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째 헌법소원, 어떻게 될까
2006년 헌법재판소(헌재)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부여토록 규정한 의료법 제61조 1항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2003년 처음 위헌소송이 제기됐던 당시 내려진 헌재의 합헌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그 후 시각장애인 2명은 투신자살을 택했다. 이에 국민 여론은 들끓었고 2개월 후 국회에서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사 독점권을 재부여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한국스포츠마사지협회(현 한국수기마사지사협회)는 의료법 통과 즉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2년이 지난 2008년 6월 헌재는 공개변론을 끝내고 이제는 판결이 임박했음을 알린 상태다. 보통 공개변론이 열린 후 당월 판결이 나는 관례로 보아, 한국수기마사지사협회(마사지협회)측에서는 9월에 선고가 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번이 세 번째 위헌소송이지만 매번 판결이 뒤바뀌었던 관계로 양측은 이번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들만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온 지는 어언 100년이 돼간다. 대한안마사협회(안마사협회) 이규성 사무총장은 “시각장애인들은 대체로 이동이 불편하고 읽고 쓰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다. 그래서 직업적인 면에서 중증장애인들이다”라며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유보직종이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유보직종은 특정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룹에게 특정직종의 자격을 주는 것을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시각장애인에게 유보직종을 부여하는 사례는 종종 발견된다. 캐나다에서는 자판기 운영, 대만에서는 안마업 등의 직종을 유보직종으로 분류해 시각장애인을 보호하고 있다.
이 씨는 “우리도 다른 직종을 개척하기 위해 속기사·텔레마케터·피아노조율사 등을 교육시켜 양성하려 했으나 수강생 상당수가 취업이 안 돼 결국 안마로 전향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발표한 사례를 보면 시각장애인 24명이 컴퓨터속기사 훈련을 받았으나 실제 속기현장에 취업한 사람은 없었다. 후천적 실명을 당한 이들 역시 대부분 안마수련원이나 특수학교 이료(안마)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안마수련원에는 과거 박사학위를 땄던 사람, 의사였던 사람, 법대생이었던 사람 등 각기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규성 씨는 안마사자격 위헌논란에 대해 “직업을 선택하고 옮길 수 있는 일반인들과 우리는 다르다. 직업선택권이 없는 우리에게는 안마업이 생명 그 자체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30만이 넘는 마사지사들은 모두 범법자?
독점적으로 유지되던 시각장애인들의 안마업권이 언제부터 위협받게 됐을까. 지난 8월 18일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소수영 씨는 “후천적 실명을 하게 되어 안마를 시작했다. 안마사 자격을 95년도에 얻게 됐는데, 그 당시만 해도 이런 논란은 없었다. 5년 전 쯤 위헌소송이 있고 난 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안마는 1회에 5-6만원선이다. 고가의 서비스이기 때문에 과거 서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으나 경제발전과 잦은 해외여행으로 안마의 수요가 늘어나게 됐다. 이 씨는 “약 30년 전부터 안마업권을 침해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법적 문제로까지 번지지 않았다”며 민주화가 이뤄지고 이익단체가 등장하면서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겠냐는 의문을 던졌다. 이에 마사지협회 김의범 기획위원장은 “IMF때 실질자를 구제하기 위해 노동부는 국비지원으로 마사지와 경락을 교육시켜 취업을 알선했다. 정부에서 국비로 범법자를 양성한 셈이다”라며 정부의 비일관적인 태도에 쓴소리를 했다. 법적으로는 올림픽에서 선수를 보조해 스포츠마사지를 하는 사람 또한 불법으로 일하는 것이고, 만약 고소당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2006년 의료법 개정으로 인해 비시각장애인은 민간자격으로 안마 관련 자격증은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민간영업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의사의 판단이나 처방 없이는 마사지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화장품 도소매로 사업장을 내거나 피부미용사자격증을 이용해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김 씨는 “한 번 고소를 당하면 처음에는 약 200만원, 그 후에는 500만원까지 벌금이 나와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다. 수요를 채우기 위해 중국인이나 타이인들을 고용해 마사지를 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며 악법이 암적인 현상을 자아낸다고 주장했다. 안마사와 비교해 교육시간이 짧지 않느냐는 질타에 “우리도 인지하고 있고, 각 단체마다 민간자격을 발급하는 교육기준이 다른 문제도 고려하고 있다”며 국가에서 교육 지침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췄다. 김씨는 위헌 판결이 나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도 세금을 내면서 일하고 싶다’는 그의 주장은 간곡했다.

안마를 위한 시각장애인 교육구조
서울맹학교의 수업시간은 1주일 36시간 수업 중 국민공통교과과목을 제외한 모든 수업이 이료과정으로 짜여있다. 이료과정 이수시간은 고1은 주 7시간, 고2·고3은 주 23시간으로 학교 교육과정의 대부분은 안마를 배우는데 할애된다. 교육과정이 안마에 치중돼 있어 졸업 후 진로 또한 안마 관련 직종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전맹학교의 2008년도 졸업생 진로 진학 현황에 따르면 졸업생 61명 중 7명이 진학을 했고 나머지 54명은 모두 안마관련 직종에 취직했다.

지난 7월 14일 전국 13개 초중고교 맹학교 학생·학부모·교사 1500여 명은 수업을 거부하고 서울맹학교 근처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한 학교의 전교생이 보통 100~200명임을 고려하면 1500명은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당시 호소문을 낭독했던 한빛맹학교 신혜령(19) 학생의 아버지 신홍섭 씨는 수업거부가 자체적으로 이뤄진 경위에 대해 학생회에서 자치적으로 결정을 한 결과라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6일부터 6일간 인권위 건물 옥상을 점거하고 시위를 하던 이들도 맹학교 학생들이었다. 대전맹학교 윤여운 교감은 “방학 전만 하더라도 수업을 거부하고 집회에 참여하러 두 번 서울로 올라갔다. 학생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는 상태다. 교내에서 학생들끼리 토론회도 열고 의견발표도 하지만 실제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답답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헌재 판결을 앞두고 뒤숭숭한 교내 분위기를 전했다.
보통 선천적으로 실명을 한 학생들은 후천적 실명을 겪고 뒤늦게 맹학교에 입학해 안마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보고 시각장애인에게 안마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인지하게 된다. 신홍섭 씨는“학부모들은 처음에 안마를 편향적인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안 시키려 한다. 하지만 일반 아이들보다 교육비로 3~4배 더 투자하지만 아이들이 소화를 못하고 한계에 부딪치면 학부모로서 어쩔 수 없어진다”며 시각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동정’이 아닌 ‘동행’의 길
오늘도 헌법재판소 정문 양쪽에는 마사지협회와 안마사협회서 나온 1인시위자들이 각기 주장을 담은 피켓을 메고 서있다. 안마사협회 측은 ‘헌재의 판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입장인 반면 마사지협회는 위헌 판결을 확신하고 있다.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보면 위헌 판결이 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되지만, 이 경우 시각장애인들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에 첨예한 대립이 빚어내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안마업권 논란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은 타고나서부터 안마로 훈련돼 왔고, 그래서 그들의 생존권 문제를 단순히 산술적인 수치로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며 헌법재판소가 무거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마사지협회 최회광 공동회장은 “우리만 살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며 시각장애인을 안마 강사나 헬스키퍼로 채용하는 방안, 국가가 시행하는 모든 제도에 시각장애인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안 등을 위헌 판결 후 가능한 대책으로 제시했다. 헌재 공개변론에서 보건복지가족부는 시각장애인을 옹호하는 변론을 펼치고 있으나, 별다른 정책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의료제도과 황지숙 주무관은 위헌 판결 시 시각장애인을 보호할 대책이 있느냐는 물음에“위헌 판결이 났을 경우의 대책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대답하기를 꺼렸다.

“동등한 조건에서 시각장애인과 일반인 가운데 누구에게 안마를 받을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고 우리의 입장을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헌재 앞 1인 시위를 하던 소 씨는 특별한 대안 없이 안마업권 개방은 있을 수 없다며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그들의 위치를 설명했다. 헌재의 판결에 따라 적어도 몇 천, 많게는 몇 십만의 사람들의 삶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는 스스로를 인권보장기관이자 헌법해석기관으로 자임하고 있다. ‘따뜻한 가슴으로 내리는 단호한 판결’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