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리는 나의 빛’. 서울대의 표어다. 누구는 그게 자랑스럽다는 듯, 누구는 그게 부끄럽다는 듯, 누구는 그게 별거 아니라는 듯 강의실에 앉는다. 그리고 강의실 바깥의 세계를 바라본다. 자신 있는 눈빛, 혹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그린다. 강의실을 떠날 채비도 한다.
강의실은 바깥 세계와 분리된 무균지대가 아니다. 사회의 변화가 강의실에도 반영된다. 오늘날 서울대 강의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강의실 밖 노동시장은 강의실 풍경을 어떻게 바꿔놓았나? 강의는 어떤 의미를 갖게 됐나? 매일 우리의 발길이 닿는 강의실에 낯선 물음을 던졌다.
강의실의 미덕이 된 ‘효율’
학생과 교원 모두 오늘날 강의실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효율성을 꼽는다. 최소한의 자원을 투자해 최대의 효과를 내고 싶은 마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강의실에 감돈다. 2009년부터 서울대에서 강의해 온 정창영 강사(연합전공 정보문화학)는 “요즘 학생들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얻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깊이 생각할 여유가 예전보다 많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강의실에서 이변 없이 얻길 원한다. 강의 내용이나 진행 방식, 성적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많은 학생이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토론형 수업 대신 교수자의 말을 받아적고 외우면 되는 수업을 선호한다. 이승우(사회복지 24) 씨는 “서울대에 유독 속기를 열심히 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며 “학생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답하기보다 교수님의 수업을 일방적으로 듣고 받아적는 수업이 대부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일상화된 강의평가 제도는 효율 중심의 수강 관행을 강화한다. 학생들은 에브리타임에서 강의평을 살피고 강의 진행방식을 어느 정도 예측한 뒤 강의실에 들어온다. 강의평가나 교육환경개선협의회, 교육수요자만족도조사를 통해 의견을 남기기도 한다. 교원과 대학본부는 학생의 요구를 고려해 강의를 설계한다. ‘교육 및 행정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와 실질적인 수요를 기반으로 수요자 중심의 더 나은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서울대 교육수요자만족도조사의 목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사는 학생의 요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강의평가 결과가 강의 존속과 재임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과 교원이 함께 강의를 돌아보는 과정은 필요하다. 정치학자 채효정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강의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등급매기기식의 정량 평가가 아닌 강의 개선을 위한 의견 교환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학생들이 강의에 대한 의견을 정성껏 적어준 경우엔 불만 표시나 부정적 평가라도 큰 도움이 됐다. 강의를 지속하다 보면 학생의 수준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수업을 진행하거나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평가 체계가 일상화되면 잃기 쉬운 것도 있다. 논쟁적인 이야기를 강의에서 다루지 않으려 하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채효정은 학생의 필요를 중심으로 수업을 재편하며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자기검열을 하는 동료 강사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에 한국사회나 소속대학 내 민감한 현안이나 쟁점 대신 과거나 외국 사례를 중심으로 내용을 꾸리고, 강사의 입으로 말하는 대신 세계 석학의 입을 빌리게 됐다. 채효정은 “강의실에서 정작 우리의 문제를 생각하거나 발화해 볼 기회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의 중 생기는 우연하고 친밀한 관계도 예전보다 찾기 어려워졌다. 정창영 강사는 “오늘날 대학에서 스승과 제자 관계는 서비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로 전환”됐고, “학생과 교원 모두 강의를 교육 ‘서비스’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평했다. 학생들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학기가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채효정은 “예전엔 꼭 야외수업을 했었는데 이젠 학생들이 원하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움이 든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강의에 시간과 힘을 들이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낄 것 같아서다.
대학생이고요, 취준생입니다
‘효율적 강의 수강’이 오늘날 학생들에게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노동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진 점을 들 수 있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5.31 교육개혁으로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자유롭게 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대학의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고, 대학 졸업자가 노동시장에 과잉 공급되기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대학 입학이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에 학생들은 사회적 수요가 높은 강의를 선택함으로써 노동자로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 취업이 급하지 않더라도, 급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받아두려 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적 자원을 욕망한다. 사회 분위기를 고려한 강의나 다전공 선택이 기본값이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조혜빈(바이오시스템공학 23) 씨는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기 위해 학점을 신경” 쓰거나 “취업에 도움이 되는 강의를 찾아보고 선택”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당장 가시적인 효용이 없는 강의를 선택하거나 여유롭게 학문을 탐색하는 일은 멀게만 느껴진다.

효율성이 중요해진 건 대학강의에 투입할 시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 입학이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강의 수강 외에도 여러 비교과 활동에 참여한다. 동아리, 스터디, 봉사활동, 자격증 취득 등이 그 예다. 정창영 강사는 “요즘 학생들이 효율성을 중시하는 건 기본적으로 너무 바쁘기 때문”이라며, “현실이 너무 절박하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많은 이공계열 학생들은 정해진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말한다. 건설환경공학을 전공하는 김시현(가명) 씨는 “공과대학 학생 대부분이 암묵적으로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는다”고 밝혔다. 혜빈 씨는 농생대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정해진 교육과정대로 강의를 듣지 않으면 졸업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시현 씨에 따르면 이공계열에선 전공을 살려 취업하려면 무조건 대학원에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학부 졸업 후 바로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빠른 졸업과 취업을 위해선 정형화된 이수 형태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선택의 자유라는 허상
대학생은 어느 때보다 심한 불안과 조급함을 느끼지만, 교육정책은 역설적으로 학생의 ‘자유’ 보장을 목표로 삼는다.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은 전공자율선택제* 도입을 추진하며 ‘대학 입학정원 중 적어도 30%는 전공 벽을 허물고 입학시킨 후 전공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전공자율선택제를 도입한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사이에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자,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해당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전공자율선택제: 대학 입학 이후 일정한 전공탐색 기간을 거친 뒤 학생이 원하는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
서울대 역시 입학 후 전공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학부대학 광역’을 신설했다. 유홍림 총장이 공약으로 내건 무전공입학제와 교육부의 움직임이 맞물린 결과다. 학부대학 광역으로 입학한 학생은 1년간 전공탐색 기간을 가진 뒤 원하는 학과(부)에 진입한다. 자유전공학부 학생은 전공선택 이후에도 소속을 유지하지만, 학부대학 광역 학생은 진입한 전공으로 소속이 변경된다. 해당 모집단위가 신설된 2025년 학부대학 광역으로 36명이 입학했다.

전공자율선택제는 학생들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을까. 올해 입학한 조훈(학부광역 25) 씨에 따르면 학생 상당수가 선택할 전공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대학에 들어왔다. 학생 대부분은 상경계열이나 공과대학을 지망하고 있다. 조훈 씨는 “정시 100퍼센트 모집이라는 제도의 특성상 ‘낮공’*을 갈 성적은 되지만 ‘높공’**을 갈 성적은 되지 않아서 학부대학 광역으로 입학한 경우가 많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전공자율선택제에는 학과제와 다른 ‘진정한’ 전공 선택의 자유가 있으리라 기대하기 쉽지만, 이들의 선택 역시 사회 일반의 수요와 무관할 수 없다.
*낮공: 입시 합격선이 낮은 공대를 일컫는 은어
**높공: 입시 합격선이 높은 공대를 일컫는 은어
경쟁에서 낙오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일상화된 현 상황에 전공을 탐색할 여유를 갖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1학년 때 듣고 싶은 수업만 들었다간 이후 진입한 전공의 졸업요건을 충족하기 어렵기에 학생 대부분이 진입하고자 하는 학과의 수업을 미리 듣거나 필수교양 강의를 중심으로 시간표를 꾸린다. 조훈 씨는 학부대학 광역 신입생 환영회에서도 ‘진입할 전공을 빠르게 정한 뒤 관련 수업을 미리 수강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전공자율선택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쏠림현상*의 대책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사회학자 강석남은 “전공자율선택제의 가장 큰 문제는 쏠림현상을 부작용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학과 대신 계열 단위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쏠림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학과 정원을 정해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서울대 인문대엔 인문계열로 입학한 후 각 학과로 진입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때 학과별 인원제한을 둬 특정 학과로 학생이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새로 도입된 전공자율선택제에선 학과별 정원제한을 따로 두지 않는다. 강석남은 “쏠림현상은 오히려 학문단위를 구조조정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 규모를 축소해 갈 때 전공자율선택제에서 누적된 학생들의 선택이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대학이 학생 수요를 근거로 기초학문 학과를 통폐합하고 있다.
*쏠림현상: 학생들의 전공선택이 특정 인기 학과에 집중되는 현상
노동시장에서의 수요와 밀접하게 연결된 학생의 선택을 근거로 학문단위를 조정하면 장기적으론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기 어려워진다는 모순이 생긴다. 기초학문의 입지가 흔들리거나 사라지면 해당 학문을 공부할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 부문과 노동 부문이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상황에서 교육 내적인 장치만 혁신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치학자 채효정은 “교육 체제를 노동 체제의 변동과 같이 보지 않으면 교육 방법과 도구만 바꾸려 하는 기술적 문제에 갇힐 수 있다”며 “이 둘이 주고받는 실질적인 영향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강의실에서 누려온 것
대학강의의 ‘의미’라고 불리던 것이 자취를 감춰가는 상황에서, 이런 강의실 풍경에 대한 반작용도 존재한다. 몇몇 학생들은 전공과목에서 배운 내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강의나 사회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강의를 찾는다. 마음을 울린 몇 개의 교양 수업이나 관심있는 타과 전공 수업을 들으며 체증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다전공을 고려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들은 서울대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방식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건설환경공학을 전공하는 김시현 씨는 철저한 계산과 이성을 중시하는 공학 과목의 한계를 느꼈다. 공학적 계산으로 도출된 결과가 때론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학 입학 후 전공과목과 사회학, 지리학 수업을 병행했다. 조혜빈(바이오시스템공학 23) 씨 역시 유사한 고민을 했다. 혜빈 씨는 전공 수업을 들을 때면 과학기술로부터 소외된 사회적 약자가 떠올랐다. 이에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을 찾는 사회역학, 과학기술 전문가의 권위를 의심해 보자고 제안하는 과학기술사회학을 공부했다. 과학이 부딪힌 윤리문제에 관심을 갖고 철학 수업도 들었다.
이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교과목 ‘수요’는 입학정원이나 전공생 수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전공선택 인원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학문의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강석남은 “기초학문, 기초학문 연구자, 기초학문 학과 각각에 대한 수요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며 “한국 대학이 학문의 존재 의의를 그중 ‘학과’에 대한 수요에서 찾는 건 학생의 등록금 수익에 의존하는 재정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기초학문의 존재 의의와 방식을 제대로 논하려면 전공생의 수가 해당 학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수요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대학 재정체계의 취약성을 개선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한편, 들어볼 만한 강의가 유지되는 배경으로 서울대의 특수성을 무시할 수 없다. 가령 서울대에는 있지만 상당수 대학에선 열리지 않는 강의가 많다. 혜빈 씨가 들었던 과학기술사회학은 서울대를 포함해 전국 7개 대학에만 개설돼 있다. 언어학이나 인류학, 종교학, 정치경제철학, 여성학 등을 들을 수 있는 대학도 열 손가락에 꼽는다. 대학강의의 다양성이 결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구조조정의 영향으로 강의 다양성은 대부분 대학에서 축소되고 있다. 사회학자 강석남은 “서울대엔 여전히 다양한 학문적 경험을 할 기회가 존재”하지만 “그럴 수 없는 대학이 훨씬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강석남에 따르면 대학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대부분의 대학은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노동시장에서 경쟁력 있다고 여겨지는 학문단위에 자원을 집중시켰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교양 과목이 통폐합되고 기초학문 학과가 사라졌다. 서울대가 이런 흐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건 대학 간 위계에서 비롯한 상징성과 경쟁력 때문이다.
* 「우리는 무엇으로 대학구조조정을 마주할 수 있을까?」, 2022.
서울대의 교육 성과는 불균등하게 분배된 자원과도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는 다학문 간 토론을 통한 비판적·융합적 사고력 향상을 목적으로 베리타스 강좌를 확대하고 있다. 사회학자 강석남은 “베리타스 강좌는 상당 부분 서울대라서 가능한 모델”이라고 지적한다. 베리타스 강좌의 핵심을 이루는 토론은 조별로 대학원생 조교가 배치돼 있기에 가능한데 서울대 수준의 대학원생 규모와, 이들에게 인건비를 챙겨줄 수 있는 물적 조건을 갖춘 대학이 드물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양질의 강의를 제공하기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수요에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사회학자 강석남은 “대학의 진짜 위기는 ‘대학 밖의 산업적 수요’라는 기준을 빼면 대학교육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는 수요라는 틀로 설명되지 않는 강의들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이 흐름에서 조금은 빗겨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 이면의 불평등을 비판적으로 짚어냄과 동시에, 강의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학생의 자리도 노동자의 자리도 아닌 곳에 앉아 수업 내용을 받아적고 필기를 뒤적이고 친구와 눈을 맞추거나 서투른 말을 뱉어본다. 강의가 그 두 자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가 완벽하게 순수한 학생도, 완벽하게 노련한 노동자도 아니라는 점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사이를 옮겨 다니며 피어나는 기쁨, 두려움, 그리고 숱한 의심 속에서 오랫동안 미뤄둔 낡은 질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배우기를 희망하나? 이곳에서?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