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학우들에게

“제가 준비한 건 다 여쭤봤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녹음을 멈추면, 기자의 자리를 지키느라 꾹 참았던 말들이 그제야 하나둘 튀어나온다. 인터뷰가 끝나고 새로운 대화가 시작되는 때가 있다. ‘대학강의’를 주제로 한 이번 커버스토리에선 유독 녹음 바깥의 말들을 오래 생각했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했다며 인터뷰이에게 불쑥 고백하기도 했다. 합격했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결심했다는 말뿐인데, 윤여일 선생님께선 공부를 더 하겠다고 마음먹은 걸 축하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학문을 이어가겠다는 결심은 왜 축하받을 일일까. 세상이 이런데 책상에 앉아만 있어도 되겠냐는 의심을 그 순간 잠시나마 내려놨다. 기사엔 싣지 못할 장면이라는 걸 알았지만, 기사를 쓰는 내내 떠올릴 장면이라고 직감했다.

학생으로서 강의실을 다루는 건 생각보다 더 까다로웠다. 제대로 취재를 시작하기도 전에 기자들끼리 몇 시간을 떠들 만큼 할 말이 많은 주제라면, 기사를 읽을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의와 배움은 대학을 다니던 내내 우리 곁에 있던, 바로 그 일 아닌가. 허투루 썼다간 다 들통난다. 신중해야 했다.

감이 잘 잡히지 않아 인터뷰가 끝난 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조언을 구했다. 고병권 선생님께 “대체 글을 어떻게 쓰시냐”고 물었다. “그게 왜 중요한지 생각하면 글이 나오지 않지만, 그 자리에 누가 있을지를 생각하면 글이 써진다”는 말씀이 돌아왔다. 그 말을 되새기며 기사를 썼다. 강의실에 누가 있었더라.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다. 기사엔 싣지 못할 대화란 걸 알았지만, 기사를 구성하는 내내 떠올릴 대화라고 직감했다.

커버스토리를 함께 작성한 수림 기자, 지웅 기자와는 쉽게 비관하지 말자는 말을 자주 되뇌었다. 배움을 원하는 학생들은 이제 없다고, 대학에서 배움은 불가능하다고 쉽게 말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대학을 다니며 만난 이들의 얼굴, 열띤 토론이 오갔던 수업, 내 안에 뭔가 중요한 게 생겼다는 느낌이 들던 하굣길⋯. 이런 장면을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기사는 언제나 기사에 다 담을 수 없는 것들의 압력과 함께 시작된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선 특히 그랬다. 녹음이 끝난 뒤의 대화와 기사엔 다 싣지 못한 말과 표정을 내내 중요하게 담아뒀다. 언젠가 강의실 옆자리에서 함께 수업을 들었을 학생들에게, 친애하는 학우들에게, 기꺼이 보여줄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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