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서 배움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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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이 순수한 배움의 공간이란 말을 오늘날 순전히 믿는 이는 드물다. 그럼에도 강의실과 대학에서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만이 배움의 공간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학에서 배움의 가능성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그렇게 믿는 이들이 모이는 강의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봤다.

우리는 강의실을 포기하지 않는다

올해 여름 계절학기 기간 서울대 강의실에선 ‘정치경제학입문’ 강의가 열렸다. 학점도 주지 않는 강의에 3천 명이 넘는 이들이 모였다. 이 강의는 ‘서울대 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서마학)’이 교과과정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폐강한 경제학부에 항의하며 직접 개설한 ‘0학점 무료 강의’다. 서마학은 2008년부터 서울대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강의해 온 강성윤 강사와 함께 강의를 진행했다. 서울대 학생뿐 아니라 시민도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해 큰 주목을 받았다.

사진 설명 시작. 강성윤 강사가 강단에서 강의를 소개하고 있다. 뒷 칠판엔

서마학은 왜 이런 방식의 투쟁을 택했을까. 배움의 공간을 되찾으려던 선례가 중요한 본보기가 됐다. 서마학 운영을 총괄하는 편린(미학과 석사과정) 씨는 “한 운영진이 과거 복직투쟁 중 무학점 강의가 개설된 사례를 알려줬다”고 말했다. 1998년 김민수 교수(디자인과)가 부당한 재임용 탈락에 맞서 6년간 전개한 복직투쟁을 참고한 것이다. 대학 안팎의 변화도 ‘제도 밖’ 강의 개설에 힘을 보탰다. 여러 지식공동체가 주관하는 공개강좌가 이미 있었고,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줌(zoom)과 유튜브 스트리밍 같은 비대면 플랫폼도 보편화됐다. “시민에게 개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는 게 편린 씨의 말이다.

강의가 대학 바깥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면, 굳이 대학 안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서마학은 여전히 “대학 교과과정 내 마르크스경제학 강의 개설이 목표”라 말한다. 대학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배우길 원하는 학생들이 꾸준히 있었기 때문이다. 강 강사는 올해 4월 〈서울대저널〉에 “수강생 수가 줄었던 시기는 있지만 그럼에도 매 학기 30명이 강의를 들었다”고 전했다. 2025년 여름 계절학기 수요조사 결과에서도 마르크스경제학 과목의 수요는 타 주류경제학에 비해 훨씬 높았다. 그러나 경제학부는 당시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특정 분야의 수요는 학생들의 강의 개설 수요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의 연구 성과 등 다양한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며 학생들의 요구를 묵과했다. 서마학은 이에 항의하는 성명문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은 경제학 내부의 타자이며,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스스로를 반성하고 갱신하기 위해 반드시 보존해야 할 내부의 외부’라 강조했다. 숫자로 드러나는 수요 외에도 학생들이 마르크스경제학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강사의 노동권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강성윤 강사는 서울대에서 16년간 강의를 이어왔으나, 경제학부가 2025년 강사 채용공고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배제하며 지원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편린 씨는 이를 두고 “16년간 강의를 맡아온 강사를 아무 상의 없이 내치는 폭압적인 행태”라고 지적했다. 경제학부는 수요와 공급의 논리를 내세워 마르크스경제학 폐강 수순을 밟았으나, 배우려는 학생도, 가르치려는 강사도 있었다.

서마학의 투쟁은 학생과 대학의 관계가 어때야 하는지 묻는 실험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학은 수요자 중심 교육을 내세우지만, 본부가 마련한 절차에만 의존해선 학생의 요구가 실현되기 어렵다. 편린 씨는 “학생들이 꾸준히 목소리 내고 정치적 주체로 서야만 학문이 보존된다”며 “대학이나 사회가 ‘진리의 상아탑’을 지켜줄 거란 믿음은 환상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비판적 담론을 다루는 수업을 대학에 남기려는 노력 자체가 학생이 할 수 있는 투쟁의 방식일 수 있다. 편린 씨는 “오늘날 학생이라는 주체는 많이 모호해졌지만, 그렇다고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투쟁을 포기할 수는 없다”며 “학습은 투쟁을 위한 훈련이 아닌 투쟁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학은 여전히 비판적 담론이 자라날 수 있는 곳이다. 편린 씨는 “아무리 대학이 취업 기관으로 전락했다 하더라도 대학에 구축된 인프라가 분명히 있다”며, “여기 의지하지 않고선 비판적 담론을 생산할 물리적 토대와 여건을 갖추기 힘든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대학 바깥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대안적 흐름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것이 대학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교수자에게 학생과 강의실이란

교수자에게도 강의실에서 얻는 경험은 중요하다. 경상국립대 윤여일 교수(사회학과)는 “그 시기에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에 따라 공부 방향이 바뀐다”며, “연구소에서 학과로 자리를 옮긴 지금은 학생을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고 말한다. 평소 소설 읽기에 어려움을 느꼈다는 윤 교수는 최근 학생들이 제안한 책모임에서 학생들과 함께 소설을 읽기도 했다. 윤 교수는 인문학 연구공동체인 ‘수유너머’에서 약 13년간 공부했고, 여러 사회운동 현장과 연구를 연결했다. 2024년 경상국립대에 자리를 잡기 전엔 8년간 제주의 활동가들 옆에서 연구를 이어왔다. 지금은 강의실에서 ‘지식사회학’, ‘일과 산업의 사회학’, ‘환경사회학’, ‘여행의 사회학’, ‘한국사회학’ 등을 가르친다.

대학 교육은 연구공동체나 현장의 배움과 어떻게 다를까. 연구공동체에선 함께하는 이들과의 관계성이 중요했다. 윤 교수는 “앎에 대한 열정에서 출발해 동료들과 폭넓은 관심사를 공유하며 특정 분과에 국한되지 않은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한편, 운동 현장에선 연구의 실질적 활용이 중요했다. 윤 교수는 “현장에서는 연구가 운동에 어떤 쓰임새가 있을지 묻게 된다”고 말한다. 이와 달리 대학에서 교수자는 전공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강의실은 교수자에게 새로운 책임과 고민을 안긴다. 윤여일 교수는 “사회학자로서 한국 사회를 비판할 때, 그 비판이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미래 삶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며, “교수의 비판이 학생들의 비관으로 번지지 않도록 의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일회성 강연을 할 땐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윤 교수에게 강의실은 자신보다 약 20년 늦게 사회를 경험하는 학생들과 연결되는 자리다.

윤여일 교수는 온라인 영상 시청이나 인공지능 활용과 달리 강의실이라는 환경에서만 가능한 교육적 실천을 고민한다고 말한다. 일정한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여러 학생이 모인다는 것이 그가 고려하는 강의실의 특징이다. 윤 교수는 “학생들이 저마다의 고민을 꺼내고 그것들이 엮이며 수업이 전개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여일 교수는 강의실이 가능성을 발견하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학생들이 지식을 축적하기보단, 삶의 역량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는 윤 교수는 “현실의 개인은 왜소하고 미력해 보이지만, 강의실에선 자기 의사로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작지만 구체적인 세계의 감각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학기 윤 교수는 학생들과 성적 평가 방침을 논의했다. 과제에 인공지능을 사용해도 될지, 허용한다면 평가 요소는 무엇이 돼야 할지 함께 궁리한 것이다. 이런 시도는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규칙을 만들고, 그 책임을 함께 나누는 시도가 될 수 있다.

강의실에 둘러앉아 진짜 패를 내놓기

맨발로 땅을 걸으며 관찰한 것을 기록하고, 버들골 잔디에 함께 누워 바람을 느낀다. 유기쁨 강사의 강의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정확히는, 강의실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유 강사는 2020년부터 서울대에서 ‘생활 속의 생태학’과 ‘생태철학과 환경윤리’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유 강사에게 강의실은 하나의 실험실이다.

사진 설명 시작. 공책 사진이다. 왼쪽 상단에 손글씨로 이천이십오년 이학기 생태철학과 환경윤리라고 적혀있다. 가운데 상단에는 앉아있는 사람 그림이 있고, 그 옆엔 바닥에 주저앉을 용기라고 적힌 글씨가 있다. 중앙에는 불 그림이 있고 그 옆에 불의 에너지라는 글씨가 있다. 하단에는 파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옆에 흐름에 몸을 맡기기 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수업은 이론에 그치지 않고, 주변 환경을 몸으로 체험하며 다양한 생명과 연결되는 실천으로 확장된다. 유기쁨 강사는 ‘생활 속의 생태학’ 강의에서 학생들의 학내 비밀 아지트를 모아 하나의 지도로 만드는 활동을 한다. 생태학과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유 강사는 “내가 속한 장에서부터 접근해 보자고 얘기한다”며, “내가 주로 생활하는 곳인 서울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자는 의미에서 실제 경험을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유 강사는 주변 환경이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거듭나도록 만들고자 한다.

현재 대학 학제는 안정적인 성장이 이뤄지던 때 설계됐다. 유기쁨 강사는 심각해진 생태위기의 맥락에서 출현한 생태학 강의에선 다른 방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시골에 거주하는 유 강사는 수업이 있는 날마다 기차를 타고 서울대에 와 시골에서 겪은 일을 교실에서 학생들과 나눈다. 유 강사에 따르면 지역과 강의실을 연결하는 것은 ‘번역’의 과정과 유사하다. “강의도 나의 실천 중 하나”라는 유 강사는 강의실의 문턱을 허물고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결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 유기쁨 강사는 “지금 학생들은 불안감과 분노와 울분을 느끼고 있지만, 같이 이야기할 사람은 적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선 무력해지기 쉽다. 유 강사는 “수업에선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다룬다”며, “그런 것을 일시적일지라도 강의실에서 선취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이론으로 가르치기보단, 실제로 주변 사람과 생각을 나누도록 돕는 것이 유 강사의 방식이다.

강의실에서 좋은 소통이 일어나게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유기쁨 강사는 “진짜 패를 내놓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강의실은 기후위기를 믿지 않는 학생 역시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 강사는 “그럴듯한 얘기는 하기 쉽겠지만 그래선 얘기가 겉돈다”고 설명한다. 정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나와야 이야기가 제대로 될 수 있다. 진짜 패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은 그에게도 여전히 어렵다.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에서 유 강사는 실패의 감각을 오히려 더 자주 느낀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모두가 같은 속도와 전략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며, “이해의 시간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가능성을 닫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상황에도 강의를 계속 해온 까닭에 대해, 유기쁨 강사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만나며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형태와 색깔은 다르지만 “고통의 자리에서 건네진 생생한 물음”에 진지하게 답하기 위해 강의를 이어왔다는 것이다. 유 강사는 “수업을 하며 내가 어느 정도라도 학생들을 좋아하게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강의를 이어온 데는 한 학생의 영향이 컸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때 줌 강의를 수락했지만, 강의가 대면으로 전환되며 재계약 여부를 고민했다. 그러나 유 강사는 “재계약 마지막 날, 지난 학기 건강상의 이유로 다음 학기에 수업을 듣겠다고 했던 학생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만두면 수업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그는 강의를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강의를 통과한 학생들

강의실에서 ‘진짜 패’를 내보이며 가까워진 학생들이 있다. 이규흔(독어독문 20) 씨와 김성민(미학 21) 씨는 2025년 1학기 ‘사회미학특강’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두 사람은 삶의 태도에 영향을 준 ‘인생 강의’로 양효실 강사의 ‘사회미학특강’과 목정원 강사의 ‘연극미학’을 꼽았다. 인터뷰 도중, 두 사람은 2023년 2학기 ‘연극미학’ 수업을 옆자리에 앉아 함께 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성민 씨는 ‘사회미학특강’ 수업에서 인연을 이어가게 된 사람이 여럿 있다며 “그 수업을 함께 들은 사람들에겐 마음이 잘 열렸다”고 회고했다. 규흔 씨 역시 “같은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금세 친근함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무엇이 그 강의실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양효실 강사는 강의 계획서에서 ‘페미니즘 미학은 동시대 정치의 급진성, 윤리의 책임성, 상상력의 ‘미래성’을 다루는 복잡한 장소’라며 ‘페미니즘의 복수성(plurality)을 경험’하는 것이 강의의 목표라고 설명한다. 규범에 맞서는 실천을 다루는 강의다 보니, 수업에서도 교수자와 학생이 서로의 소수자성에 관해 얘기 나누는 장면이 종종 연출됐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규흔 씨는 “그럼에도 그 이야기가 전혀 폭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며 “교수자가 학생을 진심으로 궁금해한다는 마음이 느껴지면 그런 질문조차 안전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성민 씨 역시 “선생님은 우리가 가진 규범성과 학문적 틀 밖의 이야기를 계속 끌어내셨다”며 “답답한 학문의 틀을 깨는 발화를 실천하시는 데서 오는 통쾌함과 자유로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성민 씨는 “평소 친구들과 자취방에서나 나눌 법한 내밀한 이야기가 강의실에서 발화되는 순간, ‘이 말이 여기서도 가능하구나’라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강의실은 어른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또다른 ‘인생 강의’ 교수자와의 만남도 인상 깊게 기억했다. 김성민 씨는 목정원 강사가 10·29 이태원 참사에 관한 얘기를 하며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규흔 씨 역시 “당시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며, “사회적 참사 앞에서 청년들에게 사과하는 어른을 처음 봤다”고 말했다. 성민 씨는 “어른을 믿기 힘든 시대에 그런 분이 존재한다는 게 위안이 됐다”고 덧붙였다. 두 학생은 강의실에서 얻은 경험을 지속적으로 곱씹으며, 만남과 배움을 반추하고 있었다.

함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존재도 컸다. 성민 씨는 “‘사회미학특강’ 수업 시간엔 학생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소수자성을 드러내거나 우울함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말한다. 규흔 씨도 “그 순간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강의실은 어떤 얘기든 마음 편히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강의는 단지 정서적 교류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이후의 삶과도 연결됐다. 성민 씨와 규흔 씨는 ‘사회미학특강’에서 촉발된 관심을 바탕으로 졸업논문 주제를 정했다. 성민 씨는 “다른 곳에선 잘 해소되지 않던 갈증이 채워진 것 같았다”며 강의를 통해 여성적 글쓰기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성민 씨는 방학 중 퍼포먼스 글쓰기를 다루는 외부 워크샵에 참여하기도 했다. 규흔 씨도 ‘사회미학특강’에서 만난 관점과 평소 관심사던 연극을 연결해 ‘자기 말하기 연극’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이런 만남이 꼭 대학 강의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의실이면 안 될 이유도 없다. 작가 고병권은 “나는 대학보단 오히려 대학 바깥에서 가능성 있는 장소들을 많이 본 사람이지만, 그것이 대학을 포기할 이유는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사진 설명 시작. 고병권이 책장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설명 끝.

고병권은 오랫동안 인문학 지식공동체와 노들장애인야학 등 ‘대학 바깥’에서 연구와 교육을 이어왔다. 왜 ‘대학 바깥’이었을까. 고병권은 “공부를 시작할 무렵 대학 바깥에 있는 연구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공부할 곳은 많다고 생각했다”며, “무엇보다 자유로워서 좋았다”고 말한다. 대학이 지식 생산을 독점하는 곳은 아니며, 배움의 경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병권은 “배움은 대학의 울타리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며 오히려 ‘대학 바깥’의 장소에서 “함께 살길을 찾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가 교도소와 노들야학에서 진행했던 강의에선 “지식보다는 삶을 참조하는 질문”이 많았다. 지식을 축적하기 위한 공부라기보단 살기 위한 공부가 이뤄졌던 셈이다. 고병권은 그런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인문학이 길바닥에 있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대학을 완전히 부정할 필요는 없다. 고병권은 3년 전 시간강사로 대학에 복귀하며 강의실에서 가능성을 봤다고 말한다. 학생들과 니체의 글을 함께 읽고 토론했는데, 고병권은 “그 순간 시공간이 주변으로부터 함몰된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고병권은 “강의실 밖에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하고, 머릿속이 복잡할 텐데, 그 시간만큼은 학생들이 니체의 글을 두고 핏대 세우며 열심히 얘기하는 게 이상하면서도 좋아 보였다”고 설명한다. 학생들과의 만남 덕분에 고병권은 그 시간을 잘 꾸리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는 “대학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한 발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공간”이라며 그 시간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병권이 서마학의 기자회견에 힘을 보탠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고병권은 “우리가 소외되지 않기 위해 생활하고 공부하는 공간을 바꾸는 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대학은 ‘함께’라는 경험을 감각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고병권은 “많은 사람이 현실적으로 대학을 거쳐간다”며, “대학은 배움이 일상적으로 일어나야 할 장소”라고 덧붙였다. 대학이 비판적인 시각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에도 함부로 절망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고병권은 “훌륭한 투사는 불 속에서도 먹을 게 있다며 볍씨를 꺼낸다”며 대학에서 무엇을 키울 수 있을지 잘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학 강의실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 내는 이들이 대학에 존재하는 한 대학에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들려준 강의실 풍경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 점만은 공통적이다. 대학 강의실은 완벽하지 않지만, 여전히 배움과 실험이 이뤄지고 다양한 이들이 관계 맺는 공간이다. 배우고 가르치며 자신과 세상을 조금씩 바꾸려는 시도가 그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학 강의실을 특권화하거나 절대화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무언가’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강의실은 여전히 살아있고, 살릴 가치가 있는 배움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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