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학살은 끝나지 않았다

집단학살(genocide). ‘한 집단을 파괴하려는 의도적인 범죄 행위’에 붙은 이름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동성애자, 집시 등 1,100만 명을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국제사회가 집단학살을 인류 보편의 범죄로 정의한 발단이 됐다.

그리고 지난 2년, 이스라엘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단학살을 벌였다. 국제사회는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도, 묵인하거나 공모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미국의 압박으로 휴전에 합의했지만, 학살이 낳은 기근과 파괴, 상실의 고통은 그대로다. 아직 잊기엔 너무 이르다. 지난 2년간 팔레스타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스라엘은 무엇을 하고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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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동물’을 죽여라, 팔레스타인이 사라질 때까지

유엔 조사위원회는 9월 15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했다고 발표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이 집단학살로 규정된 다섯 행위 중 네 가지를 저질렀다는 결론이다. 이스라엘은 ①집단 구성원을 살해하고, ②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해를 가하고, ③집단을 파괴할 것으로 계산된 생활 조건을 강제하고, ④집단 내 출산을 막는 조치를 취했다.

집단학살은 단순히 전쟁에서 사람을 대량으로 죽이는 것과 다르다. 핵심은 이스라엘이 이 모든 행위를 ‘의도적으로’ 행했다는 점이다. 조사위원회는 이스라엘이 지정된 안전지대, 대피소에 있거나 피난 중인 민간인을 고의로 학살했다고 판단했다. 단지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이유로 표적이 된 것으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병원과 학교를 파괴하고, 의료진과 언론인, 구호 요원을 살해한 것도 마찬가지다. 현지 보건부에 따르면 2023년 10월 7일 이후 2년간 가자지구에서 6만 7천여 명이 살해됐는데, 이 중 대부분이 민간인이며 2만 명 이상이 어린이였다.

굶겨 죽이는 방법도 동원됐다. 유엔 통합식량안보단계(IPC)는 8월 가자지구에 식량위기 최고 단계인 ‘기근’을 선포했다. 기근은 인구의 최소 20%가 극심한 식량 부족을 겪는 상황에 선포된다. IPC에 따르면 가자지구 주민 50만 명 이상이 ‘굶주림과 죽음으로 내몰린 비참한 상황’에 처했다. 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이스라엘이 인위적으로 만든 재난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해 식량과 물을 통제하고 구호품 전달까지 막았다. 조사위원회는 이스라엘이 기아를 학살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이스라엘이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도 드러났다. 조사위원회는 이스라엘 지도부가 옷 벗기기, 성희롱, 강간 등을 군인들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군인이 여성 구금자의 나체를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사례도 보고됐다. 보고서는 이러한 성폭력이 팔레스타인 전체를 모욕하는 작전의 일부로서 자행됐다고 전한다.

“우리는 ‘인간동물’과 싸우고 있다.” 2023년 10월 9일 요아브 갈란트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남긴 말은 유대인을 쥐, 해충 따위로 묘사한 나치의 선전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타 집단을 비인간화해 도덕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집단학살의 초기 단계라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가자지구에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아이작 헤르조그 대통령), “단 하나의 목표는 지구상에서 가자 지구를 없애버리는 일”(니심 바투리 의회 부의장) 등의 발언에서, 조사위원회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집단 전체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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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은 백 년 전에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이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 주장한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데서 모든 사태가 비롯됐다는 논리다. 그러나 국제법의 판단은 다르다.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점령국은 피점령 지역 주민을 상대로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자위권: 국가가 무력공격을 받은 경우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국제법상 권리

구기연 교수(아시아연구소)는 “2023년 10월 이전 75년 이상의 역사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이 된 사람들과 그 후손이다. 1948년, 이스라엘은 무력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로 내쫓고, 그 땅에 이스라엘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최소 1만 5천 명이 죽고, 75만 명이 난민이 됐다.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건국 전쟁’으로 기념하지만, 팔레스타인 역사엔 외세의 침략으로 고향을 잃은 ‘나크바(대재앙)’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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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학자 일란 파페는 나크바가 시온주의자들이 계획한 인종청소*였다고 규정한다. 시온주의는 팔레스타인이 ‘신이 유대인에게 준 약속의 땅’이라고 믿으며 그곳에 유대인만의 국가를 세우고자 한 민족주의 운동이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학살하고 강제 추방하는 방식으로만 달성될 수 있었다. 시온주의 운동이 본격화되기 전 팔레스타인 영토에 사는 유대인은 전체 인구는 5% 미만이었고, 팔레스타인은 적어도 수백 년간 아랍계 토착민의 땅이었다.

*인종청소(ethnic cleansing): 특정 인종·민족·종교 집단을 한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제거하거나 추방하려는 행위

서구사회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나크바에 앞서 1917년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설립을 약속하고, 1947년엔 영토를 분할해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방안이 유엔에서 가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유럽 국가와 시온주의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결국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남긴 문제와 책임이 아무 상관 없는 팔레스타인에 전가된 셈이다.

1967년 이스라엘은 다시 전쟁을 일으켜 팔레스타인 난민이 머물던 가자지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영토 대부분을 점령했다. 지금까지 58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군사점령 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기본적인 이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이스라엘군의 승인 없이는 검문소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인종차별적 정책으로 의료, 교육 등 기초적인 삶의 조건을 제한하고 있다. 인종청소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몰수하고 불법 정착촌*을 확대해 왔다.

*불법 정착촌: 점령국이 자국 사람들을 점령지로 이전시켜 생겨난 거주지. 국제법상 불법이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에 어떤 실효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민중은 억압을 끝내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했고, 여러 민족해방운동 조직이 등장했다. 하마스는 그중 하나다. 점령지 팔레스타인의 무장 저항엔 국제법상 일정 부분 정당성이 인정된다. 이스라엘은 ‘테러단체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불법 점령했다고 주장하지만, 2006년 하마스는 유엔 감독하에 치러진 민주적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집단 책임을 묻겠다며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를 집단처벌로 규정했지만, 봉쇄는 계속됐다.

이후 가자지구는 ‘지상 최대의 야외 감옥’으로 불려 왔다. 이스라엘이 인구와 물자 이동을 전면 통제해, 연료나 의약품, 식량조차 이스라엘의 허가 없이는 반입될 수 없다. 가자지구에서 생산한 물건도 밖으로 출하할 수 없어 경제 활동이 마비됐다. 가자지구 인구의 90%가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한 채 극심한 빈곤 상황에 놓여 있지만, 탈출조차 불가능하다. 2023년 이전, 최소 16년 동안 이어져 온 현실이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뎡야핑 활동가는 그날이 “집단학살의 원인이 아니라 식민지배의 결과”라는 점을 짚는다. 가자지구 봉쇄 이후 이스라엘은 16년간 네 차례에 걸쳐 가자지구를 공격했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일란 파페는 하마스 전투원 대부분이 ‘이스라엘이 떨어뜨린 폭탄을 통해 폭력의 언어를 배운’ 청년이라며,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무결성을 요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하마스는 자신이 주도한 작전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인정하며,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을 통해 그 책임을 소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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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은폐하는 미디어

주류 미디어에서 2023년 10월 7일과 그 이후의 집단학살을 다룰 때, 불법 점령과 집단학살의 역사는 쉬이 은폐된다. 대신,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증오의 연쇄’가 비극을 낳았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졌다. 뎡야핑 활동가는 이스라엘과 서구가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을 하마스로 축소하고, 하마스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세력으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한다.

미디어는 집단학살을 제 이름으로 부르길 주저했다. 2024년 4월, 〈뉴욕타임스〉가 기자들에게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라는 용어 사용을 제한한 사실이 드러났다. ‘점령지’, ‘난민캠프’ 등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을 드러내는 표현은 물론, ‘팔레스타인’도 기피 대상에 올랐다. 집단학살이 놓일 자리엔 대신 ‘전쟁’이나 ‘분쟁’이 쓰였다. 사태를 대등한 두 국가 간 갈등처럼 묘사하는 표현이다.

뎡야핑 활동가는 “집단학살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단어들이 의도적으로 선별된다”고 말한다. 홀로코스트를 나치와 유대인의 전쟁이라고 표현하거나 일제강점기를 일본과 조선의 분쟁이라고 말하지 않듯, 집단학살을 전쟁이나 분쟁으로 부르면 그 본질이 은폐된다는 지적이다. 집단학살의 참상을 이야기할 때조차 가해국 이스라엘의 존재는 지워진다. 구기연 교수는 “집단학살을 논할 때 ‘주어’가 생략된다”며 마치 기근과 학살이 자연 발생한 것처럼 묘사되는 점을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퍼뜨린 정보를 언론이 검증 없이 전파하기도 했다. 2023년 10월 10일, 하마스가 아기 40명을 참수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이 그대로 보도됐고,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도 이를 사실인 양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사흘 만에 허위사실로 밝혀졌다. 또한, 이스라엘이 유엔 학교 등 공격이 금지된 시설을 폭격하며 ‘하마스가 무기를 숨겼다’고 주장하면, 언론은 그것만 사실인 것처럼 알렸다. 이러한 보도는 하마스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거나 판단을 유보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책임을 흐린다.

언론은 이스라엘의 정책과 군사적 행동에 대한 비판에 ‘유대인 혐오 확산’이나 ‘반유대주의 물결’ 등의 말을 덧씌우기도 한다. 미국 전역으로 확대된 가자학살 반대 시위를 다루며, 시위의 메시지보다는 ‘유대인 학생들의 공포감’을 강조하며 ‘반유대주의 시위’라고 보도하는 식이다. 그러나 유대인과 이스라엘인은 동일한 용어가 아니며, 팔레스타인 해방에 연대하는 유대인 공동체도 세계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JVP)’는 홀로코스트 기념일에 학살 종식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홀로코스트 기억의 유산이 무엇이 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트라우마를 이용해 집단학살을 지원하는 대신, 다른 이들이 같은 피해를 겪지 않도록 예방할 공동의 의무를 다할 것입니다.’

전 세계가 공모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과 무관할까. 구기연 교수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우리 모두 공모자”라고 지적한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지난 2년, 우리는 세계 각국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은밀히 동조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은 전 세계가 지원하는 무기와 자원 덕에 가능했다. 미국 브라운대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2023년 10월 이후 2년간 이스라엘에 최소 217억 달러(약 30조 6,000억 원)의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보고서는 미국의 지원 없이는 이스라엘이 군사 작전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3년까지 지난 10년 동안 700억 원 이상의 무기를 수출했으며, 2023년 10월 7일 이후에도 최소 18억 원어치의 무기를 수출했다. 전쟁 자금 마련에도 일조했다. 한국석유공사의 자회사 ‘다나 페트롤리엄’은 2023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수백억 규모의 팔레스타인 해역 천연가스 탐사권을 매입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전쟁 자금으로 쓰이며, 다나 페트롤리엄의 수익은 전부 한국석유공사의 몫이 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해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가스탐사 매매는 국제 인권법과 해양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다.

한국 기업이 만든 중장비가 가자지구 파괴에 사용되기도 한다. 프란체스카 알바네제 유엔 특별보고관은 지난 6월 보고서에서 HD현대와 두산이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불법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수출한 중장비는 가자지구 도시를 파괴하는 데 사용됐다. 보고서는 ‘많은 기업이 집단학살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이 계속되는 까닭’이라며 국제 범죄와 연관된 사업을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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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다

10월 10일, 휴전 합의 1단계가 발효됐다. 합의안의 핵심은 즉각 휴전과 인질 송환이다. 이에 따라 하마스는 이스라엘 인질 20명과 사망자 시신을 인도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포로 1,950명의 석방 조치에 착수했다. 이스라엘은 군을 철수하고 가자지구로의 인도적 지원 물자 반입을 허용했다. 팔레스타인 피난민 2백만 명은 학살의 중단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에 환호했다.

그러나 집단학살의 여파는 현재 진행형이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가자지구 주택의 92%가 파괴됐고, 인구 95%가 강제 이주했다. 가자지구 인구의 10%가 학살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했으며, 학교와 병원 등 지역사회 기반이 무너졌다. 농경지와 수원이 오염돼, 가자지구의 식량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0월 2일 유엔 보고서는 환경 파괴의 유산이 ‘수세대에 걸쳐 가자지구 주민의 건강과 복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번 휴전은 불안정한 일시 중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스라엘은 군 병력을 기존 위치에서 철수하고 재배치한 이후에도 여전히 가자지구의 53%에 주둔하게 된다. 휴전 발효 후인 10월 14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에게 총격을 가해 5명을 살해했다. 이스라엘군의 점령 지역 근처로 접근했다는 이유였다. 현지 언론 〈알자지라〉는 휴전 뒤에도 귀향하는 팔레스타인인을 향한 포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점령과 가자지구 통치에 관한 논의도 여전히 긴장 상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완전 철수를 바라지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완전한 비무장화를 주장한다. 앞서 지난 1월에도 임시 휴전 합의가 있었으나, 인질 석방 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이스라엘이 3월 18일 가자지구 공습을 재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여러 차례 “하마스 궤멸”을 외치며 군사작전이라는 이름의 학살을 재개하고 가자지구를 완전 점령할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즉, 집단학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3년이 시작이 아니었듯, 2025년이 끝이 아니다. 뎡야핑 활동가는 “78년 차를 맞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 역사에서 집단학살은 결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죽이고 몰아내고 들어선 자리에, 이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점령이 지속되는 한 집단학살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단체는 10월 9일 이번 휴전 합의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해 일시적 조치를 넘어 이스라엘 점령 종식을 촉구했다. 이들은 ‘휴전이 유지되더라도 집단학살과 극심한 식량난, 가자지구 절멸의 여파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를 이행하도록 강제해야 하고, 그들과 다른 가해자들에게 집단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년,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광경을 우리는 지켜만 봤다. 국제사회는 홀로코스트 이후 스스로 쌓아온 약속을 공허한 선언으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학살하고, 불법 점령을 해도 실질적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전 세계 어디서든 같은 범죄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집단학살은 끝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민중은 단순 동정이나 인도적 지원이 아닌 온전한 정의를 요구한다. 이스라엘의 점령 종식, 집단학살 책임자 처벌, 그리고 팔레스타인인의 자결권 보장.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다. 힘으로 내쫓고 죽여도 되는 세상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모든 시선을 팔레스타인에 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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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해방 연대 운동 ©스튜디오알

팔레스타인 해방으로 가는 길 위에서

이 집단학살 앞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한국에서, 전 세계에서. 2023년부터 한국 시민사회의 크고 작은 307개 단체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긴급행동)’을 구성해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도 그중 하나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뎡야핑 활동가는 2004년부터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 연대해 왔다. ‘뎡야핑’은 중국의 탁구 선수와 닮아 붙여진 활동명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와 군사점령 문제를 한국사회에 알리며 연대 활동을 이어온 그에게 팔레스타인 해방으로 함께 가는 길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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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팔레스타인은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하다. 일상에서 별로 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살은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단편적인 뉴스로만 잠깐 소비되고, 결국 다시 잊힌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일상에 팔레스타인을 넣어두고 잊지 말아야 한다. 홀로코스트를 멈출 수 없다면 목격자라도 돼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책임이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뭘 할 수 있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은 이스라엘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을 굉장히 많이 갖고 있다. 무기를 수출하고 있고, 많은 한국 기업이 이스라엘과 협력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라 한국 정부가 미얀마와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경험도 있다. 한국인으로서, 이스라엘과 공조하는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우리가 ‘식민지배를 겪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팔레스타인에 지는 책무’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의미였나.

홀로코스트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얘기할 때 ‘Never Again(결코 다시는)’이라는 표어를 쓴다. 이는 유대인 학살만 막자는 구호가 아니다.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겪은 식민지배도 우리만 다시 안 당하면 되는 일이 아니지 않나. 어떤 민족도 다시는 겪어선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다.

이스라엘은 일제강점기의 두 배가 넘는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배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로 사망한 이들 중엔 민간인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테러가 아닌 독립운동으로 기억한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 평화로운 방식의 저항만 강요할 수 있었을까? 팔레스타인의 무력 저항을 단지 테러로 일축할 수 없는 이유다.

미국이 패권을 쥐고 있는 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대란 본래 약자들의 것이고, 바로 그 이유로 하는 것이다. 미국보다 더 강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조건 속에서도 연대를 통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미국이 변해야 한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바꾸는 운동을 하고 있고, 우리가 그 과정에 함께하는 거다. ‘팔레스타인이 우리를 해방하리라’고 외치는 이유다. 약육강식의 논리로만 바라보면, 일상 속 부정의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나. 내가 겪는 부정의는 모두 나보다 많은 권력을 가진 이에게 당한 것일 텐데.

20년 넘게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이어왔다. 지치거나 무력해질 때는 없나. 그럼에도 멈출 수 없고, 멈춰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다면.

무력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피해자와 연대자를 끝없이 지치게 만드는 게 이스라엘을 비롯한 집단학살 가해자들의 전략이다. 이 사실을 알기에 굴할 수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에 연대했던 팔레스타인 활동가가 전해준 말을 기억한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도, 정말 목표가 실현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해방도 언젠가는 반드시 온다고 얘기해 줬다. 지금의 국면이 금방 끝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길이 팔레스타인 해방으로 가는 길이라면, 역사의 옳은 편에 서서 같이 싸워야 한다.

연대 운동의 전망은.

최근 한국에서도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한 BDS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무용계나 의료계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의 합류로 연대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친이스라엘 기업의 채용 홍보나 이스라엘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거부하는 것처럼 대학생도 할 수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활동이 나타나는 데서 운동의 성장을 느낀다. 새로운 연대자들을 만나는 것이 지금 유일한 기쁨이다. 여러분이 미래의 희망이다. 그 희망을 계속 보고 있다.

*BDS 운동: 불매(Boycott), 투자 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과 국제법 위반에 항의하는 비폭력 운동으로, 2005년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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