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80주년을 맞은 해 8월에 ‘오니’ 잡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봐도 될까? 2025년 8월 22일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귀멸의 칼날》)이 개봉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귀멸의 칼날》은 누적 관객 560만 명을 돌파하며 《너의 이름은》을 제치고 역대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국주의 일본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단 이유로 흥행 성적만큼이나 거센 우익 논란에 휘말렸다. 이 파장은 광복 80주년이란 시기와 맞물려 더 폭발적이었다. 단순한 문화 소비라는 옹호론과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론이 팽팽히 맞섰다. 《귀멸의 칼날》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뿌리 깊게 이어진 일본 작품의 ‘불편한 소비’를 톺아봤다.
귀멸의 칼날, 도대체 뭐길래
《귀멸의 칼날》은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일본 다이쇼 시대(1912년~1926년)를 배경으로, ‘혈귀(血鬼)’로 변한 여동생 ‘네즈코’를 구하기 위해 싸우는 소년 ‘탄지로’의 여정을 그렸다. 정교한 작화와 가족애를 중심으로 한 서사로 《귀멸의 칼날》은 전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특히 이번 극장판은 화려한 작화와 생동감 있는 연출로 큰 호응을 얻었고, 팬들 사이에선 ‘꼭 4D로 봐야 한다’는 추천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방영된 초기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주인공 탄지로의 귀걸이에 욱일기 문양이 있는 점과 일본이 제국주의 정책을 펴던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점 때문이다. 욱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군이 사용한 군기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국가에선 일본이 자행한 전쟁범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귀멸의 칼날》의 국내 개봉 시점이 광복절과 가까웠던 탓에 논란은 더욱 커졌다. 실제로 8월 9일 엘지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야구 경기에선 탄지로와 네즈코 캐릭터의 시구가 예정됐다. 그러나 ‘광복절을 앞둔 시점에 부적절한 행사’라는 비판 여론에 부딪혀 구단 측 사과와 함께 행사가 취소됐다.
반복되는 일본 콘텐츠 우익 논란

8월 20일, 원작 만화책의 한 대목이 ‘혐한’ 요소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 게시물이 엑스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18권에 나온 ‘약한 놈은 정정당당하게 겨루지 않고 우물에 독을 탄다. 추악하다’는 대사가 문제로 지목됐다. 해당 게시물은 이 대사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거짓 소문이 퍼지면서 일어난 조선인 학살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본 장면 상단 캐릭터의 얼굴 형상이 한반도의 윤곽과 유사하단 의혹도 제기됐다.
일본 콘텐츠와 그 제작자를 둘러싼 우익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만화 『진격의 거인』 작가 이시야마 하지메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셜미디어 계정엔 ‘일본의 통치로 인구와 수명이 2배로 늘어난 조선인은 ‘민족 정화’를 당한 유대인과 상황이 다르다’며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글이 올라왔다. 만화 『슬램덩크』에도 욱일기 문양이 배경에 수차례 나온다.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자위대를 찬양하는 발언을 인용한 전력도 덩달아 논란이 됐다.
제작사는 한국 소비자들의 여론을 의식한 듯, 개봉할 때부터 한국 개봉판의 귀걸이 문양을 일부 수정했다. 욱일기의 특징인 빛살을 다른 디자인으로 교체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 개봉판에는 욱일기 문양이 그대로 등장한다.
일본 정부 산하기관인 방위연구소는 욱일기를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는 건 오해라고 주장한다. 욱일기는 메이지 시대 이전부터 어획용 깃발, 축하 장식, 전통 예술 등에서 일출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또한 욱일기가 국제법적으로 금지된 적이 없단 점을 들어 한국 등의 비판을 ‘감정적’이라고 일축한다. 나치 문양을 사용하면 최대 징역 7년까지 부과하는 독일과는 대조적이다.


2030 “문화는 문화, 역사는 역사”
잇따른 우익·혐한 논란에도 《귀멸의 칼날》은 큰 흥행을 거뒀다. 주 소비층은 2030 청년이었다. CGV가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귀멸의 칼날》 연령별 예매 분포는 20대가 40%, 30대가 26%였다. 청년층에게 역사적 논란은 ‘보이콧’으로 직결되지 않았다.
《귀멸의 칼날》을 관람한 A씨(22)는 “광복절 직전이라 기분이 묘했다”면서도, “내가 역사적 문제에 관심이 없어서 영화를 소비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논란을 인지해도 작품을 좋아하는 건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는단 의미다. 또 “영화 내의 제국주의적 요소에 대한 비판적 의견에는 완전히 동의하지만, 좋아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매국노’라는 식의 비판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그는 ‘젊은 세대가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는 식의 비판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전부 국가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건 지나친 민족주의”라고 주장했다.
관람객 B씨(21)는 다른 각도로 접근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욱일기가 자꾸 나오는 건 분명 문제지만, 특정 감독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 주류 정치에서 우익 세력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사회 전반의 문제로 봐야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불매한다고 해서 일본 사회에 자리 잡은 우익적 관점을 뿌리 뽑을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청년 세대는 비교적 일본 문화 소비에 열려있는 편이다. 이들은 기성 세대보다 과거사 문제로부터 시간적·감정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그만큼 일본 문화에 보다 우호적이다. 최은미·함건희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인의 일본 인식(2014~2024)」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일본은 자신감과 당당함 속 함께하는 보통의 이웃 국가’며 ‘역사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이 바라본다’고 설명한다.
특히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친숙함이 큰 영향을 미쳤다. 1998년 대중문화 개방 이후 일본 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지금의 20대는 기성 세대와 달리 유년기부터 일본 문화를 자연스럽게 향유했다. 과거사 문제가 불거져도 일본 문화 자체를 거부하는 움직임은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우리의 칼날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일본 문화에 호의적인 분위기에도 금기는 남아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광복절 직전에 하는 《귀멸의 칼날》 시구 행사나 국내 사이트에서 버젓이 거래되는 ‘욱일기 귀걸이’ 굿즈는 용납하기 어려워한다. 어떤 지점은 단순한 ‘개인적 소비’로 넘길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일본 문화 소비가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역사적 관계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욱일기가 문화적 전통으로 소비될지언정, 한국에선 과거의 집단적 상처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우리는 일본의 애니메이션·패션·음악을 즐기면서도 동시에 ‘과거 가해자의 문화’를 수용하는 복잡다단한 위치에 놓인다.
청년 세대 역시 이런 모순적 인식을 공유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2030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5.3%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2030 세대는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를 일상적으로 소비하지만, 한편으론 미해결된 역사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동북아역사재단, 「2030세대가 생각하는 한일·한중 관계와 역사문제」, 2024.
청년 세대는 무분별한 소비도, 무조건적인 반일도 아닌 교차로 위에 서 있다. 《귀멸의 칼날》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이 아니지만, 그것을 보는 행위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B씨는 “불매보단 작품을 본 사람들이 작품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게 더 유의미하다”고 말한다. 콘텐츠를 소비하되, 그를 둘러싼 논란을 비판적으로 감상할 권리와 역량이 관람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일본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역사적 상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있다. 욱일기 문양의 귀걸이가 나오는 영화를 본다고 관객 개인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관객 개인을 비롯해 공동체 전체가 그러한 콘텐츠 내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질문하는 일은 여전히 필요하다.
《귀멸의 칼날》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일본 콘텐츠 소비와 역사 인식 사이에서 복잡한 조율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논란은 단순히 ‘일본 작품 불매’나 ‘역사 왜곡 논란’이 아니다. 한국 시민들이 성숙한 문화 소비자로서 어떤 감수성을 갖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문화 콘텐츠의 국경이 점점 흐려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취향을 억압하기보다 그 취향을 둘러싼 맥락을 더 정교하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