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시된 노인의 성을 수면 위로 올리다

지난 6월 노인의 성을 주제로 한 연극 이 초연됐다.2002년 영화 가 노인의 성을 다루어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연극에서 노인의 성이 다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의 연출가 이기호 씨를 만나 노인의 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의 연출가 이기호 씨” /> 의 연출가 이기호 씨”황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전에도 노인을 소재로 한 연극을 연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올해 1월에 공연한 라는 연극이었다.

지난 6월 노인의 성을 주제로 한 연극 이 초연됐다. 2002년 영화 가 노인의 성을 다루어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연극에서 노인의 성이 다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의 연출가 이기호 씨를 만나 노인의 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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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의 연출가 이기호 씨

“황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이전에도 노인을 소재로 한 연극을 연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올해 1월에 공연한 라는 연극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는 노인의 성이 아니라 노인들의 사랑이 주제다. 보통 젊은 사람들은 노년기에 대해 인생의 끝자락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나는 황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끝이 어디 있겠는가. 죽음이란 것이 열 살이나 스무 살에 올 수도 있는 거고 어느날 갑자기 죽을 수 있는 건데, 노년이라고 해서 인생의 끝이 가까이 있는 건 아니다. 새로운 시작, 새로 열어가는 삶인 것이다. 삶의 흉터를 통해서 삶을 비춰내는 것이 연극이다. 삶의 굴곡진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좀 더 극단적으로 갈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현재는 갈 수 없는 노인들의 사랑을 다뤘다. 처음부터 너무 어렵게 성으로 가버리면 안될 것 같아 사랑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노인의 성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100% 나오진 않았다. 내년에 다시 하면 100%를 표현해내고 싶다. 노인의 삶을 다루다 보니 많은 공부가 되기도 했다.에서 20, 30대의 젊은 배우들이 노인 분장을 하고 연기를 했는데 노인의 삶을 연기하는 데 배우들이 어려움을 나타내지는 않았나?물론 배우들이 많이 어려워했고 고생을 많이 했다. 할머니들의 주름 사이에 박힌 굴곡진 인생의 질곡을, 삶의 느낌과 향기를 푹익은 장맛처럼 표현해내야 하는데 그건 자신의 경험이 없으면 사실 불가능한 부분이다. 배우들도 노력을 많이 했다. 탑골공원이나 노인정, 재래시장에서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할머니들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대화하면서 느끼는 게 많았을 거다. 심지어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입담 좋은 할머니가 있으면 안 내리고 따라가기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직접적 체험이 없으면 손쉽게 표현되는 게 아니다. 또 할머니들의 말투, 움직임과 걸음걸이, 습관들, 정서 표현 이런 것들이 젊은 사람들과는 그 패턴이나 템포가 너무 달라서 어려움이 컸다. 그런데 배우들 뿐만 아니라 연출자의 경우에도 노년을 겪지 않은 건 마찬가진데 노년의 감정들을 어떻게 잡아낼 수 있었나?원래 그런 부분에 관심이 많았고 여행에서 많은 간접경험을 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에 가면 수백년의 세월이 쌓여 있는데, 그런 데서 삶이 보인다. 서울에서 찾기 힘든, 삶의 질곡이 담겨져 있는 주제들을 찾아 켜켜이 쌓인 주름살을 본다. 원래 시골 출신이기도 하고. 시골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랑 쉽게 친해진다. 그네들의 삶과 쉽게 교감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별로 안 힘들었다. 노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행간이 너무 깊고 오묘하다. 칠십 년 넘게 산 노인의 인생을 감히 내가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이 오만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수를 해도 실수 사이에서 인간미가 나온다. “성적인 유희는 노인들 삶의 알레고리”젊은 배우들은 노인의 성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처음엔 배우들이 거부감까지 드러냈다. 노인들이 자위하는 것이나, 성적인 입담들에 당황하더라. 노인들의 성적인 농담은 젊은이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질퍽하다. 예를 들어 옆집 할머니가 어머니한테 놀러와서 내가 있는데도 야한 꿈 얘기를 한다. ‘젊은 녀석이 옷을 벗고 덤벼드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런 농담이 예전엔 너무 당혹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노인들의 삶이고 알레고리다. 성적인 유희라는 알레고리가 없으면 노인들이 도대체 어떤 유희를 놀이를 가질 수가 있을까. 반면 젊은이들은 성적인 농담에 거부감을 느끼고 금기시한다. 하지만 성적인 부분은 어르신들한테는 전혀 금기시되는 부분이 아니다. 아이를 낳는 것과 관련된 것, 너무나 성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노인들이 몸이 늙어감에 따라 성적인 감각이 쇠락해지는데 이걸 입으로 푸는 것이다. 몸으로 풀지 못하는 성적 유희를 입으로 풀어낸다. 처음에 배우들이 이런 걸 이해를 못했는데 연습을 반복하다 보니 공연에서는 자연스레 표현하더라. 아까 ‘성이 삶의 알레고리라’는 말을 했는데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성은 존재다.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를 무엇으로 판별할 수 있겠나. 요즘 자식들은 노년의 부모님이 일을 못하게 한다. 첫째는 효도의 차원에서, 둘째는 노인들이 일을 하다가 다칠 수가 있으니까 못하게 한다. 그러면 노인들이 할 일이 없어지고 쓸모가 없어지니 점점 죽어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이라고 하는 부분은 아주 원초적 부분으로 세포가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의 문제다.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인 것이다. 이 욕구를 풀지 못하면 나중에 마치 없는 듯이 퇴색해 존재의 의미가 상실된다. 프로이드로 말하자면 욕망이 0이 되는 순간이 죽음인데 따라서 성욕의 상실은 죽음을 의미한다.노인의 성을 표현해내기 위해 직접 노인들한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 같다.그렇다. 내 삶 자체가 그런 부분에 관심이 워낙 많고 어른들을 접할 경험이 많아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한번은 내 스승이 이런 경험담을 말해주더라. 예전에 스승이 80대 할머니를 만났는데 애인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분이 하는 말이, 자기는 죽을때까지 섹스만 할 거라고 했단다. 80대지만 신체적으로도 원한다 이거지. 물론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왜냐면 신체조직, 세포들도 써야 기능이 유지되는 건데, 욕망은 있으되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다보니깐 못하는 경우가 있는 거다. 반면 애인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데서 훨씬 자유롭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80세의 할아버지 운전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분이 몰래 비밀을 털어놓으시더라. 요새 ‘애인’과 성관계를 ‘당연히’ 한다고. 할머니가 계신데도 할머니와는 섹스를 못해서다. 할머니한테는 아무 것도 안 느껴진다더라. 왜냐하면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엔 윤리 도덕이 있고 정숙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인과의 사이에는 그런 게 없는 것이다. 이런 말도 했다. 섹스할 때 적극적으로 행위하지 않으니까, 할머니는 시체같더라고.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시체같이 느껴진다고. 살아있는 에너지를 느낄 수가 없다고. 그런데 애인을 만나면 전에 없던 테크닉과 감각을 경험한다는 거다.“사회에 퍼진 유교문화가 성을 금기로 만들어”현대 사회에서 성이 분명히 금기시화되는 것 같다. 성이라는 건 사회에서 소중한 부분인데, 너무 이성적으로 제어한다. 고려 때까지는 모계 사회, 여성들의 세상이었고 성적으로도 개방되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유교문화가 들어온 이후 남자들 세상이 되어버리면서 바뀐 거다. 욕망을 남자들이 지배하게 되면서 욕망이 저속한 것으로 인식되게 됐다. 그러면서도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기생을 통해 욕망을 해소했다. 이런 게 아직도 우리사회에 남아 있다. 사창가가 왜 계속 있겠는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초등학생도 야한 것을 다 보는데 부모 앞에서는 안 본 척해야 된다. 점점 음지화되고 거짓말 해야 되는 것이다. 착한 가면을 써야 하는 것은 부모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인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자기최면을 걸고, 서로 거짓덩어리 관계를 양성시키는 거다. 그러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충격을 받는다. 윤리와 비윤리는 늘 같이 간다. 비윤리가 있으니까 윤리가 생성되는 것이니까. 성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나이에 따라 단계적 수순을 밟아 자연히 성관계를 갖게 된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성교육이 잘 되면 좋을텐데, 사회에 팽배한 유교 의식 때문에 성이 금기시화되고 더러운 것으로 인식된다. 그게 좀 안타깝다.사회에서 특별히 노인의 성이 거의 무성화된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그 이유를 내가 평가하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수면 위로 부각시켜야 될 필요를 느껴서 공연을 만든다. 공연을 하면서 정숙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야단치지 않을까 우려도 했지만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성 유희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겉으로 표출이 안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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