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 퀴어로 살아가며 이 질문을 떠올릴 때 공간과 맺는 관계는 한층 복잡해진다. ‘벽장’, ‘커밍아웃’, ‘아웃팅*’ 같은 단어는 모두 공간의 안팎을 전제한다.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퀴어가 공간을 경험하는 실제적인 방식이다. 퀴어의 삶에서 공간은 자신을 얼마나 감추고 드러내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안정감을 느끼는 곳을 ‘내 집 같다’고들 표현하지만, 이성애 중심주의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원가정***은 퀴어에게 종종 낯설고 불편한 장소다. 그래서 퀴어들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또 다른 ‘내 집 같은 곳’을 찾아 나선다. 그들이 발견한 공간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아웃팅(outing): 성소수자의 동의 없이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타인에게 밝히는 행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결혼한 성인 남녀와 그들의 생물학적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을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관념
***원가정: 태어나고 자란 원래의 가정
K의 방
2년 넘게 같은 기숙사 방에 살고 있어요. 본가의 제 방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져요. 기숙사 살기 전엔 1년 정도 자취를 했어요. 애인이랑 동거하다시피 했거든요. 그때는 부모님이 예고 없이 집에 방문하기도 했는데 기숙사는 부모님이 못 들어오니까 더 편해요. 애인이랑 찍은 사진, 제가 퀴어라는 걸 아는 친구들이 써준 편지들을 붙여 놨어요. 본가에선 못했는데, 저만의 공간이 생기니까 방 꾸미는 게 재밌더라고요. 제 성 지향성을 아는 친구들이 가끔 놀러와요. 작년엔 본가에 갈 수 있어도 기숙사에서 지냈어요. 어머니한테 커밍아웃 했다가 상황이 안 좋아져서, 본가에서 별로 살고 싶지 않았어요. 기숙사 생활 환경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본가가 위협적인 공간이 된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공간이 기숙사였어요. 요즘은 다른 지역에 있는 애인 자취방도 자주 가요. 그곳에선 온전한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최근엔 기숙사도 애인 집도 본가도 다 조금씩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 공간 사이를 표류하는 느낌이 들어요.

원래 퀴어 친구가 별로 없었는데 서울에 있는 기숙사에 살면서 퀴어 커뮤니티 활동에 자주 참여했어요. 처음엔 이들과 맺는 관계들이 일탈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친구들과 연락을 이어나가며 일상 전반에 큰 변화가 생겼어요. 이전엔 학교생활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퀴어 정체성은 부차적인 영역이라 언젠간 벗어나거나 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막연히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긴 해요. 그런데 서울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제게 ‘별도의 삶’이 생긴 기분이에요. 그러다 보니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도, 별도의 삶을 떠올리며 균형을 잡을 수 있어요.
퀴어 친구들과 있을 땐 나를 좀 더 드러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엔 내 정체성을 밝힐 수 없는 사람들과 진심으로 친해질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모든 일상이 퀴어 정체성과 연결될 필요도 없고, 모두에게 내 퀴어 정체성을 밝히면서 살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여기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운영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며, 하나의 삶에 너무 집착하지 않게 됐어요. 어느 쪽이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느낌. 겹치는 면도 조금씩 있어서 더욱 두 삶이 함께 갈 수 있다고 느꼈고요. 첫 번째 삶의 공간이던 학교 안에서도 저와 비슷한 사람들, 혹은 저를 알아주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됐어요.
이후 거주지는 어디 취업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자취에 대한 낭만이 깨졌다가 요새 다시 생기고 있거든요. 저는 먹는 걸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나만의 주방이 있으면 좋겠는데, 기숙사엔 없으니까요. 애인을 데려올 공간도 있으면 좋겠고요. ‘나중에 독립하면 뭘 할까’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해요.
미래 주거에 관해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 중이에요. 큰 냉장고를 사야지, 부엌에서 이런저런 걸 해봐야지. 주변에 산책할 만한 곳이 있는 집으로 가서 자주 산책해야지. 그런 마음이 들죠.

일단 제가 ‘선택’한 공간이면 좋겠어요. 아까 말했던 ‘표류하는 공간’은 셋 다 제가 선택한 곳은 아니잖아요. 제 마음대로 구조를 바꿀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만큼 책임도 따르겠죠. 지금 기숙사에선 제가 할 일이 많이 없거든요. 편하긴 한데, 자취하는 주변 사람을 보면 공간에 대한 애정은 집을 가꾸는 데 얼마나 힘을 쏟는지에서 나오는 것 같거든요. 저는 기숙사가 좋지만 제 공간이라고 여길 때 생기는 책임감을 느끼진 않아요. 언젠가 떠날 테니까요. 제게 이상적인 공간은 선택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어요.
S의 방
원래 친구랑 같이 살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 월세가 너무 비싸잖아요. 마침 친구 룸메이트가 나간다고 하길래 시기가 맞아서 이사 왔어요.

원가정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퀴어 정체성으로만 환원되길 바라지 않아요. 당연히 그 영향도 있겠지만, 그 구체적인 영향이 문장화되지 않은 채 ‘그냥 퀴어라서’라고 끝나는 경우도 많잖아요. 하지만 모든 퀴어가 가족들과 불편하게 지내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저는 잘 못 지냈지만요. ‘이건 퀴어의 영향’, ‘이건 퀴어의 영향 아님’으로 말끔하게 나눌 수 없겠지만, 퀴어만으로 전부 설명되지 않는 이유가 분명히 여럿 있었어요.
제가 독립을 결정한 데엔 퀴어 정체성의 영향만큼 대단히 현실적인 이유도 있어요. 학부 졸업 때쯤 퀴어로 정체화를 하면서 꽤 긴 시간에 걸쳐 관심사나 세계관이 달라졌어요. 저는 언론사 취업을 준비했는데, 언론과 소수자의 시선 사이에 놓인 커다란 간극을 느꼈어요. 언론사 보도는 ‘보편적인 다수’를 향하다 보니, 소수자는 ‘불쌍하고 배려해야 하는 사람들’로 비춰져요. 보도 전반이 자신은 약자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기획돼요. 언론은 소수자의 삶이 변화하길 바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뻔한 말만 계속하는 거죠. 이런 생각을 갖고 어떻게 언론사에 합격하겠어요? 변화한 제게 맞는 자리를 찾거나, 제 일부를 잘라내야 했어요. 그러다가 대학원에 합격했어요. 한편으로는 ‘아저씨들이 뽑고 싶을 법한 남자 신입’ 행세를 해서 일간지에 합격했어요. 둘 중 저는 대학원을 선택했죠. 그랬더니 ‘너 알아서 살아라’ 하고 집에서 내쫓긴 거예요.
본가에 살 땐 가족들이 보지 못하게 다이어리를 꽁꽁 숨겨놨어요. 꼭 퀴어라 그런 건 아니고요. 퀴어가 아니어도 부모한테 숨기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들은 많으니까요. 하지만 퀴어로서 갖는 피해의식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첫 자취방에서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외출했을 때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다이어리를 펼치고 나갔을 때 진짜 내 공간이라고 느꼈어요.

저는 연인과 있을 때 편안함을 많이 느껴요. 그 편안함은 다른 세계와 단절됐다는 데서 오는 것 같아요. 제가 소수자라는 감각 자체는 크게 불편하진 않은데, 밖에서 연인과 같이 있을 땐 신경이 곤두서요. 퀴어의 피해의식은 실재하잖아요. 하루는 연인과 중식집에 갔는데, 우리가 그날 마지막 손님이었어요. 그런데 가게 마감 시간이 30분 남았는데 저희더러 나가라는 거예요. 다른 사정이 있었을 수 있겠죠. 그날은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거나, 딱 봐도 다 먹었는데 계속 대화만 나누고 있었으니까 그랬을 수 있겠죠. 그런데 대화를 듣다가 남자 둘이 연인 관계라는 걸 눈치채고, 꼴 보기 싫어서 나가라는 건가 싶었어요. 안 그럴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밖에서 데이트할 땐 늘 예민해져서 집에서 만나는 게 너무 좋아요. 집에 둘만 있으면 일상에서 얻은 스트레스와 커버링*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어요. 자취를 하지 않았다면 연애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에 밤을 함께 보낸다면 ‘텔(모텔)’을 가야 되는데, 거기가 쉬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우리는 그냥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인데.
*커버링(covering): 사회적 규범이나 주류 문화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행위
나이 든 퀴어의 삶을 떠올릴 때, 공동거주를 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미리 연습해야 해요. 공동거주가 당장 너무 불편하고 어렵고 가끔 실패하더라도, 생존을 위해선 계속 연습해야 하더라고요. 실천이 아닌 생존의 영역인 거죠. 꼭 연인과 같이 살아야 할지, 동성혼이 법제화된들 제가 결혼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마음 잘 맞는 친구 3명이서 넓은 집에서 살고 싶어요. 그러려면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해요.
혼자 살다 죽는 퀴어들 진짜 많지 않을까요? 제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건 한편으로는 ‘생존’을 위해서예요. 어떻게든 내가 조금씩 연결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혼자 남을 것 같아요. 저는 혼자 있으면 말도 안 되게 우울해질 때가 있어요. 요약하자면, 고립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같이 사는 거죠.

공동거주가 대단한 실천으로 풀이되길 원치 않아요. 이미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기도 하고요. 각자의 생존을 위해 공동거주가 늘어나야 한다고는 생각해요. 근데 공동거주를 운동과 실천의 영역에 위치시키면 대단히 능동적인 행위가 돼요. 저는 그것보단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으로서 공동거주가 좀 더 얘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퀴어들 중에 사회운동 안 하는 사람도, 인권에 관심 없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도 자기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서 공동거주를 연습해야 돼요.
공동거주의 일환인 ‘무지개집’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방이 무척 저렴하기 때문이에요. 금전적인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집을 제대로 갖추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을 싸게 재워줄 수 있는 곳이 퀴어들에게 너무 필요해요.
무지개집
무지개집은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성소수자 친화 공동주택이다. 공공이 주거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로 함께주택협동조합과 성소수자 당사자가 함께 지었다. 현재 성소수자와 퀴어 프렌들리(Queer friendly)한 비성소수자가 모여 살고있다. 거주 10년 차에 접어든 입주민 Z씨, 2년 차 입주민 M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무지개집 거주를 결정한 계기가 무엇인가.
Z 퀴어로 살며 나이 듦과 돌봄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가까운 지인들과 성소수자 공동주택에서 서로를 돌보며, 고독하지 않게 나이 들고 싶었다.
M 이사할 집을 찾던 중 무지개집에 공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수납공간이 많고 작은 발코니가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 회사와 가깝기도 해 입주를 결정했다.
무지개집에서의 일상은 이전 집에 살던 때와 어떤 차이가 있나.
Z 이전 집에선 이웃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무지개집 이웃들은 처음엔 가족 같은 공동체에 가까웠는데 십여 년이 지나며 적당한 거리를 둔 편안한 이웃 사이가 됐다.
M 이전에도 다양한 주거공간에서 지냈는데, 무지개집에선 전에 없던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이웃 간 교류가 활발하고, 공동의 문제를 함께 논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 덕분인 것 같다.
무지개집에 거주하며 ‘집’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화했나.
M 함께주택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집의 주인이라고 말한다. 조합과 거주 조합원 간 관계가 일반적인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와 크게 다르다. 내가 이곳에 거주하는 게 조합에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기보다는, 안정적인 거주를 위해 오히려 내가 조합을 이용하는 것 같다. 이전에 세입자로 살 때는 살다가 어느 순간 떠날 곳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더 복잡하다.
무지개집에 살며 퀴어 정체성을 잊거나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순간이 있나. 반대로, 퀴어 정체성을 과하게 의식하거나 생활 전반이 퀴어라는 틀로 해석돼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 적 있나.
Z 그렇지 않다. 퀴어 정체성을 24시간 내내 자각하고 있으며 여전히 중요하다. 한편, 외부에서 여러 정체성 중 ‘퀴어’라는 점만 부각해 무지개집 입주민을 바라보기도 한다.
M 나는 바이*고, 퀴어 정체성이 옅다. 일상에서 내가 퀴어라는 걸 크게 의식하지 않고, 퀴어 공동체에 속했다는 느낌도 별로 없다. 무지개집에 산다고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다만 무지개집 입주자들과는 좀 더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다. 밖에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며, 퀴어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골라야 했다.
*바이(bi): 바이섹슈얼, 양성애자
거주자끼리 어떻게 협력하거나 화합하나.
Z ‘협동조합’과 ‘공동주택’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월 1회 회의, 가끔 있는 소모임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발전한다. 함께 대응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면 협력한다.
M 월별 자치회의에서 여러 문제를 논의한다. 조합 사무국이 있지만, 일단 문제가 생기면 입주민들이 앞장선다. 눈 내린 날 집 앞을 쓰는 건 담당자를 정하지 않아도 누군가 하더라. 늘 다른 거주자들에게 고맙다.

무지개집 형태의 공동주거가 퀴어 커뮤니티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있다면 무엇일까.
Z 독립이나 안전한 거주공간을 꿈꾸는 퀴어들에게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M 집을 지은 초기 위기 상황인 퀴어에게 일부 방을 내줬다고 들었다. 이후 이용률이 낮아지고 문제가 생기며 공간 제공을 멈췄다. 우리끼리 안전하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무지개집이 다른 퀴어에게도 잠시 ‘비빌 언덕’이 되면 좋겠다.
현재 주거생활이 지속가능하다고 느끼나. 임시적이거나 고립감을 준다고 느낀 적은 없나.
Z 알 수 없다. 10년씩 사는 사람도 있고 1년만에 떠나는 사람도 있다.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집세 인상’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피치 못하게 떠날 일은 없다. 나 역시 여기가 평생 살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당장 떠날 순 없다고 생각한다.
M 1, 2년마다 집을 옮기는 생활을 계속 해온 탓에 실감은 안 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곳에서 오래 살고 싶다.
무지개집 거주가 사회적 실천이나 운동의 영역이라고 느낀 적 있나.
Z 그렇다. 그렇기에 인터뷰에 응했다.
M 사회적 의미야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집은 내게 ‘쉬는 곳’이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무지개집은 내게 좋은 집이다. 그 이상 비장해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더 많은 무지개집이 생기기 위한 제도적·사회적 조건에 무엇이 있을까.
Z 우선 집을 거주 공간이 아닌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인식하는 한국 사회의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집값 안정이 필수다. 또 집 구하기에 경제적 부담이 큰 서울에선 무지개집 같은 협동조합 형태의 주택을 현실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
M 퀴어들이 모여 사는 무지개집도 좋지만 이런 거주 형태가 모두에게 적합하지는 않다. 애초에 이런 공간이 따로 마련되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퀴어 친구들이 어디서든 걱정 없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그러려면 궁극적으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

무지개집의 가장 큰 한계가 무엇인가.
Z 한국에서 처음으로 생긴 공공연한 성소수자 공동주택이기에 모든 것이 도전인 동시에 한계다. 공동주택 고유의 문제와, 퀴어의 특수성으로 인한 문제가 있다. 최근엔 성소수자가 아닌 입주자가 늘면서 집의 정체성이 변화했다. 또 지속가능하려면 경제적 안정성 확보도 중요하다.
안전한 집은 어떤 곳인가.
Z 이웃이 내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집. 퀴어로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집.
M 내가 나임을 드러내도 불안하지 않은 곳.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무지개 깃발을 걸어두고, 택배 수령인 이름에 남자 이름을 쓰지 않아도 되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