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1’천성산 지킴이’ 환경운동가인 지율스님이 서울대학교를 찾았다. 지난 9월 22일 늦은 7시 한 대형강의실을 찾은 그는 조금 지친 모습이었다.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장장 7시간에 걸쳐 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왔으니 지칠 만도 하다. 이 날은 학생환경연대에서 주관하는 ‘지율, 대학을 만나다’ 행사중 하나인 지율스님 강연회가 있는 날이었다. ‘지율, 대학을 만나다’는 ‘도롱뇽 소송 시민행동’과 ‘학생환경연대’ 그리고 서울대 환경위원회가 연합하여 서울대학교에서 3일간 진행한 행사였다. 처음 이틀은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면서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반대를 주창했고, 지율스님의 강연회로 마지막 날을 장식할 예정이었다. 강연회에 들어가기 전,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지율스님을 만나보았다. 지율스님에 대해서는 그가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할 때부터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소식을 익히 들어왔었다. 한 비구니 스님이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 앞에서 꿈쩍도 않고 있다고. 부산에서는 사상 초유의 ‘도롱뇽 소송’을 이끌고 있다고. 한편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관객으로 참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그였지만, 그가 대학 강연회에 선다는 소식은 처음이었다. Q. 어떻게 대학강연회를 준비하게 되었는가? A. 청년환경센터에서 학생들과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천성산 문제는 특히 학생들의 참여가 많은데, 이는 이 문제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인 성향 때문일 것에요. photo2천성산 문제는 생명이나 문화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 크죠. 또한 천성산 문제는 다른 일반적인 사회문제와는 다른 면이 있어요. 이것은 나의 의견이 아니고 나와 함께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린 것인데… 우리가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입장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하더라구요. 현재 초등학교 학생들과 공동수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의 참여가 주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어요. 학생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가치관을 전환시킬 수 있는 세대라는 것이죠. 천성산 문제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제부터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역시 그가 그토록 천성산 운동에 집착하는 이유이다. 이에 대해 지율스님은 그가 어떻게 천성산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먼저 입을 열었다. Q. 왜 그렇게 천성산 살리기 운동에 열심인가? A. 사실 처음 천성산에 가게 된 것은 우연한 발걸음이었어요. 공부를 하기 위해 내원사에 석달 정도 머물렀는데, 그때 천성산에 가게 되었어요. 처음 포크레인과 공사현장을 보았을 때는 내가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어요. 아마 누구나 그랬을 거에요. 지금 당장 관악산 양쪽에서 포크레인으로 산을 뒤집더라도 나 혼자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을 걸요. 산 정상에서 나무가 꺾이고, 바위가 깎이는 광경을 보았어요. 그러나 그때는 그냥 산을 내려왔어요. 그 이후 절에서 산을 쳐다보고 있자니 항상 가슴이 갑갑해지는 거에요. 얼마 후부터는 기계의 굉음과 나 자신에 대한 비겁함이 내 속에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산에게 내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물었어요. 그때 산이 나를 불렀어요. 내가 뛰어든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불러 세웠어요. 그렇게 해서 천성산 살리기 운동을 시작하게 된 거에요. 지금도 산에게 묻곤 해요.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러면 내 마음 속에 길이 열리는 기분이에요.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산이 하는 이야기가 사실은 내 내면의 소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 후 지금까지 천성산 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어릴 때의 자연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어릴때부터 산을 많이 좋아했어요. 어릴 때는 한강변에 모래사장이 많았죠. 한강이 얼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아마 지금 학생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에요. 그 때의 하늘이 얼마나 맑았는지… 손톱으로 톡 때리면 쨍하고 금이 갈 것만 같았어요. 구름은 하얗고, 하늘은 파랗고, 저녁이면 은하수와 별똥별들이 무수히 떨어지고… 그게 불과 30여 년 전 일이에요. 안타까울 따름이죠. 반면 지금은 아무리 눈이 많이 쌓인 산길을 걸어도 토끼 발자국 하나 찾을 수 없어요. 많은 것이 변했어요. 나는 변형되기 전의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속에 간직하고 있어요. 지금 내가 이 운동을 하는 것은 변형된 자연이 가지고 있는 아픔을 천성산에서 다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에요. 천성산 운동이 ‘도롱뇽 소송’이라는 이름으로 도롱뇽을 소송인으로 내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처음 환경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접근한 분야는 지학이나 지질 쪽이 아니었다.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구간의 생명들이 어떻게 변하고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정부의 고속철도건설 강행의지가 변하지 않았을 때, 지율스님은 그가 처음 환경운동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Q. 왜 하필 도롱뇽인가? photo3A. 지학이나 지질이 아닌 생명을 중심에 두고 둘러보자 주위에 도롱뇽이 보였어요. 천성산에는 수달 같은 천연기념물도 살고 있지만 이것들은 쉽게 볼 수가 없고 배설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죠. 반면 도롱뇽은 천성산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동물 중 하나에요. 그러나 그 생존방식이 민감하여 환경오염에 취약해요.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절반 이상이 이미 멸종되었어요. 멸종 위기의 대표적인 생물종이라 할 수 있죠. 고속철도 공사가 진행되면 반경 700M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 파충류와 양서류가 소음과 진동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해요. 이에 천성산의 많은 생명들을 대신하여 도롱뇽의 이름으로 소송을 걸게 되었어요. ‘도롱뇽 소송’은 아직 진행중이다. 환경연대 측에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검증을 요청했었고, 지난 9월 13일 부산고등법원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고속철도 공단에서 이 결정에 대해 이의를 신청했다. 이의 신청에 대한 법원의 최종 결정은 9월 말에 나온다.(9월 23일 기준) ‘지율스님’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식투쟁’이다. 그는 2003년 2월, 38일간의 단식투쟁을 시작으로, 그 해 45일간의 두 번째 단식투쟁을 이끌었다. 그리고 2004년 6월, 바뀌지 않는 정부의 태도 앞에 다시 한번 소리 없는 저항을 시작했다. 이 때의 단식투쟁은 무려 57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결국 58일 째 스님이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막을 내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없다는 지율스님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면서 그에 대한 두 부류의 의견이 교차했다. 동정과 연민의 눈길도 많았지만, 너무 무모한 투쟁이라는 비판적인 시각 또한 적지 않았다. Q. 단식이라는 방법은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치고 나아가 생명까지 해할 수 있는데, 왜 이런 극단적인 방법인 단식을 택하게 되었는가? A. 단식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았어요. 단식이든 다른 운동이든 매 순간의 절실함 때문에 했을 뿐이에요. 그래요. 절실함… 단식투쟁을 하기 전, 공사현장에서 100일 동안 투쟁했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방법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다음 방법으로 단식을 택하게 된 것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동기뿐이었어요. 더 큰 동기는 없었고요. 천성산 문제는 부산시장과 대통령이 공사에 대한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운 사안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약을 지키지 않았어요. 아니, 공약이었다는 것보다도 지역 주민의 67%가 반대하는 문제였다는 점이 저 중요하죠. 그러나 우리와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았어요. 이러한 절실한 상황 속에서 내가 단식 외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요.Q. 그렇다면 단식 전에 다른 방법으로 투쟁했었는가? A. 안 해본 것이 별로 없죠. 수녀님들과 부산에서 서울까지 국토순례도 했었고, 수녀님 한 분과 독일의 성자라고 하는 페터 노야르 선생님과 셋이서 자전거 순례도 했었어요. 1인 시위는 물론이고 산 밑에서 정상까지 삼보일배도 했어요. 시위도 하고 집회도 해봤지만 주로 음악회 같은 문화적인 운동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생명운동이잖아요. 그런만큼 규탄대회의 성격이 아닌 문화적인 성격의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진행중이에요. 문화공간을 이용하여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도롱뇽 행사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고, 모의재판, 길거리 음악회 등이 현재 준비 중이에요. 지율스님의 이러한 활동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불교계의 사찰건립에 대한 논쟁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 대형사찰건립과 사찰증설이야말로 환경을 파괴하는 큰 원인이 되면서 불교계가 자연보호를 외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지율스님의 활동도 불교계 자체의 반성 없이는 아무 의미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photo4Q. 한국 불교계가 무분별하게 사찰을 증설하고 있는데 불교계가 자연에 떳떳할 수 있느냐는 비판은 들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 한쪽에서는 대형불사를 하면서 한쪽에서는 자연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현재 실정이죠. 이에 대해 비난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살림을 안 살아봐서(사찰건립 등을 포함한 절의 살림을 말하는 듯했다.) 잘 모르겠지만 걱정이 많이 되긴 해요. 실제로 불교계 내에서도 요즘 이러한 논의가 통용되고 있어요. 불교환경연대를 꾸려서 대형불사에 대해 자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등 많이 고민하는 분위기에요. 불자들도 사찰증설과 신축에 대해 많은 건의를 해주고 있고요.” 문득 지율스님이 보는 서울대의 환경은 어떤 인상일지 궁금해졌다. 놀랍게도 지율스님은 20여 년 동안 관악산 근교에서 살았다고 했다. Q. 관악산과 서울대 주위 자연환경에 대한 인상은 어떠한지? A. 바로 관악산 요 밑에서 살았었어요. 아마 관악산에는 100번도 더 올랐을 거에요. 눈감고도 올라갈 수 있는 산 중의 하나가 관악산이죠. 서울대학교가 세워지기 전부터 산에 다녔고, 학교가 세워지는 과정도 지켜보았어요. 하지만 그때는 학교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어요. 그때는 그래도 비교적 자연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학교를 지었었거든요. 지금은 서울대학교가 안고 있는 관악산 훼손 문제도 크다고 생각해요. 고민을 해야하는 시점에 와 있는거죠. 그러나 이 문제가 좋고 나쁘고, 선악을 따지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시와 자연이 공존해야하는 현대 사회의 이치에 맞게, 어떻게 얼마나 자연을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죠. 도시는 도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연보존에 대한 생각들을 옮겨가야 해요. 허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죠. 현재 논의되는 환경문제가 거의 실천이 어려워서 발생한 것일거에요. photo5단식투쟁 이후 아직은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지, 인터뷰 내내 스님의 목소리는 개미소리만 하였다. 귀기울여 들어야 했던 어려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기자를 힘들게 한 것은 스님의 두서없는 답변이었다. 참 말재주가 없었다. 3년 여간 법정과 청와대 앞에서 환경운동을 이끌어 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말재주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하다가, 또 저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이 이야기를 하다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따라가기가 참 힘들었다. 그러나 스님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한시도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뼈만 남은 앙상한 얼굴이라 유난히 두 눈이 커 보였던 것 같다. 끝없는 싸움에 지쳐 빛을 잃은 그의 얼굴에서 유난히 빛났던 두 눈은 생명을 갈구하고 있었다. 천성산이, 도롱뇽이, 푸른 생명들이, 그의 눈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잘 들리지도 않는 작은 목소리와 어눌한 언변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사랑하는 그의 진실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것도 그의 천성산 살리기 행군을 멈출 수는 없다. 산이 그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이 나를 불러세웠다”
photo1’천성산 지킴이’ 환경운동가인 지율스님이 서울대학교를 찾았다.지난 9월 22일 늦은 7시 한 대형강의실을 찾은 그는 조금 지친 모습이었다.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장장 7시간에 걸쳐 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왔으니 지칠 만도 하다.이 날은 학생환경연대에서 주관하는 ‘지율, 대학을 만나다’ 행사중 하나인 지율스님 강연회가 있는 날이었다.