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기사에서 살펴봤듯이, 농활이 가졌던 ‘연대’의 성격은 시간의 진행과 더불어 점점 탈각되어 갔지만, 시야를 ‘농활’뿐 아니라 ‘여름현장활동’으로 넓히게 되면, 그간 이러한 흐름만 있었던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농활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는)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혹은 그 반대의 문제의식에 기반한 농활 비판은 학생사회 내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논의에 기반을 두는 여러 대안의 모색이 약 10여년에 걸쳐 이루어진 결과, 농활일변도였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의활, 환활, 유기농활 등 다양한 여름현장활동들이 공존한다. 이 ‘다양한 여름현장활동들’, 다시 말해 농활의 ‘대안’을 표방하고 나선 것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그들은 어떠한 현장활동의 상을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은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농활의 대안, 환경현장활동? 농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대안들은 오래 전부터 제시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환활’이라 불리는 환경현장활동이다. 처음 시작된 이후 9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계속되고 있으며, 매년 10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참가할 정도로 안정적인 지반을 확보한 환활은 농활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기된 활동 중에는 가장 규모가 크다. 환활은 원래 95년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계기로 등장했던 반핵농활에서 출발했다. 반핵농활은 당시 농활의 ‘비실천성’에 대한 비판에서 추진되었던 방중사업이었는데, 핵폐기장 건립 반대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지역으로 농활을 갔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이는 그냥 ‘농촌’이 아닌, 투쟁이 활발한 지역으로 현장활동을 가면 연대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고, 실제로 노동력 봉사보다는 반핵투쟁에 연대하는 일이 주된 활동이 되었다. 이후 “자본에 의한 환경파괴에 맞서는 투쟁”으로 문제의식이 확장되면서 ‘환경현장활동’이라는 명칭으로 바뀐 환활은 핵 관련 사안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환경 관련 사안을 다루면서 그 활동범위를 넓히게 된다. 96년의 고성/영광/월성의 反핵운동 지역, 골프장 건설지역, 포천의 소각장 지역이나, 97년의 영광/월성/울진의 핵발전소 건설지역, 영흥도 화력발전소 건설지역, 가야산/남양주 골프장 건설지역, 포천의 소각장 지역에서의 활동들이 그 예이다. 그리고 2001년부터는 간호현장활동, 노동현장활동, 기지촌현장활동 등의 새로 등장한 현장활동들과 함께 ‘민중연대현장활동’으로의 영역 확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환활은 이른바 ‘농활의 관성화’를 극복할 만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최근의 추세를 감안하면, 이를 긍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환활 역시도 관성화라는 늪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올해 (환활을 포함한) 민중연대현장활동의 기획단 일원이었던 한승희 씨(고려대 00)는 “다양한 현장활동 중, 비교적 역사가 오래된 환활의 경우에는, 관성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내부적으로도 존재한다.”며 환활 역시 연대투쟁이라기보다는 봉사활동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음을 내비쳤다. 실제로, 봉사활동화하는 농활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환활을 갔다가, 별다른 차별점을 찾지 못한 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활동을 반복하거나, 심지어는 농활로 다시 회귀하는 과/반 학생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여러 가지 진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학생사회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는 분석은 현실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학생들이 현장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농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도 기회도 갖지 못했던 학생들이 농활에 가서 농업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농민과 나누기는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평소에 환경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던 학생들에게 단지 몇 시간의 ‘교양’을 제공한다고 해서 그들이 환활을 제대로 수행할 만한 역량을 가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지적이다. 한승희 씨는 “환활을 가는 사람 중에 생태주의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며, 지속적인 “주체의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우려했다. 요컨대, 연대에 필요한 역량이 학생들 측에서 담보되지 않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단순히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지역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 운동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역 사안이 급박한 정도에 따라 현실에 대한 긴장감이 조금씩 유지되기는 하지만, 환활이 기본적으로 환경과 생태주의에 대한 심도있는 문제의식 하에서 진행되지 않는 한, 농활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문제는 환활에서도 동일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한승희 씨는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후 몇 년간은 참여 인원이 좀 줄더라도, 환경과 생태주의에 정말 관심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구성되는 환활을 진행하여, 환활을 장기적으로 고민할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문제의식’ 중심으로 재구성된 현장활동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대안 하나, – 小國寡民 현장활동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 중심으로 좀 더 내실있는 활동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도모하는 ‘小國寡民’형 여름현장활동들은 이미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이쪽과 관련해서는 생태주의 계열의 현장활동들이 잘 알려져 있다. 환경파괴에 대항하는 선봉대적 성격을 띤 ‘파란’이나, 생태마을 지향의 변산공동체, 지속가능한 대안공동체 실험을 표방하는 에코토피아, 유기농업 체험의 장인 유기농활 등이 그것이다. 파란 2003에 참가했던 서민아 씨(자대 01)는 “봉사활동으로 전락한 농활이나 원래의 문제의식이 많이 흐려진 환활과는 달리 분명한 생태주의적 문제의식에 기반한다는 점”을 파란이 갖는 차별성으로 꼽으며, “환경운동가를 단련하고, 생태주의적인 생활방식을 체득-실천할 수 있는 것.”을 파란의 장점으로 꼽았다. 앞서 예로 들었던 생태주의 중심의 활동 외에도, ‘小國寡民’형 현장활동은 다양하다. 민중연대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활동으로서는?성매매 문제를 다루는 ‘기지촌 / 성매매지역?현장활동’, 장애인 인권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루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현장활동’ 등이 있고, 전공을 살려서 가는 활동으로는 의활이나 간활 등이 있다. 실제로 이러한 소규모 현장활동은 원래의 목적을 상당 부분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파란 2003의 경우, 단순히 시위결합 빈도가 높다는 것 외에도, ‘우리의 약속’과 같은 것이 눈에 띈다. 이는 파란 내부에서 합의-공유된 일종의 내규에 해당하는데, 생태주의적 실천을 체화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예를 들어, 화학제품이나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 채식을 하는 것, 시계와 핸드폰을 배제하는 것, 그리고 위계구조를 없애기 위해 참가자간에 반말을 사용하는 것 등이 그 내용인데, 이는 기존의 농활이나 환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요소라 할 수 있다. 화석연료로부터 독립된 삶의 실현을 위해, 부안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고 사흘에 걸친 귀경길에 오른다는 점도 독특하다. 이러한 小國寡民형 현장활동들은 기존의 관성화된 현장활동과는 달리, 뚜렷한 문제의식에 기반한 참신한 활동들을 벌여낼 수 있고, 살아있는 체험으로서의 의미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小國寡民형 현장활동들을 농활의 대안으로 섣불리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활동들의 대중화가 어렵다는 점이다. 대중화가 어려운 첫 번째 이유로는 활동 자체의 ‘전문성’을 들 수가 있다. 여기서의 ‘전문성’이란 비단 사전 지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웬만한 생태주의 관련 여름현장활동에는 대부분 다 참여해 봤다는 서울대 부총학생회장 홍상욱 씨(경제 99)는 “파란, 유기농활, 에코토피아 등 생태주의적 현장활동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준비된 ‘결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 이해와 관심의 정도가 일천한 소위 ‘일반 학우’들이 참여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행사라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생태주의 관련 현장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부분 환경동아리 활동가들이며, ‘장애인과 함께하는 현장활동’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해 오던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 하나의 난점은 연대단위의 집행력의 문제이다. 예컨대, ‘포항 성매매지역 현장활동’의 경우 모집 대상자가 아예 ‘여성주의 운동 활동가’로 한정되어 있는데, 이는 연대단위인 새날 측의 역량 상 활동 참여 희망자 모두를 받아들일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즉, 여름현장활동을 기획함에 있어서, 연대단위의 집행 역량이라는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현재 한 해에 농활을 가는 대학생들의 수가 2만명에 이르는데, 이러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연대단위는 현재 전농이 유일하다 요컨대, ‘문제의식’을 중심에 놓고 재구성된 이러한 小國寡民형 현장활동들은 여러 긍정적 요소를 가지고 있고, 그 존재가치가 충분히 있기는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전국 각지의 대학에서 대중적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행사로서 발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안 둘 – 농민학생연대활동에서 농촌현장활동으로 한편, ‘연대’라는 가치를 중심에 놓고 그것에 입각한 활동을 복원하고자 하는 앞서의 움직임과는 달리, 농활에서 ‘연대’라는 가치가 탈각되는 경향을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의견도 존재한다. 농활의 의미를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힘든 ‘연대활동’에서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열흘 남짓한 기간에 벌어지는 ‘현장 체험’과 ‘공동체 실험’에서 찾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박경렬 씨(응화 98)는 “실제로 농활을 가 보면 농업문제에 대해서는 학생들보다 농민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기존의 농활에 내재되어 있던 계몽적인 측면의 비현실성을 비판했다. 그는 한총련 측에서도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농민학생연대활동’의 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결과, 올해 총회에서 농활의 정식 명칭을 ‘농촌현장활동’으로 변경한 것을 일례로 들며, “농활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언급하는 농활 개념의 변화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시혜적인 ‘봉사활동’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관련해서는 홍상욱 씨의 의견이 참고할 만하다. 그는 “상아탑 안에만 갇혀 있는 대학생들에게 ‘현장 체험’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교육적 효과는 크다”고 말하며 현장학습을 중심으로 여름현장활동의 의의를 평가하고, 그것의 구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농활의 개혁’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제 3의 길이 아닌 농활에 천착할 필요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참가자 수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한 해에 2만명이 참여할 정도로 안정적인 집행력을 갖춘 농활은 그 자체로 큰 물적 기반이며, 반성폭력 결의문 채택 등 농민회 차원에서도 농활의 상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이기에 농활이 변화할 가능성을 믿어 볼 만하다는 것. 그는 현장학습 뿐 아니라, ‘공동체 실험’으로서의 농활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올해의 경우 ‘존대말 쓰지 않기’ 등 그것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을 진행한 자치단위가 여럿 있었다는 사실을 변화의 긍정적인 요소로 꼽았다. 실제로, 농활을 10박 11일짜리 공동체 실험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조되는 것은 하나의 보편화된 추세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그간 꾸준히 성장해온 학내 여성주의 운동의 영향력도 한몫했다. 반성폭력 자치규약에 대한 농활대원들의 합의를 토론을 통해 이끌어내고, 농활 기간 내내 그것을 지키는 것은 결국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 양성평등한 공동체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실험인 셈이다. 비단 반성폭력이라는 가치뿐 아니라, 학생사회 공동체 내의 관계맺음이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담론이 풍부해지면 풍부해질수록, 그것의 실제적인 구현을 위한 실험의 장으로서의 농활의 성격은 앞으로도 강화될 전망이다. 여름현장활동, 분화가 필요 지금까지 살펴본 대안들은 그 양태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연대’라는 언명이 실제적인 활동의 근거가 아니라 강박으로 작용하는 농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또한, 그 여름현장활동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기획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들은 연대에 관한 치열한 문제의식의 복원과 그에 기반한 실천을 강조하는 小國寡民형 현장활동과, 대학생들에 대한 재사회화 기능과 대중성을 강조하는 농촌현장활동의 두 가지로 크게 분류할 수 있는데, 둘 다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요한 점은, 이 두 가지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공대 부학생회장 이홍재 씨(지환시 00)는 “대중성을 강조하는 여름현장활동과 ‘연대’와 같은 정치적 목표를 강조하는 여름현장활동 간의 분리를 통한 공존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두 가지 방향의 실천이 동시에 가야 함을 강조했다. 어느 쪽을 택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실천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로 현재를 지양해 가려는 태도일 것이다. 19세기에 태어나 치열한 삶을 살다간 한 철학자는,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에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넘겨받아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환경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른다.”는 말로써 ‘관성 탈피’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악몽을 머리 위에 계속 이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벗어던지고 새로운 꿈을 꾸며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