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와 총학, ‘대화가 필요해’
어제의 거울 속에서 내일을 보는 지식인 한홍구
짜증보다는 화를 내자

어제의 거울 속에서 내일을 보는 지식인 한홍구

‘미국에 촘스키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홍구가 있다.’ 인터뷰 전문가 지승호 씨의 말이다.‘걸어다니는 한국 현대사’라 불리는 그는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일명 ‘김일성 전문가’이다.한 교수는 에 베트남전 참전, 노근리 학살 사건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룬 글을 꾸준히 기고해왔다.그의 연재물은 최근 완간된 네 권으로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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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촘스키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홍구가 있다.’ 인터뷰 전문가 지승호 씨의 말이다. ‘걸어다니는 한국 현대사’라 불리는 그는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일명 ‘김일성 전문가’이다. 한 교수는 에 베트남전 참전, 노근리 학살 사건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룬 글을 꾸준히 기고해왔다. 그의 연재물은 최근 완간된 네 권으로 정리됐다. 그는 대중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위해 다양한 학술, 연구 활동에 참여하며 어제의 역사를 통해 오늘과 미래를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려 한다. 항간에 ‘한홍구가 여러 명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 교수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활약한다. 그는 ‘베트남전 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을 비롯해 ‘양심적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 집행위원장,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으며,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 3년 간의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 활동을 마친 그는 좁은 연구실과 책 속에서 또다른 연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얼룩진 어제의 과거를 되새기다역사학자의 주된 소임이 ‘사실(史實)’과 ‘사실(事實)’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라면 한홍구 교수는 분명 제대로 된 역사학자이다. 그는 경제 발전의 밑거름으로만 생각되던 베트남 파병 이면의 민간인 학살을 이야기한다. 한국전쟁 승리의 영웅 맥아더가 만주지역에 원자폭탄 26발을 떨어뜨려 3차 대전을 일으키려 했다는 사실도 말해준다. 역사를 편식하고 있던 한국 사회는 한 교수의 이런 지적을 통해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때로는 오히려 괴롭고 힘든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통해서만 역사는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참전을 단지 국위선양, 외화 벌이의 경험으로만 기억하는 한, 한꺼풀 뒤에 숨겨진 진실은 잊혀지게 되죠.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우리가 피해자일지 몰라도, 베트남과의 관계에선 우리가 가해자입니다. 피해자로서의 주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로서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현대사 속의 왜곡된 역사, 감춰진 금기를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진정한 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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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까지 그는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과거 국가기관이 자행한 인권유린, 간첩조작 사건 등의 진실규명 활동을 했다. “과거사위 활동은 엎어진 페인트통을 치우는 일과 비슷해요. 페인트가 쏟아지는 것은 일순간이지만, 그것을 치우려면 수십 배의 노력이 필요해요. 또 노력한다고 원상회복이 되는 것도 아니죠. 특히 시간이 지난 다음에 청소하는 것은 훨씬 힘든 작업이에요. 후손들에게 창피하지 않도록,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그때 그때 의혹이 남지 않도록 처리를 해두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한홍구 교수의 시선이 얼룩진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세계 최대의 전쟁기념관이 있지만, 정작 중요한 평화를 느끼고 숨쉴 수 있는 공간은 한 군데도 없다. 그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2004년부터 평화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단지 박물관 짓는 차원이 아니라, 평화교육 운동, 평화 감수성 함양운동의 큰 틀에서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워낙 반공주의, 국가주의에 물들어 있어서 평화가 굉장히 멀고 추상적인 개념이 돼버렸어요.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자는 게 평화인데 말이죠. 평화가 늘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굳어가는 세상의 벽에 돌을 던지다한홍구 교수는 진보적 역사학자인 동시에 군대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한국 전쟁 당시 현역병이 20만 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세 배가 늘어 60만명 가까이 됩니다. 중남미 20개국의 군인을 모두 합치면 200만인데, 이 좁은 남북한에 있는 군인 숫자가 이와 비슷하고요. 분명히 개선해야 할 일입니다. 군축 문제는 한반도 평화 구축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그는 현실적으로 한국의 군대 구조가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고, 한미동맹에 기생하는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어서 개선이 힘든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의 군대 제도는 군사주의, 국가주의를 강화시키고, 이는 곧 민주화를 가로막고 한반도 평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분단 이후 고착화된 군대문제가 사회 변혁의 원동력을 잠식하고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 그리고 평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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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이라크 파병 연장 논의에 대해서도 그는 의견을 밝혔다. “정부와 파병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국익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3년 처음 파병할 때 파병 찬성론자들과 정부가 내세웠던 주장들, 가령 공사수주, 전후복구사업 참여 등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검토해봐야 합니다. 국익지상주의를 악용해서 명분도 실익도 없는 파병을 강행하고 있어요. 미국의 지지를 얻으려는, ‘머리 까맣고 한국말 잘하는 미국인’들 말고 도대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그는 합리적 의심을 가로막는 사회 전반의 풍토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덧붙였다. “신자유주의가 전파되면서 국익지상주의적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됐죠. 베트남 파병 때만해도 창피한줄 알았는데, 40년이나 지난 오늘 이라크에 파병하는데 전혀 창피한줄 몰라요. ‘국익’이라는 논리 앞에 합리적 의심과 비판이 힘을 잃고 있는 거죠. 인혁당 사건이 반공주의 하에 자행된 폭력이었다면, 황우석 사태는 국익지상주의 하의 폭력이었죠. 그런 쓰라린 경험을 했는데도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어요.” 대학생의 입장에서 이러한 조류에 대응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대학생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해요. 다만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문제를 좀 더 크게 봤으면 좋겠어요. 영어공부 죽어라 하고 옆에 있는 친구랑 경쟁해서 이겨도 그것이 안정된 삶과 성공을 보장해줄 까요? 제대로 된 노동조합, 제대로 된 인권법을 갖게 해줄까요? 아니잖아요. 가령 군대 문제만 해도 그래요. 통일만 되면 남자들 군대 안가도 될텐데, 통일문제에는 전혀 신경을 안써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협소하게 자기 안위만을 신경쓰는 것보다 큰 틀에서, 그리고 공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는 것이 필요하죠.” 잃어버린 양쪽 날개로 비상을 도모하다한홍구 교수는 ‘현대사 해부학자’라고 불릴 정도로 현대사의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내 조목조목 따진다. 그는 흔치 않은 김일성 항일무장투쟁 전공자이며, 현대사 연구의 주류에서 배제된 좌익 운동과 북한연구의 전문가이다. “우리 때만 해도 북한의 김일성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논의가 있었어요. 강연회에서 첫째로 나오는 질문이 ‘김일성 진짜 있는가’였을 정도였죠.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북한에 대한 연구도 정말 미진한 상태였어요.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고 해서 전공하게 됐죠.” 그는 현대사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사료연구를 통해 친일세력, 수구세력의 부패와 협잡을 날카롭게 파고들고, 이 과정을 통해 오늘의 보수와 진보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한다. 바람직한 보수와 진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그는 너무 어려운 문제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해방 직후 남한 사회를 보면 친일세력이 좌우대립의 긴장관계를 이용해서 민족 반민족의 문제를 좌우 대립의 문제로 변질시켰어요. 그 과정에서 친일세력, 즉 수구세력이 살아남아 오늘날 보수 세력의 근간이 되었고요. 그들이 살아남는 과정에서 김구 같은 진정한 보수 세력을 박멸시켰고, 그 자리를 친미파로 변신한 친일파들이 차지하게 된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예요. 예를 들어 앞에서 얘기했던 과거사 청산도 사실 보수 세력이 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국가권력이 사람 잡아다가 몇십일씩 묶어놓고 간첩 조작해서 사형시켰던 일들을 반성하자는 건데 보수 세력은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진보나 보수 이전에 기본적인 인권, 자유, 평등에 대한 생각도 없는 거죠. 어떻게든 정권 창출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관심 뿐이죠.” 최근 대학생들의 보수화 경향은 어떻게 된 것일까 “40%정도가 보수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거예요. 진보나 보수 일방에 70~80%가 쏠린 경우가 문제죠. 다만 그들이 지지하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냐, 개인적으로 조금은 비껴난 지지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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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아직 버려서는 안되는 이야기

최근 탈민족주의가 대두하고 있으나, 한홍구 교수는 민족주의와 민족문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민족주의가 문제라고 해서 민족문제 자체가 도외시 되는 것은 피해야 돼요. 단일민족주의는 저도 늘 비판해온 것처럼 문제가 많아요. 농촌에서는 지금 첫째 며느리는 필리핀 사람, 둘째 며느리는 베트남 사람, 이렇거든요.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랑 다른 차원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거죠. 그런 사람들, 그들의 아이들에게 단일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폭력이에요. 하지만 통일문제, 일본·미국과의 관계에서 한국 사회에는 아직 민족의 개념이 분명히 필요해요. 그런데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어의 언급자체를 비판하거든요. 이런 것은 문제가 있어요. 엄연히 구별해야죠.” 그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닌 이타적 민족주의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고(故) 심미선, 신효순 양 사건 때 10만 명이 모인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이라크에는 수만 명의 미선이, 효순이가 있거든요. 그들을 생각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해요”지식인, 쳇바퀴에서 내려올 수 있는 자한홍구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어떠할까? “흠…. 오늘날 지식인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처럼 축적된 지식의 양이 기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지식인은 대중 속에서 나와야 해요. 가령 끊임없이 돌아가는 쳇바퀴에서 내려와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겨난 지식인이 주변의 대중을 설득하고 함께 변화해 나가는 거죠.”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아직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한다.쳇바퀴에서 내려온 지식인, 그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식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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