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떤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을까. 미국의 뒤를 잇는 경제대국, 친절한 사람들, 2002년 한국과 공동 월드컵 개최국, 한류 열풍에 휩싸인 나라, 만화나 드라마 등등. 한 나라이니만큼 수많은 분야에서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미지가 존재하겠지만, 최근에는 한일관계의 여러 가지 사안에 관련하여 특히 우경화/군국주의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조되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망언,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이 가결되는 순간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던 사람들, ‘역사 왜곡’이라며 한중의 지탄을 받는 후소샤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을 높이자 부르짖던 사람들, 2차 대전 A급 전범의 위패가 합사되어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던 총리와 관료. 이러한 사람 또는 사건들은 한국에서 보통 ‘일본의 우경화/군국주의의 단면’으로 표현되며 경계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들이 보통, 일본 총리를 비롯한 정부 또는 몇몇 우익 단체나 인사들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그 사람들이 약 1억 2천만 일본 인구 중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물론 소수의 그들이 일본의 국내/국제 관계나 정치적 영역에 있어서 심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로써 전체 ‘일본’이라는 나라의, 그 나라 사람의 이미지를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일본 국민 대다수에 해당하는 ‘보통 국민’들의 입장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일본 국민, ‘관심 없음‘ photo1 독도 영유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안에 대하여 한국인들은 놀라운 결집력을 보인다. 일본의 ‘어이없는 주장’에 분노하며 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들에 대한 일본 국민의 태도는 한국에 비하면 한마디로 무관심에 가깝다. 역사교과서 문제가 뭔지,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상당수다. 일본의 여론과 관련해 아사히신문 이치카와 하야미 서울지국장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 한일관계에 대한 관심, 객관적인 지식 모두 부족하다”며 “일본에서 볼 때 한국에서는 이런 사안에 대해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며 일본에 항의하는 걸로 보이는데. 일본 국민들의 가치관은 다양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 100% 의견이 일치하는 일은 없다. 그 의견이란 것도 사안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이고 대부분은 영토 문제에 관심 자체가 없다”라고 말했다. TV아사히 요시노 미노루 서울지국장도 “대체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서 공통적인 인식을 보였다. 그는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해져, 대학생들만 봐도 6-70년대와 같은 사회 참여적 움직임은 줄어들었다”라고 덧붙였다. photo2 일본 국민의 한일관계에 대한 무관심은 국민 전반에 걸쳐 있는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동경대학에서 국제관계론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이원덕 객원교수(국민대 국제학부)는 이에 대해 “일본사회에 유독 이러한 경향이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원주의 사회에서 외교정책에 대한 관심은 기본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선진 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일본인들은 추상적인 외교관계보다는 현실 문제에 비중을 두고 사고하며, 외교관계에 대해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거의 일미/일중관계에 대한 것으로 편중되어있다”라고 덧붙였다. 일본 국민은 ‘우익‘?!수면 위로 떠오른 한일관계를 인식한 일본의 언론사는 이 문제와 관련해 일본 여론을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진행, 그 결과를 보도하고 있다. 이를 접하는 한국 언론은 설문조사의 결과가 일본의 우경화를 의미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으며, 이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일본 국민 전체를 보수/우익적인 공동체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 일본 언론의 설문조사 보도에 포함된 사안을 중심으로 일본 여론의 입장과 그 입장의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높은 찬성률photo3photo4 한국 동아일보, 일본 TV아사히/아사히신문,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공동으로 기획, 2005년 3월중 실시한 한중일 연합 설문조사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일본인의 찬성이 54%, 반대는 28%인 것으로 나타났다. 야스쿠니 신사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냐는 질문에 일본인의 66%가 ‘단지 전사자를 추모하는 공간’이라고 대답했으며, 한국/중국인의 60%에 달하는 지지를 얻은 답, ‘군국주의의 상징’이라고 답한 일본인은 10%에 불과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의 의미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조상을 기린다는 것과, 주변국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긴 2차 대전 A급 전범을 추모한다는 것의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분류해볼 수 있다. 이치카와 하야미 지국장은 “일반 일본인에게 있어서 신사참배의 첫 번째 의미는 애국지사에 대한 유족 감정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입장에 있는 정치가들에 있어서는 얘기가 좀 달라져서, 자신의 행동이 다른 나라에 어떻게 비춰질지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일반인들에게 그것은 2차적 관심으로 미뤄진다”라고 여론의 입장을 설명했다. 일본 특파원을 지낸 한국일보 황영식 논설위원은 “일본에는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죽으면 용서하고 더 이상 잘못을 묻지 않는 전통이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한편으로,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찬성하는 사람들 중 한국과 중국이 싫어한다면 반대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한/중 양국의 집중적인 비판 대상이 되고 특히 5월 23일, 우이 중국 부총리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계속 발언’에 반발하여 총리와의 예정된 회담을 돌연 취소한 뒤인 5월 27-28일 일본의 교도 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상의 57.7%가 올해 신사참배를 참배해서는 안된다고 대답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설문조사 때보다 16.9% 포인트 높아진 것이며, 반대로 “올해도 참배해야 한다”는 응답은 작년에 비해 16.7% 포인트 떨어진 34.3%였다. -2. 자위대의 존재 명기 헌법 개정에 공감, 58% photo5 일본은 현재, 종전 후인 1947년 제정된 평화헌법의 법률의 범위 안에 있다. 특히 아시아 대륙을 침략했던 제국주의 역사와 단절을 선언하는 뜻에서 무력행사 금지와 군대 보유 금지, 교전권 불허를 규정했던 평화헌법 9조는 현재 일본 내에서 개정 논란을 빚고 있다. 1954년, ‘전력(戰力)이 없는 군대’로써 일본의 방위를 위한 자위대(自衛隊)의 발족이 이미 헌법 9조와 모순되니 자위대의 현재 존재와 역할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나아가 자위대가 보통군대화되어, 즉 무력을 가져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정치력을 증대해야 한다는 입장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주장하는 후자 세력의 움직임이 한국 등 주변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자위대의 활동으로는 방위출동, 치안출동, 해상 경비활동, 재해파견, 영공침범에 대한 조치가 있고 이들 임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무기의 보유 및 무력행사가 인정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92년 일본이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하기 위한 유엔 PKO협력법이 통과되어 자위대의 해외활동이 시작됐다. 2005년, 일본의 헌법기념일인 5월 3일을 앞두고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위대를 지금처럼 유지하지만 헌법을 개정해 존재를 명기」하자는 의견이 58%로 가장 많았고, 「자위대를 보통 군대화하기 위해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17%, 「정부의 해석이나 운용으로 대응해 왔으므로 개정할 필요는 없다」는 16%, 「자위대는 위헌이므로 장래에는 폐지한다」는 의견은 7%였다. photo6 요시노 미노루 TV아사히 서울지국장은 “미국의 군사력 분담 요구가 있는 데에다가, 중국의 부상과 북핵이 일본에 위협으로 작용한다”고 말하며 자위대의 필요성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밝히고,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강력한 군대를 만드는 게 목적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치카와 하야미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은 “종전 후 60년 동안 일본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지내왔는데 이것에는 재일미군과 자위대의 존재 덕분이 아니냐는 애매한 신뢰감이 여론에 형성되어있다. 이 신뢰에는 ‘아무도 자위대에 대해 전쟁하라 할 리가 없다’는 일종의 자신감이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3. 천황제에 대한 높은지지율 아사히신문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1945년도 조사 때 천황제지지가 78%, 폐지가 5%였으나, 30년 후인 1975년에는 지지 73.3%, 폐지 7%, 1986년에는 지지 72.4%, 폐지 5.6%로 각각 나타났다. 최근 들어 지지율은 더욱 높아져 80%대를 넘어섰다. 한국의 일부 언론은 천황제에 대한 높은 지지율의 유지와 최근 변화의 원인을 일본이 우경화된 데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치카와 하야미 지국장은 “여론조사의 결과를 천황제에 대한 지지로 해석하기 보다는, 천황제의 현상 유지에 대한 지지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며 “현재의 제도에 대한 지지도 그것이 좋다고 느끼기 보다는 정치적 변동의 과격함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 국민의 일종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일본에서 천황은 2차 대전 후 헌법 개정으로, 정치적 실권이 없는 종교적/상징적 존재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현재 천황은 평화의 상징으로서 일본 국민의 심리적 측면이나 일본 국가의 통합적 측면에서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 대해 이원덕 교수는 “일체 권한이 없는 천황은 의례적인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재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우익들의 정신적인 최대 지주로 천황이 존재하고, 이들이 국민통합과 여론 조성에 있어서 천황을 앞으로의 상황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일본 여론이 지니는 정치적 영향력 앞서 언급한 한중일 연합 설문조사에서, 일본인의 54%가 한국 식민 지배와 관련한 피해자 배상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또한 한일/일중 관계에 있어 일본 과거사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75%를 차지했다. 이처럼 한국과의 관계에서 역사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이, 정작 현실적 정치 사안들에 대해 보여준 답변은 한국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 이치카와 하야미 지국장은 “젊은이들은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기 때문에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고 설명하며 “일본인들은 워낙 관심이 개인적인 주제에 몰려 있어서 일본정치가 우경화되고 그것이 문제점이라고 느끼더라도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든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본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우경화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무관심이 일본 우익 세력의 강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 정치 판도의 우경화에 있어서 여론이 견제 또는 제어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일본 여론의 무관심은 정치 우경화에의 암묵적인 동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photo7 일본의 모든 국민이 정치적 사안에 무관심을 보임으로써 일본의 우경화 길에 함께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사회는 시민운동이 매우 활발한 공간으로 진보성을 띠는 단체도 상당수 존재한다. 실제로 후소샤 교과서의 등장과 함께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 등 교과서 관련 시민단체들은 ‘후소샤 채택률 제로 운동’에 나섰으며, 일본 시민·노동단체 연합체인 ‘평화포럼’은 해마다 평화헌법 9조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호헌대회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새역모와 같은 보수적 단체에 비해, 진보적 단체의 정치적 영향력은 비교적 낮다는 분석이다. 일본 여론이 우익 세력의 견제가 되지 못하고 암묵적인 동조 세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해도, 정치계에 파급을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쉽게 ‘일본 국민=우익세력’이라는 수식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그들의 입장과 그 입장의 배경과 이유를 따져본다면 일본 국민과 소위 우익세력 사이의 간극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간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일본 국민들에게 달려있을 것이다.* 서울대저널은 일본의 주요언론인 TV아사히,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의 5개 언론 서울지국에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이중 TV아사히와 아사히신문에서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으며, 나머지 3신문사는 거절했다. TV아사히는 일본의 주요방송, 아사히 신문은 주요 신문 중 하나로서 두 언론은 같은 계열사이나 그 운영이나 성향 등은 서로 관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