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일,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서울역 일대에서 청년·빈곤·노동·주거시민단체 공동행동(공동행동)이 진행됐다. 세계 주거의 날은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로, 주거권 보장을 위해 1986년 유엔이 지정했다. 참여 단체들은 “심화되는 주거 불평등 속에서 ‘권리로서의 집’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 ▲귀향길 선전전 ▲문화제를 개최했다.
‘주거권은 모두의 것’ 기자회견 열려
오후 1시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으로 공동행동의 막이 올랐다. 사회를 맡은 참여연대 주거조세팀 박희원 간사는 “집이 사는 공간이 아니라 파는 물건이 된 현실에서 집으로 인한 고통과 재난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부에 주거권 보호를 위한 실질적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참여자들은 ▲공공임대주택과 주거복지 확대 ▲세입자 보호 강화 ▲이윤 중심의 개발과 분양이 아닌 재건축·재개발 공공성 강화 ▲투기 규제 및 부동산 세제 강화 등을 촉구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이 첫 번째 발언에 나섰다. 이 위원장은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 구조가 필요하다”며 세입자의 권리가 소외되는 주거 공급 정책의 현실을 비판했다. 지자체의 주택 공급 사업이 노후 주택 철거와 재개발을 전제로 하는 한, 주거 안정을 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 위원장은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인해 사실상 주택 공급 순증 효과가 없다”며, “공급 중심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낡은 발상과 단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동작아트하우스 피해대책위원회 강다영 위원장은 일명 ‘깡통 매물’로 인한 피해 경험을 털어놓으며 전세사기 피해 보상과 대책을 촉구했다. 강 위원장은 “집은 삶의 기본인데, 왜 우리 사회에선 집을 고를 때 위험이 따르지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강 위원장은 주택 계약에 관여하는 주체들이 전세사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짚었다. 최근 가압류 절차에 들어선 ‘사당코브 청년안심주택’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도 마이크를 잡았다. 발언에 나선 임차인 A씨는 “보증보험이 가입된다던 서울시를 믿었는데, 너무 쉽게 배신당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조심하라는 충고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제도, 책임지는 행정, 함께 서주는 사회”라며 서울시의 책임 있는 태도를 강조했다. 발언을 마친 후 참여자들은 “보름달 아래, 집은 권리다” 모두의 주거권을 선언하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이후 공동행동은 귀향길 선전전에 나서 서울역에서 시민들에게 세계 주거의 날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달 비치는 모든 곳에 차별 없기를’ 밀려난 이들을 위한 문화제

오후 7시, 서울역 12번 출구 앞에서 주거권 문화제가 열렸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30여 년간 살아온 노인, 서울역 근처 공원에 사는 노숙인 등 다양한 시민이 자리했다. 주최 측은 참여자에게 송편을 나눠줬다.

정책 틈바구니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해 온 활동가들의 발언으로 문화제를 열었다. “한 달간 지인들로부터 아는 사람들이 전세사기를 당했으니 도와달라는 연락을 10건 이상 받았다”고 운을 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이철빈 공동위원장은 “깨끗하고 안전한 집은 권리관계가 위험하고, 권리관계가 안전한 집은 낡고 위험한 집”이라며 임대인이 처한 모순적인 현실을 지적했다. 전국철거민연합 김소연 조직국장은 “주거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는데, 개발지구에선 기본권을 무시한 개발법이 상위법이 된다”며 철거민에게 강제 퇴거와 강제 이주를 강요하는 현행 재개발 방식을 비판했다.

이어서 ‘추석맞이 소원을 말해봐’ 코너가 진행됐다.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집 걱정 없이 공공임대를 받을 수 있는 도시가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적은 시민은 “지난 7월부터 동자동에서 살면서, 이웃들이 고통 없는 집에서 건강하게 사는 삶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현장 인터뷰에선 튼튼한 집에서 사는 일이 빈곤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 진행된 ‘미니토크’ 코너에서 참여자들은 각자의 주거 현실에 얽힌 경험을 풀어냈다. 자신을 ‘동자동 방범대장’이라고 소개한 최갑일 씨는 “추석이면 이웃들과 같이 음식을 먹고 위안을 나눈다”며 쪽방촌의 명절 풍경을 전했다. 최근 아파트에 입주한 박종만 씨는 “서울시에서 향후 5년간 쪽방에 살던 때만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철회했다”며 목욕탕, 식당 지원이 끊겼다고 아쉬워했다. 미니토크 도중, 고층 빌딩에 가려 보이지 않던 달이 모습을 드러내 참여자 사이에 환호성이 일기도 했다.

대림동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가수 안산하 씨는 노래 공연을 펼쳤다. 안 씨는 꽃다지의 ‘주문’으로 무대를 시작했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되뇌었던 노래가 있다”며 자작곡을 공개했다. 이어 안치환의 ‘흔들리지 않게’를 모두 함께 부르며 공연을 마쳤다.
연대발언에선 주거권 실현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와 연결된다는 말이 나왔다. 기후정의동맹 은혜 집행위원장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에게 기후위기 피해가 제일 먼저 닥친다”며 반지하 침수로 인한 잇따른 참사를 애도했다.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권순부 사무국장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쉼터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린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있다”며 주거권 사각지대를 언급했다. 권 사무국장은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아, 임대주택 분양은커녕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혐오와 차별을 없애는 일과 주거권 보장의 폭을 넓히는 길이 다르지 않다는 연대의 목소리를 더했다.
마지막 순서로 참여자들은 집이 상품이 아닌 권리라는 내용을 담은 ‘우리의 다짐’을 낭독하며, 공동행동은 막을 내렸다. 이날 공동행동은 모든 사람의 주거권이 실현된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
“보름달 아래, 집은 권리다!” 모두의 주거권을 선언한다
집은 인권이다. 그런데 이 인간다운 삶을 구성하는 집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내몰리고 있다. 또 누군가는 집 때문에 혹은 집이 아닌 시설이나 거처, 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다. 2009년 용산참사, 2018년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2020년 한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산재 사망한 이주노동자, 2022년 반지하 수해참사, 지금도 끝나지 않은 전세사기까지. 재난과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
집은 상품이 아니다. 그러나 투기와 불안을 부추기는 분위기 속에서 집은 ‘영끌’해서라도 사야만 하는 것으로 전락한다. 이윤을 위해 집을 부수고 짓는 일은 언제나 장려된다. 집으로 거둔 불로소득은 제대로 과세되지 않고, 누더기 세금에도 ‘폭탄’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지난 6년간 집부자 10명이 4천 채가 넘는 집을 사들였고, 상위 10%의 자산 점유율이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집값을 떠받치기 위한 부동산 정책은 불평등을 가속화한다.
그럼에도 집은 권리다. 추석 보름달 아래, 모두에게 집은 권리다. 달빛은 집과 땅이 없어도, 머물 곳과 돌아갈 곳이 없어도 모두에게 똑같이 드리운다. 우리에겐 권리가 있다. 그러니까 박탈된 권리라면 되찾자. 지연된 권리라면 앞당기자. 온전한 터전과 안식처가 필요한 이들과 연대하자.
유엔은 매년 10월 첫째주 월요일을 ‘세계 주거의 날’로 정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적절한 주거, 안정적인 정주의 권리 보장”을 위한 지구적 책임을 이야기한다. 2025년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상품이 아닌 권리로서의 집을 거듭 선언한다. 쪽방주민의 이름으로, 전세사기 피해자의 이름으로, 홈리스의 이름으로, 청소년과 여성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모든 우리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하나, 우리는 누구도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고 적정한 주거 공간에서 거주할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한다. 공공임대주택과 지원주택을 확대하라. 관련 예산과 공급목표를 실질적으로 확충하고, 도심 내 매입임대주택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또한, 최저주거기준을 개선하고 강행력 있는 주거·안전기준을 마련하라. 연령, 결혼 여부, 가구 형태, 국적, 장애, 성별 또는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이 없는 주거복지 정책을 수립하라.
하나, 우리는 보증금을 떼이지 않는 것은 물론, 임대차 계약 전반에서 세입자 권리를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주택임대차 거래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세입자의 계약갱신권을 확대하며, 임대차 행정을 강화해야 한다. 그 밖에 과도한 전세보증금을 규제하고 전세대출·보험에 대한 관리 감독과 더불어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전세사기특별법을 개정하라.
하나, 우리는 이익만을 우선하는 개발과 분양을 거부한다. 공공분양주택은 반드시 공공주택사업자에게 환매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환매조건부 분양주택으로 공급하라. 공공임대주택 공급비율 확대, 개발이익 환수 강화 등 재개발·재건축, 소규모 정비사업 등 정비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라.
하나, 우리는 투기를 조장하는 세금 완화, 규제 완화를 거부한다. 양도소득세 및 종합부동산세 감면 규정을 축소해 부동산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라. 분양주택 전매제한과 실거주 의무를 강화하고,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전면 실시하라.
오늘 우리의 선언과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집으로 인한 절망과 불행을 끝장내고, 집 걱정 없는 세상을 향한 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함께 나아가자. 모두를 위한 주거권 실현에 나서자. 함께 외치자.
집은 인권이다. 집은 상품이 아니다. 집은 권리다.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라!
2025년 10월 1일
2025 세계주거의날 공동행동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