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 사회주택 보증금 사고, 서울시 책임은 어디에

2024년 11월 20일, 낯선 이가 수민(가명) 씨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배달이 잘못 온 줄 알고 문을 열었지만, 뜻밖에도 남자는 자신을 법원 직원이라 소개하며 서류를 건넸다. ‘이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보증금을 지키려면 임차권 등기 명령*을 신청하셔야 합니다.’ 처음엔 신종 사기극이 아닐까 의심했다. 수민 씨가 살던 곳은 서울시 정책에 따라 지어진 ‘사회주택’이었기 때문이다.

*임차권 등기 명령: 세입자가 법원에 신청해 등기부에 권리를 표시하는 제도. 이사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사회주택은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비영리 민간단체가 공공의 지원을 받아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운영하는 주택이다. 서울시는 2010년대부터 사업자를 지정해 토지나 건설비를 지원해 왔으며, 낙성대역 인근 ‘녹색친구들 행운점’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서울시를 믿고 이곳에 입주한 청년들은 하루아침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보증금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진설명 시작. 봉촌동에 위치한 사회주택 녹색친구들 행운점의 모습이다. 총 4층 규모의 다세대 주택이다. 사진설명 끝.

적어도 보증금 사고는 없을 줄 알았건만

수민 씨는 2023년 녹색친구들 행운점에 들어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지낼 곳을 찾다가 서울시 공식 사이트에서 사회주택을 처음 접했다.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최대 10년까지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7천만 원 넘는 보증금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같은 비용으로 구할 수 있는 다른 집과 비교하면 훨씬 쾌적해 보였다.

사회주택이 강조하는 공동체 활동도 마음을 끌었다. 사회주택은 단순히 방을 빌려주는 것을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거나 청년 예술인이 모여 사는 등, 공동체 기반 주거를 지향한다. 공공기관이 공급하는 아파트형 임대주택과 달리,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기에 가능한 실험이다.

행운점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녹색친구들’은 친환경 공동체를 표방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 때문에 입주자를 모집할 때 소득뿐 아니라 친환경 공동체에 대한 지원자의 가치관을 서류와 면접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수민 씨가 경험한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막상 들어와 보니 친환경적인 활동은 거의 없었고, 모임도 한 달에 한 번 입주자 회의가 전부였어요. 그래도 서울시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이니, 적어도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잃을 일은 없을 거라 믿었습니다.”

알고 보니 부실기업,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수민 씨가 꿈꿨던 안정적인 보금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2024년 11월 13일 녹색친구들 행운점에 경매 절차가 개시됐다. 녹색친구들이 행운점을 지을 당시 ‘한국사회투자’에서 빌린 건설비 중 약 4억 원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투자는 2012년부터 서울시의 사회투자기금을 위탁받아 운용한 공익 법인이다. 경매에 넘어간 건물은 언제든 매각될 수 있고,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수민 씨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행운점 18세대 입주자들이 맡긴 보증금만 해도 17억 원이 넘고, 녹색친구들은 서울시·LH와 협력해 사회주택 13채를 운영 중인 업계 간판이었다. 그런 기업이 고작 현금 4억 원을 마련하지 못해 궁지에 몰렸다니, 믿기 힘들었다.

이는 예견된 사태였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녹색친구들은 해마다 적자를 내고 있었다. 2023년 말 67억 원이던 현금성 자산은 1년 만에 7억 원으로 줄었다. 1년 안에 갚아야 할 빚은 129억 원에 달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입주자들이 이를 알게 된 것은 2024년 11월 20일, 법원 직원이 찾아온 바로 그날이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갈 줄 모르고 직전에 계약을 연장한 입주자도 있었다.

수민 씨는 보증금이 절박했다. 운 좋게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됐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이사할 수 없었다. 수민 씨가 12월 초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자 녹색친구들은 ‘다음주까지는 돌려주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은 번번이 미뤄졌다. 수민 씨는 해를 넘긴 2025년 3월이 돼서야 돈을 돌려받았으나, 여전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입주자도 있다. 〈서울대저널〉은 녹색친구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입주자 호소에도 ‘나몰라라’한 서울시

입주자들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5년 1월, 서울시는 행운점에 가압류*를 걸었다. 녹색친구들이 서울시에서 빌린 사회투자기금을 제때 갚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서울시를 믿고 이곳에 들어온 행운점 입주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가압류는 건물이 곧 경매에 넘어갈 수 있다는 신호다.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올 신규 입주자가 없으니, 기존 입주자들의 보증금 반환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가압류: 채권자가 돈을 떼이지 않도록 채무자의 자산을 묶어두는 법적 조치.

입주자들은 서울시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였다.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는 녹색친구들에 토지와 자금을 빌려줬을 뿐, 보증금을 반환할 책임은 계약 당사자인 녹색친구들에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사회주택은 서울시가 2015년 조례를 제정한 이래 10년 넘게 진행해 온 정책 사업이다. 서울시는 토지를 빌려주고 자금을 융자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관여해 왔고, 관련 조례에도 서울시가 사회주택 공급과 입주자 지원을 책임지는 주체라고 명시하고 있다. 행운점 입주자들 역시 서울시 공식 사이트에서 사회주택을 접했으며, 서울시의 이름값을 믿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보증금 사고의 책임을 사업자에게만 전가할 수 없는 까닭이다.

서울시는 〈서울대저널〉에 “채무자(녹색친구들)에 대한 권리 행사 및 채권 보호를 위해 가압류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입주자 보호에 관해서는 ‘SH와 실무협의체를 운영 중’이라며, ‘SH가 보증금을 선지급하고, (사업자와) 계약 해지 후 건물을 매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으나, 8월까지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사진설명 시작. 사건의 진행경과를 보여주는 연대표다. 2015년 서울특별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 2016년 서울시 첫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인 녹색친구들 성산점 개소, 2018년 녹색친구들 행운점 개소, 2024년 11월 13일 녹색친구들 행운점 임의경매 개시 결정, 2024년 11월 20일 법원이 녹색친구들 행운점 입주자에 경매 사실 통보, 2025년 1월 13일 서울시가 녹색친구들 행운점에 가압류 설정, 2025년 2월 7일 임의경매 취하. 사진설명 끝.

제도 공백이 문제 키웠다

서울시와 SH가 녹색친구들 행운점 입주자에 대한 책임을 피하는 데는 사업 구조의 문제가 얽혀있다. 행운점은 SH가 소유한 땅에 민간사업자가 건물을 올린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다. 이때 공공은 땅만 소유하고 건물엔 지분이 없기에,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입주자 보증금 문제를 사업자 몫으로 돌려왔다.

또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땅주인과 집주인이 다른 구조 탓에 보증금 반환보증*도 가입할 수 없다. 보증기관은 집을 팔아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담보 가치’를 보는데, 토지를 제외한 건물만으로는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1년 법 개정으로 임대사업자는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보증금 반환보증: 집주인이 파산하거나 집이 경매에 넘어가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 대신 보증금을 지급하는 보험제도.

짧은 상환기간도 위기의 도화선이었다. 일반적인 개발사업에서는 대출로 공사비 대부분을 충당해도 분양 실적이 좋으면 수년 안에 빚을 갚을 수 있다. 하지만 임대사업은 다르다. 임대료 수입은 장기에 걸쳐 조금씩 들어오기에 건설비 대출을 모두 상환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그럼에도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의 상환기간은 최장 8년에 불과하다. 낮은 임대료를 받고 사회주택을 운영해 온 사업자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이유다.

사회주택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온 프랑스의 경우, 건설비는 40년, 토지는 50년에 걸쳐 상환한다.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의 최경호 소장은 “금융 시스템 자체를 임대사업에 알맞게 바꿔야 한다”며 “장기에 걸쳐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야 처음부터 보증금을 낮게 책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설명 시작. 서울특별시 사회주택플랫폼 사이트. 사진설명 끝.

“서울시가 대책 마련하라”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구조적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지적됐지만, 서울시와 SH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사이 우려는 현실이 됐다. 8월 기준 채무 불이행과 국세 체납으로 압류·가압류된 서울시 사회주택은 녹색친구들 행운점을 포함해 4곳이며, 이 가운데 3곳이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다.

특히 성북구의 ‘콘체르토 장위’는 입주자 3분의 1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운영사 ‘두꺼비하우징’은 보증금 300만 원조차 돌려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8월 21일, 콘체르토 장위 입주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와 SH에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입주자 대표 A씨는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주택이 역설적으로 청년들을 구조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며 분노를 표했다.

입주자들은 서울시와 SH에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묻고, 공공이 해당 주택을 매입해 입주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SH와 사업자 간 계약서에는 SH가 건물을 매입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입주자들은 계약 당시 ‘보증금 문제가 생기면 SH가 매입할 것’이라고 안내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SH는 8월 26일 기준 “해당 건물이 SH의 매수 조건에 부합하는지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며 결정을 미루고 있다.

사진설명 시작. 사회주택 콘체르토 장위 피해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다. 현수막 뒤로 청년 여럿이 나란히 서있다. 청년들이 든 피켓인

사회주택은 본래 청년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집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며, 공동체 기반의 주거 대안을 모색해 온 실험이었다. 그러나 잇따른 보증금 사고는 본래 취지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드러냈다.

수민 씨는 지난겨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시간을 악몽처럼 기억한다.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전세사기 당하지 않으려고 들어온 집인데, 이게 뭔가 싶었죠. 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이 겪은 고통에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서울시와 SH가 답할 차례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청년을 빼놓고 주거정책을 논하지 말라

다음 기사

대학동 청년주택, 높은 임대료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