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자리한 곳, 서울특별시 관악구. 인구 10명 중 4명이 2030 청년으로, 서울시 자치구 중 가장 높은 청년 비율을 자랑한다. 2024년 내건 ‘대한민국 청년수도’란 슬로건처럼, 관악구는 명실상부 청년들의 도시다.
대학에 입학하며, 직장을 구하며, 취업을 준비하며, 청년들은 관악에서 집을 구한다. 〈서울대저널〉은 그렇게 이곳에 머무는 이들을 만났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이 입버릇이 된, 관악구 청년의 자취방을 들여다보자.

25학번 성우 씨는 501번 버스를 탄다
“들어오세요.” 조성우(사회교육 25) 씨를 따라 그의 방에 발을 들였다.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온 성우 씨는 입학과 동시에 대학동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초보 자취생 성우 씨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생활비다. 월세는 47만 원이지만 관리비 9만 원과 공과금을 합치면 매달 60만 원이 나간다. 보증금과 월세, 생활비 모두 부모님께 지원받고 있다.
“용돈에 방값까지 부모님 부담이 큰 것 같아 걱정돼요. 1학기엔 식비만 한 달에 백만 원이 들었거든요. 2학기에는 ‘천원의 식사’를 자주 먹어서 식비를 60만 원대로 줄이고 싶어요. 방만 아니었어도 좀 더 여유롭게 먹고 싶은 걸 먹었을 텐데···.”


북향으로 난 창문 하나가 전부인 방은 볕이 들지 않아 꿉꿉한 습기가 맴돈다. 작은 화장실은 수시로 청소해도 자꾸 곰팡이가 핀다.
생활 공간과 학습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집에선 도무지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주로 도서관으로 향하지만, 때론 시내버스가 공부방이 된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책을 읽어요. 501번 버스를 타면 서울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대학동으로 오거든요. 집중도 잘 되고 좋아요.”

성우 씨는 올해 초 기숙사 모집에서 떨어졌다. 탈락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에 결과 발표가 난 후 부랴부랴 자취방을 계약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기숙사 떨어지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경주에서 통학하려면 왕복 5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고속철도 정기권을 끊으면 월에 60만 원인데, 도저히 불가능했어요.”
많은 대학생이 성우 씨처럼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 자취를 시작한다. 2024년까지 5년간 서울대 신입생의 35% 가량은 비수도권 출신이었지만, 2024년 서울대 기숙사의 수용률은 23.8%에 그쳤다. 특히 관악학생생활관의 학부생 선발인원은 최근 3년간 매해 100여 명씩 감소했는데, 이는 LnL 선발인원 확대 및 관련 시설 확충과 관련 있다고 추측된다.
‘거주형 대학’을 표방하는 LnL 프로그램은 2023년 신입생 260명으로 시작해, 이듬해 수용인원을 410명으로 늘렸다. 이는 현재 관악학생생활관 학부생의 16%를 차지한다. LnL은 기존엔 기숙사에 입주할 수 없던 서울·경기 지역 학생도 선발한다. 학교는 참여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기숙사 입주가 절박한 원거리 거주 학생의 기회는 줄어들었다.
직장까지 1시간, 여름 씨의 관악표류기
여름(가명) 씨는 신대방역 인근 조원동의 2평 남짓한 원룸에서 생활한다.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며 관악구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처음엔 직장과 가까운 사당역 인근을 알아봤지만, 임대료와 주거 조건을 저울질하다 이곳까지 밀려왔다. 관악구로 전입하는 청년 중 61.2%는 여름 씨처럼 직장을 이유로 거주지를 옮겼다.

여름 씨의 예산은 보증금 천만 원, 월세 55만 원이었다. 역세권에서 그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방은 모두 “닭장 같은 크기”였다. 결국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50만 원짜리 원룸을 3개월만 계약했다. “가격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한 지금의 집은 지하철역에서 멀고, 회사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린다.
“월세는 아까운 돈이라고 생각해요. 생활 환경이 아주 조금만 나아져도 월세는 훅훅 뛰니까요. 결국 비용 때문에 생활 조건을 타협하는 거죠.”
2024년 실거래가 기준, 보증금 천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10평 이하 관악구 자취방 월세는 약 60만 원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회초년생 월급을 200만 원대 초반으로 잡으면, 월 소득의 약 25%가 주거비로 나가는 셈이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취업한 청년 1인가구의 29.5%는 월 소득의 2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한다. 더구나 소득이 낮을수록 소비지출 총액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높아진다. 가난한 가구일수록 주거비 부담을 크게 느낀다는 얘기다.
어렵게 구한 방이지만 불편한 점이 많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작은 주방은 사실상 사용할 수 없고, 수납공간도 부족하다. “가구도 너무 낡았고, 장롱도 작은데… 대충 ‘흐린 눈’ 하고 지내면 될 정도긴 해요. 오래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죠.”

‘흐린 눈’으로 봐야 하는 것엔 인근 치안도 포함된다. “술집이나 유흥업소가 많아서 여자 혼자 살기엔 아슬아슬해요.” 관악구, 특히 여름 씨가 사는 신림 일대는 범죄가 잦고 위험한 곳으로 손꼽힌다. 2023년 관악구 주요 범죄 발생 건수는 서울 자치구 가운데 두 번째로 많았다. 구는 CCTV 설치를 늘리고, 1인가구에 안심장비를 지원하는 등 치안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청년 여성이 느끼는 불안을 충분히 해소하진 못하고 있다.
9월, 여름 씨는 조금 넓은 원룸으로 이사한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47만 원짜리 원룸을 운 좋게 구했다. 새집으로 가면 본격적으로 저축을 시작하려 한다. 목표는 보증금으로 쓸 수 있는 1억 원을 모으는 것. 하지만 1억 원을 모아도 여름 씨가 바라는 집을 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24년 실거래가 기준 관악구 10평 이하 전셋집 보증금은 평균 2억에 달한다.
고시원이 앗아간 현주 씨의 감성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현주 씨는 취업을 준비하며 서울에 있는 디자인 학원에 다닌다. 한동안 경기도에 위치한 친척 집에 신세를 지며 2시간 거리를 통학했지만, 8월엔 학원 수업이 잦아져 한 달가량 지낼 근방의 거처를 찾게 됐다.
현주 씨의 선택은 고시원이었다. 온라인 플랫폼 ‘독립생활’을 통해 보증금 10만 원, 월세 33만 원에 고시원 방을 구했다. 작은 책상과 침대, 옷걸이를 빼면 공간이 거의 남지 않는다. 오래된 건물 한 층에 비슷한 방이 40개쯤 있고, 부엌과 화장실은 공용이다.

고시원 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방음이다. 이어폰 없이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는 건 불가능하다. 기침, 코골이는 물론이고 디자인 작업을 위해 프로그램을 가동하면 컴퓨터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옆방으로 새어 나갈까 신경 쓰인다. “숨소리마저 다 들리니까 눈치가 많이 보여요. 꼭 작업해야 할 땐 사람 없는 시간대를 골라요.”
입실한 첫날, 고시원에서 화재 경보가 울렸다. 화들짝 놀라 관리인에게 전화하려 했지만,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는 연락할 방법조차 없었다. 다행히 경보는 오작동이었지만 불안은 커졌다.
고시원은 좁은 방이 다닥다닥 붙은 데다 복도와 출입구가 협소한 탓에 화재에 특히 취약하다. 2018년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화재로 11명이 다치고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사 이후 법이 개정돼 기존 고시원에도 간이 스프링클러가 설치됐고, 2021년엔 고시원이 최소한의 면적과 외창을 갖추도록 서울시 조례가 개정됐다. 하지만 해당 조례는 새로 만들어지는 고시원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여전히 관악구엔 창문 없이 비좁은 방이 수두룩하다.
“자취할 때는 방이 좁아도 조명 켜고 노래 틀고, 혼자 가만히 있으면 너무 좋았어요. 여기선 노래도 조명도 없으니 집이 집 같지 않아요. 원래 요리도 정말 좋아했거든요. 사람들 불러서 같이 먹고, 인스타에 요리 계정 만들어서 맨날 사진 올리고 그랬어요. 요리는 계속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귀찮아서…. 요즘은 냉동식품으로 간단히 끼니만 해결하고 있어요.”

고시원 생활은 현주 씨가 좋아하던 것들을 앗아갔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걸 좋아하던 현주 씨지만, 고시원엔 외부인을 들일 수 없다. 좁은 방엔 꾸밀 구석도 마땅치 않고, 잠시 지내다 나갈 곳에 마음 쓸 여력도 없다.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요리에 대한 애정도 사라졌다.
고시원 임대료는 겉보기엔 저렴하지만, 면적을 따져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2022년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고시원·고시텔의 임대료는 평당 10만 8천 원으로, 민간 전월세의 두 배 이상이다. 좁은 면적과 열악한 생활 여건을 감안하면 매우 비싼 거주지인 셈이다.
그럼에도 단기 거주가 필요한 청년들에게 고시원은 거의 유일한 선택지다. 청년 주거권 단체 민달팽이유니온 김가원 사무처장은 “주택 임대차 계약이 2년까지 보장된다는 조항이 현실에서는 2년이 아니면 계약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지적했다. 단기 계약이 어려운 임대 시장 상황이 청년을 열악한 주거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김 사무처장은 “청년기는 특히 이동이 잦은 시기”라 짚으며, “길게든 짧게든, 살고 싶은 집에 얼마나 살고 싶은지 세입자가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친화도시 관악에서 ‘잘’ 살지 못하는 청년들
성우, 여름, 현주 씨는 자취방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가끔은 괜찮다고 말했다. 성우 씨는 가능하다면 같은 방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했고, 여름 씨와 현주 씨는 불편한 방에서도 작은 장점을 찾아 말했다. 다른 관악구 청년들의 사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가격에 이 정도면 괜찮지, 서울에서 살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되뇌다 보면 적당히 살아진다고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청년을 체념하게 만드는 현실은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2023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100명 가운데 6명은 법으로 정해진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곳에서 산다. 1인가구를 기준으로 최저주거기준을 만족하기 위해선 주거 면적이 14㎡를 넘어야 하고, 전용 부엌과 화장실, 욕실이 있어야 한다. 방음, 환기, 채광, 안전 등에서 적절한 주거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고도 명시돼 있다. 이를 고려하면, 고시원에 살고있는 현주 씨뿐 아니라 여름 씨 또한 최소한의 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곳에 사는 셈이다.

2020년 관악구 가구의 16.8%는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집에 산다. 이는 이른바 ‘지옥고’로 불리는 지하·옥상·고시원 거주 가구를 다 반영하지도 않은 수치다. 고시원 등 주택 이외의 거처와 지하·옥상 거주 가구를 포함해 집계한 주거빈곤 가구 비율은 관악구가 전국 시군구 중 가장 높다. 청년 가구로 범위를 좁히면 주거빈곤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거빈곤 해소를 위해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관악주거안심종합센터 주거상담소의 임신엽 활동가는 “전세임대보다 민간의 자본이 덜 들어가는 진짜 공공임대가 늘어나야 한다”고 짚었다. 공공이 보증금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말고, 직접 지은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 마이홈포털에 따르면 관악구의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율은 3.8%로, 서울시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주거빈곤율은 가장 높지만, 공공임대주택은 부족하다.

관악구는 올해 수도권 유일 ‘청년친화도시’로 선정됐다. 주무열 관악구의원은 “관악구는 전국에서 청년들이 모이는 관문 도시”라며 “청년 전담 부서를 만들고 청년에 맞는 정책을 펼치려 노력해 왔다”고 청년친화도시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관악구 청년 정책은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도 다수 포함한다. 현재 관악구는 청년을 대상으로 매입임대주택 공급, 중개보수 지원 등 여러 주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거지원이 쉬이 체감되지는 않는다. 〈서울대저널〉이 만난 세 청년 모두 이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청년친화도시’ 관악은 단지 청년이 많이 사는 곳일 뿐, 청년이 만족스러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청년친화도시 관악은 이제 시작이다.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 없이 청년의 삶은 꽃필 수 없다. 원룸, 고시원, 지하와 옥탑의 비좁은 단칸방에서 세입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을 위해, 보다 전방위적인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성우 씨는 501번 버스를 타고 오가는 광화문 근처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여름 씨는 교통 좋은 곳에 자리한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길 바라고, 현주 씨는 취향대로 아늑하게 꾸밀 수 있는 집을 원한다. 이들이 그리는 ‘나중’은 지금의 집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청년들은 ‘젊으니까 잠시 불편해도 괜찮다’며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미래가 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세상이 바뀌어서다. 김가원 사무처장은 “젊을 때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전세에 살고, 돈을 더 모아 내 집을 마련하는 경로는 과거에도 실패했고, 지금은 더 많은 이들이 실패하고 있다”고 말한다. 청년이 겪는 주거빈곤이 나중을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저렴한 집을 찾아 관악구에 온 사회초년생의 ‘평범한’ 자취방이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곳이어선 안 된다. 집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버티고 살아야 하는 곳만은 아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