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 게바라
photo1 대부분 체 게바라라는 이름을 들어보거나 이미지화된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크로에 있는 벤치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작년에는 그의 젊은 시절 여행기를 다룬 영화 가 한국에서 상영된 바 있다. 체 게바라는 적어도 대부분의 대학생에게 익숙한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요즘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진영에 맞서서 적극적으로 저항했고, 쿠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혁명가의 이미지가 모순적이게도 자본주의적 상품광고에 동원되고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그의 이미지 뿐 일지도 모른다. 낭만적인 혁명가, 전사 그리스도, 체의 일생에 대해 좀 더 다가가 보기로 하자.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라틴아메리카 여행기훗날 체라는 이름을 얻게 될 에르네스토 게바라와 진보적인 성향 청년 알베르토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거대한 여행 계획을 세우게 된다. 원래는 자신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유럽 대륙을 여행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들은 그 계획을 미루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을 여행하기로 한다. 비록 자신들의 조상들은 유럽에서 라틴 아메리카 지역으로 건너왔지만, 젊은 청년 에르네스토에게는 그가 살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500cc 중고 오토바이에다가 ‘포데로사(힘이라는 의미) 도스(2라는 의미)’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여행을 시작한다. 이들이 시작한 이 여행이 영화 의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여행을 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기층민들의 삶과 기득권과 부를 독점하고 있는 유럽 이주민들의 대조적인 삶에 대해서 분노를 느낀다. 유럽인들에게 파괴당한 잉카 제국, 자신들의 땅과 재산을 빼앗긴 인디오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에르네스토에게 점차 변혁에 대한 의지가 생겨나게 된다. 오토바이의 잦은 고장과 에르네스토의 천식(천식은 체 게바라의 삶을 끊임없이 따라다니게 된다)으로 힘든 여행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사랑과 개혁에 대한 의지는 점차 커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통해서 민중 구원의 계시를 받아들이게 된다. photo2 산파블로 지역에 다다른 이 둘은 나병 환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치유불가능’이라고 판정받은 환자들이 격리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환자들 사이에서 축구팀을 조직하고, 죽어가는 환자들을 수술을 통해 구해내면서 에르네스토는 인디오 환자들과의 정신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나병이 아니라 마음을 좀 먹는 병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그들이 떠나기 전 인디오들이 벌인 환송연은 에르네스토에게 가장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게 되는데, 훗날 쿠바 혁명이 성공한 후 화가에게 부탁해 그 장면을 그림으로 남기게 된다. 아메리카의 병사가 가야할 길 체가 활동하게 될 시기는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첨예화된 냉전기였다. 미국과 소련 양 진영은 자신들의 동맹국들과 함께 타 진영에 대한 적개심을 공공연히 나타내었고, 그들의 동맹에 속해있지 않은 비동맹 국가들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서 사회주의 국가의 대표국으로 자리 잡은 소련은 ‘세계혁명’이라는 대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 기존의 정부를 전복하려는 혁명군들을 암암리에 지원하였다. 미국은 소련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서 라틴 아메리카를 감도는 혁명 분위기를 억제하고자 하였다. 특히 체가 활약하게 될 쿠바는 미국과 아주 가까이에 있는 섬이다. 당시 쿠바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바티스타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의 정권은 쿠바 민중들에게는 인기가 없었지만 미국의 이익에 잘 부합하였다. 체는 쿠바 내에서 무장봉기를 선동했던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자마자 그를 깊이 신뢰하게 되고 점차 쿠바 혁명에 동조하게 된다. 멕시코에서 혁명을 준비하며 훈련을 받던 체와 혁명 동지들은 바티스타 정권의 요청을 받은 멕시코 정부에 의해서 체포된다. 아르헨티나 인이였던 체는 본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석방될 기회를 가지게 되지만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쿠바인들의 운명과 하나입니다. 그들과 함께 있겠어요.” 그는 이미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과 하나 된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펼치면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겁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대로도 하지 않을 겁니다.” |
photo3 쿠바의 민중들을 위해서 무기를 들기로 결정한 전사 그리스도, 체는 석방 이 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쿠바로 향하는 그란마 호에 동지들과 함께 탑승한다. 이 소수의 게릴라들은 많은 희생을 겪으면서 결국 정부군들과 그리고 배후에 있는 미국 세력과 싸워서 혁명을 성공시킨다. 어떻게 소수의 게릴라들이 그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민중으로부터 나오는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체와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군의 승리는 마치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 공상당의 국민당에 대한 승리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중국 공산당과 쿠바 혁명군, 이 둘의 승리는 모두 민중의 힘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체는 모택동을 존경하였고, 혁명가의 모범으로 여겼다. 그의 첫째 딸 일디타를 ‘나의 작은 마오’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쿠바 침공 때 자신의 부대에 ‘로스 마오 마오’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혁명가로써 체와 마오는 많이 닮아있다. 낭만적 혁명가들이여!낭만적 혁명가, 끝없는 혁명의 길쿠바 혁명이 성공한 이후 미국 정부는 사회주의 성향의 정권이 미국 코앞에 들어서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다. 실제로 당시의 미국 케네디 행정부는 쿠바 혁명의 핵심 인물인 피델 카스트로와 체를 제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작전을 수행한다. 미국에 대한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 체는 쿠바의 사절로써 소련과 중국 등지를 방문한다. photo4 소련은 사회주의 맹주국으로서 쿠바를 미국으로부터 보호하려는 행동을 취하게 되는데, 이것이 유명한 쿠바 미사일 사태다. 하지만 소련은 미국의 압력에 의해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게 되는데, 체는 소련의 이런 태도에 크게 실망한다. 국제적인 권력정치의 원리에 순응하는 소련의 모습이 체에게는 순수한 사회주의 이념을 배반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물론 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에 미국이 쿠바를 직접 침공하려는 의도를 포기함으로써 쿠바가 일시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긴 했지만 말이다. 이 후 체는 볼리비아에서의 혁명에 다시 참여하게 된다. 쿠바에 남아있었다면 정부 요직을 차지하며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민중들의 삶을 구하기 위한 투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가 라틴 아메리카를 돌아보면서 받았던 민중을 구원하라는 계시를 그는 끝까지 지켜나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볼리비아 혁명 세력들과 함께 했던 체는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는 볼리비아 정부군들에게 체포되어 생을 마감하게 된다. 혁명가다운 죽음을 맞이한 체, 비록 그는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가 살았던 치열한 삶은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그리고 그를 삶을 알고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그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있으며, 언젠가 세상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홀연히 돌아올 것이다. 전사 그리스도의 모습으로!사회의 모순점, 혁명이란 가능한가?아르헨티나의 의학도였던 체는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메스를 드는 대신에 라틴 아메리카의 전체 민중을 구하기 위해서 무기를 들었다. 그는 사회적인 모순을 혁명을 통해서 극복하고자한 순수한, 낭만적 혁명가였다. 하지만 체 자신도 쿠바 혁명 이후 혁명의 한계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채택된 혁명이라는 방법은 종국에는 많은 모순점을 내보였던 것이다. 물론 이번 학기를 통해서 살펴보았던 프란츠 파농, 노먼 베쑨, 체 게바라의 혁명적인 삶이 무의미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상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병폐들에 대한 싸움을 전개했고,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의 정신은 여전히 사회적 모순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 인간성의 구도자들은 항상 민중들과 함께 호흡했고, 민중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적인 모순점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정치라는 고상한 차원에 얽매여 제약을 받지 않고 순순한 의미에서 민중들을 걱정하고 다독여주었던 모습, 이는 이 모순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닮아가야 할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