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하나로 불리는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서울만한 크기의 작은 섬나라로 말레이 반도의 남쪽 하단에 위치하고 있고 그 서남쪽 해상으로 인도네시아와 마주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어떻게 단기간에 어떻게 선진국 수준의 국가로 발전 할 수 있었는지는 많은 이에게 호기심을 자아낸다.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싱가포르의 독특한 정책적인 면모는 그 비결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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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싱가포르는 미국처럼 다수 이주민과 소수의 토착인으로 구성되어있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중국계 77%, 말레이계 14%, 인도계 8%와 소수의 유라시아인들로 이루어졌다. 다인종국가에서 인종간의 분쟁을 흔히 찾아볼 수 있듯 싱가포르의 경우에도 인종간의 화합을 도모하여 사회를 안정화 시키는 것이 발전의 선결 조건이었다. 싱가포르인들의 인종 화합의 노력은 멀지 않은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푸드 코트 방식으로 이루어진 학교 식당은 중식, 일식, 타이식, 인디안, 무슬림 등의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는데, 이중 중식, 무슬림, 인디안 스톨은 싱가포르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세 인종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어느 공공 식당이든 의무적으로 최소 한 스톨씩 설치되어야 한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슬림의 식기와 비-무슬림의 식기를 따로 수거한다는 것이다. 무슬림은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아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다른 스톨들과 식기조차 섞는 것을 꺼려하는데, 무슬림인 말레이 계의 소수민에대한 배려에서 나온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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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용어인 영어의 교육과 함께 각 인종의 아이들에게 모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정부의 주택 개발에 의해 지어진 아파트의 한 블록에 일정비율 이상의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인이 거주해야한다는 정책안, 정당의 결성 시 정당 구성원 중에 적어도 각 인종이 한명씩 포함되어있어야 정당 입후보가 가능하게 하는 정책에서 소수 민족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정책이 밑받침이 된 민족간의 화합은 사회 안정에 크게 이바지 하였고, 싱가포르의 개발 시기 외국 회사들이 안심하고 싱가포르에 투자할 수 있게 하였다. 싱가포르가 이 나라의 실정에 맞게 발전시킨 자본주의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이상을 실현시키고 있는 이 나라는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몇 가지 정책을 펴고 있는데 생필품 물가안정정책이 그것이다. 빈부의 격차가 아무리 생기더라도 생필품의 가격은 저렴하게 유지하여 하층 노동자 계급도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필품 가격이 낮게 유지될 수 있는 점은 생필품을 이 나라에서 생산하기보다 쌀, 과일, 야채 등의 음식과 기본적인 공산품등을 주변의 국가에서 수입하기 때문이다. 가장 값이 싼 곳에서 사오기 때문에 정부가 원하는 만큼 생필품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연금제 또한 다른 수정자본주의국가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Central Provident Fund(CPF)로 불리는 연금제는 연금, 의료보험, 집마련 기금, 자산관리등의 기능을 포괄한다. 돈을 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다른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많은 나라와는 달리 CPF의 경우 자기가 저축한 돈을 유사시에 다시 찾아 쓸 수 있는 구조이다. 근로자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임금의 33%를 저축하게 한다. 이런 식의 정책은 수정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재분배의 효과를 노린다기보다 정책 실행자체의 효율성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의무 저축 제도에 가까워 일반국민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고 무임승차에 따른 낭비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임금의 상당량을 저축하게 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막고 펀드를 국가의 공공 투자 사업에 차출하여 쓸 수 있다는 이점도 함께 가져다준다. 반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그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분리된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법제가 잘 정비된 안전한 국가로 유명하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잠깐 자리를 비울 때 노트북 PC, 핸드폰 등 값비싼 물건을 그대로 방치하는 현지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 매우 의아해했다. 그러나 곧 강력한 법제가 싱가포르를 안심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서관의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의 문구, “Are you finding a way to prison?”, 비행기에서 작성하는 입국 심사서의 뒷면에는 쓰여 있는 “Death for drug traffickers under singapore law”이라는 문구가 그 단호함을 일깨워준다. 또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위한 소소한 사항에 대해서는 강력한 벌금제도를 시행한다. 쓰레기로 거리를 더럽히는 행위와 흡연이 금지된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처음 적발될 시 S$1,000의 벌금이 가해진다. 싱가포르는 조류와 파충류의 번성으로 모기의 번식을 억제하는데, 가정에서 이에 부주의 하여 웅덩이를 만들거나 화분관리를 잘 못하여 모기의 번식을 가능하게하면 처음 적발 시 S$60의 벌금이 가해진다. 벌금 제 시행에서 보통 재 적발 시에는 벌금의 액수를 두 세배로 늘여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너무 소소한 일에까지 법이 침투해 있어,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무사안일주의도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팽배하지만, 적어도 이런 제도가 안전하고 깨끗한 싱가포르를 만들었다는 점은 그들도 인정한다. 싱가포르 강력한 법제도 시행은 이미 미국인 소년 마이클 페이에 대한 태형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국적을 불문하고 만인은 법 앞에 공정하다는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법의 집행은 싱가포르의 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쳐있어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정부 건설에도 이바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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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교통정책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곳에 처음 왔을 무렵, 같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싱가포르대학에 온 다른 친구들과 함께 주말에 영화를 보고 저녁식사를 한 후 택시를 타고 같이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우리에게 기분 좋은 드라이브였다. 서울과 달리 정체가 없어 택시가 제한속도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가 교통 혼잡을 방지하기위하여 집행하는 몇 가지 과단성 있는 정책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싱가포르에서 운전을 하려면 차를 사는 것도 문제이지만, 일단 차를 몰 수 있는 권리를 사야한다. 싱가포르 정부에서는 매년 도로의 수용능력에 맞추어 도로에 몰고 나올 수 있는 차량의 대수를 정하여 이 수만큼 경매를 통하여 이 권리를 판매한다. 한번 권리를 사면 10년까지 유효한데 가격은 해마다 바뀌지만 현재 대략 1,000만원을 상회한다. 차를 소유, 유지하기위해서는 이 권리가격을 포함하여, 차 가격, 등록비, 부가 등록비, 관세, 도로세 등 따로 부가되는 비용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중형차를 모는 데는 대략 1억을 상회하는 비용을 부담해야한다. 차의 소유를 고비용화 함으로써 자가용 소유를 억제하는 대신 대중교통수단의 이용을 장려하는 것이다. 또한 고속도로 사용료(toll fee)의 지불 시스템을 전자화시켜 교통체증을 줄이고 있다. 모든 차량은 스마트 카드를 삽입한 기계를 부착해야 하는데 자동차가 정비탑을 지날 때마다 자동으로 카드에서 비용이 차불 된다. 이와 함께 도로 사용료를 러시아워(rush hour)에는 비싸게 책정하는 것과 러시아워에 중앙 상업지구에 들어오는 차량에게 요금을 매기는 것 또한 교통체증 완화에 일조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싱가포르의 고속도로는 대체로 한산하여 빠른 교통흐름이 가능하고 러시아워에도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적은 정체현상을 보인다. 또한 이렇게 조절되는 차량의 대수는 싱가포르의 도시 녹화 환경 정책의 목표와도 일치하고 있어 공기 오염을 줄이고 깨끗한 싱가포르를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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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정치 또한 매우 독특하다. 자본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외국으로부터 공산주의라고 비판을 받은 것은 리콴유가 수상이 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40년이 넘는 일당 독재체제이다. 일당독재가 가능하게 했던 많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섬나라 생존의 절박성”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위협이 존재하고, 천연 자원 하나 없는 조그만 땅덩이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싱가포르가 항상 당면했던 문제였다. 국민들도 그 절박성을 알기에 대내외적 사회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져다준 인민 행동당에 반대하지 않았고, 이 점이 인민행동당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으로 꼽힌다. 다른 이유로는 적은 인구수를 꼽는다. 절대적인 인구수가 적고 이미 많은 사람이 인민행동당이거나 당의 지지자여서 인민행동당에 적극적으로 힘있게 반대할 수 있을만한 규모의 당이 형성되지 않는다. 또한 소수의 선거구에서 인민행동당이 선출되지 않았을 경우 그 지역구를 공공 주택 사업 등의 투자 대상 지역에서 제외시키기는 등의 보복이 가하여 선뜻 반대 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마지막 이유는 중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의 대부분이 인민행동당과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는 것이다. 보통 정치혁명은 부르조아 계급에대한 프롤레타리에 계급의 반대가 기초가 된다. 그러나 이 나라의 현재 모습은 대다수의 국민이 부르조아에 속하고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선거권이나 주권이 없는 인도네시아, 말레이, 인도계의 외국인 노동자들이기에 반란의 씨를 정책적으로 없앤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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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라왔던 나에게 일상 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싱가포르의 국가 정책을 비롯한 사회의 모습은 많은 면에서 큰 충격이었다. 고등학교 윤리책에서 보았던 유가, 법가 사상,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마치 싱가포르의 정치에 녹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기를 때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타이르고, 잘못할 때는 매를 가하는 듯 했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지도자가 고도의 지적 사고능력을 지닌 철인인 듯 느껴졌다. 그러나 싱가포르만의 자부심이 실행할 수 있었던 과감한 정책의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유에 많은 제약을 가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싱가포르의 정책들에 비판들도 많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안목이 있는 지도자들의 리더십으로 인해 단기간에 비교적 균형 있는 발전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미 발전된 나라에서 살 수도 있었던 엘리트층이었지만 자신들의 삶의 안락보다는 자신이 속한 나라를 조금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자국에 대한 애착과, 소국이라는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변환 시킬 수 있었던 그들의 자부심이 국가 발전의 출발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