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많은 수의 군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때마다 국방부에서는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병영 문화를 혁신할 것을 국민 앞에 다짐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금껏 내놓은 대책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대의 구조적인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사들의 자살 사고를 두고 국방부의 의견과 여론이 엇갈리는 가운데 군 내 자살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죽어가는 군인들많은 숫자의 병사들이 ‘군기 사고(자살, 총기, 폭행 등으로 인한 사고)’로 죽어가고 있다. 국방부에서는 관련 국방정책과 사고 변동추이를 주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지난 7월 11일 발표한 국방부의 자료에 따르면, 수치상으로는 군기 사고가 이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1980년도에 391건의 자살 사고가 발생했으나 지난해에는 82건으로 감소한 것이다.그러나 수치가 감소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군인권센터 정민영 씨는 “군에서 사고 방지를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자살 사고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참여연대 평화국제팀 박정은 팀장은 “물리적 폭력은 많이 줄었지만 인신 모욕, 정신적 폭력 등은 데이터로 집계되지 않는다”며 통계 자료의 수치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는 일부분에 불과하고 더 많은 수의 병사들이 군대 내 가혹행위와 폭력 문제를 겪고 있을 것”이라며 자살 사고 이면에 산재한 문제점을 꼬집었다.고질적인 군대 내 자살 사고,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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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3일 30사단에서 열린 ‘병영문화 혁신 대토론회’. 여러 대책이 나왔지만 이전에 나온 대책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 국방일보 |
군대 내 자살 사고 예방에 대해 국방부는 1987년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을 위한 지침, 1994년 군사고 예방 규정, 2009년 자살예방 종합시스템, 2010년 군내 언어폭력 근절 대책 등을 내놨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나면 후(後) 대책형으로 내놓는 방안들은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군사상자 유가족연대(군사연) 이정호 회장은 “의미 없는 대책”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징병제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강제적인 징병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데 자질구레한 문제를 고친다고 해서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겠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참여연대 박정은 팀장 역시 “군대에서 적응하기 힘든 성향의 사람들까지도 입영시키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병력을 강제적으로 징집하는 현 제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회장은 “이런 사람들에게 군대식 문화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며 집단성을 강조하는 의식 구조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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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쇄적인 군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참여연대 평화국제팀 박정은 팀장. |
국방부에서 병사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대책을 세운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군대에서는 자살 사고에 대해 대부분 ‘병사 개인이 적응을 못해서 그렇다’, ‘병사 개인의 인성이나 정신 건강이 안 좋아서 자살 사고가 일어난다’는 식으로 원인을 분석한다. 이에 대해 정민영 씨는 “가혹행위를 해야 군기가 잡힌다는 구시대적인 발상 자체가 문제다”고 강조했다. 가혹행위를 묵인하는 현재 병영 시스템 자체가 문제이지, 이에 희생당하는 개인에게 원인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지난 7월 발생한 해병대 총기 사건 이후 제시된 3단계 인성 검사, 3진 아웃제도 등도 동일한 문제를 갖고 있다. 3단계 인성 검사는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병사들을 사전에 구별해 조치를 취한다는 취지로 제안됐다. 이는 식별 단계, 캠프를 통한 관리 단계, 복무 부적합 심사 등의 조치 단계로 이뤄진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군복무 부적응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통해 인성검사가 대부분 형식적이고 전문적이지 않아, 진단과 감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신체 검사에서 이뤄지는 정신 감정은 단 몇 시간만에 결과를 내기 때문에,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3진 아웃제도의 경우 구타 및 가혹행위를 상습적으로 하는 병사를 병영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제도다. 군인권센터 정민영 씨는 “구타 자체가 위법 행위인데 두 번까지는 용인하고 세 번째에 구속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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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상자유가족연대 회장 이정호 씨는 죽은 아들 얘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
병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국방부의 태도는 자살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여러 제도에도 반영돼 있다. 국방부에서는 보호관심 병사제도와 자살 우려자를 위한 재활 관리 프로그램인 그린캠프, 비전캠프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군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은 관심병사로 분류돼 특별히 관리된다. 군사연 이정호 회장은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은 제도”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병사라는 점이 공공연히 노출되면 그 사람은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관심을 가지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돌봐야 할 사람을 더욱 몰아세우게 되는 꼴”이라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현역 군인 김 씨도 “보호관심병사는 ‘시한폭탄’처럼 생각된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주변의 병사들도 관심병사를 기피하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어려움을 겪는 병사를 도울 전문적인 상담사의 수도 부족하다. 때문에 상담사의 부적절한 대처로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한 예로 우울증을 앓던 병사가 “꾀병부리지 말라”는 상담사의 언행으로 그 증세가 더욱 악화되기도 했다.자살 사고의 진실, 아무도 모른다군대 내 자살 사고는 유가족들이 직접 나서서 외부에 알리지 않으면 군 내부에서 쉬쉬되고 만다. 이에 변사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아무도 모른 채 장례를 치르고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군 의문사를 규명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는 “수사를 치밀하게 하면 좋겠지만 되도록 군의 잘못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다보니,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는 경우가 많아 유가족들이 직접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에 사망 사고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고 부적절한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유가족 스스로 군사상자유가족연대(군사연)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군사연에서는 현장 조사에서 부검까지 참여하며 유가족들이 사망 경위를 납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군사연 이정호 회장은 “돈이 많거나 할 일이 없어서, 정의감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10여 년 전 죽은 우리 아들이 주위의 억울한 사연들을 아빠가 해결해 보라고 숙제를 준 것 같아 이 일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자살사고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부상자는 본인의 증언이나 정신 감정을 할 수 있지만 변사자의 경우 주변의 증언이나 정황을 따질 수밖에 없어 진실을 알기 더욱 어렵다. 이에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진실을 밝혀줬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정호 회장도 “처음부터 조사 과정에 제대로 관여하지 않으면 감춰진 부분을 보지 못하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군 의문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는 “사건이 법원으로 가지 않으면 진상 규명이나 명예 회복도 기대할 수 없는 구조”라며 “의문사를 해결할 상설 기구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민간 단체가 담당할 수밖에 없지만 그 숫자가 많지 않다”며 활동의 어려움을 전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유가족들의 노력으로 생겼지만 그마저 시한이 종료돼 600여 건의 사건을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에 의문사 문제는 천주교 인권위원회, 군사연과 같은 사회 단체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유가족들이 뒤늦게 연락을 취할 경우 군의 입장에 따라 헌병 조사가 진행돼 병사 개인의 문제나 자살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유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진실 규명이 쉽지 않다. 이정호 회장은 “현재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냉동실에 들어 있는 시체가 전국적으로 30구 정도 있는데 그 유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겠냐”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짜’ 대안은 무엇인가끊임없이 반복되는 군기 사고의 해결책으로 일각에서는 시민사회의 참여를 제안한다. 군인권센터의 정민영 씨는 “군 내부에서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의 박정은 팀장 또한 “군에 모든 사람을 억지로 데려오고 내부에서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며 “객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외부의 감시기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외부 시스템의 예로는 독일에서 시행되는 ‘옴부즈만 제도’가 있다. 옴부즈만 제도는 군대의 법률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독립 기구로 군인의 기본권을 보호한다. 군대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대체 노동을 제시한다. 박 팀장은 “이미 병역거부자가 만 명을 넘은 만큼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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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열린 예비역 장성 초청 정책설명회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강한 전투형 군대를 육성하기 위한 국방 개혁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에 관련된 예산은 작년보다 2조 원 이상 증가했다. ⓒ 국방일보 |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군 인권 역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 해 국방 예산 규모는 31~32조원이지만 압도적 다수인 사병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미미하다. 국방부에서는 지난 7월 2012년도 국방예산 요구안에서 전투형 군대육성에 중점적으로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번 예산안에서는 장병들의 사기와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예산의 증가도 있었지만, 여전히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실질적인 혜택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정은 팀장은 “병사들의 월급이 10만원도 채 안되는 저임금잉기 때문에 언제든지 강제로 동원할 수 있는 편리한 노동력이라 여겨진다”며 열악한 현실을 비판했다. 박 팀장은 “오히려 학자금의 이자를 군복무 기간에 면제해주는 등 보다 실질적인 혜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군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강한 군대의 육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박정은 팀장은 “강한 군대와 인권 보장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며 “강한 국가는 곧 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는 국가”라고 전했다. 군대가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인권이 우선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군인권센터 정민영 씨도 “군대 자체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소화하기 위해서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한 단체인데, 군대 내에서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모순 아니냐”고 덧붙였다. ‘군대를 경험하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 혹은 ‘군대 문제는 남성의 독점 영역이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65만 장병의 문제는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군대의 문제를 군대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넓게 바라보고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