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별들에게 기억공간을 묻다

사진 설명 시작. 이태원 참사 현장의

올해 5월,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참사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추모위원회(추모위원회)’가 꾸려졌다. 8월 진행된 첫 회의에서 추모 사업 전반을 다뤘고, 추후 추모기념관, 추모 공원,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추모에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태원 참사 3년,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참사를 기억해 왔을까. 국가 주도 추모 사업이 막 발을 뗀 지금, 10·29 이태원 참사 기억공간*을 따라가 봤다.

*기억공간: 추모비에 국한하지 않고 박물관, 공원 등 다양한 추모 공간을 아울러 지칭한다.

길 위 미완성의 기억

참사로부터 2년이 지난 2024년 10월, 성민(가명) 씨는 참사 현장을 찾았다. 그곳은 ‘10·29 기억과 안전의 길(기억과 안전의 길)’로 불렸다. 기억과 안전의 길은 참사 1주기인 2023년 10월, 서울시·행정안전부·용산구청 3개 행정기관과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시민대책회의),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족협의회)가 협력해 만들었다. 주기적으로 내용이 바뀌는 전광판 3개가 설치돼 있다. 성민 씨는 참사 당일 낮 이태원에 있었다. “매년 그맘때가 되면 참사 현장에 가보고 싶어요. 언제부턴가 여기는 청춘의 낭만뿐 아니라 슬픔이 공존하는 느낌이라 안타까워서 한 번씩 찾아오게 돼요.” 성민 씨는 사람들이 전광판을 통해 사회적 참사와 안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일상으로 돌아가 기억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억과 안전의 길을 기획한 권은비 미술작가는 두 가지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는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희생자를 포함해 현장에서 구조받지 못한 이들, 참사를 목격하고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들을 정확히 셀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피해자 파악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데 중요하지만, 현재까지도 모든 피해자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있다. 기억공간 바닥에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라는 표지석이 설치된 이유다.

두 번째 메시지는 ‘이 길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권은비 작가는 “한국 사회엔 참사 현장을 기억공간으로 탈바꿈한 좋은 선례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참사 현장은 그 자체가 증언이 되는 곳이기에 기억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쉽지 않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골목의 일부 구간이 사유지였기에 기억공간 조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가 참사를 은폐하고 축소하려 한 것 역시 기억공간 조성을 지연시켰다. 권 작가는 메시지를 통해 이러한 한국사회의 한계를 짚고자 했다. 또 기억공간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건 다 했다’가 아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고정된 동상이나 기념비가 아닌 수시로 내용이 바뀌는 전광판을 택했다.

기억공간은 ▲추모 형태 연구 ▲시행령 제정 ▲운영·관리 체계 수립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조성된다. 기억과 안전의 길 역시 행정적·법적 근거를 기반으로 계획됐다. 추모 공간을 일순간 설치했다가 철거하면 순간적으로 이목은 끌지라도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기억과 안전의 길은 장기 운영이 목표였기에 행정 부처, 유가족, 인근 상인 등 관련 주체와 꾸준히 의견을 나눴다. 앞으로도 기억과 안전의 길을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예정이다.

기억을 지키기 위한 투쟁, 공간으로 남다

참사 이튿날인 2022년 10월 30일, 서울광장을 포함해 서울 시내 30여 곳에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17개 시·도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고 명시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설치 협조 공문을 보냈다. 영정사진과 위패는 생략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사고’라는 명명은 이태원 참사의 책임이 개인에 있음을 뜻했고,* 이는 유가족들을 비롯해 일반 시민들이 사회적 참사를 애도하려 모이는 걸 어렵게 했다.

*정원옥, 「애도를 위하여: 10·29 이태원 참사」, 2023.

특히 이태원 참사는 희생자의 국적이 다양해 유가족들이 서로를 찾기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야 유가족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 정부의 도움은 없었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분투한 끝에 2022년 12월, 녹사평역 3번 출구 앞에 시민분향소가 차려졌다. 희생자들의 영정이 놓인 시민분향소는 ‘10·29 이태원참사 합동분향소(합동분향소)’로 명명됐다. 유가족들에게 합동분향소는 다른 가족과 마음 놓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시민대책회의 이미현 공동상황실장은 합동분향소가 “단지 사진뿐이더라도, 누군가에겐 내 아이가 있는 곳”이었다고 회고한다.

사진 설명 시작. 녹사평역 3번 출구 앞에 마련된

그러나 합동분향소 운영은 순탄치 않았다. 혐오 세력이 근처에 집회 신고를 하고 추모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故 김의진 씨 어머니 임현주 씨는 “초기부터 연대해 준 분들께 감사하다”면서도, 분향소를 둘러싼 혐오 세력에 대해선 “타인을 폄훼하는 말로는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할 텐데, 무엇을 위해 2차 가해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는 참사 발생 후 네 달이 지났음에도 추모시설 설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유가족들은 정부서울청사와 국가 기관들이 인접한 광화문광장 세종로공원을 분향소 후보지로 지목했다.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유가족의 요청을 불허하고 ‘참사 현장에서 500미터 이상 떨어진 12평의 반지하 공간이나 800미터 이상 떨어진 민간 건물’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결국 참사 100일째 되던 날, 유가족들은 서울광장에 기습적으로 분향소를 세웠다. 그러나 텐트는 비바람과 무더위에 취약했고, 서울시는 분향소를 불법시설로 규정해 매일 범칙금을 부과했다. 유가족 측은 진상규명에 진전이 있으면 분향소를 철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서울시는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2억이 넘는 변상금을 현재까지 갚아 나가고 있다.

사진 설명 시작. 별들의 집 내부, 밝은 실내 공간의 한쪽 벽면을 따라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다. 천장에는 별 모양 장식이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인조잔디가 깔려 있으며 곳곳에 꽃바구니가 놓여 있다. 사진 설명 끝.

2024년 5월 유가족 측은 합동분향소 이전 조건으로 ‘지하철역 인근 서울시 소유의 땅에 지어진 공공건물 1층’을 제시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건물주를 알 수 없는 건물, 지하철역 지하공간 등을 제안했다. 합동분향소를 둘러싼 유가족과 서울시의 갈등은 2024년 6월, 합동분향소가 남대문로 부림빌딩 1층 ‘별들의 집’으로 옮겨 가며 일단락됐다. 별들의 집은 ‘별이 된 희생자들의 집’, ‘그날 집으로 돌아와야 했을 사람들의 집’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2024년 11월 재이전해, 현재 경복궁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

진실을 향한 기억공간

사진 설명 시작. 별들의 집 내부에 걸린 세로로 긴 인포그래픽 형태의 게시물이다. 상단에는

진정한 애도를 위해선 진상규명이 필수적이다. 별들의 집 정식 명칭이 ‘임시 기억·소통공간’인 이유도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24년 5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된 후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출범한 지 약 1년이 지났지만, 올해 6월에야 조사가 개시됐다. 이미현 공동상황실장은 “사망진단서엔 밤 10시 15분이 사망 시간으로 나오지만, 희생자 중엔 10시 12분에 지하철역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은 사람도 있다”며 “유가족들은 사망진단서로는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기억과 애도를 이어가려는 시민들은 진상규명을 이어갈 동력이 된다. 유가족들이 공개된 장소에 분향소를 마련하려고 애쓴 이유 또한 여기 있다.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사이, 유가족들은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미현 공동상황실장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이 분향소를 방문해 참사의 일부 사실관계가 밝혀지기도 했다. 별들의 집에선 지금도 목격자 제보를 받고 있다.

하지만 생존자들이 기억공간에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이태원 참사를 향한 온라인상의 혐오에 두려움을 느껴 신원 노출을 꺼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추모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는 부산대 설문원 명예교수(문헌정보학과)는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향한 온라인상의 조롱과 왜곡은 피해자들을 향한 명백한 폭력”이라며 “피해자와 희생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목소리를 보존해 ‘이태원에 놀러 간 게 잘못’이란 잘못된 프레임을 걷어내고, ‘누구나 안전하게 놀 권리가 있다’는 명제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억공간은 진상규명을 통해 밝혀진 참사의 맥락을 기록하기도 한다. 참사의 구체적 상황이 공유될 때, 비로소 사회의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현 공동상황실장은 “참사가 전개된 과정과 그로 인한 피해를 함께 보여줘야, 사회적 참사가 왜 일어났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다”며 “이러한 맥락을 전시하는 공간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공공기록도 함께 전시돼야 한다. 설문원 명예교수는 “조사 과정에서 생산·수집된 기록은 물론 진상규명에 필요한 공공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며 기억공간을 방문한 이들이 각 행정기관의 기록물을 바탕으로 참사의 문제점과 재발 방지책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앞으로 만들어질 이태원 참사 기억공간에서는 진상규명과 기록, 시민 참여가 맞물려야 한다.

기억이 뿌리내리는 자리

기억공간은 소통의 장소가 돼야 한다. 별들의 집엔 방문객들이 서로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이미현 공동상황실장은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이태원 참사에 관심을 쏟고 조사 과정을 감시하지 않으면 진상규명이 순탄하게 진행되기 어렵다”며, 별들의 집이 시민과 유가족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기억을 공유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가족에겐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권은비 작가는 별들의 집을 기획하며 “참사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차를 한 잔 마시기도 하고, 회의도 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권 작가는 ‘추모’라고 할 때 연상되는 어두운 이미지와는 반대로 밝은 공간을 만들었다. 영정사진도 “유가족의 기억 속 희생자가 가장 예뻤던 순간의 사진”을 요청했다. 기억공간이 애도뿐 아니라, 희생자와 함께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사진 설명 시작. 다채로운 색상의 포스트잇이 빽빽하게 붙은 벽면. 각 메모에는 한국어와 영어 등 여러 언어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나아가 기억을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선 기록이 필수다. 권은비 작가는 “사회적 참사는 완결된 형태로 남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며 “미래 세대가 사회적 참사를 새롭게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민대책회의는 시민들이 남긴 메시지를 아카이빙하는 ‘이태원 기억 담기’ 사업을 3년째 이어오고 있다. 별들의 집 한편엔 참사 이후 시민들이 남긴 메시지가 보존돼 있다.

이러한 기록은 사회적 메시지로 확장된다. 봄동 씨는 대학 동아리에서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를 읽고 부원들과 별들의 집을 방문했다. “책엔 참사 희생자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인터뷰 형식으로 담겨 있어요. 별들의 집에서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니, 159명이라는 숫자가 진짜 ‘한 사람’이 사라진 것,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라는 게 실감났어요.”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비로소 이태원 참사를 ‘현실’로, 참사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설문원 명예교수는 “기록은 그 자체로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며 애도의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치열한 투쟁 끝에 만들어진 이태원 참사 기억공간엔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함께 새겨져 있다. 추모위원회는 피해자의 행적을 참사 원인으로 낙인찍고 추모 공간을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역사와 단절해야 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유가족 임현주 씨는 “누구나 이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 권리를 지닌다”는 게 이태원 참사 애도의 진정한 메시지라 전한다. 임 씨의 말대로 사회적 참사의 기억공간은 지나간 아픔을 기억하고, 동시에 우리 공동체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지 끊임없이 되묻는 곳이 돼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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