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호에서는 책 세 권과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날개 환상통』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2019.
김선우 기자(studysunwoo@snu.ac.kr)

이 시집은 새가 나에게 속한 줄 알았더니 / 내가 새에게 속한 것을 알게 되는 순서 / 그 순서의
뒤늦은 기록 ― 「새의 시집」
새와 ‘나’ 그리고 시. 김혜순에게 이 세 단어는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곧 새로 은유되고, 내가 쓰는 시는 새의 목소리를 번역한 것이며, 시를 쓰는 그 행위조차 새하기(bird-ing)다. 이 시집은 5부로 구성된 시 72편에서 계속해서 새를 부르고, 새의 생태와 고통을 활자로 쏟아내고, 죽음과 작별을 노래한다.
환상통은 실재하지 않는 부위에서 감각이 느껴지는 심리적 상태다. 그 부위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인위적으로 절단됐을 수도 있다. 인간에게 ‘날개 환상통’은 존재한 적 없던 부위에 대한 통증이겠지만, 주어를 새로 바꾼다면 가지고 있던 날개가 사라진 상황이 될 테다. 인간이면서 동시에 새인 ‘나’와 당신, 그리고 여성의 날개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고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 눈에 띈다면, 이 시집을 찾아 읽어보면 어떨까. 나는 이제야 느낀다 / 새가 날지 않으면 세상이 거울처럼 납작해진다는 것 / 그리하여 나의 새는 잠들어서도 날아간다는 것 ― 「오감도 31」
《국보》
이상일, 2025.
김수환 기자(kimsuhwan0831@gmail.com)

‘키쿠오’는 야쿠자 두목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부모를 잃고 가부키 명문가에 입양된다. 그곳엔 가문의 후계자로 낙점된 외아들 ‘슌스케’가 있다. 키쿠오는 재능과 노력으로 슌스케를 누르고 가문의 3대 당주가 되지만, 혈통주의가 지배하는 가부키 세계에서 그는 남의 몫을 뺏은 ‘가짜’에 불과하다.
남성만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일본 전통극 가부키에서 키쿠오는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 배우인 ‘온나가타’다. 속에 흐르는 피도 가짜, 무대 위 겉모습도 가짜인 셈이다. 예쁘장한 키쿠오에게 음심을 품었던 취객은, 기모노 안에 숨겨진 야쿠자 문신을 보고선 경멸조로 말한다. “뭐야, 가짜잖아?”
이상일 감독은 재일교포 3세다. 정체성을 의심받고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재일교포가 야쿠자에 가담하는 일이 많았음을 떠올리면 영화의 설정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그 이방인의 영화가 일본에서 1,20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으며 역대 실사 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키쿠오가 그랬듯, 이방인의 핏줄을 달고 ‘국보’가 됐다. 이들에게 진짜와 가짜를 따지는 건 무용하다. 영화 안팎의 삶들이 맞물리는 짜릿한 순간이다.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하미나, 물결점, 2025.
송수림 기자 songsurim@snu.ac.kr

아주 오랫동안 하미나 작가를 좋아해 왔다. 뭐가 그리 좋냐고 물으면, 무엇보다 앎에 대한 그의 태도를 좋아한다고 답한다. 하미나는 매끄럽고 보편적인 지식을 함부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 지식은 늘 뭔가를 조금씩 빼놓고 말하는 가짜 이야기여서다. 그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 불충분한 지식에 함부로 자신을 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 새로운 곳으로 간다.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더는 그의 앎이 그의 삶을 배반하지 않을 때까지.
하미나의 힘은 그가 자신의 질문을 스스로 찾는다는 데서 온다. 우리는 많은 경우 애초에 잘못 짜인 질문에 답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어떤 진실은 한 번도 질문된 적이 없어 보이지 않는다. 하미나는 주어진 질문에 억지로 답하는 대신, 자신의 질문을 찾기로 한다. 무엇이 진실인가? 이것은 내 질문이 아니다. 어째서 어떤 진실은 그토록 진실된 느낌을 주는가? 이것이 내 질문이다.
이 책에는 서로 다른 주제와 형식, 화자와 문체를 가진 몇십 편의 글이 모여있다. 전혀 질서 잡히지 않은, 혼란과 균열을 그대로 포함하는 이야기를 마주한다. 이 혼란 자체가 그가 끝내 삶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증거 같다.
『먼저 온 미래』
장강명, 동아시아, 2025.
한정원 기자(hangrdne@snu.ac.kr)

2025년, 인공지능 앞에 선 우리의 고민은 복합적이다. 기술 혁신에 대한 희망, 인간이 대체될지 모른다는 걱정, 상상보다 빠른 변화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 시대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호기, 창작물을 무단 사용하는 빅테크 기업에 대한 분노와 이들 기업의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까지···. 사람들은 편리함부터 외로움까지 여러 이유로 인공지능 챗봇에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공지능 기술을 쓰는 환경에 살고 있다. 이것이 단지 시작일 뿐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계속해서 뛰어넘는다면, 이 변화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섣불리 미래를 예단하는 대신 우리가 걱정하거나 기대하는 미래가 이미 현재가 된 바둑계 현장을 찾는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바둑계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겪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압도한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바둑 교육과 훈련 방식, 세계 바둑계 지형, 프로기사란 직업의 의미, 나아가 바둑의 가치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저자는 성실한 취재를 기반으로 바둑계에서 벌어진 급진적 변화에 미래 사회를 비춰본다. 인공지능 시대를 이해하는 그의 비판적 사고 실험을 따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