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밖에서 만난 사람들

사진설명 시작. 파란 배경의 포스터 위쪽에는 차례로

©독서클럽 화두

2025년 3월, 학부대학 글쓰기 지원센터에서 학부생 독서 커뮤니티 프로그램 ‘SNU 독서클럽 화두(화두)’가 출범했다. 참여자들은 동시대 화두와 관련된 책을 읽고 관련 활동을 수행한다. 지정도서와 자율도서를 읽은 후 토론을 진행하고, 북토크와 서평대회 같은 연계 활동도 준비돼 있다. 화두는 왜, 어떻게 조직됐을까? 글쓰기 지원센터 박주아 실무관과 화두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톺아봤다.

SNU 고전 100에서 화두가 되기까지

글쓰기 지원센터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이유는 좋은 글을 읽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부족함을 수용하는 태도는 독서모임에서 기를 수 있는 중요한 자질이다. 박주아 실무관은 “글이 발전하길 원한다면 부정적인 평가를 수용해야 한다”며 “독서토론은 학생들에게 미숙함을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제공한다”고 말했다.

글쓰기 지원센터는 2019학년도 ‘SNU 고전 100’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SNU 고전 100이 끝나갈 무렵, 신청자와 이수자가 줄어 운영 방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신청이 저조한 원인으로 선정된 고전이 학생들이 읽기에 너무 어렵다는 점이 지목됐다. 이에 SNU 고전 100이 끝난 후, 글쓰기 지원센터에서는 학생들의 부담을 줄인 화두를 개설했다.

글쓰기 지원센터는 프로그램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텍스트 힙*’ 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텍스트 힙 문화는 지적 허영심을 부추길 뿐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박 실무관은 “독서율을 높이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고 설명했다. 화두는 ‘민음북클럽’이나 ‘북클럽문학동네’ 등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북클럽을 모델로 삼았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서적을 읽고 북토크나 필름토크 등 연계 활동을 진행하는 형식이다. 독서 경험이 단순한 책 읽기에 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외부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텍스트 힙(Text Hip):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와 고유한 개성을 의미하는 힙을 합성한 신조어로, 독서를 멋지고 세련된 활동으로 인식하는 현상

사진설명 시작. 해당 사진은 임수연기자의 강연 사진이다. 사진의 가장 왼쪽에는 임수연 기자가 강의를 진행 중에 있다. 중간에는 임수연 기자의 강연 화면이 있다. 오른쪽으로는 강연을 듣고 있는 학생들의 뒷모습이 자리한다. 사진설명 끝.

프로그램 이수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됐다. 높은 호응도에 비해 지난 학기 화두를 완주한 학생은 적었다. 박 실무관은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많은 학생들에게 독서가 1순위가 되기는 어렵다”며 독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현상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박 실무관은 취업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독서가 경시되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며 “학생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독서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임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프로그램 이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꾸준한 모임 활동’이 참여를 지속시킨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박 실무관은 설문조사 결과 ‘독서모임에서는 친구들과 나누기 어려운 심오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서 위로를 받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토론에 계속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학생들의 지속적인 독서모임 참여를 이끌었다고 밝혔다.

사진설명 시작. 해당 사진은 독서클럽 화두의 10가지 지정도서 및 자율도서 사진이다. 가장 왼쪽에서부터

글쓰기 지원센터는 프로그램 이수자를 대상으로 다음 화두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시의성과 보편성을 고려해 그중 하나를 선정한다. 이번 학기엔 ‘고립’이 화두로 선정됐다. 『고립의 시대』와 『경청』이 지정도서다. 주제와 관련된 권장도서 목록도 제공된다.

책으로 이어진 느슨한 연대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독서모임에 참여할까? 하늘(가명) 씨는 신입생 때 들은 ‘문학과 영상’ 강의가 계기였다. 영화와 책을 바탕으로 교수자와 학생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수업에서 하늘 씨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책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하늘 씨를 화두로 이끌었다. 하늘 씨는 “화두에서는 사람들이 책을 매개로 모인다”며 “일상적인 대화보다는 책에 관련된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하늘 씨는 김보영 작가의 『종의 기원담』을 읽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 토론했던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친구들과는 민망해서 나누기 어려웠을 진지한 이야기도 화두에서는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다.

지정도서 역시 화두의 장점이다. 평소 문학을 즐겨 읽는 하늘 씨는 지정도서 덕분에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게 됐다. 도서를 추천한 모임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도서를 비판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다른 독서모임과 달랐다. 하늘 씨는 “모임원들과 함께 지정도서였던 『AI 지도책』의 해결방안이 너무 안일하다고 비판했던 기억이 난다”며 “책을 추천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생각 같았다”고 덧붙였다.

푸름(가명) 씨는 고립이라는 주제에 흥미를 느껴 화두에 참여했다. 사회학도인 푸름 씨는 전공 수업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살피는데, 고립은 늘 함께 다뤄지는 주제였다. 개인적인 동기도 있었다. 푸름 씨는 얼마 전 일본으로 혼자 떠난 여행에서 “인간은 어떻게든 관계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느꼈다”며 고립감이 인간의 삶에 주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화두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독서모임에선 깊이 있는 독서를 하기 수월하다. 토론을 준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푸름 씨는 “최근에 토론을 진행한 『고립의 시대』를 읽을 때도 저자인 노리나 허츠가 전제하고 있는 사회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읽었다”고 말했다. 모임에서만 얻을 수 있는 통찰도 있다. 푸름 씨는 독서모임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예상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느꼈다. 푸름 씨는 “책을 읽을 때 조원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예상하면서 읽는데, 실제 얘기를 나눠보면 예상이 맞을 때가 드물다”며, 그런 경험이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책 속에서 삶을 보다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독서를 사랑한다. 박주아 실무관은 독서가 생활엔 필수적이지 않아도 삶을 지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서는 간접경험의 보고이자 세계의 범주를 확장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박 실무관은 “책을 읽으면서 쌓이는 다채로운 삶의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설명 시작. 모임을 진행 중인 모임원들의 모습이다. 사진 가장 왼쪽에는 이번 모임 대상 도서인 고립의 시대가 자리한다. 오른쪽으로는 토론을 진행중인 노트북 두개가 보인다. 뒤쪽으로는 토론을 진행 중인 모임원이 차례로 보인다. 사진설명 끝.

하늘 씨 역시 이런 이유로 독서를 이어간다. 처음에는 단순히 멋있다는 이유로 시작했지만 책을 읽다보니 삶의 이유를 고민하게 만드는 독서의 매력에 빠졌다. 하늘 씨는 “어느 순간 책이 답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책을 통해 배우는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독서모임은 책을 매개로 세상을 확장하는 하늘 씨만의 방법이다. 스스로를 평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하늘 씨는 독서모임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을 즐긴다. 화두에는 다양한 전공의 학생이 모인다. 하늘 씨는 “AI라는 주제를 인문학도, 컴퓨터학도, 경제학도 등 다양한 전공자의 관점에서 동시에 바라볼 기회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푸름 씨는 독서를 통해 삶의 변화를 느낀다. 인생을 바꾼 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책을 통해 자신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독서모임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게 돕는다.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짐과 동시에 그 속의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며 독서와 독서모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대의 대학생에게 주어진 많은 과업은 우리를 독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당면한 목표의 성취와 무관해 보이는 독서는 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럼에도 타인을 이해하며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는 이유로 독서는 이어진다. 다음 학기에는 미래를 위해 달리던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화두와 함께 책으로 세계와 연결돼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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