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하고, 비상행동이 해체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무대가 설치되고 각양각색 깃발이 나부끼던 광화문엔 언제 그랬냐는 듯 차들이 쌩쌩 달립니다. 응원봉을 들고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아주 예전 같습니다.
이쯤에서 〈서울대저널〉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지난겨울 광장의 불씨는 어디로 갔나요. 우리는 12.3 내란 이전보다 나아진 세상에서 살고 있나요. 광장을 달궜던 이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두 손 모아 염원하던 것들이 이뤄졌나요. 오늘 당신의 하루는 안녕한가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 이들과 답을 찾아가려 합니다. 기고는 하반기에 발행되는 세 호에 나눠 수록됩니다.

이재현(서양사 18)
비정규직없는서울대만들기공동행동(비서공)에서 노동자-학생 연대 활동을 해왔다. 우리의 공동체에서 사라진 삶(들)을 온전히 애도하고자 지금-여기까지 왔다. 우연한 마주침이 오가는 공간과 서로를 바꿔내는 관계의 힘을 믿기에 스스로 활동가라고 생각한다.
※ 비비언 고닉,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 사로잡힌 영혼들의 이야기』(성원 옮김, 오월의 봄, 2024)에서 제목을 따왔다. ‘학생운동’이라는 명칭이 지닌 다의성과 불명확성, 그리고 전제된 기득권성을 비롯한 위계를 주지하면서도, 그것을 정의하는 것이 글의 목적은 아니기에 통상적인 의미로 사용하며 따옴표 안에 넣었다.
위치성과 자기 서사를 짚어보며
흔히 ‘학생운동’이라 불리는 영역에 머무르다 이제 곧 ‘학생’이 아니게 될 사람으로서, 겨울 광장을 경험한 건 어쩌면 행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광장 이후’를 살아내는 건 여전히 버겁다. 지금 광장을 돌이켜 보면, 그 사이에 있었던 ― 개인적 층위와 정치적 층위가 결코 구분되지 않는 ― 다양한 상실― 외상이거나 혹은 내상이거나 ―을 떠올리게 된다. 그걸 떠올릴 때면 한 개인으로서 내가 경험한 ‘학생운동’의 궤적을 전부 회상하게 된다. 하나의 광장을 향한 상상된 열광에서 시작해, 또 한 번의 광장 이후로 마무리되는 시간의 흐름을.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비비언 고닉의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는 미국 공산주의 운동을 거쳐간 수많은 이들의 자기서사를 파고들어 보여준다. 한때 거대한 사회운동의 동력이었지만 그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이야기들을, 때로는 자기연민에 빠질 위험을 담대하게 감수하면서까지 기록한다. 그 목적은 낯설어져 버린 경험들을 타자화 없이 이해하는 것, 급진적 변화의 물결과 사랑에 빠진 관계의 황홀함과 위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 그리고 새로운 물결과 로맨스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권하는 데 있다.
광장 이후를 생각하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새롭다면 새롭고 낡았다면 낡은 시간들에 대한 자기서사를 풀어보고 싶었다. 그런 자기서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스치지만, 어쨌든 서사란 애초에 일면적이면서 보편적이고, 끝내 가닿지 못할 의미가 미끄러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의미를 붙들어 매려는 시도 아닐까. 그렇기에 이 글에선 아주 제한적인 의미만을 지닌다는, 경험을 경유한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참칭할지 모른다는 위험을 안고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서사를 풀어놓으련다. 오래 머물렀지만 종종 흔들리는, 과거와 현재의 움직임을 잇고 싶어하지만 종종 엇갈리는, 무엇보다 스스로 지닌 어떤 기득권성(들)이 안이함을 끊임없이 부가하는 위치성을 주지하면서.
그러니 어떻게 ‘학생운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개인적으로 참여하진 않았던 어느 ‘학생운동’ 단위의 대안적 새맞이 프로그램 이름에 따르면 난 2018년 ‘이상한 대학의 새내기’로 입학했다. 지금은 세상이 아니라 내가 이상하다고, 그래서 때로는 자신이 자랑스럽고 때로는 밉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때는 대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입학하기 한 해 전 ‘촛불혁명’이란 단어가 거창하게 선언됐는데, 박근혜 탄핵이 결론 나고 시끌벅적한 불꽃놀이가 열린 바로 그날 서울대가 학생들에게 물대포를 쏜 일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마르크스를 비롯해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며 대학에서의 활동에 약간의 환상과 어설픈 자만을 품고 입학한 새내기였으니 더욱 그랬으리라.
그러니 어떻게 ‘학생운동’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비민주적 시흥캠퍼스를 강행하고 학생들이 점거 중인 본부를 강제로 침탈한 대학을 규탄하고, 대학 기업화의 문제와 대안으로서의 대학 공공성을 말하고, 대학 민주주의와 노동권과 성평등이 있는 평등한 공동체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혹은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들과의 잦은 뒤풀이 자리와 민중가요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요구와 지향을 뒷받침하는 언어들, 다양한 이론적 자원에서 끌어온 그 언어들에 대해.
그렇다고 내가 늘 책임 있는 학생 활동가였는가 하면, 그렇지 못했던 시기가 길었다. 진보정당에서, 과반과 단과대 학생회에서, 홍콩 항쟁을 비롯한 국제 연대 현장에서 다양한 것을 시도했다. 하지만 너무 쉽게 거창한 목표를 말했고, 정작 이를 위한 일상의 노력엔 서투르거나 게을렀다. 이런저런 투쟁 현장에 거창한 자의식을 갖고 결합하는 게 ‘학생운동’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시기, 지금 내가 중요시하는 연대의 윤리에 한참 미달하는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지곤 한다. 그렇다고 그 기억을 회피해선 안 되겠지만.
조금 더 책임 있게 무언가 실제로 변화를 만드는 활동에 뜻을 가진 계기는, 그리고 그것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다짐한 순간은 뒤늦게 찾아왔다. 충격 속에서 투쟁을 통해 애도해야 했던 2021년 여름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그리고 곧이어 이어졌던 가을의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노동자 파업**이었다. 다만 노동자-학생 연대 및 우리 공동체에서의 책임에 관한 이야기는 이 글에선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2021년 6월 27일, 관악학생생활관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 이 모 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고인은 사망 전 고강도 노동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자 주)
**2021년 10월 25일,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은 ▲임금 체계 개편 ▲정액 급식비 신설 ▲명절휴가비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학교 측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묵살하고 교섭에 불성실하게 응한 것이 파업의 발단이었다. (편집자 주)
때로는 돌아볼 수 없었던 지대들에 대해
여하튼 ‘학생운동’의 세계는 그간 보지 못했던 존재들과 나를 연결했고, 그 연결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이끌었다. 그것은 한 개인의 고독한 결단으로 ‘대의’에 뛰어드는 식의 오만한 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일련의 황홀한 경험과 관계 속에서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며 주체화되는 과정에 훨씬 가까웠다. 어설프고 무책임했던 처음의 열광에서 조금씩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으로 나아간 건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감히 말하자면, ‘학생운동’에 대한 사랑이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었다. 아마 그건 ‘학생운동’ 없이는 경험하지 못했을 성장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열정과 관계 속에서는 쉽게 간파되지 않는 지점도 있다. 때로는 관계 내에서 교조적인 신념이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하고, 고립이나 소진, 혹은 자기 착취를 낳기도 한다. 책임감과 그것을 분별하는 일은 종종 매우 어렵다. 우리가 무언가를 돌보고 있다고 믿거나 실제로 돌보고 있을 때, 돌봄이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숭고한 실천이 아니라는 양면성에 기반해 상호적인 돌봄과 자기 돌봄을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조금은 ‘올드스쿨 운동권’의 세계를 가까이하며 주체화를 경험한 입장에서, 내가 사랑해 온 언어와 이론적 전제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이론과 언어는 단지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실천과의 관계 속에서만, 때로는 우리가 ‘운동’과 맺는 일상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물론 사회운동과 ‘학생운동’의 위기를 둘러싼 오랜 정치적 토론에서 과거의 언어들은 끊임없이 쟁점으로 다뤄졌고, 비가시화된 목소리에 자리를 내주려는 시도에 직면하며 전화의 계기를 맞아왔다. 그러나 안전한 공동체와 평등한 공론장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주의적인 ‘시민 윤리’를 확립하는 것 이상으로 ― 물론 그런 윤리를 세우는 것이 그 자체도 너무나 중요하며 여전히 미달의 과제지만 ― 그 심대함을 우리가, 혹은 내가 이해하고 있었을까? 이런저런 논의를 조합해 덧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신체를 통해 이해하고 있었을까?
이를테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직시한 알튀세르가 통렬하게 지적했듯*, 사회운동이 스스로 지속하는 데 필수적인 장치와 이데올로기가 재생산하는 다양한 위계에 대해. 혹은 다양한 신체들의 경험에 기반한 지식의 중요성, 그리고 다양한 신체가 정치적 해방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의 중요성에 대해서**. 내가 정세에 개입하고자 수행한 말과 글이 지금 돌아보면 타성(惰性)에 빠져 관성을 관료적으로 되풀이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아마 내가 말하고자 한 바가 신체를 통해 살아있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이를테면 한국에선 루이 알튀세르의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김경민 옮김, 백의, 1993.) 또는 『역사적 맑스주의』(서관모 옮김, 중원문화, 1993.) 등에 번역 수록된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나 「오늘날의 맑스주의」와 같은 텍스트에서.
**주디스 버틀러,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집회의 수행성 이론을 위한 노트』, 김응산·양효실 옮김, 오월의 봄, 2024.
때로는 조직과 실무의 ‘효율성’에 대한 놓기 힘든 강박이 자발성으로 위장한 자기 소진을 야기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정상성 비판에 내포된 앎을 우리가 충분히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가정해 버리면, ‘더 나은 이론을 더 잘 알았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취약한 자신에게 책임을 묻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정상성’의 함정으로 되돌아갈 뿐이다. 차라리 ‘학생운동’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드러나는 취약성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돌보는 관계, 이를테면 동료나 동지와의 관계가 지닌 중요성을 더 깊이 고민하는 편이 나으리라. 때로는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논쟁의 격렬함이 사소해 보이는 이유로 우리를 흔들고, 자주 상처를 남기곤 하지만 말이다.
유한하기에 영속적인 광장, 상실을 안고 다시 만날 우리
겨울 광장에서 자주 생각했다. ‘학생운동’ 전반에 관해 곱씹어 왔던 것들을. 광장이라는 일시적 해방의 공간은 우리가 마주한 난점을 돌파하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난점을 고착화하고 포장해 못 박아 버리기도 한다. 차별과 배제를 겪던 주체성이 자신을 내보이는 깃발들을 볼 때 느껴지는 벅참이란. 동시에 그 ‘다양성’을 또 하나의 구경거리로 소비하며 통속적인 ‘정상성’으로 포섭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란. 운동이 경유해 온 역사성을 함의하는 하나의 깃발과 함께 대중운동의 파도 한가운데 있을 때 느껴지는 벅참이란. 동일하게 경험될 승리를 섣불리 선언하는 축제에 온전히 속할 수 없음을 예감할 때 느껴지는 쓸쓸함이란. 그리고 그 경험이 때로 아플지라도, 그 경험이 유한하단 것 자체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이란.
그러니 어떻게 광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동시에 그 사랑에서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당장은 들뜬 열정과 낙관으로 우울을 미뤄둘 수 있었지만.
이른바 ‘좌파 멜랑콜리’ 혹은 ‘좌파의 우울’*을 다루는 이러저러한 논의들, 특히 한국에서의 맥락을 다루는 논의들 속에서, 진태원은 데리다의 논의를 빌려 ‘정상적’인 애도와 그것의 실패로서 우울을 대립시키는 이분법을 해체한다.** 즉 상실에 대응해 애도를 완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패를 병리화하는 구도야말로, 개인이 타자를 영구히 끊어내고 독립적인 주체로 설 수 있다는 나르시시즘적인 착각에 기반해 있다는 것이다. 애도가 완결될 수 없고 우리가 상실의 기억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우린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승인하는 동시에 그 고통을 병리화하는 섣부른 구도를 거부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한한 경험이 남긴 상처와, 혹은 그 경험의 유한성에서 비롯한 상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나.
*좌파 멜랑콜리, 좌파의 우울로 번역되는 ‘leftist melancholy’는 좌파가 겪어온 패배와 상실의 경험이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채 과거의 혁명적 순간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초기 논의에서는 이를 현재의 정치적 실천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비판했으나, 이후 멜랑콜리를 통해 혁명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논의들도 등장하며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편집자 주)
**진태원,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 비판 없는 시대의 철학』, 그린비, 2019.
물리적인 의미에서든 그렇지 않든, 광장은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단 점에서 유한하다. 동시에 광장은 영속적인데, 첫째로 광장이 끝난 자리에서 언제든 새로운 광장이 생겨날 수 있단 점에서 그렇다. 새롭게 생겨나는 광장이 어디에 있는지는 얼마나 많은 대중이 출현하는지, 그곳이 온라인인지 오프라인인지, 혹은 심지어 이불 안인지 이불 밖인지와도 무관하다. 다카시마 린이 이야기하듯 우리는 이불 속에서 봉기할 수 있고*, 생산성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국가폭력에 맞서 자리에 눕길 택한 중국의 ‘탕핑족(躺平族)’처럼 억압과 자기 착취를 거부함으로써 저항할 수 있다. 그런 우리 안에서, 우리 사이의 공간에서 언제든 광장이 열리고 있다. 둘째로 광장에서의 우연한 마주침이 우리에게 기입했거나 우리가 타자에게 기입한 흔적들은, 누군가의 신체를 이루는 일부가 된다는 점에서 영속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장은 이미 우리의 지속적인 일부다.
*다카시마 린, 『이불 속에서 봉기하라 –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저항법』, 이지수 옮김, 생각정원, 2023.
그렇기에 광장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동시에 언제든 다시 열릴 수 있고 이미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긍정하고 싶다. 우리가 일시적인 광장에서 느꼈고 앞으로도 느낄 쓸쓸함과 아픔을 애도하면서, 그것을 우리의 일부로 안고 살아가고 싶다. 알튀세르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에티엔 발리바르는 활동가를 ‘사라지는 매개자’로 명명한다. 유의미한 효과를 생산함으로써 사라지기 때문에 유의미한 주체라고, 그렇기에 이름과 위치를 바꾸며 나타나고 출현하길 반복하는 정치를 수행하라고 말한다.* 공간도, 그곳에 모인 우리도 흩어지고 사라지고 희미해지지만, 사라지는 그 순간 우리는 세계에, 서로와 우리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각인한다. 사라짐이란 그 흔적으로 인해 새로운 모습으로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날 것이란 약속, 이름과 모습이 달라도 서로를 느끼고 알아볼 것이란 약속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애도해 온 고통을 이야기하고, 이전보다 더 나은 광장과 ‘운동’을 만들 것이다. 때로는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고통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며, 다음번 마주침을 기약하며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공산주의의 질문들」, 『웹진인무브』, 장진범 옮김, 서교인문사회연구실, 2017. 10. 18. https://en-movement.net/84
다른 이름으로 다시 만날 녹두호프를, ‘학생운동’을 꿈꾸며
어느 차가운 가을날, 서울대 인근에서 대표적인, 아니 유일하기에 대표적인 ‘운동권 술집’ 녹두호프가 갑작스레 사라졌다. 광장이 열린 밤마다 뒷풀이를 하러 들러 붙여놓은 수많은 스티커와 피켓도, 벽에 걸린 팔레스타인 깃발도, 민중가요 악보집과 낡은 기타도, 벽지에 벽지를 덧대 천장까지 빼곡히 쌓인 낙서와 이름들도, 기록할 틈도 없이 텅 빈 콘크리트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학교에서 녹두호프 없는 ‘학생운동’을 상상해 본 적 없었기에 빈 공간 앞에서 펑펑 울었다. 하지만 어떤 공간에서 변화한 우리가 또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날 것이란 약속은 의심한 적 없다. 우리가 벽에 쓴 글자들, 곧 우리 자신이기도 한 그것들은 희미해지지 않았다. 녹두호프 없는 ‘학생운동’은 이어질 것이고, 녹두호프란 공간은 전혀 다른 이름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우린 그곳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오래도록 불러온 노래를 다시 부를 것이다.
그곳에서 여전히 ‘학생운동’이면서도 이전의 ‘학생운동’이 아닌, 이전의 무의식적 위계와 차별과 배제와 안이함과 한계를 짚고 변형하며 끈질기게 갈지자로 나아가는 어떤 ‘운동’과 사랑에 빠질 이들에게, 서로를 알아볼 동지로서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언젠가 끝나지만 다시 시작될, 상흔을 남기지만 그것과 함께 변화해 살아가게 만들 광장에, ‘학생운동’에, 투쟁의 언어와 몸짓들에 기꺼이 두려움 없이 매료되길, 그러나 언제나 서로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서로 함께 매료되길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