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대학생에겐 멀게만 느껴지던 그 단어가 어느새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3월 국회에서 통과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연금개혁안)을 둘러싼 논쟁 때문이다. 혹자는 이번 연금개혁안이 청년들의 몫을 뺏어 기성세대의 배만 불리는 개악(改惡)이라고 말한다. 수십 년 뒤 국민연금이 모두 소진되면 연금을 하나도 돌려받지 못할 거라며 불안을 부추긴다.
국민연금이 대체 뭐길래, 연금개혁안이 어떻기에 다들 소란일까. 연금개혁을 두고 오가는 날 선 말들 사이에서, 공적연금의 본질을 좇아 모두가 존엄한 노년을 보내는 미래를 그려봤다.
국민연금이 뭐냐면
국민연금은 모든 노인에게 적정한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공적연금 제도다. 노인 빈곤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만일 노후 대비를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둔다면, 충분한 자산이 없는 인구 다수는 빈곤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험에 대응해, 일하는 인구 전체가 노인을 공동으로 부양하는 제도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지금 일하는 세대가 노인을 부양하고, 노후에는 다시 다음 세대에게 부양받는 사회적 약속으로 유지된다. 보험료 납부는 연금을 받을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조건일 뿐, 노후에 받게 될 연금은 가입자 개인이 낸 보험료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주머니에서 마련된다. 이러한 ‘세대 간 연대’가 국민연금의 핵심 원리다. 기업과 가입자 개인 간 계약에 기반하고,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에 따라 보장 수준이 결정되는 사적연금과는 원리부터 다르다.
사회 전체가 노인 부양을 책임지는 제도이기에, 소득이 있는 27세부터 59세까지의 국민은 누구나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이때 가입자 각자가 ‘내는 돈’과 ‘받는 돈’을 결정하는 기준이 바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예컨대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 기준으로 40년간 200만 원을 꾸준히 벌고, 매달 18만 원을 보험료로 낸다면, 은퇴 후에는 매달 연금 8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보험료율: 가입자의 월 소득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
**소득대체율: 가입자의 생애 평균소득에서 연금액이 차지하는 비율
***2025 개혁 이전 국민연금법상, 2028년도에 도달할 예정이었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보험료율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매달 내는 보험료는 자신이 버는 소득에 비례한다. 그런데 연금액도 퇴직 전 소득과 보험료에 비례해 결정된다면, 애초에 낼 수 있는 돈이 적은 저소득자는 연금을 받아도 빈곤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노인 빈곤 예방이라는 제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저소득자에게 더 높은 소득대체율을 적용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이 300만 원이라면, 월 200만 원을 버는 저소득자는 노후에 매달 100만 원을 수급할 수 있다. 이 경우 실질 소득대체율은 50%가 된다. 이와 같은 재분배는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이 갖는 중요한 역할이다. 국민연금의 또 다른 핵심 원리인 ‘계층 간 연대’다.

국민 4분의 1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사회에서, 국민연금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빈곤 노인을 조세로 지원하는 기초연금제도가 있지만, 일하는 모든 사람의 노후를 책임지는 보편적 복지제도는 국민연금뿐이다. 보장 범위나 지급액이 각 시기의 사회적 요구나 재정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기초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기여를 통해 수급받을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므로 불확실성이 적다.
1988년 도입된 이래, 국민연금 가입자와 수급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제도 도입 초기에 가입한 노동인구가 노년에 접어들면서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51.2%*가 국민연금을 수급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기초연금보다 수급자가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청년세대가 가장 많이 선택한 노후 대비 수단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인식과는 달리, 실제로는 청년 다수가 국민연금에 노후 대비를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2023년 12월 기준 보건복지부 발표
**2023년 통계청 사회조사
국민연금, 제 역할 하고 있나
국민연금 도입 이후 37년이 지났다. 그동안 가입자와 수급자가 꾸준히 늘었고, 가입 대상도 농어민·자영업자 등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경기대 주은선 교수(사회복지학전공)는 국민연금이 “적정한 노후 소득보장이라는 본연의 목표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2025년 기준 평균 연금액은 67만 원으로, 노인 최소생활비에도 못 미친다. 소득대체율도 2021년 기준 OECD 평균보다 10%포인트 낮았다. 2008년부터 0.5%포인트씩 소득대체율을 인하한 탓에 현 노동인구가 노후에 접어드는 2040~60년대에도 높은 소득보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낮은 소득보장 수준은 짧은 가입 기간과 관련 있다. 정부에서 말하는 소득대체율 40%는 평균 소득자가 40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경우를 가정한 ‘명목 소득대체율’이다. 그러나 취업 지연과 경력 단절을 경험하는 국민 대다수에게 40년을 꼬박 채워 보험료를 납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현재 국민연금 평균 가입 기간은 그 절반인 20년에 불과하다. 현 청년세대가 노인이 될 2060년엔 평균 26년*으로 늘어난다지만, 여전히 유럽연합 평균(36년)보다 짧다.
*국민연금 제5차 재정계산
전체 가입 대상의 3분의 1에 달하는 ‘사각지대’도 문제다. 법적 근로자에 속하지 못하는 인구 다수가 국민연금의 보장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취직과 동시에 국민연금에 자동 가입되고 고용주가 보험료 절반을 보장하는 ‘사업장가입자’와 달리,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는 높은 보험료 부담으로 가입을 주저한다. 실질적으로는 기업에 속해 있으나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플랫폼·특수고용직 노동자도 사업장가입자에서 제외된다. 제도를 도입할 당시 전일제·정규직 노동자를 기본값으로 둔 탓에, 변화하는 노동환경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주은선 교수는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하려면 소득대체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고, 자영업자·불안정 노동자의 가입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2024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시민대표단 500명을 대상으로 공론조사를 열었는데, 두 달간 토론과 학습을 거쳐 선택된 최종 다수안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동시에 올리는 안이었다.* 보험료를 더 내고 소득보장을 강화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것이다.
*56.0%가 소득보장안(보험료율 9%→13%, 소득대체율 40%→50%)을 선택했다.

기금고갈이라는 종말론
2020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평균인 14.2%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양극화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2020년생이 65세가 되는 2085년에도 노인 10명 중 3명은 빈곤 상태에 놓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노인들은 물론, 미래세대의 노인 빈곤을 예방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소득보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는 이유다.
*2023년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
그럼에도 국민연금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어떻게 더 많은 연기금을 쌓아둘 것인가’에만 집중됐다. ‘기금이 바닥나면 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이 당연한 사실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이 힘을 얻은 데엔 민간 금융시장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기금 수익을 올린다는 목적하에 1천 조가 넘는 기금 가운데 99.9%를 국내외 금융시장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 중 절반은 민간 투자기업(위탁운용사)을 통한 간접투자다. 이들 기업은 매년 위탁수수료를 명분으로 1천억 원이 넘는 수수료를 챙긴다. 한편,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대체율은 연금상품을 판매하는 민간기업에겐 유리한 조건이다.
연기금 고갈과 함께 연금제도가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일까. 주은선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연기금은 저출생·고령화에 대비한 예비금일 뿐, 기금이 없다고 해서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이 중단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국, 독일 등 공적연금을 운영하는 대부분 국가에서는 막대한 기금 없이도 안정적으로 연금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필요한 만큼 보험료를 걷어 그해 연금으로 지출하는 부과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에선 연금 재정에 국고를 투입하거나 기업과 자본에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노동자 개인이 부담하는 보험료를 안정적인 수준에서 조정하고 있다.
주은선 교수는 “연기금은 처음부터 고갈될 것을 염두에 두고 조성된 자금”이라고 강조한다. 국민연금 기금은 매달 걷은 보험료에서 연금을 지급하고 남은 돈이 누적된 결과다. 제도 도입 당시인 1998년엔 수급자가 거의 없고 가입자만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기금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항구적인 적립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고령화에 대비한 완충 자금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기금이 고갈된 이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미래세대가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주은선 교수는 이것이 “미래 경제규모와 소득수준의 변화를 간과한 잘못된 주장”이라 반박한다. 2070년 한국의 1인당 GDP는 약 10만 달러로 예상되며*, 국민연금 지출은 GDP 대비 약 1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프랑스, 독일 등 여러 국가가 GDP에서 그 정도 비율을 공적연금에 투입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의 소득보장 수준은 미래세대가 감당 못 할 규모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2022년골드만삭스 경제전망 보고서
**2023년 국민연금 제5차 재정추계

재정안정의 핵심은 미래세대의 역량
주은선 교수는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성은 기금 규모가 아닌 미래세대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은 다음 세대가 앞선 세대를 부양하는 제도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지탱할 미래세대의 역량은 경제 규모나 1인당 소득 외에도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주 교수는 이에 관해 세 가지 조건을 강조한다.
첫째, 안정적인 고용과 노동소득 분배다. 비정규직 비중이 높고,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은 구조에서는 고용 기반의 연금제도가 유지되기 어렵다.
*GDP에서 노동소득(임금 등)이 차지하는 비율
둘째, 제도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합의다. 국민연금은 세대·계층 간 연대에 기반한 제도이므로, 모든 노인의 생활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돼야 유지될 수 있다. 이를 무시한 채 국민연금을 개인의 손익으로만 판단하고, 기금 수익률만 따지는 시각은 제도의 본 목적에 어긋난다.
셋째, 재정 기반의 확대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는 일정 상한 이하의 임금과 자영업자 소득에만 부과된다. 이는 전체 GDP의 30%에 불과하기에 보험료율을 높여도 근본적인 재정 수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소득 상한* 초과분, 자산소득, 법인소득 등에 보험료를 부과하거나 국고를 투입해 재정 기반을 넓혀야 한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은 이미 이 같은 방식으로 공적연금을 운영하고 있다.
*2025년 기준, 가입자 월 소득이 637만 원을 초과하더라도 보험료 산정 시 637만 원으로 계산된다.
이러한 연대는 가진 자의 선의로 실현되지 않는다. 주은선 교수는 “자본과 국가가 더 많은 몫을 부담하도록 정치적으로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세대 간 갈등을 벌이기보다, 사회 전체의 부를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어떻게 분배할지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지속가능한 내일에 투자하자
‘누구에게 어떻게 돈을 걷을지’만큼, ‘걷은 돈을 어디에 쓸지’도 중요하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은 노르웨이와 일본에 이어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힌다. GDP 대비 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40%로 OECD 1위다. 이 막대한 공적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는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주은선 교수는 “국민연금의 안정성은 단순한 수익률이 아닌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저출생·고령화, 저임금·불안정 노동, 경제적 양극화 등의 문제에 대응하지 않는 한, 사회도 연금제도도 지속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주 교수는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지 않은 채, 기금 적립만을 강조하는 운용 방식은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 기금을 사람과 사회에 투자하는 것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한 가지 돌파구다. 캐나다 퀘벡주에선 연기금을 주택, 교육, 보건 분야에 투자한다. 독일에선 장애인과 질환자의 재활과 재취업을 지원하는 데 연기금을 투입한다. 이러한 사회투자의 성과는 당장 눈에 보이는 수익률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다지는 기반이 된다. 출생률과 고용률이 개선되면, 그 결과는 연금 재정이 안정되는 결과로 돌아온다.

국민연금은 함께 더 잘 사는 사회를 꾸리기 위한 사회구성원 모두의 약속이다. 사회를 유지하는 연대와 신뢰가 흔들린다면 연금제도는 물론 한국사회의 지속성도 장담하기 어렵다. 눈앞의 손익을 넘어 담대한 시야에서 연금개혁을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노인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아이를 낳기 불안한 사회에 청년세대의 미래는 없다. 연금제도의 기틀 위에서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 청년세대 모두의 고민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