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을 여성의 목소리로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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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서울대 두산인문관에서 제2회 공공역사* 영화상영회가 열렸다. 상영작은 지혜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목소리들》(2024)로, 제주 4.3을 여성의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공공역사: 전문 역사학계를 넘어서 일반인이나 그 경계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소통하는 다양한 역사 실천

공공역사 영화상영회는 역사학부가 주관하는 행사로, 2024년 12월 김태영·최규석 감독의 《1923 간토대학살》을 함께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번 행사는 연계전공 영화영상학과가 공동주최로 참여하기도 했다. 영화영상학 수업을 담당하는 홍석경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인공지능 등의 기술 변화가 급속해도 다큐멘터리라는 영역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며, “앞으로 학교 내에서도 영화를 함께 보는 자리가 늘었으면 좋겠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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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들》은 제주 4.3 당시 생존자 여성이었던 홍순공·김용열·고정자·김은순 할머니의 증언을 교차한다. 할머니들은 당시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이 생생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김용열 할머니는 진상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증언에 임하기도 하지만, 토산리 학살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으며 언니를 그 자리에서 잃었던 김은순 할머니는 ‘간신히 버티는 정신’이라며 도저히 말을 꺼내지 못하기도 한다.

영화는 제주 4.3 당시, 그리고 그 이후 여성이 겪었던 가중된 고통을 하나씩 드러낸다. 당시 여성은 군인들의 성폭력에 쉽게 노출됐으며, 성적 수치심을 가중하는 방식으로 처형당하기도 했다. 군인들의 접근을 피하고자 부모의 의사에 따라 원치 않는 상대와 강제로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혼 이후, 성폭행 피해 경험은 침묵 속에서 억압됐다. 학살 이후 남성이 부족해진 제주도에서, 여성들은 국가에 의한 동원이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노동에 이중적으로 내몰려 혹독한 일생을 살아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조정희 연구자는, 제주 4.3의 희생자 범주에서 여성의 폭력 피해와 트라우마는 쉽게 제외됐다고 지적한다. 추모비에는 이름조차 실리지 않고 누군가의 아내나 딸로만 기술된 여성들도 즐비했다. 《목소리들》은 제주의 숲속에서 미약하게 수런거리는 무수한 여성의 목소리들로 시작한다. 명백히 존재했으나 역사의 시각에선 쉽게 흩어지는 목소리들, 영화는 세심하게 이 목소리들을 서로 엮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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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회가 끝난 뒤에는 지혜원 감독과 김옥영 프로듀서가 함께하는 GV*가 이어졌다. “2005년 구술사를 다큐멘터리에 접목한 작품을 만들다 제주 4.3 때 남편을 잃은 할머니 한 분을 인터뷰했다”고 운을 뗀 김 프로듀서는 “그분이 ‘나는 정말 몰라’, ‘나는 그냥 무서워’ 같은 말만 되풀이했던 게 잊히지 않았다”고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그 이후로 “제주 4.3 위령비에 여자들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직접 보곤, 김 프로듀서는 지 감독에게 여성의 시각에서 4.3을 검토하는 작업을 제안하게 됐다.

*GV : 관객과의 대화.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제작진·출연진 등이 관객과 소통하는 자리다.

사회를 맡은 이하나 교수(역사학부)는 “영화 속에서도 제주 4.3 당시의 계엄이 언급됐는데 2024년 12.3 계엄 이후 달라진 소회가 있는지”를 물었다. 지혜원 감독은 “12.3 계엄 당시 할머니들께 안부 전화를 드리니 ‘4.3이 생각나서 가슴 벌렁벌렁해서 잠도 못 잤다’고 말씀하셨다”며, “할머니들께는 아직도 제주 4.3이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고 그걸 우리 사회가 다시 상기시키게 했단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 굉장히 죄송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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