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반품될 수 없다
대화는 없습니다, 하지만 데이트는 있어요
너는 나를 능욕할 수 없다

대화는 없습니다, 하지만 데이트는 있어요

(2025) 포스터. 하늘에는 주황색 곤돌라 두 대가 교차하고 있고, 화면 아래에는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두 여성이 앉아 서로 사과를 건네며 미소 짓고 있다. 상단에는 '우리의 찰나, 쌓이는 낭만'이라는 문구와 개봉일 '2025.4.23'이 적혀 있다." width="530" height="778" style="width:530px;height:778px;vertical-align:middle;" />

《곤돌라》(2025) 포스터

※본 기사는 영화 《곤돌라》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로맨스가 이야기된 현대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사랑해’를 창의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문장이라야 닳고 닳아 도저히 써먹을 수 없는 ‘사랑해’를 대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여러 명대사를 알고 있다. 《헤어질 결심》의 ‘붕괴’는 사랑의 유의어고, 《러브레터》의 절절한 안부는 사무치는 마음을 눌러담고 있다. 피부 밑에 퀴어의 사랑을 감춰 둔 《써니》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는 ‘사랑해’를 대신하는 무수한 대사가 존재한다.

바이트 헬머 감독의 《곤돌라》(2025)는 이미 오용되고 남용돼 남루해진 ‘사랑해’ 대신 차라리 침묵을 택한다. 조지아의 작은 산악 마을, 사람들이 버스 대신 곤돌라에 올라타는 곳에서. 곤돌라가 교차할 때마다 서로를 마주치는 승무원 ‘니노’와 ‘이바’는 대화를 거의 주고받지 않는다. 두 여자는 말없이 체스를 두고, 합주하고, 마주앉아 와인을 마신다. 이때 둘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은 진공이 아니라 매질(媒質)이다. 침묵은 풀벌레 소리, 가쁜 숨소리, 분절음과 음악을 팽창시키고 언어를 불순물처럼 가라앉힌다. 그리고 영화는 맨 위에 떠오르는 가장 맑은 ‘사랑해’를 건져낸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작가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2021)  제목 인용

바이트 헬머는 말보다 표정과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전작 《투발루》(1999)와 《브라 이야기》(2018)는 대화 없이 전개되는 독특한 사랑 이야기로, 언어의 부재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무너지기 직전의 오래된 수영장(《투발루》), 언어가 사라진 공동체(《브라 이야기》), 산골 마을의 곤돌라(《곤돌라》) 등 동화 속에나 존재할 법한 비현실적인 공간들은 침묵의 훌륭한 배경이 된다. 잡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헬머는 ‘대화와 영화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고 느끼지는 않는다’며, 침묵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대화가 배제된 헬머의 영화에서 우리는 침묵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게 된다.

곤돌라 안,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니노(왼쪽)와 이바(오른쪽)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니노가 왼손을 들어 이바의 손목을 가볍게 쥐고 있고, 곤돌라 창밖으로는 푸른 산맥이 펼쳐져 있다.

곤돌라 안에서 눈이 마주치는 니노와 이바

《곤돌라》는 반복과 변주를 통해 두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상세히 드러낸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위해 고향을 찾은 이바는 곤돌라 승무원으로 일하게 된다. 이바의 새 직장에는 심술궂은 차별주의자 사장이 있고, 항공사 취업을 꿈꾸는 또 다른 승무원 니노가 있다. 각자의 곤돌라가 공중에서 교차할 때마다 이바와 니노는 서로를 응시한다. 마주침이 반복됨에 따라 두 사람의 눈빛에는 변화가 생기고, 카메라는 이 미세한 진폭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한다. 니노의 곤돌라에 근접하기 전 이바가 립스틱을 고쳐 바를 때, 이바가 니노를 사랑하고 있음이 자명해진다. 그것은 침묵을 언어로 삼은 이 영화가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소통은 니노와 이바가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다. 집적거리는 사장에게 체스 게임을 강요받던 니노는 사무실의 체스판을 곤돌라 승강장으로 옮겨버린다. 니노와 이바는 곤돌라가 승강장에 번갈아 도착할 때마다 체스 말을 옮긴다. 이바와 수를 주고받으며, 니노에게 체스는 비로소 길고도 즐거운 놀이가 된다. 곤돌라와 체스는 모두 거리를 유지하고, 기다림을 전제한 채,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소통의 성질을 지닌다. 이는 사장에겐 부재하는 자질이다. 그는 두 여직원이 자신을 빼놓고 체스를 두는 것에 분노하며 체스판을 망가뜨린다. 사장은 곤돌라의 방식을 체화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니노가 고백을 거절하자, 사장은 곤돌라 대신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가버린다.

덧붙여 음악은 《곤돌라》의 독특한 소통 방식을 돋보이게 한다. 니노가 동경의 눈으로 비행기를 올려다볼 때 흐르던 꿈결 같은 음악은 사랑의 순간마다 되풀이된다. 니노가 탈의실의 이바를 바라보는 OTS* 쇼트, 이바가 니노를 위해 도시락을 싸는 장면, 그리고 어린 소년과 소녀의 서브플롯이 고조되는 순간에도 같은 주제곡이 흐른다.

*OTS(Over The Shoulder): 카메라를 피사체의 어깨 뒤에 두고 촬영하는 기법. 공간적 관계와 피사체의 시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음악은 단지 논 다이제틱*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영화 속에서도 중요한 서사적 도구로 기능한다. 이바가 니노의 항공사 합격 통지서를 발견하고 관계가 소원해지자, 니노는 바이올린 연주로 화해를 시도한다. 니노는 곤돌라가 교차하는 순간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고, 마음이 풀린 이바는 트럼펫 연주로 화답한다. 이들은 말이나 글 대신 악보를 주고받으며, 마침내 공중에서 곤돌라를 멈춰놓고 합주하기에 이른다. 이때 한 곡의 합주는 열 마디 말보다 나은 것이 된다. 《곤돌라》에서 음악은 가장 아름답고 단순한 해결책이다.

*논 다이제틱(Non–Diegetic): 극 중 인물은 인지하지 못하고 외부의 관객만 인지하는 소리를 논 다이제틱 사운드라고 부른다.

침묵이 쓴 시

영화가 시적이라고 칭송받을 때, 그것은 주로 화면이 지닌 서정적인 아름다움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곤돌라》가 ‘영상시’라고 불리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바이트 헬머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산악 마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활용한다. 자연광을 담기 위해 대부분의 촬영은 새벽 또는 황혼 무렵에 이뤄졌고, 산과 마을의 평화로운 롱 쇼트*는 자연 그 자체가 주연인 듯한 인상을 준다. 곤돌라에 틀어박히기로 작정한 영화이지만, 비좁고 답답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영화는 곤돌라를 올려다보는 마을 사람들과 이들을 내려다보는 니노와 이바의 시점 쇼트를 적절히 사용해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이동하는 곤돌라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는 쇼트 역시 곤돌라의 케이블을 입체적으로 살려내며 화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롱 쇼트(long shot): 피사체를 먼 거리에서 넓게 잡아주는 촬영 기법.

푸른 하늘 아래, 공중에 매달린 두 개의 빨간 곤돌라가 나란히 이동 중이다. 왼쪽 곤돌라는 로켓처럼 꾸며져 있으며, 창문에는 흰색 제복을 입은 사람이 고개를 내밀고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곤돌라 옆면에는 ‘MARS’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로켓으로 꾸며진 곤돌라

하지만 《곤돌라》가 영상시라면 그것은 단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곤돌라》는 반복과 변주를 통해 리듬을 형성하는 시의 방법론을 차용한다. 곤돌라는 두 플랫폼을 연결할 뿐 아무 데도 가지 않지만, 니노와 이바는 그 속에서도 의미 있는 변주를 찾아낸다. 예컨대 화해한 두 여자는 곤돌라를 뉴욕행 버스, 화성행 로켓, 선박과 비행기로 꾸미는 장난을 친다. 이때 곤돌라가 플랫폼 사이를 왕복할 뿐이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목적은 더 엉뚱한 장난을 고안해 연인을 폭소하게 하는 데 있다. 니노와 이바는 의미없는 반복을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도 ‘지금-여기’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음을 시사하며 아름다운 자급자족의 세계를 그린다.

또한 《곤돌라》는 행과 행 사이를 침묵으로 비워둠으로써 관객이 그 의미를 직접 구성하도록 한다. 〈시네유로파〉와의 인터뷰에서 헬머는 《곤돌라》에 대해 ‘관객이 수동적이기보단 참여적인 태도로 주의를 집중해 이야기를 구성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다림질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과거의 무성영화는 종종 타이틀 카드*를 삽입해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곤 했다. 하지만 장면과 그것을 해설하는 언어가 항상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헬머는 이러한 불일치의 가능성을 조금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상황에 대해 침묵한다. 우리는 영화 도입부에서 고향에 도착한 이바가 적대받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관객의 배경에 따라 그것은 이바가 퀴어이기 때문일 수도, 복잡한 가정사 때문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니노의 항공사 취업이 어떻게 됐는지도 알 수 없다. 관객의 취향에 따라 니노는 이바 곁에 남기로 했을지도, 혹은 자신이 떠나기 전 최고의 시간을 함께하기로 이바와 합의했을지도 모른다. 《곤돌라》는 문장 대신 단어로 쓰인 영화이기에 이를 엮어 시를 쓰는 것은 관객의 몫이기도 하다.

*타이틀 카드(title card): 자막을 띄운 검은 화면. 과거 무성영화에서 대사가 필요할 때 삽입했다.

시가 약속하는 세계

많은 시가 그렇듯 《곤돌라》 역시 현실과 거리를 둔 채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니노와 이바의 로맨스뿐 아니라, 심술궂은 사장에 대해서도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 사장은 세 명의 지원자 중 이바를 채용하면서 영화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면접 절차는 간단하다 못해 기이하다. 사장이 지원자의 몸에 전임자의 유니폼을 대 보고, 옷이 맞을 것 같으면 합격이다. 규격에 맞는 노동자가 저임금으로 착취되는 환경. 여기에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이라는 위계가 더해져, 사장은 탈의실을 훔쳐보거나 고백을 거부한 니노를 괴롭히는 등 노골적인 젠더폭력을 행사한다.

사장의 폭력은 장애인에게도 향한다. 그는 휠체어가 곤돌라에 탑승하는 것 역시 거부한다. 휠체어에 탄 노인은 조금이라도 정중하게 보이려고 넥타이를 고쳐 매며 승강장에 등장한다. 카메라는 곤돌라에 타러 가는 노인의 어깨와 그의 낮은 시야를 OTS 쇼트로 담담히 보여준다. 노인은 번번이 탑승을 거절당하고, 마침내 사장에게 떠밀려 휠체어째로 계단 아래에 처박히고 만다. 어떤 몸은 탑승 자체가 시위이자 정치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독일 감독이 조지아에서 찍은 영화에서 한국의 현실을 겹쳐보게 된다.

《곤돌라》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단순하다: 그냥 휠체어를 태움. 이 간단한 발상은, 역설적으로 탑승자가 꼭 곤돌라 ‘안에’ 있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니노와 이바는 곤돌라를 통해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일에 이미 익숙하다. 비행기, 버스, 배와 로켓으로 꾸며지던 곤돌라는 최종적으로 휠체어도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이 된다. 두 여자는 휠체어를 밧줄로 감아 곤돌라 밑에 허술하게 매달아 놓지만, 휠체어는 결코 추락하지 않는다. 기쁨에 겨운 연인들의 “오케이!”와 노인의 “헤이!”가 이 영화의 유일한 대사다.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휠체어를 보고는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이 일로 니노와 이바는 날삯을 받지 못하지만 노인에게 최고의 기억을 선사한다. 그저 곤돌라에 휠체어를 태운다는, 기발하지도 않은 해결책이 우리에게 창의적인 대안과 더 나은 세계를 약속한다.

따뜻한 조명 아래 장식된 곤돌라 내부에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이바가 흰 드레스를 입은 니노의 눈을 손으로 가리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로제 와인 두 잔, 포도와 자두, 사과가 담긴 과일 바구니, 빈 와인병이 놓여 있으며, 배경에는 둥근 전구 장식이 반짝이고 있다.

곤돌라 안에서 데이트를 하는 니노와 이바

니노와 이바의 곤돌라 데이트 역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영업이 끝난 늦은 밤, 두 사람은 몰래 사무실에 침입해 곤돌라 한 대를 움직인다. 잘 차려입은 그들은 곤돌라 한가운데 테이블을 놓고 와인과 포도를 나눈다. 밖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의 데이트를 축하하는 합주를 벌이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악기는 없다. 폐품으로 만든 하프 소리, 도끼로 통나무를 찍는 소리, 곡식이 담긴 쟁반을 흔드는 소리. 기존의 관현악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소리들이 그럼에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장면은, 제도권 밖에서도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종교의식 같은 풍경 속에서, 니노와 이바 역시 곤돌라 밖으로 은화를 뿌리며 결혼식의 풍경을 이룬다.

사장은 장애인과 퀴어가 환대받는 마을에서 불행한 유일한 인물이다. 니노와 이바에게 번갈아 집적대던 그는 요란한 축제 분위기에 분노하며 사무실로 달려간다. 그가 곤돌라의 케이블을 끊자, 곤돌라는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 사장과 함께 그가 있던 사무실을 그대로 박살 낸다. 반면 볏짚 더미 위로 뛰어내린 니노와 이바는 무사히 살아있다. 악당을 처리하고 주인공의 밝은 미래를 도모하는 《곤돌라》의 단순한 전개는, 가족 영화의 안락한 달콤함과 카툰의 폭력성을 동시에 띤다.

산악 지대의 푸른 풍경을 배경으로, 곤돌라 정류장에 선 니노가 햇빛을 받으며 고개를 돌리고 있다. 니노는 짙은 회색 제복과 파란 모자를 착용했으며, 뒤로는 낡은 붉은색 곤돌라가 정차해 있고, 산자락과 구름 낀 계곡이 펼쳐져 있다.

곤돌라를 기다리는 니노

21세기 영화에 왜 대화가 없어야 하는가? 우리는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올 수 있다. 바이트 헬머는 〈스크린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언어는 우리를 다른 사람, 다른 나라와 구분 짓는 요소’라고 말한다. 그는 《곤돌라》를 통해 ‘사랑해’ 없이 사랑하는 방법과 언어 없는 공동체가 화합하는 방법을 예시한다. 어쩌면 우리는 언어가 없을 때 더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사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바의 유리컵을 투과하는 햇빛. 니노가 던져준 석류의 맛을 음미하는 얼굴과 애인의 집으로 신나서 뛰어갈 때의 숨소리. 우리는 예민해진 감각으로 사랑을 더욱 정밀하게 포착한다.

게다가 《곤돌라》는 착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든 해준다. 곤돌라는 휠체어를 가볍게 실어 나르고, 두 여자에게 데이트 장소를 마련해 줄 뿐만 아니라, 악덕 사장도 깔끔하게 처리한다. 《곤돌라》의 동화적인 전복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슬랩스틱으로도 보이는데, 이때 진정 우스꽝스러운 것은 장애인과 퀴어가 아니라 차별주의자 사장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부조리 속 인간을 희화화하되 희망을 잃지 않았던 찰리 채플린을 문득 떠올린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곤돌라》는 약간의, 아주 약간의 상상만을 동원해 사랑스러운 대안 세계를 그린다는 것이다.SJ

신서윤 PD ssy053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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