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를 잘 마치고 싶었다. 문화부 기자들과 대면·비대면을 오가며, 긴 시간을 들여 커버를 주무르고 다듬었다. 우리 회의에선 말보다 침묵이 길게 흐르기도 했지만, 그 침묵의 품속에서 기사의 방향성은 움텄고, “이렇게 해볼까요” 하고 정적이 깨지던 바로 그 순간 각자의 글이 한 뼘씩 웃자랐다. 정신없이 기사와 씨름하고 있던 와중에 누군가 콕콕 건드는 촉감에 돌아보니, 여름이 햇살을 긴 손가락처럼 펼치고 눈앞에 서 있었다. 어김없이 저널과 함께, 다시없을 계절이 흐르고 있었다.

동시에 191호에서 내가 완주하고 싶었던 기사는 인천 디아스포라영화제에 대한 감상이었다. 집을 잃거나 저버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주자들의 이야기. 영화제 기간은 초고 마감 주간과 겹쳤다. 인천에서 돌아오는 길, 촉박한 일정 탓에 기사를 단념하려 했다. 그러나 영화제의 기억은 자꾸만, 지면에 펼쳐지기만을 기다리는 듯 마음속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천천히 엮여갔다. 이걸 쓰고 싶구나. 인정한 순간, 카페에 앉아 쓰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초고의 4분의 3을 내달렸다.

여행과 이주는 돌아올 곳의 유무에 따라 정반대에 놓인 것도 같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그 경계가 부드럽게 무너진다. 누군가는 여행의 환상에 힘입어 이주를 결심하고, 누군가는 긴 여행 속에서 이주의 감각을 느낀다. 인천 디아스포라영화제의 오랜 자문위원이었던 故 서경식 작가는, 재일조선인 2세로서 느끼는 고립감에서 벗어나고자 자주 일본을 떠나 여행을 갔다.

확실한 것은 여행과 이주가 모두 ‘이동’이라는 사실이고, 내 눈길을 끌었던 건 우리가 이 이동의 주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주야 말할 것도 없지만, 어떤 여행은 ‘경험’을 쌓는 게 당연해진 사회의 압력 때문에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우린 분명 움직이고 있지만, 그건 내가 선 불안정한 발판의 출렁임 때문일지 모르겠다고. 이 휩쓸림에 느끼는 불만과 어지럼으로 이주와 여행이란 단어를 매만져 왔다.

그러는 한편 인터뷰를 나갔고, 영화를 봤다. 그 과정에서 얼굴들을 만났다. 환하게 빛나는 얼굴들을. 긴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와 경험을 들뜬 채로 털어놓는 인터뷰이의 얼굴을. 인터뷰를 마치고 나눈 잡담 속에서 미래와 관심사에 대해 묻고 답하며 밝아지는 상대의 얼굴을. 영화 속, 고된 하루를 마친 뒤 공원에 모여 그 순간을 즐기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의 얼굴을. 그들은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휩쓸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흔들리는 발판 위에서도 기꺼이 자신의 균형과 몸짓을 찾아갈 때 깨무는 입술, 커지는 눈, 이내 터지는 웃음이 그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이주자 연구에서 ‘항해(navigation)’는 바다처럼 출렁이는 조건 위로 방향을 갖고 나아가는 것, 즉 ‘움직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뜻하는 개념이다. 191호에 참여하면서 저마다 우왕좌왕한 얼굴로 항해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은 저널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로 갈지 갈피를 찾지 못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기획회의의 밤, 나는 마냥 떠밀려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대로 아주 먼 곳까지 가도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항해하는 이들을 지지한다. 항해는 고될 것이다. 물살이 노질에 저항할 것이다. 방향은 방해받을 것이고, 때로 불시착할 것이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더 힘을 주는 것. 내가 움직이는지 세상이 움직이는지 엉켜있어 잘 분간되지 않는, 우리의 혼란스러운 모든 동작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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