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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하고 부끄러워 제목없는 기자수첩
누구나 머리는 있다

산만하고 부끄러워 제목없는 기자수첩

방학이 끝나간다.이 글이 인쇄되어 책으로 나올 때 즈음에는 아마도 개강의 설렘과 아쉬움이 학교를 뒤덮고 있겠지.더운 여름밤은 길기만 해서 도무지 지나갈 것 같지 않더니 이렇게 고분고분 새로운 계절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현실과 꿈의 경계가 이상스러운 것처럼 이런 경계의 순간은 항상 비현실적인 모습을 품고 있기 마련인데, 예를 들자면 얼마전 내가 갑작스레 맞닥트린 겨울 풍경 같은 것들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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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끝나간다. 이 글이 인쇄되어 책으로 나올 때 즈음에는 아마도 개강의 설렘과 아쉬움이 학교를 뒤덮고 있겠지. 더운 여름밤은 길기만 해서 도무지 지나갈 것 같지 않더니 이렇게 고분고분 새로운 계절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이상스러운 것처럼 이런 경계의 순간은 항상 비현실적인 모습을 품고 있기 마련인데, 예를 들자면 얼마전 내가 갑작스레 맞닥트린 겨울 풍경 같은 것들이 그랬다. 그저께, 그러니까 8월 26일 토요일 오후, 나는 마감을 넘기고도 언제나처럼 태연자악한 표정으로 학관 문화인큐베이터에서 하얀 모니터를 노려만 보고 있던 참이었다. 순간 하늘에서 천둥이 치더니 비가 마구 내리기에, 을씨년스러움을 즐기는 나는 얼씨구나 하고 통유리 너머 비치는 겨울 풍경을 바라봤다. 본부와 중도는 비를 맞아 완벽한 잿빛이였고, 학관 앞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들은 잎을 흩날리며 세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거센 빗방울은 유리에 궤도를 그리며 떨어져갔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마치 기사를 쓰다가 11월 중순으로 날아와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문큐의 공기는 에어컨 덕분에 차갑고 건조했으며 바깥의 풍경은 완벽한 겨울의 한장면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여전히 텁텁한 습기와 뜻뜻한 빗방울이 대기를 감싸고 있었겠지. 언제나 안에서 바라다보는 바깥 풍경은 내 멋대로 왜곡되어서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아는만큼 보이고 들린다는 얘기보다 알고싶은 만큼 보고 듣는다는 말이 어쩐지 더 와 닿는 요즘이다. 80호 기사로 노인의 성과 관련된 기사를 준비하면서 탑골공원으로, 노인복지관으로 노인분들을 만나러 다녔다. 하지만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하기 어려웠고, 사실 쭈뼛쭈뼛 망설이다가 어렵게 접근(?) 해서도 다른 얘기만 빙빙 둘러 하다가 정작 성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 적이 대부분이었다. 대체 어딜가야 허심탄회하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노인을 만날까.. 하고 답답해 하고만 있었던 걸 보면, 아마도 나도 몰랐던 지독한 오만과 편견이 켜켜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나보다. 노인은 말이지, 공원이나 노인회관에 둘러앉아있는, 인터뷰 하기 어렵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어떤 집단 – 부끄럽고 유치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긴, 강단에 서서 강의하는 교수님을 노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번 기사의 인터뷰이 중 한명이었던 연극 ‘해빙’ 의 연출자 이기호씨를 만났을 때 대체 어떻게 노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지, 감탄하며 물었더니 그는 명쾌하게도, 평소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나는 부끄럽다. 노인의 섹슈얼리티는 우리의 미래다, 하고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노년의 삶이 나의 미래라는 사실조차 평소엔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눈과 나의 귀와 나의 욕망은 어째서 이렇게 단순한 것들만 좇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감을 사흘째 넘겨버리고 이렇게 뒤늦은 기자수첩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나이듦과 노인과 섹슈얼리티와 나의 문제, 그리고…정말로 끝까지 산만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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