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기자가 만난 새내기 성우 씨는 501번 버스 뒷자리에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501은 대학동에서 출발해 광화문을 찍고 다시 대학동으로 돌아오는 간선 버스다. 나도 501을 좋아한다. 차창 밖으로 눈을 돌리면 노들섬과 한강이 펼쳐지고, 63빌딩이 솟아있고, 서울역과 광화문이 지나간다. 서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때깔 좋은 풍경이다.
하지만 스무 살에 내가 상경해 둥지를 튼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은 그 ‘서울’과는 사뭇 달랐다. 뒤죽박죽 어지러운 간판, 우중충한 거리, 습한 날이면 코끝에 스미는 하수구 냄새. 이곳이 지긋할 때면 ‘예쁜 동네’를 찾아 서울 어딘가로 떠났다. 졸업해서 그리로 이사 갈 날을 기다렸다. 이곳에 이렇게나 오래 머무르게 될 줄,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서울대생들 역시 시선은 항상 관악구 밖을 향해 있었다. 언젠간 이곳을 벗어나 더 반듯하고 번쩍이는 동네로 가고 싶어했다. 사람들은 ‘관악구’ 하면 곧잘 ‘서울대’를 떠올리지만 정작 서울대생은 관악을 잘 모른다. 샤로수길 맛집은 꿰고 있어도, 관악에 반지하가 얼마나 많은지, 고시원과 옥탑방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나고 죽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관악에 있으면서도 관악에 없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삶은 내가 발 딛은 땅 위에서 흘러간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들과 마주친다. 고시생, 이주노동자, 어딘가로 출근하는 사회초년생들, 어떤 이유로든 이곳에 흘러든 이웃들. 저마다 잘 살기 위해, 살 곳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보자고, 우리가 선 자리를 한 번쯤 제대로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며 거듭 떠올린 생각이다.
하루 끝, 관악구로 돌아올 때도 어김없이 501에 오른다. 하행 버스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보이면, 그제야 긴장이 풀린다. 내가 아는 곳,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돌아왔다는 감각. 어느새 관악구를 고향처럼 여기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에 머무는 이들 모두에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허락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