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강의실에서 페미니즘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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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책을 들고 강의실에 들어가는 모습

20대 청년에게 ‘젠더갈등’은 더는 낯설지 않은 단어다. 정치권과 언론은 앞다퉈 젠더갈등을 호출하고,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선 피로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쟁이 반복된다.

그러나 갈등이 계속되는 사회와 달리, 일상은 잠잠해 보인다. 사회학자 천선영은 『어쩌다 서로에게 괴물이 되었을까?』에서 ‘젠더와 페미니즘 이야기는 종교나 정치 이야기처럼 삼가야 할 어떤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말한다.

갈등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20대는 이토록 첨예해진 젠더 이슈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일상에서 젠더 이슈를 놓고 대화를 나눠본 경험은 얼마나 될까. 배움과 토론이 이뤄지는 서울대에선 어떻게 젠더를 말하고 있을지, 여성학 강의실의 풍경을 들여다봤다.

대화의 조건을 실험하는 공간

현우(가명) 씨는 페미니즘 리부트가 한창이던 2017년 군 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뉴스에서 젠더갈등이 보도되고, 소셜미디어에선 여러 의견이 각축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막상 친구들과는 젠더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깊게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고 현우 씨는 말한다.

일상에서 젠더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제대로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서로 입장을 확인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천선영은 “너 페미야?” 같은 물음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담긴 사상 검증 질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젠더 이슈에 관심이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 말보다 침묵을 택하기 쉽다. 현우 씨가 여성학 강의를 수강하기로 결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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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은 성차별적 구조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고민하는 학문이다. 여성학 강의는 대개 발표와 토론을 포함한다. 수업 전반부에서 교수자가 이론을 강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나누는 식이다. ‘섹슈얼리티와 성평등’ 강의를 담당하는 김수아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수업에서 다룬 개념을 소화하는 걸 토론의 일차 목표로 둔다. 섹슈얼리티, 친밀성, 재생산권, 성폭력, 성적 대상화 등의 개념을 토론을 통해 정리하고, 이를 일상과 연결짓는 게 최종 목표다. 김 교수는 “현재 논쟁이 되는 이슈는 토론 내용에 꼭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해당 사안에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이가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성학 강의실엔 ‘토론의 원칙’이 있다. 격렬한 입장 차이가 있는 사안을 다루는 만큼, 자칫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7년째 ‘젠더와 법’ 강의를 맡고 있는 장다혜 강사(법학전문대학원)는 ‘토론 중 타인에게 모욕적인 표현을 할 경우 문제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발언할 때마다 이름과 학과를 밝히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익명 뒤에 숨지 말고 함께 강의를 듣는 이들에게 기본적 예의를 갖추란 것이다. 서현(가명) 씨가 들은 다른 여성학 수업의 교수자도 첫 강의부터 ‘혐오 발언이 나오면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활한 토론을 위해선 수강생들이 최소한의 전제를 공유해야 한다. 장다혜 강사는 “페미니즘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강의는 페미니즘의 근간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적 구조에 대항하는 가치로 ‘평등’을 제시한다. 장 강사에 따르면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평등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인해 누가 어떤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모두를 기계적으로 똑같이 대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상황을 살펴 실제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자는 뜻이다.

토론 중 교수자의 개입과 조율도 중요하다. ‘성과 사회’ 수업을 들은 승엽(정치외교 25) 씨는 “문제가 될 발언이 나오면 교수가 즉각 개입해 발언자가 놓친 부분을 짚었다”고 말했다. 발언 내용에 대한 개입만큼 발언 기회를 고루 배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장다혜 강사는 “다양한 목소리가 오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모두가 발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런 장치는 수강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교수님께서 수강생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학생들은 보통 자기 경험과 맞닿아 있는 토론 질문을 준비했어요.” 승엽 씨는 그 덕에 다른 강의에서 듣기 어려운 내밀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애하며 느낀 감정이나 성차별을 겪은 경험이 강의실에서 자연스럽게 오갔다. 서현 씨 역시 “평소 쉽게 꺼내지 못한 주제도 편히 얘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이해할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규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토론 경험이 쌓이며 정말 ‘이곳이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젠더와 법’을 수강한 도현(가명) 씨는 “강의실에선 정제된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논의가 싸움으로 번지는 걸 막으려고 일부러 부드러운 표현을 택한다는 것이다. 도현 씨가 느끼기에 이는 “자기 입장을 흐리는 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일부”에 가까웠다.

“제가 제일 안전하다고 느꼈던 공간이 여성학 강의실이었어요.” 승엽 씨에게 강의실은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란 걸 제일 쉽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교수자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 가는 여성학 강의실 풍경은 젠더 이슈를 일상에서 터놓고 이야기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대화의 불완전함

모두가 강의실에서 부담 없이 말을 꺼낼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배경지식과 관심도가 제각각인 교양 강의에선 ‘틀린’ 얘기를 할까 봐 발언을 주저하기 쉽다. 도현 씨는 배경지식이 부족한 것 같아 수업 중 토론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고 생각을 정리한 후 강의 게시판에 댓글을 다는 식이었어요.” 김수아 교수는 “자기 정체성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면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토론에 참여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다. 평소 수업 주제에 대해 고민한 적 없다면 말을 꺼내기 망설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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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의 어려움이 단지 지식의 격차에서만 오는 건 아니다. 많은 학생이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신이 공격받을까 두려워 발언을 주저한다. 승엽 씨는 “페미니즘에 동의할 수 없다는 다른 수강생의 발언을 들었을 때, 내 의견을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우려해 쉽게 입을 떼지 못한 것이다.

*백래시(backlash): 사회적 변화가 기존의 지위나 권리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되는 반발 현상

때때로 논쟁이 과열돼 쟁점 파악이 어려워지는 문제도 생긴다. 장다혜 강사는 “대화가 격렬해지는 순간 이슈의 본질이 흐려지기 쉽다”고 설명한다. ‘젠더와 법’ 수업에선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용 화장실 이용을 두고 논쟁이 일어난 적이 있다. 일각에선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전용공간을 이용하면 ‘생물학적 여성’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이유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지만, 성별에 관계 없이 누구나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성중립 공간을 확대하는 대안도 함께 제시한다. 그럼에도 합의는 쉽지 않은데, 이는 결국 문제의 핵심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차별은 안 된다’는 주장과 ‘여성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맞서는 상황처럼 보인다. 장다혜 강사는 이런 경우일수록 “쟁점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겉으론 대립되는 가치의 충돌처럼 보이지만, 사실 핵심은 두 입장이 ‘여성이 누구인가’를 다르게 규정한다는 데 있다. 한쪽은 트랜스젠더 여성도 여성에 포함해야 한다고 보고, 다른 한쪽은 ‘태어날 때부터 여성인 사람’이 여성이라고 본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논쟁은 헛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 강사는 “누구를 여성으로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어느 관점에서 볼 것인지에 따라 논쟁의 방향이 확 달라진다.

장다혜 강사는 “한 번 격렬한 의견 충돌에 휘말리면 다음 시간부터 침묵하는 학생들도 있다”며, 관점을 전환하는 질문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김수아 교수 역시 수강생이 강의 중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도록 한 사안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음을 당부한다. 준현(가명) 씨는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기보단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돼 부담이 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때로는 토론의 부담을 낮추려는 노력이 논의를 제한하기도 한다. 승엽 씨는 “서로 너무 조심하니까 토론이 아예 안 된다고 느꼈다”며 “보다 급진적이거나 깊은 이야기로 나아가지 못해 아쉬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여성학 강의실에서의 경험은 학생들에게 의미를 남겼다. 도현 씨는 “이전에는 군가산점제 폐지에 부정적이었는데, 강의를 듣고 이것을 성별 문제가 아닌 군필자와 미필자 간 문제로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남성이 손해를 보고 여성은 이득을 보는 단순한 구도를 넘어, 남성 사이에서도 병역 이행 여부에 따라 군가산점제에 대한 의견이 갈릴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장애가 있거나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병역이 면제되는 남성은 병역 제도에 대해 군대를 가는 남성과 전혀 다른 입장을 지닌다. 생각이 바뀌자 행동도 변했다. 현우 씨는 강의를 들은 후, “예전엔 대화를 피했던 민감한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하게 됐다”고 전했다.

일상에서 젠더를 말하기까지

강의실에서의 경험이 언제나 일상으로 확장되는 건 아니다. 강의실에선 토론에 앞서 페미니즘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지만 밖에선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현우 씨는 사람마다 사안을 바라보는 전제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러 차례 토론을 거쳐서 합의에 이르면 좋겠지만, 일상에선 대부분 친목을 목적으로 만나니까요. 보통 의견 차이를 확인하면 이후 대화에서 관련 주제를 피하는 식이에요.”

무엇보다 강의실 밖에선 발언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자신의 말에 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떤 말이 갈등을 촉발할지 가늠할 수 없다. 평소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소개하는 민선(서양사 20) 씨도 학교 밖에선 의견을 최대한 에둘러 표현하게 된다. 졸업을 앞두고 인턴을 하고 있는 민선 씨는 “사회에 나오니까 차원이 다른 압박감을 느낀다”며 “젠더 이슈를 꺼내면 자꾸 싸움으로 번지니까, 그게 무서운 사람도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온라인에서 반복되는 극심한 젠더갈등은 ‘젠더 이슈를 대화 주제로 꺼내면 충돌할 것’이라는 예측을 강화한다. 김수아 교수는 “트랜스젠더 관련 논의가 나오면 학생들이 온라인에서 접한 잘못된 정보를 꺼내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현실에서 오해를 키운다.

이러한 오해는 종종 현실에서의 건강한 대화로 해소된다. 준현 씨는 강의를 듣기 전까지 젠더갈등을 논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매체에서 언급되는 갈등이 실제보다 과장된 것도 있겠지만, 극단적인 행동만 보이니 피하곤 했었죠.” 그러나 여성학 강의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예상과 달랐다. 민선 씨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변화했다. 민선 씨는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해 보면, ‘사람마다 젠더 이슈에 대한 생각이 다르구나’하고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천선영은 젠더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솔직하게, 정확하게, 정중하게’를 꼽는다.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자기 주장을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때 반드시 숫자나 통계를 제시하진 않더라도, 되도록이면 ‘~한 것 같습니다’ 같은 모호한 표현 대신 ‘~합니다’처럼 확실한 표현을 사용하길 권한다. 무엇보다 ‘상대를 나처럼 존엄한 존재’로 대해야 한다. 이 세 요소가 갖춰져야 원활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민선 씨는 일상에서 젠더 이슈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론보단 경험으로 물꼬를 트는 방식을 택한다. “군 복무를 하며 현실의 여성혐오를 접한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더라고요. 네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다면서요.” 어떤 대화는 시간이 훌쩍 지난 뒤 이어지기도 한다. 장다혜 강사는 “모든 관계에서 젠더 이슈에 관해 말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 안 통할 것 같다는 이유로 대화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당부한다.

‘젠더갈등’을 넘어서려면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일상의 대화와 토론이 모두 완벽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각자가 살아온 환경을 살피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이슈를 일상에서 논하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면, 이제 그 침묵을 어떻게 깰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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