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그 선율 참 이상하다

찝찝한 안익태 탄생 100주년photo1올해는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가 태어난 지 100년 째 되는 해다.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학술토론회가 열리고 애국가에 대한 연구가 잇따르는 등 음악계는 분주하게 움직였다.지난 8월엔 안익태 탄생 100주년 기념 와인이 출시되기도 했다.애국가의 작곡자가 탄생 100주년을 맞았으니 축제분위기를 만들어도 좋을 듯 하지만 속사정은 그리 편치 않다.

찝찝한 안익태 탄생 100주년

photo1올해는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가 태어난 지 100년 째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학술토론회가 열리고 애국가에 대한 연구가 잇따르는 등 음악계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난 8월엔 안익태 탄생 100주년 기념 와인이 출시되기도 했다. 애국가의 작곡자가 탄생 100주년을 맞았으니 축제분위기를 만들어도 좋을 듯 하지만 속사정은 그리 편치 않다. 올해 초 한 독일 유학생이 제기한 안익태의 친일문제 때문이다. 독일 유학생 송병욱(39, 훔볼트대 음악·연극학 석사과정)씨가 월간 「객석」에 3월부터 두달간 연재한 ‘우리에게 안익태는 누구인가’라는 글에서 독일 문서보관서 산하 필름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필름을 확인한 결과를 밝히며 논란은 시작되었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안익태의 두 작품-‘강천성악(降天聲樂)’과 ‘만주국’-을 분석한다. ‘강천성악’은 고노에 히데마로의 교향시 ‘에텐라쿠(越天樂)’와 형식과 구조면에서 많은 유사점이 있을 뿐 아니라 제목 역시 의미에서 큰 차이가 없다. 두 곡의 주제 선율은 일본 작곡가들에 의해 자주 편곡되던 일본의 전통음악이다. 따라서 ‘강천성악’은 안익태 자신의 ‘에텐라쿠’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문제는 해방이후 안익태가 더 이상 ‘에텐라쿠’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고 ‘강천성악’으로 이름을 바꾸고 아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 것이다.photo4송 씨가 글에서 밝힌 필름엔 1942년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열렸던 ‘만주국 창립 10주년 기념 연주회’가 담겨져 있다. 무대 중앙에 대형 일장기가 세로로 내걸린 연주회에서 안익태는 지휘를 했을 뿐 아니라 만주국의 영광을 기리는 내용의 관현악곡 ‘만주국’을 작곡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악보도 없었고 안익태의 작품 연보에도 올라 있지 않았던 이 작품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환상곡’의 선율 일부가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독일주재 일본 외교관이었던 이하라 고이치가 쓴 합창부분의 가사 또한 노골적으로 전쟁을 미화하고 있었다.“10년 세월 제국은 무르익었다. 부지런한 땀은 보답 받았네. 민중은 환호한다. 나라는 저 멀리 빛난다./하나의 생각으로 통일되어 사람들은 희망에 차 번성한다. 난(蘭)은 환히 피었고 새 질서의 첫 열매가./우리는 일본과 굳건히 연결되었네. 이 신성한 목표 속에 하나의 심장과도 같이,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네. 독일이여 또한 이탈리아여 힘을 냅시다./영원한 봄날은 이미 가까이 왔네. 모든 족속 만족해 할 그날이. 보라! 저 만주 평원 위에, 향기로운 난이 활짝 피었다.”되풀이되는 애국가 논란애국가에 대한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1964년에 제3회 서울 국제음악제에 초대된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는 애국가의 가락이 불가리아 민요인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 ‘오 도브루자 땅이여’)〉와 많이 닮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1935년이고, 그가 처음으로 유럽에 간 것은 이듬해인 1936년이었기 때문에 그가 불가리아 민요를 접했을 가능성은 낮다’며 일축했지만 표절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사가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그동안 애국가 작사자를 놓고 윤치호설, 안창호설, 김인식설, 최병헌설, 민영환설, 윤치호·최병헌 합작설 등이 제기 됐으나 지금은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대립해 있다. 2004년 「조선일보」는 미국에서 공개된 ‘National Anthems―And How They came to be written’이 애국가의 작사가를 윤치호로 명기하고 있음을 전했지만 학계의 대립은 여전하다. 이광수는 그의 글을 통해 애국가의 작사가가 안창호임을 확실하게 밝혔고 윤치호는 해방 이후에 가서야 애국가의 작사가가 자신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음악 내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4도 도약하며 시작하는 첫 소절의 ‘동-해’는 분명 못갖춘마디의 리듬에 집어 넣어야 정상이다. 이 부분이 뒤로 한 박자씩 밀리면서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에서 호흡은 사라져 버렸다. 경기장에서 연주되는 애국가의 전주 마지막 박자에 들어가는 심벌즈 소리가 없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한 박자 당겨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것이다. 표절 논란이 일었던 불가리아 민요나 최근 애국가를 편곡해 부른 윤도현과 DJ DOC의 노래를 들어도 모두 못갖춘마디로 바꾼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원곡 그대로 강박에서 시작한다면 아예 음악을 진행시키기도 어려울 정도로 유치한 가락이 되어 버린다. 사실 윤도현과 DJ DOC는 애국가를 바꾼 게 아니라 바로잡은 셈이다. 애국가를 바꾸자고?!작곡자의 친일문제가 불거지면서 애국가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동은 교수(중앙대, 국악이론)는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안익태는 일찍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기 때문에 가장 자유로운 작곡가였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민족적인 음악가라고 여겨왔는데 일제를 찬양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었을 뿐”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서 그는 “‘만주 환상곡’의 주제를 살펴보면 요나누키 장음계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본풍 음악을 그대로 ‘한국 환상곡’에 가져왔고 해방 후에도 몇 차례 개작을 했지만 끝내 버리지 못했다”면서 민족음악가로 알려진 안익태의 작품에 일본 음악이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지적했다. 안익태의 작품 ‘강천성악’에 대해서는 “일본이 가장 자랑하는 음악인 ‘에텐라쿠’의 선율을 그대로 빌려왔다”면서 “천황을 찬양하는 곡으로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가장 먼저 강제적으로 가르친 곡을 조선시대 아악으로 위장해 설명했다”고 비판했다. photo2노동은 교수는 기존의 애국가를 폐기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애국가는 해방 이후 교육을 통해 확립된 국가다. 새로운 양식으로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누가 작곡하는가가 문제가 된다면 공모하면 된다. 과거에도 새로운 애국가를 공모형식으로 받았던 적이 있던 만큼 공모의 역사는 깊다. 가사는 그대로 사용해도 되겠지만 통일에 대한 염원이나 세계로 진출하는 민족의 기상을 노래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례」와 「한국일보」 등의 언론은 기사와 사설을 통해 일제의 침략을 칭송한 작곡가의 노래를 국가로 삼을 수 없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안익태가 여러 차례 독립을 소원하는 발언을 하는 등 그동안 항일 정신을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온 사실을 들어 제기된 의혹을 엄중히 규명하는 것이 우선임을 지적했다. 안익태 기념재단에 따르면 안익태의 민족정신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는 1918년 숭실 중학교에 입학해 친일교사 축출의 주동자가 돼 정학 처분을 받았고, 3·1운동 때는 왜경의 추적을 받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외국가락의 애국가를 듣고 새로운 애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는 이야기도 사뭇 감동적이다.애국가는 누구의 것인가?지난 4월 7일 국가상징연구회가 개최한 ‘애국가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관한 토론회’에서 김연갑 연구위원은 “친일파 최남선이 독립선언문을 기초했다고 독립선언문을 없애야 하느냐”며 안익태의 친일문제와 애국가 교체론은 별개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음악대학의 정태봉(작곡)교수도 인터뷰를 통해 “애국가는 나라를 대표하는 노래로 나름의 역사성을 획득했다”면서 “누가 작곡했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독일 국가도 당시 오스트리아에 살았고 독일 땅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던 하이든이 작곡을 했고,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혁명 당시 군 장교가 만든 곡으로 내용이 다소 과격하지만 여전히 그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국가는 더 이상 안익태 개인의 곡이 아닌 우리 민족 전체의 노래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음악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의 국가를 들어 봐도 예술적으로는 형편없는 것들이 많다”며 “애국가를 굳이 예술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는 없고 단지 감동을 주고 국민을 하나로 묶는 기능만 있으면 된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표절 논란에 대해서는 “우리 민요 중에도 비슷한 곡이 많고 역사 속의 모든 곡을 대조해 본다면 수많은 표절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단점을 부각시키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그럴 때마다 계속해서 교체해 나갈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photo3한편 송병욱 씨는 글의 마지막에 안익태가 한국 현대음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그 연구가 매우 미약함을 지적하고 “안익태는 한국 음악가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연구하고 그에게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찬미나 미화가 되어서는 안 되며 반대로 근거 없는 평가 절하와 비판으로 연결 되는 것도 옳지 않다”며 그의 활동과 행적을 낱낱이 밝혀 내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연구 중에 지금까지 알고 있던 ‘애국자’ 안익태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면서도 “안익태 선생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상황에서 안익태를 곧바로 친일파로 연결하려는 듯한 성급함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교체냐 발전이냐모든 논란은 오는 11월에 있을 학술대회에서 진위가 밝혀질 것이다. 애국가의 교체논란과 별개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안익태의 친일행위를 밝히고 이에 따른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분명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노동은 교수는 “누구에게나 공과가 있다. 문제는 한국 음악계가 친일 작곡가들에 대해 공만 강조하고 과에 대해서는 눈감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그 공이 취약하다면 애써서 두둔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애국가 교체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정태봉 교수는 “모든 국민이 원하거나 혹은 통일이 된다든지 새로운 나라가 들어선다든지 하는 일이 아니라면 애국가의 교체는 무리”라고 했지만 “더 좋은 관현악법으로 편곡하는 등의 발전은 필요하다”며 교체 논의가 아닌 발전 논의로 방향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새로운 국가를 갖게 될지 아니면 더 좋은 애국가를 듣게 될지는 더 기다려 봐야 할 것이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동티모르에 사랑과 평화를

다음 기사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가 일본 동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