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오전 11시, 보신각 앞에서 소싸움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가 열렸다. 동물해방물결과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LCA)’ 주관으로 진행된 행사는 캠페인 영상 시청, 마당극 관람, 시민 발언 등으로 구성됐다. 사회를 맡은 동물해방물결 장희지 캠페이너는 “오늘날 소싸움은 마을 공동체 중심의 민속놀이였던 과거의 전통과 거리가 멀다”며, 국가와 지자체가 법률을 제정해 소싸움을 합법화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장 캠페이너는 “생명을 오락과 유흥의 도구로 소비하는 현실과 폭력이 끝나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해당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국내 최초 소싸움 실태 알리는 보고서 발간
동물해방물결과 LCA는 앞서 오전 8시, 국내 최초로 소싸움 실태를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 「이제는 멈춰야 할 소싸움, 청도 상설경기와 민속대회를 중심으로」에는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4개월간 청도군 내 싸움소 사육 농가 3곳과 청도 상설경기장, 민속 소싸움대회가 열린 전국 4개 지역(의령, 창녕, 대구, 창원)을 조사한 내용이 담겼다.

조사 결과, 싸움소들은 인간에게 학대당하고 있었다. 승리를 위해 인간은 소에게 폐타이어를 끌게 하고 채찍으로 때렸다. 경기에 출전하기 전 계류장에 온 소들은 행동반경이 제한되는 공간에 머무르며 바닥을 반복적으로 핥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 이동을 거부하는 소는 인간의 손에 억지로 끌려 나오고, 싸우는 과정에서 상대 소의 뿔에 채여 다친다. 그러나 소들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경기에 참여하길 강요받는다.
그러나 현행법은 소싸움을 승인하고 있다. ‘전통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과, ‘동물보호법’ 제10조 제2항은 소싸움 경기를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라며 규제 대상에서 예외로 취급한다. 투견과 투계는 불법이지만 소싸움은 전통이라는 명목하에 정당화된 것이다.
싸움소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희생된다. 우권 구매를 제외한 사행행위는 불법이지만, 경기장 곳곳에서 현금이 오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동물해방물결은 우주(牛主)와 행사 관계자가 금전 거래에 개입하는 모습 역시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한 지자체의 단속과 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싸움경기장의 적자를 메우고자 민간 세금을 투입하는 것 역시 문제다. 동물해방물결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청도 상설경기장 운영을 전담하는 청도공영공사에 지급되는 보조금은 2020년 약 57억 원에서 2024년 약 96억 원까지 그 규모가 증가했다. 국내 소싸움 성지로 불리는 청도 상설경기장에선 매주 주말 소싸움 경기가 열린다. 그러나 2024년의 총수입과 총지출을 견줘 봤을 때 순수익은 약 6천만 원에 불과하다. 보조금이 96억 원이었다는 걸 고려했을 때, 보조금 없이 현실적인 운영이 힘들다고 볼 수 있다. 수익이 거의 없는 사업에 세금이 쓰이고 있는 거다. 물론 사업의 수익성이 공공 지원 여부의 기준이 될 순 없지만, 그것이 동물을 학대하는 사업이라면 세금 낭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나는 본디 평화를 사랑하는 소였으나
시민들은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제작된 캠페인 영상을 신청했다. 동물성 의류를 배제한 흰 옷을 입고 소 탈을 쓴 이들이 피켓을 들고 묵묵히 화면 속에서 싸우는 소를 봤다. 사람들의 등 뒤엔 소싸움경기장을 구현하기 위한 나무 울타리가 설치돼 있었다. 영상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동물은 유희와 오락의 도구가 아니다”, “동물의 고통은 전통이나 문화가 될 수 없다”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이어 소싸움의 실태를 풍자하는 마당극이 진행됐다. 배우들은 연갈색 옷을 입고 붉은 탈을 써 소로 분장했다. 소 두 명(命)이 아스팔트 위를 뛰고 구르며 소싸움을 흉내냈다. 소는 말한다. 나는 본디 평화를 사랑하는 소였으나 사람들의 유희를 위해 강제로 끌려다녀. 소들은 싸우고 싶지 않지만, 전력을 다해 돌진하지 않으면 자신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안다. 더 매 맞기 전에 한 번 승부를 보자. 뾰족한 뿔로 상대의 살을 뭉개고, 크게 넘어져 버둥거리는 몸짓은 실제 경기장 안 소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를 계속하던 중 결국 소 한 명이 죽는다. 남은 소는 후회하며 말한다. 사람들 놀자판에 내가 소를 죽여버렸어. 소의 표정은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하다.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결코 웃지 못했다.
소의 탈을 벗고 나온 배우는 앞에 앉은 참가자들에게 함께 놀자고 권한다. 이승을 떠나는 김에 나를 위해 같이 신명나게 한번 놀아주겠어. 참가자들은 그의 말에 따라 함께 보신각 앞에서 뛰논다.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손을 잡고 빙빙 돈다. 마당극이 끝난 후 장희지 캠페이너는 “싸움소들이 자유의 몸이 돼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

싸움소 해방을 위해 연대하러 온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송아영 씨는 동물해방물결이 운영하는 소 생츄어리*, ‘달뜨는보금자리’에 가서 ‘꽃풀소’를 본 기억을 나눴다. 꽃풀소는 2021년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들이 도살장에서 구조한 소들이다. 현재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달뜨는보금자리에서 인간의 돌봄을 받으며 살고 있다. 송 씨는 “음악 연주가 시작되자 소들이 가만히 멈춰 귀를 기울였다”며, 소 역시 인간과 다를 바 없이 감정을 느끼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싸움경기장의 소들은 생츄어리에서 만난 소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은 출전하기 싫어서 바닥에 얼굴을 대고 누웠으며, 경기가 끝난 뒤면 뿔에 피가 맺혀 있었다. 송 씨는 “인간에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태어나는 소는 없다”며, ‘전통’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경기장에 나오길 거부하는 소의 몸”과 “피 흘리는 소의 얼굴”을 마주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생츄어리: 위험에 처한 동물을 구조해 보호하는 공간으로,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보호센터와 달리 동물이 인간의 돌봄을 받으며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됐다.
다음으로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 이슬 씨는 “돈이 걸린 소싸움경기장에서 우리가 어떤 전통을 찾을 수 있냐”고 물었다. “고통을 버티다가 도망가려 하는 싸움소의 모습을 떠올리면 분노와 절망감이 차오른다”는 이 씨는, 소싸움이 민속놀이나 레저 문화로 포장될 수 없는 “소들의 눈물과 고통스러운 시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언자 김민서 씨는 “전통은 시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돼야 한다”며,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진 전통은 지킬 가치가 없다”고 소싸움을 비판했다. 김 씨가 달뜨는보금자리에서 마주한 소는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주체”이자, “친구와 장난을 치고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고유한 존재”였다. 그러나 소싸움은 소들이 자기 의지로 살아갈 기회를 빼앗는다. 김 씨는 “소의 고통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시민의 힘으로 폭력을 끝내길 촉구했다.
끝으로 기자회견문 낭독이 있었다. 동물해방물결과 연대 시민들은 “인간의 유희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의 고통을 소비하는 문화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더 이상 ‘지역 경제 활성화’나 ‘전통 계승’이라는 허울로 이 폭력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 냈다. 또 2024년 5월 투우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콜롬비아처럼, 한국 역시 동물과 공존하기 위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문에서는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 폐지와 ‘동물보호법’ 개정 ▲청도 상설경기장 폐지 및 해당 예산을 공익사업으로 전환 ▲민속 소싸움경기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감독단속 강화 및 모든 형태의 예산 지원 중단 ▲동물을 이용하지 않는 지속가능하고 윤리적인 지역 살림 방안과 제도적 뒷받침 마련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역사는 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자리에서부터 바뀌어 왔다”며, “싸움소가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의 변화를 촉구했다.
소는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다. 맛을 보고 향을 맡고 바람과 햇볕을 온몸으로 감지하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이다. 인간의 유희는 결코 한 존재의 생명에 우선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외면하지 못한 이들이 소의 곁에서 싸움을 이어간다.
※아래 링크에서 동물해방물결이 진행 중인 소싸움 폐지를 위한 서명에 참여할 수 있다.
https://donghaemul.com/stopbullfigh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