 부총학생회장(직무대행)이 사퇴한 후 총학생회는 8개월 21일이라는 사상 최장 기간의 유고 사태를 맞았다. 작년 11월 선거의 무산으로 인해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체제가 계속됐고, 지난 4월 19일에 SPOTLIGHT 선본의 당선이 공고되면서 비로소 총학생회가 다시 들어서게 됐다. 당선 직후 한성실(미학 03) 총학생회장은 “연대의 원리로 우애로운 학생사회를 건설하겠다. 소외된 민중의 권리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총학생회가 되겠다”고 밝혔다. ‘총학생회 정상화 작업’으로 임기 시작한 50대 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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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총학이 당선 직후 주력한 것은 마비된 총학생회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일이었다. 당선 공고 10일 만에 집행국 인선작업을 마친 총학은 예산 고갈로 인해 한동안 중단됐던 예산자치위원회 운영을 재개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총학은 예산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의 기준과 신청 자격을 강화했으며, 시행세칙 상의 선지급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예산 분배의 투명성을 기하고자 했다. 총학생회장과 단과대 학생회장 등으로 구성된 총학의 최고의사결정기구 총운영위원회(총운위)의 정상화 작업도 이뤄졌다. 한성실 총학생회장은 “작년 총학을 탄핵이라는 파국으로 몰고 갔던 총학생회장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반면교사로 삼아 각종 사안에 대해 총운위에서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총운위에서 충분한 토론 없이 수시로 표 대결이 이뤄져 회의가 파행으로 이어졌던 반면 올해 총운위에서는 모든 사안이 표결 없이 만장일치에 의한 합의로 의결됐다. 수시로 터지곤 했던 각종 현안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도 총학의 임무였다. 총학은 4월 27일 신공학관버스 노선단축을 통보한 서울시청에 항의공문을 발송하고 교통과 관계자를 면담하는 등의 노력으로 관련 논의를 잠정 중단시키는 성과를 얻었다. 스누라이프를 통한 계절학기 대학국어 수강권 매매가 이슈화되자 총학은 여름학기 필수교양과목 확충을 대학본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교육권 정책 일부만 제도화 성공…… 사회운동 참여 두고 평가 엇갈려50대 총학의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교육권 정책들을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들도 이어졌다. 총학은 대학국어 S/U제와 생리공결제, 여학생 체육수업 및 신공학관 교양수업 개설 등의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를 통해 대학본부에 도입을 요구했다. 5월 15일 대학본부와의 교육환경개선협의회(교개협)가 열렸으나, 총학은 대부분의 사안 논의에서 본부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다만 여학생 체육수업 개설과 붙박이식 공연장비 확충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낸 것은 성과로 꼽힌다. 2학기 개강에 맞춰 여학생 체육수업이 실시된 것을 제외하고, 총학에서 제시한 교육권 정책들이 실질적으로 제도화될 가능성은 임기가 한 달 남짓 남은 현재까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총학은 상반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총학생회 복원과 기층단위 활성화, 공동체의 여성주의적 재구성, 지식과 문화를 매개로 한 과감한 대중운동’ 등을 골자로 한 총노선을 인준 받았다. 총학은 이를 바탕으로 독립영화상영제 개최, 발간, 반전반핵평화국제회의 등의 학술·문화 사업들을 진행하는 한편, 여름방학 동안 적극적으로 대중운동 사업을 펼쳤다. 총학은 우선 작년에 총학생회의 부재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농활 조직들 간의 협력체계를 재건하기 위해 농활주체 연석회의와 반성폭력 워크샵 등을 개최했다. 여름 농활에 참가했던 이한빛(전컴 07) 씨는 “총학이 농활단위들의 활동지역을 배분하고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활동을 지원했다”며 “농민들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농민과 학생간의 연대를 구축하는 뜻깊은 활동에 총학의 지원이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6월 25일부터 일주일가량 이뤄진 여름 농활에는 4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활동을 끝마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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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총학은 여름 내내 진행된 한미 FTA 폐기를 위한 집회, 비정규직 문제와 이랜드 사태 해결을 위한 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총학은 지역 현안인 상도 5동 철거민 투쟁에 대한 연대활동에도 합류했으며 호암교수회관 노조의 투쟁이 시작되자 학생대책위원회를 꾸려 노조의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하지만 기존 학생정치조직들이 제안한 사업들을 규합한 형태로 이뤄진 총학 주도의 각종 대중운동은 대다수 학생들의 폭넓은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총학게시판에는 ‘총학이 여전히 거대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올라왔다. 각종 집회에 참가한 것 외에도 총학은 방학 중에 총장과의 대화와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공약사업들을 이어 나갔다.2학기는 여성주의 담론과 자치활동 활성화에 중점…… 어느새 임기 끝나가총학은 ‘한미 FTA와 대학 시장화 반대’를 기치로 내건 개강집회로 새 학기의 문을 열었다. 총학은 생리공결제 도입을 요구하는 여론을 환기하고 성정치적 담론을 활성화하기 위해 여성주간 사업을 기획했다. 김아영(법학 06) 씨는 “릴레이자보와 기획강연과 같은 참신한 행사들이 돋보였다. 여성주의에 대한 소통의 창을 열어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다만 학생들의 참여를 좀 더 이끌어 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총학은 학내 과반활동과 학회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의 각 포럼들을 연달아 개최했다. 박찬섭(법학 02) 부총학생회장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내에서 각종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민들을 공유하고 자치활동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회대 언론/꼼반 학생회장 김휘수(경제 05) 씨는 사회대의 경우를 예로 들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정파 차이 등의 이유로 인해 과반이 총학과 효과적으로 결합하지 못했다”며 “멀쩡한 과반도 망해가는 위기 속에 자치단위들이 총학과 협력체계를 구축할 여유도 없었고 그럴만한 유인도 부족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총학의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본부로부터 공연장비 확충을 약속받은 데 대한 후속조치로 필요장비들에 대한 신청을 받고, 400여 명이 참여한 추석맞이 귀향버스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50대 총학의 활동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달 말 예정된 대학본부와의 교개협에서 아직 도입 전망이 불투명한 각종 교육권 정책을 협의하는 것이 총학생회가 계획 중인 사실상 마지막 활동이다. 11월이 되면 차기 총학 선거 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50대 총학이 상당 기간 부재했던 총학생회를 정상화하고 다양한 사업들을 본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론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사안들에 매달린 결과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이뤄낸 것이 없다’는 냉소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50대 총학의 임기가 끝나가는 현 시점에서 학생들은 총학생회라는 조직이 ‘대학사회 공동체의 위기’를 넘어서는 다양한 상상력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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