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에는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당시의 가해자 발언이 인용돼 있어 불쾌감이나 고통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원색적인 욕설 표현은 ‘X’로 대체했습니다.
2024년 5월,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가 세상에 드러났다. 서울대 졸업생 박 씨와 강 씨 등은 서울대 동문 12명을 포함해 여성 61명의 사진을 합성한 허위영상물을 텔레그램으로 유포했다. 2021년 7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음란물 100여 건이 제작됐고, 천 700여 건이 유포됐다. 피고인 4명 중 주범 박 씨·공범 강 씨는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 4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4월 18일, 이 둘에 대한 2심 판결이 내려졌다. 각각 1년, 4개월 감형된 결과였다.
이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서울대생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안기며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라는 명칭으로 수차례 호명됐다. 그러나 잠깐의 주목만으로 정말 충분했는가? 우리는 해당 범죄가 어떤 배경 위에서 탄생했는지, 피해자와 활동가가 어떤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지 충분히 알게 됐나? 말해야 할 것들을 말하고, 들어야 할 것들을 들었는가?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이후 지나간 시간을 따라가 봤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탄생
딥페이크* 기술은 높은 비율로 성범죄에 동원되고 있다. 딥페이크 분석·탐지 전문 회사 딥트레이스에 따르면 온라인 딥페이크 동영상의 96%가 ‘노골적인 성적 내용’을 포함해 피해자의 동의 없이 가해자에게 성적 쾌락이나 금전적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피해자의 얼굴을 나체 사진이나 성적 이미지에 합성하는 식이다.
*딥페이크(deepfake): 딥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사진이나 영상에 다른 이미지를 중첩·결합함으로써 가공의 이미지나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술

딥페이크 성범죄의 피해는 어떤 성폭력 유형보다도 여성에게 집중돼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합성·편집의 피해자 성별은 여성 96.6%, 남성 3.4%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딥페이크 성범죄는 여성 피해자 수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측면에서 여성폭력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다른 여성폭력과도 중첩돼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한겨레〉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 조항인 성폭력처벌법 14조의 2*가 시행된 2020년 6월 25일부터 2024년 6월 말까지, 해당 법을 위반한 사건 105건 중 딥페이크 성범죄물 유포·제작 혐의만으로 기소된 사건은 25건뿐이다. 나머지 80건은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성적 괴롭힘, 불법촬영, 강요·협박, 스토킹 등의 폭력 혐의가 함께 나타났다.
*성폭력처벌법 14조의 2: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허위영상물을 제작, 반포, 저장했을 때 처벌하는 조항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범죄는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에 범죄의 목적과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에서도 여성폭력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남성의 합성물은 경제적 사기나 정치적 모함을 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성적 합성물이라고 할지라도 소비층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폭넓게 유포되기 어렵다. 반면,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 합성물은 그 자체로 온라인에서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여성의 성착취물을 소비하는 문화가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딥페이크 성범죄가 탄생한 근본 원인은 신기술의 등장이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돼 온 젠더 간 불평등이다.
여기서 기술의 등장은 기존 젠더기반 폭력의 피해 규모를 확장하고, 그 양상을 변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대표적인 변화는 온라인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가 매우 편리하게 범행에 접촉하고 가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가해 행위가 종결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다. 자신의 이미지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든지 빠르고 간편하게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각각의 가해 행위는 굉장히 작은 일처럼 보일 수 있으나, 피해자에게는 모든 행위가 연속적으로 경험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로 인해 딥페이크 성범죄는 각 가해 행위의 기간과 횟수와는 무관하게 피해자의 피해 경험을 장기화한다.
한편, 딥페이크 성범죄의 등장은 피해 당사자가 아닌 여성들에게도 불안감을 유발한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주로 지인 여성의 얼굴, 몸, 개인정보를 성적 괴롭힘에 활용하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들은 친밀한 관계에서조차 불안을 느끼기 쉽고, 피해 가능성을 예방하는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하게 된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기술 매개 성폭력이 일상화될 때 여성이 경험하는 온라인 공간 자체가 축소되거나, 여성이 온라인 공간의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실제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대규모 텔레그램 대화방이 세간에 알려졌을 때, 상당히 많은 여성이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의 사진을 내리는 방식으로 문제에 대응했다.
‘서울대 여자’를 호명하다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의 가해자는, 서울대 출신 30대 남성으로 위장해 해당 사건을 쫓은 ‘추적단 불꽃’ 원은지 활동가에게 ‘같이 서울대X들을 능욕하자’며 주기적으로 대화를 걸어왔다. 왜 가해자는 피해자들을 ‘서울대X들’이라고 호명했을까. 피해자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성취는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에서 어떻게 작동했을까.
페미니스트 철학자 케이트 맨은 『다운 걸』(2023)에서 여성혐오가 작동하는 기제를 섬세히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여성혐오는 ‘가부장적 사회 질서에 근거한 기존 젠더 규범과 기대를 저버리거나 그에 도전하는 여성’을 단속하고 위협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젠더 역할에 충실하지 않은, 이른바 ‘튀는 여성’이 여성혐오의 전형적인 표적이다. 이에 남성보다 더 높은 권력과 권위를 지닌 여성은 여성혐오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된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가장 쉽게 동원되는 여성혐오의 방법이다. 케이트 맨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대부분 젠더질서를 위협하는 여성을 징벌하는 성격을 가진다고 지적한다. 성적 대상화는 남성보다 높은 사회적 위치를 점유해 남성 권력에 대한 심리적 위협을 느끼게 하는 여성의 사회적 위신을 훼손하거나 통제·억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양상은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에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피해자 여성들의 성취를 위계적 젠더구조 속에서 무력화하고자 했다. ‘알파걸들 X됐네요.’ ‘공부하고 잘 나가고 해봤자 정액이나 X먹으려고 태어난 X들이죠.’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의 1심 판결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해자들의 발언이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 여성들의 지위를 끌어내리려는 가해자들의 시도가 매우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진단한다.

여성의 성취를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된 인셀* 문화와도 연결된다. 인셀 문화에 동조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매력적인 여성과 연애나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면서, 높은 지위를 성취한 여성들을 끌어내리는 것을 해결 방법으로 여긴다.
*인셀(incel): 비자발적 독신자를 일컫는 말로 자신과 성적·정서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여성에 적개심을 드러내는 남성 집단
그러므로 우리는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에 서울대라는 정체성이 동원된 것을 ‘선을 넘은’ 여성을 징벌하려는 시도로서 이해해야 한다.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어진 규범을 거부하고,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선을 넘은 여성이 공격과 위협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대학
사건이 불거졌던 2024년 5월, 유홍림 총장은 책임을 통감해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건에 관해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평한 유 총장은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서울대는 더 선구적으로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다.
그러나 TF는 큰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약 5차례의 모임 이후 해산했다. 당시 TF에 참여했던 박준섭 전 연석회의 의장(물리천문 22)은 학생들의 의견은 사실상 기각되고 대학본부가 제기한 대책 원안이 거의 그대로 실현됐다는 점과, 시행된 해결 방안이 일회성 제도 신설에 집중돼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학생 위원들은 당시 회의를 통해 현행 인권·성평등 교육 실효성 강화, 학내 상담 시설 확충 등을 요구했으나, 인권센터 측에서 제안한 디지털 성범죄 예방 학생 서포터즈 신설과 학생처에서 제안한 마이스누(mysnu) 내 디지털 성범죄 신고 창구 신설만이 실제로 이뤄졌다. 마이스누 내 디지털 성범죄 신고 창구는 2024년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운영된 후 현재는 사라진 상태다. 유홍림 총장의 발언과는 달리 실질적인 피해 예방·대응책은 마련되지 못한 셈이다.
대학 공간 내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미비가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권 대학 인권연합동아리 심규원 대표는 교육부에서 ‘대학의 자율성과 수요 부족’을 내세워 대학 내 딥페이크 성범죄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2024년 10월 ‘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을 조직했다. 심 대표에 따르면, 당시 수많은 대학생이 피해자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학은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대신 디지털 성범죄 대응 및 예방 요령 안내 카드뉴스를 올리는 등의 형식적인 대응만을 진행했다.
현재 대다수 대학이 처한 공통적인 문제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인권센터가 전문적으로 대응하거나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는 대학 인권센터가 예산·인력과 같은 제반 조건과 독립적인 권한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서 비롯한다. 2024년 국가인권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대학 내 인권센터 대부분이 인력과 예산 부족, 전문성 확보의 어려움 등을 겪고 있다. 심규원 대표는 “전담 인력과 예산이 없으니 인권센터의 기능이 축소되고, 신뢰가 부족해지니 수요가 줄어들고, 수요가 줄어드니 다시 권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교육부는 책임을 지고 대학 인권센터의 예산 및 전문 인력을 확충해야 하고, 인권센터는 피해자가 인권센터를 신뢰하고 찾을 수 있도록 인권센터의 지원과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딥페이크 성범죄 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본질적인 배경인 대학 내 여성혐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딥페이크 기술로 제작한 허위영상물이 대부분 대학에서 만난 지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은 대학 내 뿌리 깊은 여성혐오 문화와 관계 맺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방 정책은 범죄의 기반이 되는 성차별적인 구조를 기계적인 ‘양성평등’의 이름으로 지우고 있다. 교육부에서 배포하는 ‘디지털 성폭력 SOS 가이드’는 딥페이크 성범죄 발생 과정에 작동하는 여성혐오의 성격을 탈각한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자료는 디지털성범죄가 여성폭력이라는 맥락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기술 발전에 따라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문제처럼 묘사한다.
따라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가진 여성폭력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고, 대학의 여성혐오 문화 자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본질적인 구조 변혁을 위해선 최소한 인권·성평등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발생 이후 2024년부터 기존 온라인 인권·성평등 교육 콘텐츠에 특화 교육 프로그램으로 디지털 성폭력 예방교육을 추가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의무화 규정이나 페널티가 없고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교육의 특성상 효과는 미약할 수밖에 없다. 심규원 대표는 “교육부가 대학평가지표로서 성평등 지수를 강조하면 자연스레 성폭력 예방교육이나 성평등 및 젠더 교과목의 중요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성을 명목으로 소극적 태도를 취하는 대신,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회는 우리의 말을 알아듣는가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불충분한 사회적 인식과 대응이 반복될 때, 법·제도의 공백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된다. 실제로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시 피해상황 정리나 증거 확보 등 복잡한 과정은 오롯이 피해자에게 맡겨진다. 사건을 신고하고, 수사와 재판을 거치고, 지원을 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는 큰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범죄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사건 내용을 설명하고, 심지어는 범행의 기반이 된 기술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납득시켜야 한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피해자가 직접 정보를 취득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 지원 기관, 수사 및 재판 기관이 이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는 사실이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피해자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피해가 무엇인지, 그것이 왜 피해인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피해자가 자신이 현재 왜 고통스러운지, 왜 불안한지 납득시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딥페이크 성폭력에서는 피해자가 고발하는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는 증언적 부정의*의 문제가 빈번히 나타난다”고 말한다.
*증언적 부정의: 억압받는 위치에 있는 이가 자신의 경험을 증언할 때, 그의 말이 신뢰받지 못하거나 덜 신뢰받는 문제를 일컫는 개념
실제로 딥페이크 성범죄가 유발하는 고통은 물리적 접촉을 수반하는 성폭력에 비해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등장 이후 여성들이 극심하게 경험하는 불안피해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상물이 완전히 삭제될 수 없고, 광범위하게 유통되며, 언제든지 복원 가능해진 상황에서 불안피해는 매우 실체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불안은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심리적 문제로 여겨지거나 그 자체로서는 피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제작한 ‘허위영상물’이라는 사실 자체가 피해를 사소화하기도 한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커뮤니티 ‘포챈(4chan)’을 중심으로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딥페이크 합성물이 만들어졌을 때, 테일러 스위프트의 실제 영상이 아니라는 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현상은 영상이 합성물인지 실제 촬영물인지와 관계없이 해당 이미지가 공유·소비되는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성적 괴롭힘을 사회가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딥페이크 성범죄는 단순히 법적 처벌의 수위만 높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법이 마련되더라도 피해자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응당한 처벌이 이뤄지거나 피해자의 고통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지금 우리에겐 딥페이크 성범죄가 어떤 종류의 피해인지, 어떤 종류의 고통인지를 언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통을 증언하기
추적단 불꽃 원은지 활동가의 책 『나 잡으려고 텔레그램 가입했어?』(2024)에는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범인을 추적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루마’ 씨는 2021년 7월 자신의 얼굴이 나체 사진에 합성돼 불특정 다수의 자위 영상과 함께 돌아다니고 있음을 발견한다. 자신을 제외하고도 서울대 동문 중 피해자가 존재함을 알게 된 루마 씨는 2022년 여름 피해 여성들과 서울 관악경찰서를 찾아간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텔레그램을 통한 딥페이크 성범죄는 잡기 어렵다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그해 겨울, 경찰은 사건을 불기소 의견 송치*한다.
*불기소 의견 송치: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보낼 때 기소할 것을 권고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
그러나 루마 씨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진범을 찾기 위해 피해자를 모으고, 증거를 찾고, 해당 사건을 추적한 적 있던 원은지 활동가에게 직접 연락한다. 루마 씨와 원 활동가는 가해자와 텔레그램에서 어떻게 접촉해야 할지, 수사기관과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등의 내용을 끊임없이 논의하며 단서를 수집한다. 동시에, 법원이 피해자들의 재정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경찰도 수사를 재개하게 된다.
*재정 신청: 검사가 사건을 기소하지 않기로 했을 때, 그 결정이 타당한지 다시 묻는 것
원은지 활동가는 2022년 7월부터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해 ‘서울대를 졸업한 미모의 아내가 있는 30대 남성’인 척 연기하며 가해자와 대화를 시작한다. 원 활동가는 아내의 속옷 사진을 보내주기를 지속적으로 원했던 가해자에게 속옷을 거래하자는 제안을 건넨다. 이후 원 활동가와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팀은 속옷을 거래하기 위해 약속 장소에 나온 주범 박 모 씨를 검거한다.
피해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회와 지속적으로 부딪혀야 했다.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피의자를 특정하고, 가해자 체포 이후 재판을 이어가는 과정 내내 그랬다. 루마 씨는 4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약 1년간 재판을 지켜보면서 형사재판 법정이 얼마나 피고인들의 말에만 귀 기울이는 구조인지 여실히 느꼈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지나간 시간이 ‘경찰, 검찰, 법원에 직접 부딪혀 가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험난한 과정’이었다고 회고한다.

그간 루마 씨는 고통을 언어화하기 위한 작업과 투쟁을 이어왔다. 원은지 활동가는 루마 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같이 글을 써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도 가고, 경찰에도 찾아가고, 직접 조사를 해도 범인을 잡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루마 님과 다른 분들이 겪은 피해가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지금을 기록해요. 글을 쓰는 동안 힘들고 아플 테지만 피해자가 이렇게 살아남아 있다는 걸 글로 남겨요 우리.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의 2심 판결은 이러한 기록들이 쌓여 만들어낸 성과다. 대부분의 성범죄는 합의에 의해 2심의 형량이 1심 형량의 거의 절반 정도로 감형되는 것이 관행적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는 주범과 공범 각각 1년, 4개월 정도의 감형에 그쳤다. 이제는 대다수가 이를 성범죄라고 부르고, 중형이 내려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도 형성됐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만들어낸 진전이다.
여전히 남은 과제들
끝이라기보다는 시작선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 2심 판결이 끝난 뒤 엑스에 업로드된 루마 씨의 게시글
여전히 딥페이크 성범죄가 이뤄지는 사회적 배경과 딥페이크 성범죄가 유발하는 피해자의 고통을 충분히 포착하기 위한 여러 과제가 남아있다. 먼저 2024년 10월 개정된 성폭력처벌법 14조의 2 허위영상물에 대한 처벌 조항이 수정·개선될 필요가 있다.
성적 수치심과 음란성을 처벌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문제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음란성을 핵심적인 처벌 기준으로 삼는 현 체제에서는 피해자가 경험하는 성적 침해의 정도가 아니라 결과물의 음란성과 성적 수치심의 정도가 피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점이 된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내가 성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대신 ‘이것이 왜 음란한 이미지인지’, ‘내가 왜 수치스러운지’를 설명해야 한다.
행위 유형이 지나치게 쪼개져 있는 것도 문제다. 성폭력처벌법 14조의 2는 편집·합성·가공, 반포, 소지·구입·저장·시청 등의 행위 양태를 매우 복잡하게 열거하고 있다. 기존에 규정된 유형에 포섭되지 못한 새로운 범죄가 나타나면 사후적으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행위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해서 검사가 기소를 진행하고, 법원에서는 기소된 행위의 입증에 대해서만 판단하다 보니 성적인 침해는 맞는데 무죄가 나오는 사례들이 생기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기소 내용이 명명된 행위에 포함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방식으로 설명해야 하는 탓에, 여러 행위가 중첩적으로 발생하는 총체적인 피해를 설명하는 데는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한편,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의 감경인자*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의 양형기준은 ‘공탁**을 포함한 상당한 피해회복’을 감경인자로 판단한다. 이로 인해 반성이나 피해자의 용서가 없는 상황, 심지어 피해자가 위탁금을 가져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례에서조차 공탁으로 인해 형이 감경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기본적으로 금전 손실이 핵심이 되는 범죄가 아님을 고려할 때, ‘상당한 피해 회복’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감경인자: 형벌의 책임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는 조건
**공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금, 손해배상, 위로금 등의 명목으로 금전 등을 법원에 맡기는 것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경요소로 삼는 처벌불원 조항 역시 허점이 많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상당히 많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연락해 처벌 불원서를 써달라고 요청한다. 이 경우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피해자가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피해자가 여러 명인 상황에서도 문제가 된다. 가령, 식별된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표현하면 식별되지 않은 타 피해자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감경이 되거나, 처벌불원을 절대 반대하는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일부가 처벌불원 의사를 표현한다면 형이 감경될 수 있다.
이번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의 2심 판결이 마주했던 과제들도 이에 대한 것이다. 루마 씨가 공유한 2심 판결문에 따르면 범죄사실에 대한 판단은 1심과 다름없었지만, 주범 박 씨의 경우 합의한 피해자 5인의 선처 탄원, 강 씨의 경우 합의하지 않은 피해자 8인에 대한 공탁이 반영돼 각각 원심보다 1년 줄어든 징역 9년, 원심보다 4개월 줄어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여전히 우리가 시작선에 서있는 이유다.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는 젠더 기반 폭력과 ‘선넘은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여성혐오, 이를 알아보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회의 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면서 동시에 이에 대항해 끊임없이 이어진 발화와 증언과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했던 시기로부터 1년 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싸움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 싸움을 끝까지 쫓아야 한다. 딥페이크 성범죄 이후의 시간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이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능욕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를 능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