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당신의 강의가 사라진다면

사진 설명 시작. 학생 두 명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며 토론하고 있다. 정면을 바라보고 앉은 학생은 노란색 니트를 입고 있으며, 오른손에 펜을 들고 있다. 왼손으로는 책을 잡고 있다. 검은색, 흰색 줄무늬 옷을 입은 다른 학생은 오른쪽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고, 왼손으로 책을 가리키고 있다. 각 학생의 앞에는 멀티탭이 설치돼 있다. 사진 설명 끝.

김채림(자유전공 21) 씨는 학기 초 ‘수강신청을 해달라’는 부탁을 인스타그램에 여러 차례 게시했다. 전공선택 교과목인 ‘베트남어 강독 2’가 폐강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강의는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동남아시아언어문명을 전공하는 채림 씨가 졸업요건을 채우려면 꼭 필요했다. 채림 씨는 지인들에게 해당 강의를 수강신청하면 밥을 사겠다는 연락을 돌려 겨우 폐강을 막았다.

매 학기 많은 강의가 열리지만, 학생이 필요로 하는 모든 강의가 열리는 건 아니다. 어떤 강의는 수강생이 넘쳐나지만, 어떤 강의는 수강생이 없어 개설부터 어렵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강의가 개설되는 현실에서 적은 학생이 수강하는 ‘소수 강의’는 어려움을 겪는다. 빈번히 폐강 위기에 몰리거나 꾸준히 개설되지 않는 강의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봤다.

‘소수’ 강의, 이렇게 열린다

채림 씨는 동남아시아에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지역학에 관심을 갖고 해당 전공에 진입했다. “전공 수업을 듣고 내가 대륙부 국가에 관심이 있고, 개발협력 분야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전공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채림 씨는 전공을 살려 공적개발원조(ODA)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 그러나 학과 정원이 적은 탓에 전공 수업을 들을 때면 종종 특이한 풍경을 마주한다.

사진 설명 시작.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공지사항이 적혀 있다. 작성자는

채림 씨는 전공 수업이 개설되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에 부딪힌다. 수강자 수가 매우 적어, 강의를 들으려면 ‘폐강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엔 매 학기 학부생들 사이에서 ‘수강신청 품앗이’를 하는 관행이 있다. 채림 씨는 “조교가 수강신청 변경 기간에 폐강 위기인 수업 목록을 틈틈이 공지한다”고 전한다. 그 결과 이번 학기 채림 씨가 수강신청한 교과목은 모두 최종적으로 개설됐다. 채림 씨는 “편법을 저지르는 듯해 약간 죄책감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는 전공 정원 자체가 적어서 생긴 문제다. 아시아언어문명학부는 수시 전형으로 9명을 선발하는데, 이들이 4개의 세부전공에 나뉘어 진입한다. 그러다 보니 전공 수업 개설에 필요한 최소 인원을 맞추기 어렵다. 채림 씨는 “그나마 동남아시아언어문명전공과 일본언어문명전공은 복수전공, 부전공 진입생이 매년 3~4명씩 있으나, 그 외 세부전공엔 그마저도 흔치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채림 씨가 주로 듣는 언어 강의는 수강자 수가 5명 내외인 소규모 강의로 진행되고, 전공 수업은 대체로 2년에 한 번 열린다.

소수 강의에 어려움만 있는 건 아니다. 인원이 적은 덕에 특색 있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채림 씨는 “강의에서 늘 같은 사람들을 마주치니 친밀감이 생긴다”며, “발표나 토의가 많은 수업에선 학생들과 친분을 쌓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어렵게 열린 강의인 만큼 얻어가는 것도 많다. 채림 씨는 “나름대로 전공 분야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강의에서 다른 학생이 내가 전혀 모르던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면 관점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소수 강의에선 상대적으로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다. 연계전공 고전문헌학을 이수하는 박건규(자유전공 20) 씨는 “두세 명이 듣는 ‘고전문헌번역연습 2’에서 교수님이 학생의 번역 과제물을 일일이 첨삭해 주신다”며 독특한 수업 형태를 소개했다. 건규 씨는 “강의를 통해 학계 연구 동향을 자세히 알게 돼 개인적인 관심 분야에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학생들이 수업 주제에 관심이 많다 보니 교수자와 활발한 소통이 이뤄진다. ‘현대 일본의 쟁점’ 강의를 맡은 지은숙 강사는 “수업에서 가족 관계나 장래 가족설계 계획 같은 복잡한 이야기를 모든 학생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본다”고 말했다. 지 강사는 “그런 화제로 학생들끼리 이야기 나눌 기회가 드물기 때문인지, 서로의 말에 집중하고 경청한다”고도 평했다. 또한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니 복잡한 주제도 이해시킬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들을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일?

소수 강의는 예상 수강 인원이 적은 탓에 드물게 열린다. 개설 여부가 불확실한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들은 이수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겨우 개설되면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는 수업을 듣기 위해 다른 강의를 포기하기도 한다. 연계전공 일본학을 전공하는 이다인(정치외교 22) 씨는 전공에 진입한 이래 처음으로 개설된 ‘현대 일본의 쟁점’ 수업을 듣기 위해 시간이 겹치는 주전공 필수 교과목을 다음으로 미뤘다. 지은숙 강사는 “해당 과목에 대한 강의 경험이 있는 교원만 수업을 개설할 자격이 있는데, 일본학 연계전공은 희소한 분야라 교수자를 찾지 못해 이제껏 강의가 개설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수업이 꾸준히 열리지 않으면 관심 분야 공부를 이어가기 힘들다. 학부 재학 때 학생설계전공으로 ‘장애인재활심리상담학’을 만든 최세운(협동과정 특수교육전공 석사과정) 씨는 전공 설계 과정에서 수업이 기존에 잘 열려왔는지 고려해야 했다. 학생설계전공은 학생이 스스로 교육과정을 계획해 학교의 승인을 받은 후 이수하는 전공 과정이다. 여러 학과에서 기존에 개설한 교과목 중 전공에 맞춰 듣고픈 수업을 골라 전공 과정을 꾸린다. 그러나 필요로 하는 수업이 모두 안정적으로 열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세운 씨는 “장애를 주제로 한 수업은 많지 않았고, 간혹 존재하더라도 기존 학과에 특화돼 있었다”며 관심 분야를 세밀하게 배울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를 모든 강의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어떤 강의들은 빈번히 폐강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채림 씨의 사례처럼, 애초에 입학생 정원이 적거나, 전공 진입생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는 연계전공·연합전공에서 개설하는 교과목은 지속적인 수요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예상 수요가 적을 수밖에 없는 강의에 폐강 기준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면 소수 강의는 이어지기 힘들다.

사진 설명 시작. 교과목 폐강 기준과 그에 따른 계속강의 신청 및 승인 조건에 대한 표. 교양은 수강정원이 40명 이상이면 신청자 10명 미만일 경우 폐강, 40명 미만이면 수강정원의 25% 미만일 경우 폐강이다. 전공 교과목의 경우 일반 강좌는 4명 이하, 외국어 진행강좌는 3명 이하 폐강이다. 계속강의 신청 시 수강정원 40명 이상인 교양은 수강신청 인원이 6~10명이면 격학기, 1~5명이면 격년개설이다. 40명 미만인 교양은 25%를 기준으로 절반 이상이면 격학기, 미만이면 격년개설이다. 전공의 경우 2명 이상이면 격학기, 미만이면 격년개설이다. 사진 설명 끝.

물론 인원이 다 차지 않아도 수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연계전공 고전문헌학 조교인 김충구(협동과정 서양고전학 박사과정) 씨는 “전공 특성상 강의 수강 인원이 적어, ‘계속강의’ 개설을 준비한다”고 전한다. 계속강의란 신청 인원 미달로 인한 폐강 대상 강의 중 ‘교육과정 운영상 타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개설하는 제도다. 수요가 적어도 학교가 승인하면 강의가 열릴 수 있는 것이다. 계속강의는 이전 학기 신청 인원에 따라 격학기, 격년 개설을 조건으로 승인된다.

계속강의 승인 여부를 결정할 때는 교과목의 ‘실질적 필요성’을 중요시한다. 이때 필요성은 전공 이수, 졸업요건 등에 초점을 맞춘다. 올해 계속강의 신청 강의만 해도 전공 논문지도와 실험 설계 교과목이 대부분이다. 충구 씨는 “신청을 위해 졸업 예정자나, 3학년 2학기 이상 학교를 다닌 전공생을 찾는다”며, “졸업예정증명서, 성적증명서 등을 첨부해 폐강 시 전공 이수에 어려움이 있다고 본부를 설득한다”고 전했다. 순전히 공부하고 싶다는 이유로는 강의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이 계속강의의 한계다. 실제로 ‘특수언어특강’을 가르치는 전순환 강사(언어학과)는 “학부생 한 명이 공부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쳐 수업을 지속하려 했지만 단과대 차원에서 폐강을 결정했다”고 돌아봤다.

학생만 문제가 아니다

폐강은 강사에게도 큰 타격이다. 담당 강의가 사라지면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2024년 발표된 「서울대학교 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폐강은 강사에게 수업 준비에 들인 시간 손해, 강의를 맡으려 포기한 연구에 따르는 기회비용, 교육자로서의 심리적 타격으로 돌아온다. ‘서울대 강사료 지급 지침’에 따르면, 개설 예정 강의가 수강인원 미달 등을 이유로 폐강될 경우 수업 준비 기간을 ‘일주일’로 인정해 계약 강사료의 32분의 1만 지급한다. 폐강을 오롯이 강사의 책임으로 볼 수 없음에도, 남은 계약 기간 동안 강사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강사는 강의 편성에 참여하지 못해 폐강 위기에 더 쉽게 노출된다. 강사가 교과과정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에도, 아직까지 강의 편성에 의견을 낼 공식적인 통로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일부 강사는 폐강을 막고자 적게나마 존재하는 수요에 따라 수업 내용을 바꾼다. 전순환 강사는 ‘특수언어특강’ 강의를 준비하면서, 학부생들이 어떤 언어에 관심을 갖는지 골몰했다. 전 강사는 “언어학과 커뮤니티에 수업 대상 언어 후보군을 정리해 제시하고,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아이슬란드어’를 수업 주제로 정했다”는 경험을 떠올렸다. 이처럼, 잘 열리지 않는 강의엔 누구의 책임이라 보기 어려운 수요와 공급의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에겐 ‘이런’ 강의도 필요하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이나 실적에 직결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강의가 있다. 주류 담론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 대상을 조명하는 소수 강의다. 세운 씨는 학부 때 수강생이 4명이던 ‘장애유형별 특수체육원리’ 수업을 들은 덕에 현장과 연구를 연결할 방법을 고민할 수 있었다. 세운 씨는 “강의를 들으며 현실적인 제약으로 빠른 일처리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연구 내용을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연구가 논문을 쓰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특수교육 대상자인 장애인 학생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도 덧붙였다.

희소 학문 분야의 전문가 육성을 위해 강의 공급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채림 씨는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 정책, 동남아 진출 기업 등 지역학 전문가의 활동 분야를 언급하며, “언어 전문가에 비해 지역학 전문가 양성은 아직 부족하다”고 짚었다. 지역학처럼 앞으로의 전망이 기대되는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선 눈앞의 ‘수요’만 고려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강의의 필요를 고려해야 한다. 전시기획에 관심 있는 최현서(가명, 고고미술사 22) 씨는 “석사 학위 이상을 필요로 하는 학예사에 학부생 때부터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보다 수월하게 해당 분야에 접근하도록 관련 강의를 열어주면 좋겠다”며 강의가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서울대엔 소수의 연구자가 명맥을 잇고 있는 학문도 있다. 연계전공 고전문헌학의 ‘라틴어 2’, ‘그리스고전강독 2’ 등 심화 고전어 강의가 그 예다. 현대 국내 그리스·로마 원전 연구 학술단체 ‘정암학당’의 연구자 다수가 서울대로 출강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충구 씨는 타대에선 대부분 기초 고전어 강의만 이뤄진다며, “서울대의 고전어 교육 기반이 향후 고전학 연구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충구 씨는 서양고전학을 깊게 공부하기 위해선 고전어 기초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학부 과정에 기초를 쌓게 도와주는 강의가 개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학부 강의는 서울대가 장기적으로 기초학문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거점이기도 하다.

수강신청 기간이면 강의 목록이 학생 앞에 놓인다. 그중 어떤 강의는 폐강되고, 또 다른 강의는 아예 열리지 않는다. 소수가 수강하는 강의를 꾸리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는 단지 ‘듣는 사람이 없어서’, ‘인기가 없어서’만은 아니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충실한 제도가 소수 강의가 처한 현실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듣지 않는 강의일지라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쉽게 열리지 않는 강의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대학에 남아있다. 서울대는 이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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