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라더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사회, 이는 결코 소설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NEIS 논쟁을 비롯해 전자주민카드, 전자정부 등 ‘감시사회’의 징후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감시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질적?양적 발달을 거듭하고 있으며 개인의 정보는 수집 주체의 필요에 따라 가공?축적되고 있다. 개인의 취향, 나아가서는 사상과 양심의 내용까지 담고 있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은 인권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부에 의한 개인의 통제가 정당화되고 경제개발논리가 인권보다 우위에 있었던 한국의 인권의식은, 이와 같은 기술발달 수준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감시사회의 도래…
그러나 한국의 정보인권의식 취약해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강남구 방범 CCTV는 한국의 정보인권 수준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강남구는 애초 CCTV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주민의 동의, 촬영 사실 사전고지 등 개인의 인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들에 안일하게 대처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결국 강남구는 설치를 위한 조건으로 주민 동의 2/3 이상을 설치 조건으로 정하는 등 절차상의 문제들을 어느 정도 개선하였으나, 관련 법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우려를 남기고 있다. 정보인권의 다른 사안들과 달리, CCTV 설치는 ‘범죄로부터 안전할 권리’라는 또 하나의 인권문제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더욱 논란이 분분하다. 그런데 이러한 논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CCTV 서울시 전역 확대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더 이상 CCTV 문제가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시사했다.
CCTV, 실제로 방법효과 있나?
CCTV를 둘러싼 논란 중 의견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는 ‘CCTV가 실제로 범죄예방효과를 갖느냐?’는 것이다. 강남구는 최근 CCTV 설치 지역인 논현 1동 파출소 관내의 경우 살인?강도?절도?강간?폭력 등 5대 범죄가 42.5%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또, 표창원 경찰대 교수의 논문 ‘CCTV 설치의 효용과 문제점’에 따르면 88년부터 공공장소에 CCTV를 설치하기 시작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CCTV를 설치해 온 영국의 경우 리버풀의 한 번화가에서 91년 53건에 이르던 강력 범죄가 CCTV를 설치한 1년 뒤 9건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이처럼 설치에 찬성하는 측은 CCTV가 범죄예방효과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진보네트워크 정책국장 장여경 씨는 CCTV의 효과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설치 지역의 범죄율과 비(非)설치 지역을 포함한 전체 범죄율 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 측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영국의 사례만 살펴보더라도 CCTV가 설치된 고급 금융?주택가의 범죄율은 줄어들었지만, 영국 전체의 범죄율은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범죄의 ‘전이효과’ 때문인데, ‘전이효과’란 CCTV가 설치된 지역의 범죄율이 줄어들더라도 비설치 지역의 범죄율이 그만큼 증가해 전체 범죄율은 변동이 없는 현상을 말한다. 장여경 씨는 “전이효과가 존재하는 한 CCTV 설치는 외곽지역의 우범지역화와 계층 분열만을 가속화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또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보인권팀장 박준우 씨는 중앙일보 온/오프 토론방에 게재한 글에서, “CCTV 설치 효과는 범죄예방이 아니라 사후 범인 추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우발적인 범죄나 마약?술 등으로 인한 비이성적 상태에서 저질러지는 범죄는 CCTV가 예방하기 역부족일 뿐 아니라 계획범죄 역시 CCTV를 피해 이루어질 것이므로 사후추적 역시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다.
프라이버시권은 ‘자기 정보 결정권’
실제적 방범효과에 대한 논란이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CCTV 설치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얻는 심리적 안정감은 무시못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CCTV에 의한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강남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강남구 주민의 85%가 설치에 찬성한 것이 단적인 예다. CCTV에 대한 현실적 수요가 있다면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옴직 하다. 그러나 CCTV 설치의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은 것은 CCTV가 지역주민들 뿐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들까지 ‘감시’하게 된다는점, CCTV가 범죄로부터 안전할 권리와 개인의 프라이버시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이란 무엇인가? 장여경 씨는 이를 한 마디로 ‘자기 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으로 정의한다. 프라이버시를 기존의 ‘사생활’ 개념을 넘어서 보다 적극적인 개념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찍히는 사람의 동의가 있다면 CCTV에 의한 촬영도 가능하다”고 말한 장여경 씨는 “하지만 동의가 있다고 해서 모든 촬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즉, 찍히는 사람들의 ‘동의’와 ‘원칙’을 함께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보호법 제정 시급해
그러나 한국에는 아직 정보인권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일관된 법적?제도적 ‘원칙’이 부재한 실정이다. 현재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 법률들은 등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그나마도 공공영역 관련 법률에 수사기관은 제외되어 있는 등 한정된 수준에 불과하고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도 결여되어있다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NEIS 문제를 다룰 때도 적용할 수 있는 국내법규가 헌법밖에 없어 국제법 기준을 적용해 해석했다는 후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80년에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8원칙’(이하 8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개인정보수집시 고지 또는 동의의 원칙 ▲정보내용 정확성의 원칙 ▲목적 명확화의 원칙 ▲이용제한의 원칙 ▲안전성 확보의 원칙 ▲공개의 원칙 ▲개인의 접근성 보장 원칙 ▲책임의 원칙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장여경 씨는 “유럽의 경우 ‘8원칙’에 입각한 프라이버시 보호 법률을 100% 완비한 상태이고 캐나다, 미국, 호주, 일본 등의 국가에서도 제정 중”이라며 한국에서도 프라이버시보호 일반법 제정이 시급함을 주장했다.
프라이버시 보호위원회?영향평가제 도입
시민 단체들은 법률제정뿐 아니라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프라이버시 보호위원회’ 설립 또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공공기관에 의한 개인정보 수집이 많은 한국에서는 그만큼 공공기관의 정보 유출로 인한 폐해도 많은 까닭이다. 최근 행정자치부와 정보통신부가 프라이버시 보호법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에 시민단체들의 시선이 회의적인 것도 이러한 이유가 크다. 장여경 씨는 이를 “결국프라이버시 보호위원회를 정부 산하에 두자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시민단체들은 ‘프라이버시 영향평가제’ 도입을 주장한다. 환경, 교통 등의 분야에 이미 도입된 제도인 영향평가제는 일단 실시되고 나면 되돌리기 힘든 거대한 시스템에 적용되는 것으로 실시 전 미리 그 영향을 평가하는 제도이다. 이를 도입한 캐나다의 경우 전자정부같은 거대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프라이버시 영향평가 결과를 첨부해야 예산이 배정된다.
원칙과 사회적 합의의 조화
길거리에 설치하는 CCTV는 찍히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촬영하는 까닭에 설치 그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인권 침해 요소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천 반대’가 아닌 ‘원칙정립을 전제로 한 찬성’에 많은 이들이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범죄로부터 안전할 권리역시 프라이버시권만큼이나 중요한 보호받아야 할 인권이기 때문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한 칼럼을 통해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에서의 다양한 토론을 통해 정보인권에 대한 합의를 민주적으로 모색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끊임없이 위협받는 현재, 일관된 ‘원칙’을 정립하되 사안에 따라 구성원들 간 합의에 의한 ‘정보인권’ 개념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