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여객기를 납치해서 110층짜리 건물에 들이받은 엽기적인 테러에 관해 개탄을 금할 수가 없겠다. 전 세계가 Live로 그 상황을 지켜봤고,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은 스펙타클의 장엄함(?)이 그곳에 있었다. 수천명의 인사사고를 낸 이번 테러는 앞서 말했 듯, 너무나도 리얼하게 타진된 방송의 덕을 톡톡히 보며 미국에게 새로운 적을 안겨주었다. 그래서일까? 테러 직후부터, 지금까지의 분위기는 “미국은 선, 테러리스트는 악”으로 몰고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테러자체는 응징되어야 한다. 무고한 희생을 대가로한 테러는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므로. 그러나 한 단계만 뒤로 가거나 한 단계만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의 폭이란 참으로 좁다는 걸 알게된다. 광고를 포기한 테러리스트 필자의 짧은 소견으론 말이다.. 보통 테러리스트는 테러직 후 자신의 범행 사실을 만천하에 광고하고 다니는데 이번 테러는 그것이 없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저지르고 나서 놀라 쫄아버린 걸까? 내 생각엔 보통 이만한 일이라면, 서로 자기가 했다고 우길만도 한데 말이다. 아직까지 이번 테러의 주범이 확실하지 않은 것을 보면, 미국내 극우세력이 저질렀다고 보는 것도 꽤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다시말하면, 이도저도 명쾌하게 보이지 않는 말도 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커다란 광고(?)는 그간 미국이 저지르던 테러에 상응하는 외교사다. 이미 수많은 언론들이 “전쟁보복”에 반대하는 이유를 그간 미국이 저지를 일들은 테러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거든다. 미국의 경제 테러와 양민학살, 미사일 무차별 폭격은 TV에서 중계될 만큼 리얼하지만 않았을 뿐, 이번 테러보다 더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번 익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여기까지 염두해 둘 정도로 똑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아무튼 상황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테러는 어디서 일어난 것인가? 테러 직후, 미 부시 대통령은 자국 국민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미국이 공격을 받은 이유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밝은 자유와 기회의 횃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빛을 가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이번 테러는 “(부시가 역설한) 세계에서 가장 밝은 자유국가”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자본이 누리는 패권의 최고 성지”에서 벌어진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자유를 수호하는 일등국가이기 때문에 테러를 당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본을 수호하는 일등국가이기 때문에 테러를 당했다고 봐야 옳다. 조금 더 나아가서, 이번 테러는 그냥 테러가 아니라 역테러이다. 다시말해, 그간 미국이 저지른 테러에 상응하는 일로 인해 되갚음을 받은 역테러라는 이야기다. 『말』지에 보도된 뉴욕의 한 고등학교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국 또한 테러범죄자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라크전 이후 수 년 동안 죄 없이 죽어가는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미국은 무어라 말할 것인가. 몇몇이 하면 테러고 국가가 하면 테러가 아니란 말인가. 미국이 각국에 저지르고 있는 경제 테러리즘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어설픈 휴머니즘 – 자유, 횃불, 의지, 수호 등의 감정적 단어들’만을 가지고 이번 상황에 대처하려 든다면, 모든 비난의 화살을 감수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행위의 판단기준은 또다시 자본으로 ‘환원’되는 것인가? 지금의 미국 경제는 전쟁으로 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미국이 정치와 경제의 패권국가가 된 것은 2차대전이 이후이고, 2차대전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 내의 정치전략으로 이미 전쟁은 수차례 이용되었으며, 냉전과 깡패국가의 등장은 팍스아메리카의 원초적 에너지다. 이번 사태의 핵심도 그것들과 별반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강력한 용의자’ 한명을 잡기 위해 이미 그들은 수백만 달러짜리 미사일을 쏠 준비가 되어있고, 무고한 중동국가의 국민들의 희생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여전히 미국의 의견을 관철 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을 경제제재와 전쟁밖에 모르고 있다. 물론, 엄밀히 이야기해서 미국이 보복으로 아프칸을 폭격을 하든, 전쟁을 벌이든 그건 우리가 뭐라뭐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식이 누군가에게 일단 얻어 터지고 돌아오면, 때린 녀석에게 한방 때려주고 싶은 보복에 과한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문제는 정말 빈 라덴이 저질렀는가 하는 결정적 증거가 있느냐는 것이고(만일, 빈 라덴이 저지른 일이라면 그 녀석만 때려잡으면 된다. 미국의 정보력은 충분하다), 전쟁을 통해 뉴욕에서의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과 똑같을 무고한 죽음이 벌어질 것이라면, 그건 아무도 지지해서는 안될 일이겠다. 내가 진실로 까대고 싶은 건, 미국이 가진 타국에 대한 마인드가 되겠다. 미국은 항상 “적”을 명확히 하는 지점에서 그들의 패권을 유지하려 든다. 냉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라크와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을 봐도 알 수 있다. 이젠 그들의 적은 “테러”가 됐다. 요 녀석은 실체도 없으니, 냉전보다도 오래갈 수 있고, 분명 게릴라전이므로 (누가 봐도) 그들이 “나쁜 놈”이 될 것이다. 테러는 테러일 뿐이다. 다만 이번 테러는 큰 테러일 뿐이다 테러의 규모를 보고 무고한 희생에 대해 더 하고 덜 한 휴머니즘을 갖는 것은 오류이다. 앞서 말했지만, 규모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며, 이번 테러는 너무나도 리얼하게 중계된 방송덕에 사람들의 뇌리에 휴머니즘적 요소가 크게 자리잡았을 뿐이다. 테러를 예방하고 테러리스트의 응징은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지만, 테러 응징을 위한 전쟁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얼핏보면 마치 미국이 전세계의 우방을 하나로 뭉쳐 선두에서서 패권국가의 위신을 세운 것 처럼 보이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익명의 테러리스트는 대들보 서너방 두들 긴 것으로 초가삼간을 초토화 시켰고, 그것에 당한 미국은 빈(라)대(엔) 하나 잡으러 초가삼간 다태우려 덤벼는 꼴이 됐다. 미국이 대국다운 면모를 가질 것인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의 말처럼 반 테러와 자유수호의 이름으로 더 끔찍한 일이 벌이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