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속의 소수, 중국의 소수민족을 조명하다

“언어도 역사도, 전통도 풍습도 지켜야 할 예절도, 심지어 생김새도 동양인과 서양인 차이만큼 다른 사람들이 한 나라 국민으로 산다?” 인구 분포의 절대다수가 한(韓)민족으로서 국민의 대부분이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야기다.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세계 상당수의 나라들에서 지금 이순간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이웃나라인 중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중국의 주민등록증에는 민족성분도 함께 표시된다.

“언어도 역사도, 전통도 풍습도 지켜야 할 예절도, 심지어 생김새도 동양인과 서양인 차이만큼 다른 사람들이 한 나라 국민으로 산다?” 인구 분포의 절대다수가 한(韓)민족으로서 국민의 대부분이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세계 상당수의 나라들에서 지금 이순간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웃나라인 중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

###IMG_0###
중국의 주민등록증에는 민족성분도 함께 표시된다. 네모친 부분이 민족성분. 이 여인은 한(漢)족이다.

중국은 56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다. 소수민족은 중국 전체에 걸쳐 넓게 분포하며, 주로 티벳 장족, 내몽골 몽골족, 신장 위구르족을 비롯한 5개 소수민족자치구와 연변 등의 30개 자치주, 124개의 자치현에 거주한다. 거의 모든 민족이 자신의 언어를 가졌고 그 중 21개 민족이 문자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 구성에 있어 특이한 점은 전체 인구 구성이 한(漢)족 92%, 나머지 55개의 ‘소수’민족 8%로 이루어지는 반면, 지역 구성 면에서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지역이 중국 국토의 60%를 상회한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 하에 중국 정치/경제 등 사회가 한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혹은 무심하게 지나쳤던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해 역사적 맥락과 현재 상황을 중심으로 알아본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 땅 안에 있는 사람 다 줄 서요-”1949년 10월,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즉 지금의 중국의 수립을 선포함으로써 청나라의 종말 이후 약 40년 간 공석이었던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이 때 중국 영토의 범위는 대략 청나라 시기의 그것으로, 이 경계 안의 사람들은 모두 ‘중화민족’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중국 성립 직후, 국내의 민족 분류가 분명치 않아서 민족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했고,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은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하여 1950년대 이후에는 개인 또는 집단들을 판별/분류하는 ‘민족식별’이 행해진다. 민족식별의 기준은 ‘동일한 언어/지역/경제생활/문화소양’의 4가지로, 이 결과 1954년까지 38개 민족이 인정되고, 1964년에 이르러 55개 민족이 공인된다. 오늘날 중국에 존재하는 소수민족들의 정체성은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 민족식별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바가 크다. 그러나 이 작업도 완벽한 식별은 아니었기에, 이후 80년대 이후 자신들의 민족성분이 잘못되었다며 민족성분의 회복과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재조사를 통해 변경된 사례는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소수민족정책, “정부 입맛대로?” 1950년대 이후 50여 년 동안 대체로 지켜져 왔던 소수민족 정책의 원칙은 ‘민족자치 허용, 분리 독립 불가’이며, 일관된 목표는‘한족에 대한 소수민족의 융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방식과 절차는 지도국의 정치노선과 국내외 상황에 따라 온건과 급진을 넘나드는 변화를 겪어왔다. 1950년대 초중반, 갓 탄생한 중국에 있어 방대한 소수민족 거주 지역은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 민족정책은 영토적 통합을 기본 목표로 두며 최대한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보장하는 온건적인 방향을 택한다. 그러나, 온건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의 구심력을 확보한 중국 정부는 1950년대 후반 들어 민족정책의 전이를 모색하게 되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당시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국내 정치의 급격한 변화와 인도/소련과의 분쟁 등 외적 긴장의 요인과 맞물리면서 급진적 동화정책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배타적인 민족동화정책 하에 소수민족의 문화는 부정되고 소수민족은 한족으로의 동화를 강요받았다. 특히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 소수민족은 민족자치권마저 박탈당한 채, 민족언어 교육 금지/민족문자로 출판된 출판물 소각/압수/종교 박해/물리적 폭력 등으로 시련을 겪게 된다. photo2소수민족 정책의 현재 : 온건적인 융화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정책 –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발전 이룩 목표 – 으로 중국 정치노선이 선회함에 따라 소수민족 정책도 이전의 폭압적 동화 정책에서 전환을 맞게 된다. 중국의 경제 발전에는 소수민족지역의 풍부한 자원과 소수민족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전 강압적인 정책의 실패 경험도 정책 온건화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제 중국은 소수민족지구에 대한 경제적 통합을 기본 목표로 내세우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국가 통합을 지향하는 민족융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하며 “민족 평등”을 강조하여, 모든 민족에게 평등한 정책 혹은 소수민족을 한족보다 더 우대하는 정책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소수민족 존중/우대 정책은 정치/사회/경제의 다방면에 존재한다. 현재 중국은 소수민족지역에 자치를 허용하고 있으며 이 때 자치장은 해당 지역의 소수민족에게 맡긴다. 전체 정치에 있어서도 당국은 소수민족의 참정권을 부여했는데, 중국 최고 국가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인구가 적은 민족도 적어도 한 명의 대표는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규정 등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소수민족의 인민대표자 비율은 오히려 전체인구대비 소수민족 인구 비율을 넘어서게 된다. 한편 인구 정책 면에서, 중국은 1가족 1자녀 원칙의 산아제한정책을 중국 전역에 엄격히 적용하고 있지만 소수민족에게는 예외적으로 2자녀까지 허용한다. 또한 특정 부문의 세금을 면제하고 경제 기술 합작을 지지/외자 도입을 지원하는 등 경제적인 면에서도 소수민족에게 각종 특혜와 우대가 주어진다. : Not For “소수민족”, But For “통합작업“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소수민족우대정책’이란 말은 무색할 정도다. 최근도 계속되는 중국의 경제 발전은 한족이 주로 거주하는 동부 연해지역 – 베이징, 상하이 등 – 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소수민족지역이 몰려있는 중서부는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또한 정치 영역에서 소수민족의 실제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인데, 사실상 중국 정치의 수뇌역할을 하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건국 이후 단 한 번도 소수민족이 포함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수민족 자치지역의 정치에 있어서도, 명목상의 장, 즉 행정책임자는 소수민족으로 배치하나, 인사/재정 등의 실권은 공산당 서기인 한족이 쥔다. “형식상의 자치, 실질적인 통치”인 것이다. 또한 소수민족지역으로 이주하는 한족들에 경제상의 특혜를 부여하는 한족이주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소수민족 자치지역에서의 소수민족 비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실제로 연변조선족자치구의 경우 조선족의 인구비율이 1952년 74%에서 2000년 39.7%로, 내몽골자치구의 경우 몽골족의 비율은 1949년 이전 70%에서 16.96%로 감소했다. 이로 인해 소수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은 점차 퇴색되고 있다. 소수민족의 언어/문화 교육은 허용하나 역사/지리 교육은 금지하는 소수민족정책도 그러한 현상에 한 몫 한다. 국제문제조사연구소 박병광 연구위원은 “중국으로서는 소수민족의 영토와 자원을 포기할 수 없다. 또한 소수민족 영토 대부분이 국경 지역에 있다는 전략상에서나, 중국이 소수민족을 배려해준다는, 이미지의 대외적 제고 차원에서나 소수민족은 중국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말하며, “공식적으로는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없고 오히려 우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중국 소수민족정책의 우수하면서도 교묘한 부분”이라 강조했다.답 없는 사투, ‘소수’민족의 ‘소수’독립운동

###IMG_1###

중국의 ‘우수하면서도 교묘한’ 소수민족정책으로 소수민족은 점차 한족에 동화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소수민족들 중에서도 티벳/신장 등 인구/세력이 큰 몇몇 민족들 사이에서는 분리 독립의 움직임이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로 망명하여 외국을 상대로 티벳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활동 외에도 지난 2월, 자치권을 요구하며 베이징 올림픽 개최 반대 운동을 벌이던 티벳 성직자들이 중국 경찰에 체포, 투옥된 바 있다. 작년 말에는 승려들의 자치운동으로 티벳 최대 규모의 데풍사원이 강제 폐쇄되기도 했다. 또한 신장자치구의 일부 위구르족은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설립을 표방하며 활발하게 분리 독립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소규모 테러를 감행하여 중국정부를 자극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 당국에 의해 즉각 무력 진압되며, 관련 소식에 대한 언론 통제로 대외에서는 상황을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중국 정부는 지난 1일, 55개 소수민족의 현황을 담은 방대한 양의 ‘소수민족백서’를 발간했다. 이는 중앙 요직 진출의 제한 외에도 보이지 않는 사회적 차별에, 또 한족과의 경제적 격차에 따른 소수민족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방책으로 풀이된다. 발간된 백서에서는 지역 간 경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2000년 착수한 “서부대개발”사업에 5년간 우리 돈으로 110조원이 투입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차별이 계속될 때 중국 대륙에 ‘한족/소수민족의 자연스러운 융화’의 날은 영영 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소수민족, Win-Win해법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Non-Korean IN Korea

다음 기사

지금 일본은(5) | 우리 앞에 먼저 선 일본의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