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음사
여행이란 단어는 모두에게 비슷한 이미지를 불러온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 목적지로의 여정, 그곳에서의 새로운 발견, 그리고 다시 집으로. 올가 토카르추크의 세계에서 여행자는 절단된 다리를 찾거나 죽은 아버지의 박제된 신체를 찾기 위해, 혹은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 낯선 여정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여행의 전형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116개의 파편화된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 『방랑자들』의 이야기다. 『방랑자들』은 연작 소설의 일반적인 작법을 따르는 대신 별자리 소설* 기법을 활용한다. 각 단편의 화자는 각자의 여행기를 풀어가고, 독자는 그 조각을 모아 전체적인 여행의 상을 그려낸다.
*별자리 소설(Constellation novel): 연대기적 흐름을 거부하고 단문이나 짤막한 삽화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올가 토카르추크 특유의 소설 기법
작품은 우리가 당연시해 온 여행의 전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토카르추크는 여행은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목표 지점에 다다르리라는 희망을 품은 채 떠나, 적절한 순간과 장소에 도착할 때 끝나는 여행은 없다. 세상 어딘가에 나에게 딱 들어맞는 완벽한 좌표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허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토카르추크가 생각하는 여행은 무엇일까. 여행 심리학을 강의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여행 심리학: 짧은 강연 I」에서 그는 여행의 본질을 ‘움직임’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늘 여행의 본질을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것’에 두지만 사실 여행이란 ‘방향만 있고 목적지는 없는 욕망이며, 여행하는 사람이란 그저 움직이는 사람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여행하는 세계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 토카르추크에게 세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존재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재구성되는 장(場)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선, 면, 구체, 그리고 일시적 배열뿐이다.
세계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절단된 다리에게 보내는 편지」 속 ‘필립’은 이성의 절대성을 믿는 인간의 초상을 보여준다. 그는 신이 부여한 이성의 힘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자신의 절단된 다리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해부도감을 바탕으로 신체를 분석하고, 전 세계의 표본을 찾아다녔음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둘러싼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다리가 왜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여행을 마친다. 「제자이면서 벗이었던 빌럼 판 호르선이 쓴 필립 페르헤이언의 이야기」 속 학자 역시 체액과 혈액을 제거하며 인체를 완벽하게 분석하려 시도하지만, 아무리 인체를 해부하고 조각내도 비밀은 밝혀지지 않는다.
이 여행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맹신하던 이성으로도 결코 세계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찾고자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으로 세상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
『방랑자들』에서 여행은 결국 삶에 대한 거대한 은유다. 세계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인간이 자신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과 맞닿는다. 여행의 대상인 세계가 고정된 실체가 아닌 관계의 그물망이듯, 우리의 정체성도 끝없이 변화하는 장이다. 삶은 하나의 완결된 서사가 아니라 수많은 상황과 우연, 사건들이 얽혀 만들어 내는 거대한 배열이다.
나아가 경계를 넘어서는 토카르추크의 시선도 엿볼 수 있다. 『방랑자들』은 여행하는 육체를 매개로, 지금껏 열등하다는 이유로 존재를 부정당한 모든 것을 세계로 불러낸다. 토카르추크는 전작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에서 질문했던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간극을 되묻는다. 그렇게 인간과 비인간, 이성과 감각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모든 ‘움직이는 존재들’—에게 연민과 존중의 시선을 보낸다.
토카르추크는 여행을 매개로, 끝없이 이동하며 관계 맺는 모든 존재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녀에게 여행한다는 것은 곧 산다는 것이며, 움직이는 한 우리는 여전히 세계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