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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오마이뉴스 이안수 |
우리에게 경이적인 출산율로 사람이 바글바글할 것 같은데도 한편으로는 사막에서 낙타를 타는 유목민과 초원을 누비는 염소를 치는 목동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상의 공간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다. 아프리카는 묘하게 상반된 수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대륙’이다. 그곳은 어떤 국가나 정체성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절망적인 빈곤과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상상되는 닫힌 공간이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는 수많은 인종과 언어가 섞여있다. 서로 이질적인 공동체들 속에는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정체성이 혼재돼 있다. 영화 는 이런 인식의 혼란을 지적하면서 시작한다. 아프리카는 어떤 곳일까? 주인공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TIA(This Is Africa)’라는 단 한마디로 아프리카의 모든 것들을 정의한다. 아프리카에 있는 모든 혼돈은 오로지 아프리카이기 때문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적 침략자들은 원주민을 타자(他者)로 정의했다. 어렵게 파농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피지배자이 지배자들의 인식대로 규정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정체성은 침략자들의 잣대에 의해서 농단됐고 결국 정의당한 자나 정의한 자나 모두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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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 출신 백인인 주인공 대니 아처는 자조적인 어조로 아프리카의 문제는 “여기가 아프리카”이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
사람으로 가득한 대륙?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가장 먼저 가지게 되는 이미지는 ‘과잉인구’다. 엄청나게 많은 인구가 저개발상태에 놓여있으며, 이들은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아프리카는 아주 단순하게 그곳의 경제적 토대가 부양할 수 없는 인구가 넘쳐나는 곳으로 정의된다. 국제기구를 통해서 홍보되는 이미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굶어죽는 어린이들, 기본적인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받지 못하는 난민들, 가뭄에 시달리는 목마른 주민들은 모두 빈곤과 기아라는 부정적 이미지만을 재생산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아프리카에 인구가 지나치게 많다는 근본적인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인구가 ‘과잉’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단순히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경제성장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 인구를 줄여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아프리카보다 유럽이 오히려 더 높은 인구밀도를 보인다. ‘아프리카’의 인구가 많다는 것은 편견에 가깝다. 사실 아프리카의 인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그 규모가 아니라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아프리카에는 이질적 문화를 지닌 공동체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런 다양성에 이데올로기나 자의적인 국경선, 인종이 개입된다면 폭발적인 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의 주인공 아처는 이런 분쟁을 대신 수행하는 용병 출신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에라리온의 경우 분쟁에 동원되는 병사들은 원래 자원 또는 강제로 입대한 청년들로 이루어졌으나, 점차 연령이 낮아져 제대로 된 사리분별을 할 수 없는 소년들까지도 징집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주인공 솔로몬 반디(디몬 하운수 분)의 아들은 바로 이런 소년병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학교에서 한창 공부를 할 나이의 소년들이 총을 쥐고 적을 죽이도록 훈련받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같은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 분쟁은 점차 죽음을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의 문제로 바꾸어놓으며 심각하게 번져나간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문제가 그리고 소년이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받는 문제가 100만, 200만 학살이라는 수치로 가려질 정도가 되면, 그때서야 사람들은 이것이 ‘분쟁’이 아닌 ‘인류의 비극’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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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라리온에 살던 주인공 솔로몬 반디의 아들은 반군에게 납치돼, 소년병이 된다. 소년병이 되는 과정에서 살인과 세뇌를 겪게 되며, 어린 나이에 학살에 참여한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
그곳에는 피로 물든 다이아몬드가 있었네 하지만 인구학적 다양성이 모든 문제를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성은 부차적이다. 아프리카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대륙의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천연자원이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런 천연자원을 가공해 제품으로 만들어낼 기술과 자본은 없기 때문에, 단순히 이를 수출하는 역할에 그친다. 에서 모든 인물들의 탐욕을 이끌어내는 것도 그런 천연자원 중 하나인 다이아몬드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는 국제적인 카르텔에 의해서 공급이 조절된다. 영화의 배경인 시에라리온은 정부군과 반군의 치열한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피난을 떠나는 곳이다. 여기서 반군은 다이아몬드 생산지를 장악하고,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기 위해 주민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부린다. 이렇게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통해 채굴한 다이아몬드를 밀수해서 내전에 필요한 무기를 조달한다. 사실 분쟁지역에서 노예노동을 통해 생산된 다이아몬드의 유통은 국제적 협약인 킴벌리 프로세스를 통해 금지돼 있다. 하지만 국제적 다이아몬드 카르텔은 밀수를 통해서 흘러나올 다이아몬드가 공급을 증가시킬 것을 우려해, 불법인줄 알면서도 이들이 밀수하는 다이아몬드를 구입해준다. 가격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주인공 반디도 영화 속에서 납치돼 채굴에 강제로 동원됐다. 그리고 반디가 생산한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를 생산하지 않는 이웃나라로 운반돼 정상적으로 생산된 다이아몬드인양 수출된다. 이런 기괴한 천연자원과 분쟁의 연결고리는 다이아몬드에서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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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솔로몬 반디는 반군에게 납치돼, 다이아몬드 채굴에 강제로 동원된다. 이런 노예노동을 반군은 자원에 대한 자결권을 쟁취했다는 무의미한 수사어구로 포장한다. |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콩고에서는 주위 8개국이 참여한 내전이 벌어졌다. 여러 반군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날뛰었고, 정부는 마비됐으며 주변국은 갖은 이유를 끌어다대면서 내전에 개입해 한몫 챙기기에 열을 올렸다. 이곳에서는 희귀한 콜탄이라는 자원이 산출됐는데, 이것은 휴대폰을 비롯한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자원이었다. 콜탄을 채굴할 수 있는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세력은 분쟁을 그치지 않았고, 각자 이를 팔아치우면서 분쟁을 지속할 자금을 확보했다. 또 다른 나라 기니에서는 알루미늄의 원료가 되는 보크사이트가 독재자와 반군을 뒷받침하는 수익원이 됐다. 어느 쪽의 집권도 주민에게 그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 속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매달린 보크사이트 수출은 1년에 8억 달러나 되는 돈을 벌어들였다. 그렇게 천연자원은 아프리카를 피로 물들였다. 천연자원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돈은 무기의 구입에 사용되거나, 부패한 독재자나 반군지도자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낭비되곤 했다.나쁜 정부만 가득한 혼돈의 땅 사실 아프리카를 ‘혼돈의 아프리카’로 만드는 핵심적인 이유는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정부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아프리카에서 가장 민주적일 것으로 기대됐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독립당시만 해도 수많은 백인들이 정착해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실현할 토대가 굳건하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이곳에서 정부를 구성했던 백인들은 강력한 인종차별정책(apartheid)을 펼쳤고, 결국 백인독재로 치달았다. 주인공 아처도 이곳 출신으로, 백인독재가 종식된 이후 이곳을 떠났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 있던 정부가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 나았던 것도 아니다. 대다수 국가들은 식민지 정부의 강압적인 통치에서 벗어난 후, 겨우 국가는 수립했으나 제대로 된 민주정부는 수립하지 못한 채로 수십 년을 지내야했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에서 신생국가의 힘은 매우 미약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군사쿠데타나 내전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아프리카 주민들은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정치적 불안에 따른 기본적인 치안의 부재에 시달려야 했다. 종종 강력한 치안을 제공할 수 있는 독재정권이 존재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민주적인 통치는 기대할 수 없었으며, 학살자체를 즐겼던 이디 아민 같은 독재자를 만나는 경우에는 아무런 이유 없는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돼야만 했다. 널리 퍼져있던 수많은 종류의 ‘나쁜 정체(regime)’들은 아프리카의 상황을 훨씬 악화시켰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에라리온의 경우, 오랜 독재 끝에 민주정권이 세워졌으나 이 허약한 정부는 심각한 부패에 직면해있었다. 이에 혁명연합전선(RUF)이 반기를 들었고, 일시적으로 수도까지 점령했다. 결국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정부는 외국인 용병을 고용했고 그 대가로 다이아몬드 광산 지분을 넘겼다. 하지만 내전은 종식되지 못했고 반군들은 계속해서 끔찍한 학살을 벌였다. 게다가 이 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이웃국가로 망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복잡한 분쟁이 계속되다가 서아프리카평화유지군의 강력한 군사적 개입으로 겨우 분쟁이 멈췄다. 하지만 여전히 시에라리온 정부는 부패의 온상이다. 안정된 정부가 부재한 탓에 아프리카의 도처에 폭력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분쟁의 책임은 어디로? 이렇게 분쟁이 빈발하는 아프리카에서 이를 해결하는 수단은 허울 좋은 국제사회의 중개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분쟁에 참여하고 있는 세력들은 외세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부가 실종된 지역에서 국제기구는 정부의 대체물로 기능한다. 하지만 국제기구를 뒷받침하는 국제사회는 아프리카에 개입할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종종 자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의 경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개입할 따름이다. 100만 명이 학살된 르완다 학살에 국제사회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 암살로 촉발된 후투족과 투치족의 분쟁이 가져온 이 끔찍한 결과는 라는 또 다른 영화에 자세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는 당시 미대통령 클린턴이 연설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국제사회의 협력과 평화정착을 강력히 촉구하며 나토군의 개입을 선언하지만, 그 대상은 르완다가 아닌 발칸이다. 실제 유럽의 한켠인 보스니아에서 일어난 분쟁에는 항모를 포함한 강력한 군사력이 동원됐지만, 100만 명이 죽어가는 르완다에는 100일이 지나도록 학살을 멈추기 위한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랬던 국제사회의 태도에도 점차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자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 분)은 과거와 달라지는 새로운 국제사회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이아몬드에 얽힌 어두운 커넥션을 폭로하는 한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시민적 양심에 호소한다. 피에 물든 다이아몬드의 구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아프리카의 문제는 그 안에서 해결될 수 없다. 국제사회의 협력과 노력에 의해서 해결될 성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천연자원을 수입하는 나라들, 인종과 문화에서 차이를 보이는 여러 집단들을 부추겨 내전을 발생시키는 세력들,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분쟁에 개입하는 나라들이 나서지 않는 한 아프리카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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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40개국이 분쟁지역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의 유통을 막는 킴벌리 프로세스에 서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분쟁지역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의 유통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
아프리카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대륙이 직면한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그래서 는 복잡하다. 어디서 갈등을 찾아야하는지, 누구와 누가 대립하는지도 파악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주인공 아처가 했던 TIA라는 말과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이리저리 폭력에 휩쓸리는 까닭은 그곳이 아프리카이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불안과 빈곤이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 어느 한 아프리카인의 책임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것은 오히려 아프리카를 넘어선 수많은 관계들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이제 우리가 아프리카의 얼굴을 바라봐야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