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쇼나 현대 조각전’과 ‘그리스 로마 신화전’
6월말까지에는 성곡미술관에서 ‘아프리카 쇼나 현대 조각전’이 전시되더니, 7월초부터는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전’이 전시되고 있다. 두 전시회 모두 돌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두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오며 느끼는 감상은 사뭇 다르기만 하다. ‘돌에 깃들인 검은 영혼의 신비’라는 부제를 단 ‘아프리카 쇼나 현대 조각전’은 주로 단순한 검은 돌덩어리들의 응시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딘지 뒤를 좇고 있는 듯한 눈길을 느끼게 하는 신비스런 힘을 지니고 있다고나 할까. 둥글둥글하거나 모서리가 모두 각진 매우 추상적인 돌 조각이지만, 아니 오히려 그러했기에, 인위적으로 깎은 돌이 아닌 자연 속의 일부 같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모두 127점의 조각이 세 파트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제1전시실은 영혼과 정신의 깊이를 강조한 모뉴먼트 대작(-굳이 주제라고 하자면, 자아정체성의 모색 및 자기에의 응시-), 제2전시실은 일상의 느낌을 담은 작품(-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및 연인간의 사랑 등-), 제3전시실은 그들의 토템 신앙이 반영된 작품(-신화의 형상화-)으로 꾸며졌다. ‘제우스에서 헤라클레스까지’라는 부제를 단 ‘그리스 로마 신화전’에는 눈부시게 하얀 대리석 조각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부제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신화의 흐름에 맞추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모두 151점의 작품들이 ‘천지창조’, ‘올림포스 12신’, ‘영웅과 괴물’이라는 3개의 주제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선과 실재하는 선남선녀와도 같은 조각상들을 보며, 모든 작품을 둘러 본 후에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는 피그말리온의 착각에 공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검은 돌과 하얀 돌이 주는 느낌돌을 조각하는 예술이어도 ‘쇼나 조각’과 ‘그리스 로마 조각’은 너무나 다르다. 작품을 이루는 돌의 빛깔이 전자의 것은 검은 색이 주조를 이루고 후자의 것은 하얀 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는 시각적인 사실 외에 그 느낌 또한 상당히 다르다. 똑같이 신을 표현하는 듯한 작품이어도 ‘쇼나 조각’의 그것은 신성함과 진지함이 드러나는데 비하여 ‘그리스 로마 신화전’에서는 아름다움과 희노애락을 아는 평범한 인간다운 신이 드러난다. 사실 그러하다. 신이라고 하면 인간의 창조주라는 생각이 들고 인류 역사의 기원을 밝혀줄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 때문에 인간보다 상위의 어떤 존재로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인간과 똑같이 서로간에 질투하고 싸우고 사소한 사건에 분노하곤 한다. 또한 인간들이 자신들을 잘 섬기면 은혜를 베풀고 그렇지 못하면 벌을 주고 하는 점, 즉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 역시 지극히 주관적이기만 하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신들의 이기적인 속성은 우리의 민속신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어려서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낯설지 않는가 보다. 돌이 주는 교훈이 두 전시회는 모두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다.(-물론 ‘쇼나 조각’의 인기가 ‘그리스 로마 신화전’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돌을 좋아한다. 허영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돌(보석)이고, 뚝심 있고 지조 있는 사람을 표현할 때도 ‘돌부처’라는 말을 쓰며 오우가의 하나로 ‘돌’이 등장하기도 한다. 겉으로 볼 때 아름다운 돌이 있는가 하면, 그 속성을 알 때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돌이 있는 것 같다. ‘그리스 로마 신화전’의 작품들은 돌 자체의 신비스러움보다는 차라리 그처럼 뚝심 있고 지조 있는 돌을 손으로 주무르는 듯한 인간의 위대한 재주에 감탄하게 한다. 반면 ‘쇼나 조각’의 전시품들은 자연 속에 놓아도 별로 눈에 뜨이지 않을 듯한 천연의 보호색을 지닌 뚝심 있고 지조 있는 돌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