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하고, 비상행동이 해체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무대가 설치되고 각양각색 깃발이 나부끼던 광화문엔 언제 그랬냐는 듯 차들이 쌩쌩 달립니다. 응원봉을 들고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아주 예전 같습니다.
이쯤에서 〈서울대저널〉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지난겨울 광장의 불씨는 어디로 갔나요. 우리는 12.3 내란 이전보다 나아진 세상에서 살고 있나요. 광장을 달궜던 이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두 손 모아 염원하던 것들이 이뤄졌나요. 오늘 당신의 하루는 안녕한가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 이들과 답을 찾아가려 합니다. 기고는 하반기에 발행되는 세 호에 나눠 수록됩니다.
193, 194호 추가 기고자 모집 bit.ly/광장이후

민
책과 음악, 영화가 보여주는 다양한 세상을 따라 걷습니다. 잊히지 않는 순간들을 글로 기록합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간의 본질은 결국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나 역시 12.3 내란 이후 변화한 삶을 살며, 존재와 삶의 의미가 꽤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점에서 이 글은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고백이자, 동시에 지금의 나를 존재케 한 흔적에 대한 기록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
나는 오랫동안 사르트르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사회문제보다는 내 미래와 생계를 먼저 생각하는, 흔히 말하는 소시민으로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다고 했던가.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엔 예상치 못했던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그날 밤 나는 군이 국회를 점거한 모습과 거리로 나선 시민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그제야 내 일상이 사회적 사건과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있는지 깨달았다. 처음으로 나의 무지함이 부끄러웠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까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는 체했다는 것을. 그리고 무심코 내뱉은 과거의 말들이 나를 좀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일까지.
하지만 부끄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차별과 불평등의 사회에서 평등의 싹을 틔워내려 노력하는 이들이 광장에 있음을 보았으니 말이다. 꽃다지의 노래 ‘주문’의 ‘저들이 말하는 국민 중에 너와 나는 간데없고’라는 가사처럼, 권력은 지지자와 비(非)지지자로 시민을 가르고 있었다. 그에 맞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들고 온 형형색색의 깃발을 휘날렸다. 그 깃발들은 단지 천 조각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존재의 외침이자, 소수자성과 포용성의 상징. 그것이 깃발이 의미하는 바였다. 나는 그 모습에 매료돼 광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광장이 나를 각성시킨 것은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한국사회에서 광장은 언제나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이는 곳이었다. 1960년 4월 혁명과 1987년 6월 항쟁부터, 2016년의 촛불혁명과 2024년 지금까지. 광장은 늘 시민들의 심장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광장으로 나오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이제 나는 그 역사적 발걸음 옆에서 내 작은 걸음을 맞춰 걷게 됐다. 하지만 광장이 언제나 희망찬 건 아니었다. 소외된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광장은 결말이 아니라 언제나 다음을 위해 우리를 불러내는 자리일 것이다.
연대라는 감각
광장에서 나는 실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동료를 가슴에 품은 노동자들, 정치인들의 입속에서 가십거리와 조롱거리로 전락한 장애인들,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외치지 못하는 성소수자들. 모두 사연은 달랐지만 다 함께 광장에 모인 그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연대라는 감정을 마주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내란 세력 척결하자! 차별 없는 세상!”을 외치던 순간들이 귓가에 생생하다.
시간이 지나 4월 4일,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파면됐다. 참으로 길었던 4개월이었다. 대부분의 시민은 새벽을 건너 아침으로 갈 거라는 기대를 안고 흔히 말하는 ‘현생’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4.3은 제주도민들이 좌익을 중심으로 일으킨 폭동”이라던 대통령 후보는 40%가 넘는 득표율을 얻었고, “동성애는 공산주의 혁명의 중요한 핵심적 수단”이라 떠들던 안창호는 여전히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여전했다.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며 성적 지향에 대해 왜곡된 발언을 한 국회의원은 국무총리가 됐다. 내가 바라던 미래는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잠시 좌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전만큼 무기력하지 않았다. 광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본질이란 나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 삶에서 얼마나 다양한 장애물을 발견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나는 조금은 달라진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할 준비가 된 것 같다.
광장의 양면성
광장은 늘 변화의 상징이었다. 얼핏 보면 거대한 권력 앞에서 개인은 무력해 보였지만 개인이 모여 변화의 주체가 된 순간 결과는 분명 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엔 언제나 광장이 있었다.
그러나 광장은 분명 현실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장소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각자의 열망을 안고 모인 만큼 광장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했다. 하지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는 분명한 위계가 있었다. 유명 정당 정치인들은 단상에 올라 ‘장애’와 같은 특정 단어를 비하의 용도로 사용하는 무지함을 보여줬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침범하며 자신의 발언을 이어가기까지 했다. 소위 ‘내로남불’*이라 불리는 사고관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소리는 주목받았으며, 사회적 약자들과 오랜 시간 광장을 지켜온 이들의 목소리는 ‘윤석열 탄핵을 위해 달려가야 한다’는 정치적 대의명분에 묻혔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자기 일에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태도를 뜻한다.
광장은 겉으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처럼 보였지만, 가끔 특정 의제와 언어만이 유독 환영받는 폭력적인 공간의 모습도 보여줬다. ‘연대’를 배우고 경험하게 한 것도 광장이었고, 때론 ‘연대’를 소외시킨 것 또한 광장이었다.
광장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광장은 언제나 모순 속에서 우리를 부른다. 성취는 종말을 부르고, 해체는 다시 소환을 부르는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광장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1960년부터 2024년까지. 그때마다 모인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오른다. 결국 광장은 끝없는 존재이자, ‘다시’라는 단어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기고를 쓰는 지금, 기고만큼이나 관심 가는 일이 있다. 이틀 뒤인 8월 29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600일간 세계 최장기간 고공농성을 이어온 박정혜 동지가 마침내 땅으로 내려온다.* 그날도 사람들은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드러낼 것이다. 결국, 광장은 그 자체의 형태에 구속되지 않는다.
*2024년 1월 8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모회사 니코덴코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공장 옥상에 오른 박정혜 수석지부장은, 노사 대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당·정·대의 약속에 2025년 8월 29일 땅으로 내려왔다.
광장은 꼭 집회나 시위에 나와야만 완성되지 않는다. 작은 행동으로 지지와 연대를 보여주는 순간 역시 광장이다. 나도 학교와 정당 산하 조직활동 속에서 그렇게 나만의 광장을 이어가고 있다. 비상계엄 같은 극단적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로 나아갈 준비를 위해.
광장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다만 모습이 바뀌고 이름이 달라질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또 다른 광장에서 서로를 만나고 함께 목소리 낼 것이다. 그러므로 광장, 이후는 언제나 또 다른 광장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