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은(2) | ‘욘사마’, ‘한류’가 일본을 정복했다?

한일간의 오랜 문화 불균형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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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에는 약간은 가벼운 화제로 돌려, 소위 ‘욘사마’ 열풍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제 열풍에서 온풍 정도로 넘어가려는 시점이라 이번호에서 다뤄야 할 것 같다. 약간 사그라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텔레비전은 온통 ‘욘사마’로 가득
요즘 한국쪽에서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정말 배용준이 그렇게 인기가 있느냐?’다. 그 밑에는 ‘우리나라에서 한 물 간 배용준이 인기가 있을려구’라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상상초월. 6, 7월에는 텔레비전을 켜면 한 채널에는 배용준, 다른 채널에는 최지우였다. 그 때 다른 채널에서는 한국의 연쇄 살인 사건 뉴스도 나오고 있었는데, 그 반응. ‘아니, ‘욘사마의 나라’에서 저런 일이!’ 미디어에서 실제보다 더 화제로 삼고 띄워주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한때 우리나라에서 ‘이효리’가 뜨던 시절, 미디어를 통해 그 인기가 실제보다 증폭되었던 것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기임은 분명하다. 한편 일본에서는 ‘한국에서도 욘사마 인기있죠?’는 질문을 듣는데, 한국에서는 이미 전성기는 지났다고 이야기해 주면 일본 사람들은 놀라움과 함께 왠지 모를 섭섭함을 내비친다. ‘베컴사마’ 이후 최초라는 ‘욘사마’라는 존칭도 이제 널리 대중화되어, 일반 사람뿐만 아니라 미디어에서도 공식 용어가 되었다. 물론 ‘배용준’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전부 외우고 부르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유소나’ 출연만으로도 유명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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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사마’의 인기의 근원, ‘후유소나(겨울연가)’도 여전히 시청률 고공 행진.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이 25% 전후인데, 후유소나는 20%에 육박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올림픽 생중계에 밀려 새벽 2시에 방영되었던 19회도 10%를 넘는 두 자리 시청률이었다. 겨울연가에 함께 등장했던 배우들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일본에 진출하고 있다. 박용하는 배용준이 일본에서 실질적인 활동을 거의 안 하는 동안을 틈 타 종횡무진하고 있고, 후지테레비의 드라마에도 나와 간단한 일본어 대사를 선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토크쇼에 나와서는 ‘한국에서 배용준만큼 인기가 있다’라는 말을 하기도. 그 밖의 조연들도 인기를 얻고 있어서, 무작정 한국에 가서 배용준을 만나고 돌아오라는 미션을 완수해야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결국 겨울 연가에 함께 등장했던 권해효를 만나고 돌아오기도 하고, 박솔미(올인에도 나오지만)나 유열도 팬이 있는 등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얘네들이 왜 이러나’ 싶은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한편 교육 방송의 한국어 강좌 역시 겨울 연가의 대사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는 코너를 마련하여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당시 겨울연가에 대해서라고는 조정린이 ‘둔상아’ 그러면서 최지우 흉내내는 것밖에 모르던 필자도 일본에 와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겨울연가를 보고 있다. 가끔씩 일본인으로부터 겨울 연가에 대해서 질문 받을 때 스토리나 등장 인물을 몰라서 헤매는 것도 ‘욘사마의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지금은 더빙으로 방영되는 NHK판 겨울 연가에 더 익숙해져 버려서 최지우의 낮은 톤의 목소리에 가끔씩 놀란다. 한편, 필자와 같이 현재 지상파에서 방영되는 ‘겨울연가’를 보는 사람은 ‘겨울 연가 3기생’이라고 불린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높아가지만
필자가 일본에 올 때만 해도 ‘겨울 연가 붐이 곧 사그라들겠지’, ‘나와는 관계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인기를 더해가면서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혜택이 있었다. 방학때 2주 정도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호스트 가족이 한국인을 받은 이유가 바로 어머니가 겨울 연가 팬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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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인과 처음 만났을 때, 겨울 연가나 배용준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풀어나가는 경우도 많다. 겨울 연가에 등장하는 남이섬에 가 보고 싶다고 먼저 말을 걸어온 애도 있고, 수업 시간에는 ‘우리 수업의 욘사마’라고 불리어 진 적도 있었으나, 이는 내가 배용준을 닮았다(!)기 보다는 한국 사람이니깐 욘사마로 불러주는 경우렷다. 한국에 대한 관심,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서 한국어 교재가 잘 팔리고 있고, 필자가 활동하는 한국어 교실에도 일본인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한국에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가는 사실은 한국에서 더 잘 알고 있으리라.

한류가 일본을 정복? 그 반대다
한국 언론들도 앞다투어 한류가 일본을 ‘정복’했느니,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떨치고 있다느니 하는 식으로 떠벌리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겨울 연가 정도에 머물러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개인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배용준도 ‘준상’에서 ‘욘사마’가 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박용하도 여전히 ‘상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일본에 온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 일본인으로부터 ‘유진 상이 너무 좋다’는 말을 듣고 ‘아니, S.E.S가 아직 인기가 있나?’하고 의아해 하며, S.E.S 얘기를 실컷 했는데, 알고 보니 최지우의 극중 이름인 ‘정유진’이었다. 그리고 굳이 ‘정복’이라는 말을 쓰려고 한다면, 우리 입장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일본 문화야말로 그동안 우리 나라를 강타해 왔다. 비록 몇십년간 일본 문화 유입이 금지되어 있었고 왜색 문화라고 경시하였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본 문화에 해박한 매니아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J-POP은 물론이고 일본 드라마나 쇼프로를 인터넷에서 구해 보는 매니아 층도 상당하다. 한편 ‘저팬 파운데이션’의 2003년도 조사에 따르면 일본어를 가장 많은 사람이 배우는 나라는 한국으로서 거의 100만인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어는 일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못하는 일개 외국어일 따름이다. 한국에 유학한 적이 있던 한 일본인은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데, 우리는 한국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서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유년 문화는 거의 일본 문화
일본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학교 문화라던가 놀이 문화에서 공통점을 많이 느끼게 된다. 필자의 경우 ‘파이널 판타지III’가 일본어를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이 이야기를 일본인들에게 해 주면 정말 좋아하면서 이런 저런 컴퓨터 게임 이야기에 빠져드는데, 그다지 일본 게임에 관심이 없던 필자도 대화에 낄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일본인 또래들에게 ‘오류겐(쇼류겐, 승룡권)’, ‘아도겐(하도겐, 파동권)’을 그 동작과 함께 외쳐 보라. 아주 곧 동질감을 느끼며 마치 옛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거기에 ‘드래곤 볼’, ‘슬램 덩크’ 이야기를 곁들여 주면 금상첨화. 또는 ‘위닝 일레븐’을 같이 해도 좋을 듯 하다. 또한 어린 아이들의 사소한 동네 골목에서의 놀이에도 공통점이 보이고, 국산 만화 영화가 부족하던 때 어린이 시청자를 사로 잡았던 수많은 만화들. ‘철완 아톰’, ‘마징가 제트’뿐만이 아니라 ‘플란다스의 개’까지도 일본 작품임을 생각하면(주제곡도 똑같다), 우리의 유년 문화에 대한 정체성에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 지배와 그 이후의 경제적, 문화적 역량의 차이로 인해 문화 역조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며, 우리가 그동안 향유했던 문화의 태반은 일제였던 것이다. 즉, 한류가 일본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한국 쪽에서 반격에 나선 것이라 봐야 한다.

‘포스트 후유소나’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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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이 장래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문화 교류에서 상호 비슷한 위치에 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후유소나’에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일본에 한국 문화에 대한 호의적인 분위기가 도래했음은 분명하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다만 물 만났다고 준비 없이 개나 소나 달려들면 실패할 뿐이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싶으면 일본을 알고 달려들길 바란다. 배우들도 일본 연예계에서 활동하려면 일본 문화 및 정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가령, 99년 ‘쉬리’ 이후 독자적으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 영화는 겨울 연가 열풍을 의식말고, 그간의 성공 요인이었던 스토리나 배우로 승부한다면 더 큰 반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복’은 바라지 않는다. 한일 양국이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의 문화를 즐길 줄 아는 관계로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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